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27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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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평양 대부흥과 일제 강점기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의 사경회에서 사람들은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서로 화해했습니다. 나라를 잃은 뒤 그리스도인들은 1919년 3·1 운동에 함께했고, 1938년 장로교 총회가 압력 아래 신사참배를 결의했을 때 많은 이가 이를 거부하다 옥에 갇혔고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눈이 쌓인 창호지 창 아래 넓은 나무 예배당의 돗자리 위에 흰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 수백 명이 빽빽이 앉아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며, 천장 들보에 등잔 하나가 걸려 있는 장면.
겨울밤 예배당 바닥에 모여 앉아 고개 숙여 기도하는 흰옷 입은 사람들

연표에서 보기

원산에서 평양까지

1903년 여름 원산에서 선교사들이 며칠 동안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기도에 관한 말씀을 맡은 캐나다 출신의 감리교 의료 선교사 로버트 하디는, 애써 온 사역에 열매가 없었던 까닭이 자기의 교만과 믿음 없음에 있었다고 동료들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그는 이어 원산의 한국인 교인들 앞에서도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선교사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국인 앞에서 자기 죄를 털어놓자 교인들도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고, 회개의 기도 모임은 몇 해에 걸쳐 개성과 서울과 평양으로 번졌습니다. 1906년 8월에는 평양의 선교사들이 하디와 함께 요한일서를 공부하며 기도했다고 전해집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일 1:9

평양 장대현교회에서는 해마다 겨울이면 여러 지방의 남자 신자들이 모여 며칠씩 성경을 배우는 사경회가 열렸습니다. 1907년 1월 그 사경회의 저녁 집회에서 일어난 일을, 그 자리에 있던 선교사 윌리엄 블레어는 몇 해 뒤 『한국의 오순절과 선교지의 다른 경험들』에 적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온 회중이 한꺼번에 소리 내어 기도한 뒤 사람들이 차례로 일어나 자기 죄를 울며 고백했고, 서로 미워하던 이들이 용서를 구하며 화해했습니다. 중국에서 일하던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 조너선 고퍼스도 그해 한국을 찾아 이 부흥을 보고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고퍼스, 성령의 불이 한국을 휩쓸 때. 새벽 기도회처럼 이 무렵 뿌리내린 습관과 이 부흥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는 신학 과정의 한국 교회의 20세기 과에서 다룹니다.

같은 해 9월 평양에서 한국 장로교회의 첫 노회인 독노회가 조직되어, 신학교를 마친 일곱 사람을 첫 한국인 목사로 세웠습니다. 길선주와, 일찍이 권서로 성경을 전한 서상륜의 아우 서경조도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독노회와 그 신조는 개혁주의 신앙 과정의 한국의 장로교회 과에서 봅니다.

나라를 잃은 백성 가운데서

누렇게 바랜 종이에 세로쓰기로 빽빽하게 인쇄된 선언서로, 끝에 서명한 대표들의 이름이 줄지어 있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 1919년 · 출처

1910년 8월 대한제국은 일본에 병합되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민족 대표들의 이름으로 독립 선언서가 발표되었고, 만세 운동은 몇 달 동안 온 나라로 번졌습니다. 서명한 33인 가운데 16인이 개신교인이었고, 15인은 천도교인, 2인은 불교인이었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 오산학교를 세운 장로 이승훈(1864–1930)과 길선주도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개신교인은 인구의 작은 일부였지만 교회와 기독교 학교가 소식을 나르는 연락망이 되었고, 많은 신자가 붙잡혔습니다.

이화학당의 학생이던 감리교인 유관순(1902–1920)은 4월 1일 고향 천안의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부르다 붙잡혀 이듬해 옥중에서 숨졌습니다. 4월 15일 경기도 제암리에서는 일본군이 마을 남자들을 감리교 예배당에 모아 놓고 총을 쏘고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스도인과 천도교인들이 함께 목숨을 잃었고, 캐나다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가 곧 현장을 찾아 사진과 글로 이 일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1938년 9월

1930년대에 조선총독부는 학교와 교회에 신사참배를 요구하며, 신사 앞의 절은 종교가 아니라 국민의 의례라고 했습니다. 가톨릭 교회(천주교)는 1936년 교황청의 지침에 따라 이 설명을 받아들였고, 감리교회 지도자들도 그 무렵 같은 길을 갔습니다. 장로교 선교부 가운데에는 학교 문을 닫는 길을 택한 곳들이 있었습니다.

