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본문이 말하는 것
관찰은 본문이 무슨 뜻인지 묻기 전에 본문에 무엇이 있는지 천천히 보는 일입니다. 마가복음 4장의 폭풍 이야기를 함께 읽으며 사람과 때와 곳, 되풀이되는 말과 대조, 접속사와 물음을 보고, 생각한 것보다 본 것을 먼저 적는 법을 익힙니다.
먼저 보기
성경을 펴면 우리는 금세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귀한 물음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 한 걸음, 곧 본문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천천히 보는 관찰이 있습니다.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보지 않고 뜻부터 물으면 본문이 하지 않은 말을 본문에 넣어 읽기 쉽습니다. 관찰은 해석과 적용이 서는 바탕입니다.
관찰할 때에는 이런 것을 봅니다. 누가 나오고, 무슨 일이 어디서, 언제, 어떻게 일어납니까? 왜 그렇게 되었는지 본문이 말합니까?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곳, 서로 맞서거나 견주어지는 것, ‘그러나’, ‘그러므로’ 같은 접속사와 ‘~하려고’ 같은 이음말, 명령과 약속, 그리고 처음에서 끝까지 글이 흘러가는 길을 봅니다.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일은 아닙니다. 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구원을 위하여 알고 믿고 지켜야 할 것들을 배운 사람뿐 아니라 배우지 못한 사람도 ‘통상적인 수단을 합당하게 사용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1장 7항. 이것을 성경의 명료성이라고 합니다. 천천히 읽고 보고 적는 일은 그 통상적인 수단의 첫걸음입니다.
보는 일은 눈만의 일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내 눈을 여사 주의 법에서 나오는 놀라운 것들을 내가 보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시 119:18). 읽기 전에 이 기도로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주석은 본문을 본 뒤에 펴십시오. 그 까닭은 주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읽는가가 자세히 말합니다.
폭풍 속의 배
함께 마가복음 4장 35-4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먼저 앞의 절반입니다.
바로 그 날 저녁이 되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라. 그들이 무리를 보내고 그분을 배 안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작은 배들도 그분과 함께하더라. 큰 폭풍이 일어나고 파도가 배 안에 들이쳐서 이제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으되 그분께서는 배 뒤쪽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라. 그들이 그분을 깨우며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매
막 4:35-38
먼저 사람과 곳과 때를 봅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있고, 떠나보낸 무리와 함께 가던 다른 배들이 있습니다. 곳은 바다 위의 배이고, 예수께서 계신 자리는 배의 뒤쪽인 고물입니다.
때는 "바로 그 날 저녁"입니다 (35절). 어느 날입니까? 4장 첫머리에서 예수께서는 배에 앉아 바닷가의 무리를 가르치셨고 (막 4:1), "배 안에 계신 그대로"라는 말이 (36절) 그 장면을 잇습니다. 가는 곳은 저편이고, 일행은 바다 건너편 가다라 사람들의 지방에 이릅니다 (막 5:1).
다음으로 일어난 일을 차례대로 보면, 예수께서 건너가자고 하시고 큰 폭풍이 일어 배에 물이 가득해집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주무십니다 (38절). 이 ‘는’ 한 글자가 물이 차오르는 배와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 분을 맞세웁니다. 제자들은 그분을 깨우며 "선생님이여" 하고 부르고 (38절), 자기들이 죽는 것을 돌아보지 않으시느냐고 묻습니다. 이제 뒤의 절반입니다.
그분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에게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신즉 바람이 그치고 매우 고요하게 되거늘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두려워하느냐? 어찌 너희가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며 서로 이르되,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심지어 바람과 바다도 그분께 순종하는가? 하더라.
막 4:39-41
되풀이되는 말을 찾아봅니다. 바람이 세 번, 바다가 두 번 나옵니다. 예수께서 꾸짖으신 것은 바람이고 말씀하신 상대는 바다이며, 마지막 물음에서 순종하는 것도 바람과 바다입니다. 1100년 무렵 동방의 오랜 교회인 정교회의 대주교 테오필락투스도 이 차례를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일어나시어 먼저 바다의 폭풍을 일으키고 물결을 높이던 바람을 꾸짖으시니 … 그 다음에 바다에게 명하십니다"라고 씁니다 테오필락투스.
