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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성경을 증명하는 것은 순환논증이 아닌가?

짧은 답

‘성경이 그렇게 말하니까’라는 한마디로만 성경의 권위를 세운다면 순환논증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권위는 자기보다 높은 것의 보증을 받을 수 없고, 이성을 포함한 모든 마지막 기준은 결국 제 빛으로 변호됩니다. 성경은 많은 증인과 시험할 수 있는 역사, 예수의 증언, 성령의 증거를 내놓으며, 이것은 증명이 아니라 신뢰할 이유입니다.

해가 떠올라 창밖의 언덕과 방 안을 환히 밝히자, 돌 창턱 위 촛불의 작은 불꽃이 햇빛 속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해 뜨는 창가에서 빛을 잃은 촛불

성경의 답

먼저 반론을 가장 강한 형태로 들어 봅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면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고 답합니다. 그 말을 왜 믿느냐고 물으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결론이 전제 안에 들어 있으니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이유도 되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 물음에 네 갈래로 답합니다.

첫째, 성경은 실제로 자기를 증언합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베드로는 예언이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않았다고 하고 (벧후 1:21), 예수께서는 "성경 기록은 깨뜨리지 못할진대"라고 하셨습니다 (요 10:35). 선지자들은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라고 외쳤습니다 (렘 2:2). 하나님이 정말 말씀하셨다면, 그 말씀을 보증해 줄 더 높은 권위는 있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도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을 때에 더 큰 이를 두고 맹세할 수 없으므로 자신을 두고 맹세하여

히 6:13

이것은 성경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이성이 믿을 만하다는 것을 보이려면 이성을 써야 하고, 기억이 믿을 만한지도 기억에 기대어 확인합니다. 마지막 기준은 무엇이든 결국 제 빛으로 변호됩니다. 그러므로 물음은 원이 있느냐가 아니라, 어느 원이 정직하며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품을 만큼 넓으냐입니다.

둘째, 성경은 천 년이 넘는 세월에 걸친 많은 증인의 증언이며, 스스로 시험받기를 청합니다. 율법은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을 "주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신 것이요"라고 판정하게 했고 (신 18:22), 요한은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그것들을 시험하라"고 합니다 (요일 4:1). 베레아 사람들은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했습니다 (행 17:11). 누가는 목격자들이 전한 것을 자세히 살펴 썼고 (눅 1:1-4),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를 본 사람들을 하나하나 듭니다 (고전 15:3-8). 그리고 믿음 전체를 하나의 공적인 사실에 겁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아니하셨으면 너희의 믿음이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으며

고전 15:17

자기를 반박할 사실을 스스로 밝히는 주장은 닫힌 원이 아닙니다. 사본과 역사의 증거는 성경은 믿을 만한가?에서 다룹니다.

셋째, 예수께서도 자기 말 하나에만 기대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만일 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니라. 나에 대하여 증언하시는 다른 분이 있는데

요 5:31-32

그분은 세례 요한의 증언,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들, 아버지의 증언을 드시고, 마지막으로 성경 기록들을 두고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요 5:39).

넷째, 온전한 확신은 논증만으로 오지 않습니다. 바울은 "너희의 믿음이 사람들의 지혜 안에 서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 안에 서게 하려 함이라"고 썼습니다 (고전 2:5).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고 (살전 2:13), 요한은 "하나님의 증언은 더 크도다"라고 합니다 (요일 5:9). 예수께서는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라고 하셨습니다 (요 10:27). 이유는 길을 닦지만, 그 음성을 알아듣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교회의 증언

라틴어로 그의 이름을 두른 타원형 틀 안에서 납작한 모자를 쓰고 모피 깃 외투를 입은 수염 긴 칼뱅이 두 손으로 펼친 책장을 넘긴다.
피터르 스헹크, 〈장 칼뱅〉, 1670–1713년 무렵 (레이크스 미술관) · 출처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복음 5장을 두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증거가 참된 줄 아시면서도 약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태양께서 등불을 구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태양은 그리스도, 등불은 요한 같은 증인들입니다.

