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 연습
로렌스 형제 · 1692–1694년
영어 본문: 역자 미상 영역, 리벨 출판사(1895) ·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 우리말은 이 영어 본문에서 옮겼습니다.
해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은 파리의 맨발 가르멜 수도원 부엌에서 일하던 평수사 로렌스 형제의 대화와 편지를 모은 책으로, 기도하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가르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사는 단순한 길을 보여 주어 여러 전통의 그리스도인에게 사랑받아 왔습니다.
부엌의 평수사
로렌스 형제의 본래 이름은 니콜라 에르망입니다. 그는 1614년 무렵 오늘날 프랑스 동북부에 있는 로렌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서재가 싣고 있는 영어판의 서문은 그를 ‘미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부르며, 하인과 군인으로 지냈다고 전합니다 서문 1. 젊은 날 30년 전쟁의 군인으로 싸우다 다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대화에서 그는 자기가 다리를 전다고 말합니다 대화 2.8.
그의 회심은 열여덟 살 무렵의 어느 겨울에 찾아왔습니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 한 그루를 보며 머지않아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리라 생각하던 그는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에 대한 높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대화 1.2. 그 깨달음은 평생 그의 영혼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그를 세상에서 풀어 놓아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불을 붙였습니다. 재무관 피외베르의 하인으로 일하던 시절의 자기를 그는 ‘무엇이든 깨뜨리고 마는 덩치 크고 서투른 사람’이었다고 돌아봅니다 대화 1.3. 그가 수도원에 들어가기를 바란 것도, 거기 가면 그 서투름 때문에 호된 벌을 받으며 자기 삶을 하나님께 희생으로 바치게 되리라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예상을 빗나가게 하셨고, 그는 수도원에서 만족 말고는 아무것도 만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대화 1.4.
그가 들어간 곳은 파리의 맨발 가르멜 수도회였습니다. 16세기 스페인에서 아빌라의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한이 기도와 가난의 삶을 되살리려고 일으킨 개혁에서 나온 수도회로, 신발 대신 샌들을 신는다고 ‘맨발’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는 사제의 길을 걷는 수도사가 아니라 공동체의 살림과 손일을 맡는 평수사가 되었고, ‘부활의 로렌스’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영어판 서문은 그가 1666년에 받아들여졌다고 하지만 서문 1, 그해는 첫 대화가 있었던 해입니다. 그는 편지에서 수도 생활을 한 지 사십 년쯤 되었다고 말하고 편지 9.2, 대부분의 기록은 그가 1640년 무렵 수도원에 들어갔다고 전합니다.
그는 본래 몹시 싫어하던 부엌일을 열다섯 해 동안 맡았습니다 대화 2.9. 장사에는 재주가 없는데도 수도회가 쓸 포도주를 사러 부르고뉴와 오베르뉴로 보내졌고, 다리를 저는 탓에 배 위에서는 술통 위로 몸을 굴려 다녀야 했지만, 그는 하나님께 이것이 그분의 일이라고 아뢰고 마음을 졸이지 않았습니다 대화 2.8. 둘째 대화에서 그는 지금 맡은 자리와 전에 맡았던 자리를 말하는데 대화 2.10, 전해지기로는 뒤에 형제들의 샌들을 고치는 일을 맡았다고 합니다. 그는 1691년 2월 파리의 수도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늘그막의 한 편지에서 그는 ‘저는 거의 여든입니다’라고 씁니다 편지 7.2.
네 번의 대화와 열다섯 통의 편지
로렌스 형제는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그를 찾아간 한 사제의 기록과 그가 여러 사람에게 보낸 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보포르 신부, 곧 조제프 드 보포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666년 8월 3일이었고 대화 1.1, 그는 이듬해까지 네 차례 나눈 이야기를 적어 두었습니다. 첫 만남 끝에 로렌스 형제는,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려는 뜻이 있다면 귀찮게 할까 염려하지 말고 얼마든지 찾아오되 그렇지 않다면 다시 오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대화 1.10.
보포르는 책을 펴낼 무렵 샬롱의 주교 루이앙투안 드 노아유(뒤에 파리 대주교이자 추기경)의 총대리였는데, 영어판 서문은 이 직함들을 뒤섞어 적었습니다 서문 3. 로렌스 형제가 세상을 떠난 뒤 보포르는 그의 편지와 영적 금언, 짧은 생애, 그리고 자기가 적어 둔 대화를 1692년과 1694년에 두 권의 작은 책으로 펴냈습니다. 영어권에서 이 책은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이름으로 읽혀 왔는데, 그 말은 형제 자신의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설교자라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설교할 것입니다’ 편지 5.4.