본문에서 구절을 누르고 ‘원어·주석’의 원어 탭을 열면 하나가 더 보입니다. 흠정역의 37절 ‘큰’ 폭풍, 39절 ‘매우’ 고요함, 41절 ‘심히’ 두려워함에는 같은 헬라어 낱말 가 쓰였습니다. 큰 폭풍, 큰 고요, 큰 두려움입니다.
여기서 대조가 드러납니다. 폭풍은 그쳤는데 두려움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두려워하느냐"고 물으신 제자들이 (40절), 바다가 잔잔해진 뒤에 "심히 두려워하며" 서로 묻습니다 (41절). 헬라어는 이 두 두려움을 서로 다른 낱말로 말합니다. 앞의 것은 겁이 많다는 말이고, 뒤의 것은 두려워한다는 흔한 말입니다. 흠정역은 둘 다 ‘두려워하다’로 옮겼고, 개역한글은 이 둘을 ‘무서워하다’와 ‘두려워하다’로 나누어 옮겼습니다.
처음에 무서워한 것은 폭풍과 죽음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두려움은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41절) 하는 물음과 함께 예수를 향합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접속사와 명령과 물음도 봅니다. 흠정역에서는 36절의 ‘가매’, 39절의 ‘하신즉’, 40절의 ‘하시니’처럼 접속사 대신 말끝이 일을 이어 가는 곳이 많습니다. 이야기는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는 예수의 말씀으로 열리고 (35절), 가운데서는 "잠잠하라. 고요하라"는 명령이 폭풍을 멈춥니다 (39절).
물음은 넷입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하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둘, 제자들이 서로에게 하나입니다. 처음에 ‘선생님’이라 부르던 그들이 끝에서는 그분이 누구냐고 묻고, 본문은 그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끝납니다. 예수의 말씀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예수에 대한 물음으로 끝나는 것, 이것이 처음에서 끝까지의 흐름입니다.
본 것을 먼저 적기
본 것을 적을 때에는 본 것과 생각한 것을 나누십시오. ‘예수께서 주무셨다’는 본문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몹시 피곤하셨다’는 본문에 없습니다. 마가는 그분이 주무셨다고만 말합니다.
생각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떠오른 생각은 물음으로 적어 두십시오. 폭풍 속에서 왜 주무셨는가, 건너가자는 말씀은 그 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저편에는 무엇이 기다리는가. 물음도 관찰의 일부이고, 다음 과들에서 문맥과 해석으로 그 물음들을 풀어 갑니다 (다음 과).
적용은 이렇게 본 것 위에 섭니다. 잉글랜드의 목사 매튜 헨리는 이 본문에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믿음과 두려움이 번갈아 찾아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막 4:35-41. 그 말이 우리 마음에 닿는 것은, 폭풍 속에서 무서워하던 제자들과 그들의 믿음을 물으신 예수의 말씀을 먼저 본문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해 보기
시편 1편을 지도에서 여십시오. 예수 탭의 지도에서 시편을 열고 1장을 누르면 ‘한 줄 요약’과 ‘관찰’ 칸이 있습니다. 지도에서는 시편 한 편이 한 장입니다. 읽기 전에 시편 119편 18절의 기도로 시작하십시오.
여섯 절을 천천히 두 번 읽고, 본 것을 관찰 칸에 한 줄에 하나씩 적으십시오. 누가 나옵니까? 무엇이 되풀이됩니까? 무엇과 무엇이 맞섭니까? ‘오직’과 ‘그러므로’ 같은 이음말은 어디에 있습니까? ‘1절: 하지 않는 일 세 가지’처럼 본 것을 적고, 떠오른 생각은 물음으로 남겨 두십시오.
6절을 비교에서 다른 번역과 견주어 보십시오. 흠정역의 ‘아시나’가 다른 번역에서는 어떻게 옮겨졌는지 적고, 마지막으로 1편 전체를 한 줄 요약으로 쓰십시오.
연습
- 연습 1 / 7
관찰을 해석보다 먼저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7
마가복음 4:35-41에서 되풀이되는 말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7
다음 가운데 마가복음 4:35-41에 쓰여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7
폭풍이 그친 뒤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 연습 5 / 7
마가복음 4:40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두 물음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7
관찰하다가 본문에 쓰여 있지 않은 생각이 떠오르면 어떻게 합니까?
- 연습 7 / 7
시편 119:18에서 시편 기자는 무엇을 구합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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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푼다는 교회의 오랜 읽기 원칙을 기준으로 삼아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으로 그 뜻을 밝히고, 여러 전통의 읽는 방법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