칼뱅은 확신의 뿌리를 논증보다 깊은 데 둡니다. "성경의 진리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사람의 추측이나 판단이나 이유보다 더 높은 근원, 곧 성령의 은밀한 증거에서 나와야 한다" 칼뱅, 기독교 강요 1.7.4. 1.8에서는 성경의 오래됨, 소박한 말에 담긴 위엄, 이루어진 예언, 순교자들의 피 같은 이유를 듭니다. 다만 그것들을 믿음의 기초가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보조 수단이라고 부릅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1.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의 권위가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거에 달려 있지 않고, 전적으로 그 저자이신 하나님(그분은 진리 자체이시다)께 달려 있다"고 고백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4. 교회의 증거와 성경의 여러 탁월함도 인정하지만, 온전한 확신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또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5. 벨직 신앙고백도 교회가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성령께서 마음속에 증거하시기 때문에 이 책들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벨직 신앙고백 5조.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갈리는 물음이 두 가지 있고, 이 글은 어느 쪽도 고르지 않습니다. 하나는 믿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입니다. 변증학의 고전 변증과 증거 변증은 누구나 함께 가진 이성과 역사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보이는 논증이나 부활의 역사적 증거를 먼저 살핀 뒤 성경의 권위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만물에 자기를 보이셨으니 (롬 1:20), 이성을 쓰는 것이 이성을 하나님 위에 두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전제 변증은 코넬리우스 반 틸 이후로 중립 지대가 없다고 봅니다. 누구나 어떤 마지막 전제에서 생각하며, 사람의 이성을 하나님의 말씀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히면 이미 믿지 않는 쪽의 전제를 받아들인 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성경 위에 서서, 그 하나님만이 이성과 도덕과 과학이 가능한 까닭을 설명한다고 보이려 합니다 (잠 1:7). 두 쪽 모두 아테네에서 전한 바울을 본으로 삼고 (행 17:22-31), 증거를 쓰며, 마음을 돌이키시는 분은 성령이심을 믿습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와 성경의 관계이며, 위의 개혁파 고백들은 그 한쪽의 답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경과 거룩한 전통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와 함께 그분의 한 말씀을 교회에 전하므로,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에 대한 교회의 확신이 성경 하나에만 기대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을 해석하는 교도권은 말씀 위가 아니라 말씀 아래에 있다고 말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 9-10. 정교회는 성경을 전통과 나란히 두기보다, 성령 안에서 이어지는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 안에 두고 그 으뜸으로 여깁니다. 두 교회 모두 교회가 성경에 권위를 주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온 책들을 받아 정경으로 알아보고 증언한다고 말합니다. 성경 안에는 그 목록이 없으니 이 증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도에게,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자기를 움직이지 않았다면 복음을 믿지 않았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가톨릭은 이 말을 교회의 권위가 복음을 받는 일 뒤에 서 있다는 증언으로 읽습니다. 칼뱅은 믿음 밖에 있는 사람이 처음 교회의 권위로 복음에 이끌린다는 뜻일 뿐, 믿는 이의 확신이 거기에 기댄다는 말은 아니라고 읽었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1.7.3. 세 전통 모두 교회의 증언이 사람을 성경으로 이끌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말씀이며 성령께서 믿게 하신다는 데 뜻을 같이합니다.

원어로 보기

디모데후서 3:16의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은 테오프뉴스토스(θεόπνευστος)로, 하나님이 숨을 내쉬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권위는 읽는 사람의 동의가 아니라 그 숨의 출처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5:31-39의 아홉 절에는 ‘증언하다’ 마르튀레오(μαρτυρέω)와 ‘증언’ 마르튀리아(μαρτυρία)가 열한 번 나옵니다. 법정의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재판정에 서신 듯 증인들을 부르십니다. 성경의 주장을 따지는 일도 수학의 증명보다 증언을 듣고 판단하는 법정에 가깝습니다.