이 서재는 1895년 무렵 뉴욕의 플레밍 H. 리벨 출판사가 펴낸, 역자를 알 수 없는 영어 번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싣습니다. 리벨판 편집자의 짧은 서문에 이어 첫째 대화부터 넷째 대화까지, 그리고 첫째 편지부터 열다섯째 편지까지가 이어집니다. 숫자는 대화나 편지와 그 단락의 차례로, 대화 2.9는 둘째 대화의 아홉째 단락입니다. 보포르가 쓴 짧은 생애와 형제의 영적 금언은 이 영어판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편집자는 네 개의 주를 붙였는데, 이 서재는 성경 구절을 적은 첫째 주만 남기고 나머지 셋은 싣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둘째 주는, 넷째 대화에서 같은 수도회의 한 사람이 그에게 물은 대목 대화 4.17부터 끝까지가 로렌스 형제에 관한 다른 기록에서 모은 것이라고 밝힙니다. 그러니 이 책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부엌의 말도 보포르가 직접 들은 대화가 아니라 그 다른 기록에서 온 것입니다.
열다섯 통의 편지는 대부분 그의 마지막 몇 해에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받는 이의 이름은 지워져 있지만, 한 신부에게 자기 길을 물은 편지 둘째 편지가 있고, 수도 공동체에 속한 이들에게 보낸 편지, 싸움터에 나간 젊은이와 벗을 잃은 이를 두고 쓴 편지, 그리고 오래 병을 앓는 이에게 보낸 편지들이 있습니다. 넷째 편지는 같은 수도회의 한 형제 이야기를 전하는 꼴로 쓰였는데, 사십 년 가까운 수도 생활과 삼십 년쯤 이어진 기쁨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누그러뜨려야 했다는 대목이 편지 4.3 둘째 편지에서 형제가 자기에 관해 한 말과 같아서, 많은 독자는 그 형제를 로렌스 자신으로 읽습니다.
그는 가톨릭 수도자로 살고 죽었지만, 그의 책은 뜻밖의 길로 퍼졌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프랑스에서는 영혼이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 잠잠히 머물러야 한다는 이른바 정적주의를 두고 큰 논쟁이 벌어졌고, 교황청은 그런 가르침을 정죄했습니다. 로렌스 형제 자신이 정죄받은 일은 없습니다. 생전에도 어떤 이들은 그의 상태를 ‘무위(無爲)요 미혹이요 자기애’라고 비난했고 편지 2.18, 그는 자기 길을 한 신부의 판단에 맡겼습니다. 많은 학자는 이 논쟁 탓에 그의 글이 한동안 프랑스 가톨릭 안에서 덜 읽혔고, 그 사이 개신교인들이 이 책을 펴내 널리 읽었다고 봅니다. 존 웨슬리(웨슬리와 감리교 운동)도 이 책을 아껴 감리교인들에게 권한 것으로 전해지며, 영어판 서문은 이 책이 짧은 기간에 영국과 미국에서 여러 차례 판을 거듭했다고 말합니다 서문 4. 이 서재의 판을 낸 플레밍 리벨은 19세기 미국의 부흥 설교자 D. L. 무디의 처남으로, 속표지에 자기 출판사를 복음주의 문서를 펴내는 곳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일하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
이 책이 하는 말은 결국 한 가지입니다. 보포르가 첫 만남에서 들은 대로, 우리는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가운데 굳게 서야’ 합니다 대화 1.5. 로렌스 형제는 이것을 기술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여러 책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갖가지 방법을 읽었지만 오히려 혼란스러웠고, 그래서 그는 ‘전부를 위하여 전부를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편지 1.2. 그 뒤로 그는 ‘마치 세상에 그분과 저밖에 없는 것처럼 살기 시작했습니다’ 편지 1.2.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에는 기술도 학문도 필요 없고 오직 그분만을 사랑하기로 굳게 결심한 마음 하나면 된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대화 3.10.
그는 우리가 ‘그분을 항상 우리 앞에 모실 때’ 편지 1.3 고의로 그분께 죄를 짓지 않게 될 뿐 아니라 거룩한 자유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헤매면 불안해하지 않고 다시 불러들이고, 정해진 기도 시간에만이 아니라 온종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시편 기자의 고백과 맞닿아 있습니다.
