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앞뒤와 책 전체
한 구절은 그 단락과 그 책과 성경 전체 안에서 뜻을 얻습니다. 앞뒤의 글과 그 글이 쓰인 형편을 살피는 법을 배우고, 자주 따로 떼어 읽히는 세 구절을 제자리에서 읽어 봅니다.
한 구절이 사는 자리
관찰로 본문에 무엇이 있는지 보았다면, 다음 물음은 그것이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성경의 장과 절 번호는 찾기 쉽도록 훨씬 뒤에 붙인 것입니다. 성경 기자들은 절을 하나씩 쓰지 않고 문장과 단락과 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한 절은 그것이 놓인 자리에서 뜻을 얻습니다. 이 자리를 문맥이라고 합니다.
문맥은 세 겹으로 봅니다. 첫째는 문학적 문맥입니다. 바로 앞뒤의 문장과 단락, 그 글이 이어 가는 이야기나 논리, 그리고 그 책이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입니다. 책의 목적은 성경 개관 과정의 책마다 있는 과가 알려 줍니다. 둘째는 역사적 문맥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언제, 어떤 형편에서, 왜 썼는지입니다. 셋째는 성경 전체의 문맥입니다. 그 구절이 창조에서 새 창조까지 이어지는 한 이야기의 어디에 서 있는지입니다 (성경 개관 과정의 첫 과).
아래의 세 구절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사랑하여 외우고 벽에 걸어 두는 말씀입니다. 문맥 안에서 읽는다고 그 위로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위로가 본래 서 있던 땅을 찾게 됩니다.
세 구절을 제자리에서
먼저 빌립보서 4장입니다. 13절만 떼지 말고 앞의 두 절과 함께 읽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거기에 만족하는 것을 내가 배웠노니 내가 비천하게 되는 것도 알고 풍부하게 되는 것도 알아 어디에서나 모든 일에서 배부른 것과 배고픈 것, 풍부한 것과 궁핍당하는 것을 다 배웠노라.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
‘모든 것’이 무엇인지는 바로 앞 절이 말합니다.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입니다. 13절은 경기에서 이기거나 시험에 붙게 해 주신다는 약속이 아니라,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힘에 대한 고백입니다. 역사적 문맥을 보면 이 고백은 더 무거워집니다. 바울은 매여 있었고 (빌 1:13),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낸 선물에 감사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빌 4:18). 잉글랜드의 목사 매튜 헨리는 "사도는 자주 매임과 투옥과 궁핍 가운데 있었으나 모든 처지에서 자족하기를 배웠고, 자기 마음을 처지에 맞추어 그것을 최대한 선용하는 법을 배웠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빌 4:11. 이 편지 전체는 빌립보서 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예레미야 29장입니다. 이 장은 예레미야가 바빌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렘 29:1). 하나님은 그들에게 거기서 집을 짓고 살며 그 도시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시고, 곧 돌아가리라고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빌론에서 칠십 년이 찬 뒤에 내가 너희를 돌아보고 너희를 향한 나의 선한 말을 이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너희를 향해 내가 생각하는 생각을 내가 아노라. 그것은 평안을 주려는 생각이요, 재앙을 주려는 생각이 아니니 곧 기대하던 결말을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라. 주가 말하노라.
렘 29:10-11
‘너희’는 한 사람이 아니라 포로 된 백성 전체이고, 약속은 칠십 년 뒤를 바라봅니다. 그 가운데 많은 이는 돌아가는 날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장의 형통을 약속하지 않고, 긴 기다림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평안이라고 말합니다. 편지의 내용은 예레미야 과가 다룹니다.
마지막은 마태복음 18장입니다. 기도 모임에 사람이 적을 때 우리는 흔히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거기에 그들의 한가운데 있느니라"는 말씀을 떠올립니다 (마 18:20). 그런데 앞의 단락은 죄를 범한 형제를 다룹니다. 먼저 혼자 찾아가 권하고,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확증하며,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라고 하십니다 (마 18:15-17). 20절의 두세 사람은 16절의 두세 증인을 되울립니다. 단락 앞에는 잃은 양 하나를 찾는 목자의 비유가 있고, 뒤에는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약속은 먼저, 형제를 되찾으려고 교회가 겸손히 모일 때 주께서 함께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학대나 폭력으로 깊은 상처를 준 사람에게는 혼자 찾아가지 마십시오. 15절은 그런 짐을 혼자 지라는 말씀이 아니니, 믿을 만한 사람과 훈련된 도움을 구하십시오.
성경 전체 안에서
문맥의 마지막 원은 성경 전체입니다. 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고백하듯, 한 구절의 뜻은 ‘더 분명하게 말하는 다른 구절들로’ 찾아 압니다 1장 9항. 이 원칙은 ‘교회와 함께 읽기’ 과에서 보았습니다. 예레미야의 약속은 칠십 년 뒤에 이루어졌습니다. 에스라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제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제일년에 주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주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영을 움직이시매" (스 1:1).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고 말합니다 (고후 1:20). 빌립보서 4:13의 힘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는 그리스도의 능력이고 (고후 12:9), 마태복음 18:20의 약속은 세상의 끝까지 항상 제자들과 함께 있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 안에 있습니다 (마 28:20).
이렇게 읽으면 한 구절은 작아지지 않고 제 무게를 찾습니다. 떼어 낸 구절은 우리가 바라는 말을 하게 만들기 쉽지만, 제자리의 구절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들려줍니다.
해 보기
빌립보서 4장을 지도에서 여십시오. 예수 탭의 지도에서 빌립보서를 열고 4장을 누르면 ‘한 줄 요약’과 ‘관찰’ 칸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읽기’로 본문을 여십시오.
10절부터 20절까지 읽고, 그 문맥을 관찰 칸에 적으십시오. 누가 어떤 형편에서 누구에게 왜 쓰는지 찾습니다. 1장 13절도 함께 열어 보십시오. ‘쓴 사람: 매여 있는 바울’, ‘쓴 까닭: 빌립보 교회가 보낸 것(18절)’처럼 적으면 됩니다.
13절과 19절을 문맥 안에서 한 줄씩 적으십시오. 13절이 말하는 ‘모든 것’이 무엇인지, 19절의 약속이 누구에게 왜 주어졌는지 적습니다. 그다음 한 줄 요약에 10절부터 20절까지를 한 문장으로 쓰십시오.
연습
- 연습 1 / 6
다음 가운데 빌립보서 4:13을 문맥에서 떼어 읽은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6
예레미야 29장에서 하나님께서 바빌론의 포로들에게 하라고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6
마태복음 18:20을 그 단락 안에서 읽으면 무엇이 보입니까?
- 연습 4 / 6
문맥의 세 겹 가운데 역사적 문맥은 무엇을 묻습니까?
- 연습 5 / 6
성경의 장과 절 번호에 대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6
에스라 1:1은 예레미야의 말씀에 대하여 무엇을 보여 줍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관련 주제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푼다는 교회의 오랜 읽기 원칙을 기준으로 삼아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으로 그 뜻을 밝히고, 여러 전통의 읽는 방법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