흔한 반론과 답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과 직함이 라틴어로 새겨진, 한쪽이 떨어져 나간 석회암 돌판이 박물관 전시대 위에 서 있습니다.
빌라도 비문, 26–36년 무렵, 가이사랴 출토 (이스라엘 박물관) · 출처

"모든 순환논증은 오류다." 결론을 전제에 넣어 둔 논증, 곧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다’는 말만으로는 의심하는 사람에게 새 이유를 주지 못한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한 구절이 자기를 증명하는 좁은 원과, 마지막 기준이면 무엇이든 피할 수 없는 넓은 원은 다릅니다. 이것이 성경의 참됨을 증명하지는 않지만, 순환이라는 이유만으로 성경을 물리칠 수는 없습니다. 넓은 원은 얼마나 많은 것을 일관되게 설명하는지, 바깥의 시험에 열려 있는지로 평가받습니다. 성경의 주장은 역사와 증인과 부활이라는,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는 자리에 스스로를 세웁니다.

"꾸란이나 몰몬경도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맞습니다. 자기 증언이나 마음속 확신만으로는 서로 다른 주장 사이를 가릴 수 없습니다. 몰몬경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성령으로 그 참됨을 알게 된다고 하고, 꾸란은 의심하는 이들에게 이와 같은 장 하나라도 지어 보라고 도전합니다. 밖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이 말하는 성령의 증거도 비슷하게 들립니다. 그러므로 비교는 마음속 확신이 아니라 내용과 누구나 살펴볼 수 있는 증거로 해야 합니다. 성경은 여러 세기 여러 저자의 증언이며, 본디오 빌라도 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건에 자기를 겁니다. 더 넓은 비교는 왜 다른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인가?에서 다룹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맹목적이다." 마지막 확신이 성령께로부터 온다면 증거는 장식일 뿐이고, 무엇이 밝혀지든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질문을 막는 데 믿음을 쓰는 그리스도인도 있으니 귀담아들을 비판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믿음은 증인의 말을 듣고 그 증언이 가리키는 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롬 10:17). 성령은 이유를 대신하지 않으시고, 증거 앞에서 닫혀 있던 눈을 여십니다 (조명). 믿음은 사람을 신뢰하는 일이 늘 그렇듯 증거를 넘어서지만 거스르지는 않습니다. 의심해도 괜찮은가?도 보십시오.

더 생각해 보기

요한은 "이것들을 기록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밝힙니다 (요 20:31). 시편은 "오 주께서 선하신 것을 맛보고 알지어다"라고 초대합니다 (시 34:8). 맛은 설명을 들어서가 아니라 먹어 보아야 압니다. 성경도 직접 읽고 시험해 보고, 그 말씀이 가리키는 분을 만나 보라고 우리를 부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마지막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그 기준을 무엇으로 변호합니까? 성경을 판단하기 전에 한 복음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증거라면 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더 읽으려면 성경은 믿을 만한가?와 예수는 정말 부활했는가?를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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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첫 판은 1536년 바젤에서 나온 작은 책이었고, 1559년의 마지막 판까지 고쳐 쓰며 늘어났다. 1권 7–8장은 성경의 권위가 성령의 내적 증언으로 확증된다고 하고, 성경의 신빙성을 보이는 증거들(8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이차적인 도움이라고 한다. 읽기
  2.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6 — 장로교회의 신앙고백. 성경, 하나님과 작정, 언약, 구원, 교회와 성례, 종말을 33장에 걸쳐 고백한다. 읽기
  3. 귀도 드 브레, 벨직 신앙고백 1561 —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하나님을 아는 길(창조와 성경)에서 창조, 구원, 교회의 표지와 성례까지 37개 조항으로 고백한다. 읽기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하느님의 말씀) 1965 — 성경과 성전(聖傳)이 하나의 계시를 이루며 교도권이 이를 해석한다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10항). 성경을 읽을 때 저자의 의도와 문학 양식, 성경 전체의 통일성을 살피라고 한다(12항).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