내가 주를 항상 내 앞에 모셨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16:8
그 연습이 이루어진 곳은 수도원의 성당만이 아니라 부엌이었습니다. 넷째 대화에서 그는 ‘우리의 성화는 우리가 하는 일을 바꾸는 데 달려 있지 않고, 평소에 우리 자신을 위해 하던 일을 하나님을 위해 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대화 4.6. 하나님은 ‘일의 크기가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랑을 보시는’ 분이므로 대화 4.11,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땅에서 지푸라기 하나를 주울 때에도 기뻤습니다 대화 2.1.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생각 없이 평범한 일을 하라는 대목 대화 4.7에 편집자는 갈라디아서 1장 10절과 에베소서 6장 5–6절을 달았는데, 바울은 같은 마음을 이렇게도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많은 개신교 독자는 이 대목에서 종교개혁이 되찾은 소명의 가르침을 듣습니다. 거룩함은 평범한 일을 떠나 종교의 일로 옮겨 가는 데 있지 않고, 평범한 일을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위해 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개혁교회 과정의 소명: 삶의 모든 영역 과가 이 생각을 더 펼칩니다.
그렇다고 그가 기도 시간을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닙니다. 그는 원장의 지시에 따라 물러나 기도했고 대화 2.11, 정해진 기도 시간은 같은 연습을 이어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편지 2.16. 다만 ‘기도 시간이 다른 시간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대화 4.8. 기도하는 때에 기도로 하나님께 붙어 있듯 일하는 때에는 일로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 말씀을 (살전 5:17) 그는 이렇게 살았고, 넷째 대화 끝에 모은 다른 기록은 부엌의 그가 한 말을 이렇게 전합니다.
일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기도하는 시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엌이 시끄럽고 덜그럭거리며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저마다 다른 것을 달라고 부를 때에도, 저는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처럼 고요하게 하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대화 4.23
이 연습은 수도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싸움터에 나간 한 젊은이를 두고 그는, 행군 중에 칼을 들고 있을 때라도 ‘마음을 조금 들어 올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씁니다 편지 3.2. 예순넷이 다 되도록 일에 매여 사는 이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있으려고 늘 교회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마음을 기도실로 삼아 그 안으로 물러날 수 있다고 하면서 ‘누구나 하나님과 이렇게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입니다 편지 7.2. 기도에 관해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도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넘어지고 일어나며, 아플 때에도
로렌스 형제의 길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 그는 변명하지 않고 잘못을 고백하며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저 자신에게 내버려 두시면 저는 결코 달리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넘어지지 않게 막아 주시고 잘못된 것을 고쳐 주실 분은 주님이십니다” 대화 2.6. 그리고 그 일로 더는 마음을 졸이지 않았습니다. 일을 마치면 자기를 살펴 잘한 일에는 감사하고 잘못한 일에는 용서를 구한 뒤,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다시 연습을 이어 갔습니다 대화 4.22.
기도 중의 잡념으로 괴로워하는 이에게도 그는 같은 길을 권합니다.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부자의 문 앞에 있는 말 못 하는 거지나 몸이 마비된 거지처럼 하나님 앞에 머무십시오’ 편지 8.4. 마음이 헤매더라도 불안해하지 말고 의지가 평온하게 그 마음을 다시 데려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너무 서두르는 한 자매를 두고는 ‘은혜보다 더 빨리 가려 합니다. 사람은 단번에 거룩해지지 않습니다’라고 씁니다 편지 9.1.
그가 낙심하지 않은 까닭은 자기의 꾸준함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는 염려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으리라고 기대하면서, 다만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려고 힘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화 2.18. 같은 대목에서 그는 온갖 고행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으면 죄 하나도 지울 수 없다고 하고, 다른 대화에서는 죄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공로에 의지하여’ 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대화 4.4.
그도 오랜 어둠을 지났습니다. 자기가 멸망하리라는 두려움에 네 해 동안 시달리던 그는, 멸망하든 구원을 받든 순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여 행하기를 그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마침내 그 괴로움이 믿음이 부족한 데서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대화 2.2. 둘째 편지에서는 수도 생활 처음 십 년 동안의 고통을 털어놓습니다. 모든 피조물과 이성과 하나님마저 자기를 대적하시는 것 같았고 ‘오직 믿음만이 제 편이었습니다’ 편지 2.7. 그러다 그는 갑자기 변화되어 깊은 내적 평안을 얻었습니다 편지 2.8.
