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선교와 한국 교회의 시작
선교사들이 자리 잡기 전에 1832년 귀츨라프가 서해안에 성경을 남기고 갔고, 1866년 토마스가 대동강에서 죽었으며, 만주에서는 한국인 번역자들이 존 로스와 함께 신약을 옮겼습니다. 1884년 의사 알렌이, 1885년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들어왔고, 1887년 서울에 새문안교회와 정동교회가 섰습니다.
바다에서 온 사람들: 1832년과 1866년
1832년 여름, 독일 출신의 개신교 선교사 카를 귀츨라프(1803–1851)가 영국 동인도 회사의 배를 타고 충청도 고대도 앞바다에 와서 몇 주 동안 머물렀습니다. 조정은 그 배가 청한 교역을 거절했지만, 그는 관리와 섬 사람들에게 한문 성경과 전도 책자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땅을 찾은 첫 개신교 선교사였던 그는 아편을 실은 배를 타고 중국 해안을 다니며 전도 책자를 나누기도 했고, 뒤에 아편 전쟁 때는 영국군의 통역을 맡았습니다. 복음과 무역과 제국이 한 배에 타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1866년 8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교역을 요구하며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 가까이 올라왔습니다. 웨일스 출신으로 런던 선교회에서 일하던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1839–1866)는 그 전해에 서해안에 와서 성경을 나누어 준 적이 있었고, 이번에는 통역으로 이 배에 탔습니다. 무장한 배는 물러가라는 말을 듣지 않고 조선 관리를 붙잡아 가두고 사람들에게 총을 쏘았고, 평양 사람들은 모래톱에 걸린 배를 불태웠습니다. 배에 탄 이들은 모두 죽었고 토마스도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같은 해 서울과 충청도에서는 병인박해로 천주교인들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한국 개신교회는 토마스를 첫 순교자로 기억하며, 그가 죽기 전 자기를 죽이는 이에게 성경을 건넸다는 이야기를 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수십 년 뒤에 모은 증언에 기대고 있어 자세한 내용은 확인하기 어렵고, 그가 무장한 상선에 타고 있었기에 그를 순교자라 부르는 데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습니다.
만주에서 옮긴 말씀과 소래
그 무렵 만주에서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 존 로스(1842–1915)와 존 매킨타이어가 국경을 오가던 의주의 상인들을 만났습니다.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같은 이들은 로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며 함께 성경을 옮겼고, 그들 가운데 여럿이 만주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1882년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먼저 나왔고, 1887년 신약 전서 『예수셩교젼셔』가 나왔습니다. 의주 사람들의 평안도 말이 배어 있던 이 번역은 한문을 모르는 이도 읽을 수 있는 한글로 되어 있었습니다. 말씀이 선교사보다 먼저 온 이 이야기의 뜻은 신학 과정의 19세기 복음주의와 선교, 그리고 한국 과에서 보았습니다.
서상륜(1848–1926)은 인쇄된 복음서를 짊어지고 국경을 넘은 권서, 곧 성경을 팔며 전하는 이였습니다. 국경에서 책을 빼앗기고 붙잡히기도 했던 그는 아우 서경조와 함께 황해도 장연의 소래에 자리 잡았고, 그곳에서 한국인들이 스스로 모인 신앙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소래교회의 시작은 흔히 1883년 무렵으로 보지만 그 연도를 두고는 이견이 있습니다. 바울은 "좋은 일들의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라는 말씀을 인용했고 (롬 10:15), 웨슬리는 그 발을 "그들의 발자취 자체, 곧 그들의 오심"이라고 풉니다 웨슬리. 이 땅에 복음을 가져온 첫 발자국 가운데는 국경을 넘은 한국인들의 발이 있었습니다.
1884년과 1885년: 의사와 두 선교사
1882년 조선이 미국과 조약을 맺은 뒤, 1884년 9월 중국에서 일하던 미국 북장로교의 의료 선교사 호러스 알렌(1858–1932)이 미국 공사관의 의사로 서울에 왔습니다. 그해 12월 갑신정변 때 왕비의 조카 민영익이 칼에 깊이 찔렸고, 알렌은 서양 의술로 석 달 동안 그를 돌보아 살렸습니다. 왕실의 신뢰를 얻은 그의 건의로 1885년 4월 나라의 병원인 광혜원이 문을 열었고, 곧 제중원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선교가 아직 허락되지 않던 나라에서 병원이 첫 문이 되었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미국 북장로교의 호러스 언더우드(1859–1916)와 미국 북감리회의 헨리 아펜젤러(1858–1902)가 함께 제물포에 닿았습니다 언더우드, 한국의 부름. 정변 뒤의 정세가 불안해 아펜젤러 부부는 잠시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6월에 다시 왔고, 언더우드는 서울로 들어가 제중원에서 일을 도우며 말을 배웠습니다. 바울이 마케도니아로 건너간 일이 떠오릅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간구하여 이르되,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그가 그 환상을 본 뒤에 주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확신하였으므로 우리가 즉시 마케도니아로 들어가려고 힘쓰니라.