그 평안 속에서 그는 하나님 앞의 자기를 한 장면으로 그립니다. 자기 왕에게 온갖 죄를 지은 비참한 자가 뉘우치며 모든 악을 고백하자, 왕은 ‘저를 벌하시기는커녕 사랑으로 저를 안아 주시고, 그분의 식탁에서 먹게 하시며, 손수 저를 시중드시고, 그분의 보물 창고 열쇠를 제게 주십니다’ 편지 2.13.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이 아직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눅 15:20). 로렌스 형제가 그린 왕은 그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그는 자주 기쁨과 황홀을 말하지만, 그것을 구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 수행에서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즐거움이 아닙니다’ 편지 5.3. 느낄 수 있는 은혜는 아무리 크더라도 ‘믿음이 단 한 번의 단순한 행위로 우리를 그분께 가까이 데려가는 만큼’ 가까이 데려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편지 15.4.
마지막 편지들은 오래 병을 앓는 이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는 ‘저는 당신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라고 쓰고 편지 11.1, 다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동안 그 고통을 견딜 힘과 인내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자신도 여러 번 죽음 가까이 갔지만 고통을 덜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용기와 겸손과 사랑으로 고난받을 힘을 구했다며, ‘아, 하나님과 함께 고난받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 일입니까!’라고 외칩니다 편지 14.2. 가시를 거두어 달라고 세 번 구한 바울도 다른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느니라, 하셨느니라.
고후 12:9
마지막 편지에서 그는 ‘저는 그분의 긍휼로 며칠 안에 그분을 뵙는 은혜를 얻기를 바랍니다’라고 씁니다 편지 15.5. 리벨판 편집자는 여기에 그가 이틀 뒤 자리에 누워 그 주 안에 세상을 떠났다는 주를 달았습니다(이 서재는 그 주를 싣지 않습니다). 고난에 관해서는 고난에도 의미가 있는가?도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을 잘 읽으려면
개신교인들이 이 책을 사랑해 온 까닭은 분명합니다. 직분도 학문도 없는 한 평수사가 부엌의 냄비와 포도주 통 사이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길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 사함을 그리스도의 피에서 기대하고, 느낌보다 믿음을 앞세우며, 날마다 하는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바꿉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끝까지 가르멜의 수도자였습니다. 원장에게 순종했고, 영적 지도자는 필요 없었지만 죄를 사해 줄 고해 신부는 무척 필요했다고 말하며 대화 2.12, 성체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성체는 가톨릭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믿어 성당에 모셔 두는, 미사에서 축성한 빵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개신교인은 그와 생각이 다르지만, 그 안에서 일하신 은혜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복음주의 독자가 조심스럽게 읽는 대목도 있습니다. 먼저, 이 연습은 하나님을 가까이 모셔 오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마 28:20). 연습은 이미 주어진 그 임재에 깨어 있는 일이고, 로렌스 형제도 자기가 얻은 유익을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과 선하심 덕분’으로 돌립니다 편지 1.3. 그러니 그가 말하는 방법과 습관과 행위는 은혜를 얻는 값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읽어야 합니다. 또 그는 성경을 드러내어 인용하는 일이 드물고, 성경의 말은 대개 그의 문장 속에 녹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을 자주 생각하게 되는 까닭을 그는 ‘우리 마음은 우리 보물이 있는 곳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는데 편지 9.4, 이는 마태복음 6장 21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의 권면은 성경 곁에 두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의 치료를 그만두라는 열셋째 편지의 권고 편지 13.2는 한 사람의 형편에 준 말로 읽고, 많은 그리스도인은 의사와 약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받습니다.
대화는 보포르가 들은 말을 옮겨 적은 기록이어서 거의 모든 문장이 ‘그는 …라고 했다’로 이어집니다. 로렌스 형제의 말 그대로가 아니라 한 사람이 듣고 간추린 말이니, 한 문장에 매달리기보다 그 말들이 함께 그리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십시오. 편지는 남에게 보이지 말라는 조건으로 쓴 사사로운 글입니다 편지 1.1. 그가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던 마음을 곁에서 읽는 셈이니, 한 번에 한두 단락씩 천천히 읽고, 그날 하는 일 가운데서 그가 권한 작은 기억을 해 보십시오.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는 핀잔을 예상하면서도 그는 이것이 자기가 아는 가장 좋고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편지 9.4.
그의 말에는 수도원의 말이 섞여 있습니다. 수도 생활은 수도원의 삶을, 수도회는 그가 속한 공동체를 가리키고, 느낄 수 있는 위로나 감각적인 경건은 마음으로 느끼는 기쁨을 말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단순한 말은 아마 일곱째 편지의 한 문장일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 계십니다’ 편지 7.1. 바울도 아테네 사람들에게 그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그분은 우리 각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아니하니 이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이라
행 17: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