행 16:9-10
웨슬리는 마케도니아 사람의 청을 "사탄과 무지와 죄에 맞서 도우라는 것"이라고 풉니다 웨슬리.
1887년 가을 서울 정동에서 두 교회가 섰습니다. 9월 언더우드의 집 사랑채에서 한국인 신자들이 새문안교회를 조직했고, 10월 아펜젤러가 사들인 한옥에서 정동교회의 첫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학교도 함께 섰습니다. 아펜젤러가 1885년에 연 학교는 왕이 내린 이름을 따라 배재학당이 되었고, 1886년 감리교의 메리 스크랜턴이 여학생 한 사람과 시작한 학교는 왕비가 지어 준 이름으로 이화학당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번역자들은 성경과 찬송을 한글로 옮겼고, 1911년에는 구약과 신약을 함께 묶은 첫 한글 성경전서가 나왔습니다.
1890년에는 중국에서 일하던 존 네비우스가 서울을 찾아, 스스로 전하고 스스로 다스리고 스스로 살림을 꾸리는 교회를 세우라는 원칙을 전했고 네비우스, 선교 교회의 설립과 발전, 장로교 선교사들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원칙이 사경회와 함께 뿌리내린 이야기는 19세기 복음주의와 선교, 그리고 한국 과에서, 그 뒤 장로교회가 자란 이야기는 개혁주의 신앙 과정의 한국의 장로교회 과에서 다룹니다.
헌신과 맹점, 그리고 오늘
선교사들의 헌신은 컸습니다. 제중원의 의사 존 헤론은 1890년 환자들을 돌보다 이질로 세상을 떠나 양화진에 묻혔고, 그곳은 뒤에 많은 선교사와 그 가족이 잠든 묘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맹점이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선교사가 한국의 풍속과 종교를 미신으로 여겼고, 한국 사람을 오래 가르칠 대상으로만 보며 교회와 학교의 운영과 돈을 오래 쥐고 있었습니다. 외교관이 된 알렌은 미국 사업가가 운산 금광의 채굴권을 얻도록 도왔고, 선교사였던 그가 이권에 앞장선 일은 오늘도 비판을 받습니다.
그런데도 이 교회를 자라게 한 것은 많은 경우 한국인들 자신이었습니다. 국경을 넘은 권서들, 집집을 찾아다니며 여인들에게 말씀을 전한 전도부인들, 제 손으로 예배당을 지은 신자들이 그들입니다. 이사야는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이의 발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고 화평을 선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고 구원을 선포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네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사 52:7
한국 개신교의 시작은 선교사들의 헌신과 한국인들의 믿음이 함께 쓴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받은 은혜에 감사하되, 그 선교사들의 맹점을 거울삼아 다른 나라로 가는 우리 선교사들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다음 과 1907년 평양 대부흥과 일제 강점기에서는 이 작은 교회가 회개와 부흥을 지나 나라를 잃는 시대를 맞는 이야기를 봅니다.
연습
- 연습 1 / 8
1832년 카를 귀츨라프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8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가 죽기 전 성경을 건넸다는 이야기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8
1887년에 나온 『예수셩교젼셔』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8
호러스 알렌이 왕실의 신뢰를 얻어 병원을 세우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 연습 5 / 8
다음 일을 일어난 차례대로 바르게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8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8
이 과가 선교사들의 맹점으로 정직하게 짚은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8 / 8
이 과가 말하는, 한국 교회를 자라게 한 한국인들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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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출처
- 존 로스 외, 예수셩교젼셔 1887 — 만주에서 존 로스와 한국인 조력자들이 옮긴 첫 한글 신약 전서.
- 호러스 G. 언더우드, 한국의 부름 1908 — 1908년. 한국 개신교 선교의 시작과 형편을 소개하며, 1885년 그가 아펜젤러와 함께 제물포에 도착한 일을 전한다.
- 존 네비우스, 선교 교회의 설립과 발전 1886 — 스스로 전하고, 스스로 다스리고, 스스로 서는 교회를 세우라는 선교 원칙. 한국 선교부가 1890년에 받아들였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회 역사의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교회의 이야기를 각 전통이 기억하는 대로 공정하게 전하며, 교회가 지은 죄의 역사도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