193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장로교 제27회 총회는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사참배가 종교 의식이 아니라 국민의 의례라는 결의를 했습니다. 『제27회 총회 회의록』에 따르면 그날 총회의 대표들은 평양 신사에 가서 참배했고, 반대하려는 발언은 막혔습니다. 결의를 따른 이들의 사정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당국의 설명을 그대로 믿은 이도 있었고, 교회가 닫히고 양 떼가 흩어질 것을 두려워해 굽힌 이도 있었습니다. 그 뒤로 교회는 더 깊이 끌려 들어가, 전쟁 막바지인 1945년 7월에는 개신교 교단들이 총독부의 뜻에 따라 하나의 교단으로 묶였습니다.

결의를 따르지 않은 이들도 많았습니다. 오산학교에서 이승훈에게 배운 주기철(1897–1944)은 평양 산정현교회의 목사로 1938년부터 거듭 갇혔고, 그가 옥에 있는 동안 노회는 그를 목사직에서 물러나게 했으며 교회는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1944년 4월 옥중에서 숨졌습니다. 이기선, 한상동, 주남선 같은 목사들과 이름이 남지 않은 많은 신자가 해방 때까지 옥에 있었고, 옥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첫째 계명과 (출 20:3), 금 신상 앞에 선 다니엘의 세 친구의 대답을 붙들었습니다.

오 왕이여, 그리될지라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께서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에서 능히 우리를 건져 내시겠고 또한 그분께서 왕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리이다. 그러나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오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왕께서 세우신 금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할 줄을 왕은 아옵소서, 하니라.

단 3:17-18

웨슬리는 세 친구가 "죄를 짓느니 고난을 받기로 결심하고 그 일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라고 씁니다 웨슬리.

회개로 기억하는 교회

높은 자리에 앉은 대제사장과 공회원들 앞에 후광을 두른 두 사도가 서서 대답하고, 계단에 앉은 사람들이 지켜본다.
필립스 할레(마르턴 판 헤임스케르크 원화), 〈대제사장과 공회 앞에 선 베드로와 요한〉, 1558년 (벨기에 왕립도서관) · 출처

해방 뒤 총회는 이 결의를 취소했습니다(1954년의 일로 전해집니다). 옥에서 나온 이들이 요구한 회개를 두고 교회가 어떻게 갈라졌는지는 한국의 장로교회 과에서 봅니다.

1919년과 1938년은 나라 사랑의 두 얼굴을 보여 줍니다. 1919년의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걸고 자기 백성 곁에 섰고, 무기를 들지 않았습니다. 1938년의 국가는 자기 신들 앞의 절을 애국의 의례라고 불렀습니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선한 일이지만, 교회가 절하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사도들은 "우리가 사람들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답했고 (행 5:29), 매튜 헨리는 다니엘서를 풀며 "우리는 대답에서 온유해야 하나, 사람들보다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결단에서는 분명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1907년의 부흥이 죄의 고백으로 시작되었듯, 교회는 1938년을 덮지 않고 고백할 때 다시 섭니다. 굽힌 이들을 손가락질하기보다 오늘 우리에게 절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이 이야기를 바르게 기억하는 길입니다.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은 (약 5:16) 한 사람에게도 교회 전체에게도 해당합니다. 다음 과 두 차례 세계대전과 교회에서는 같은 시대에 세계의 교회가 전쟁과 독재 앞에서 걸은 길을 봅니다.

연습

  1. 연습 1 / 7

    1903년 원산에서 회개의 기도 모임이 시작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2. 연습 2 / 7

    블레어는 1907년 1월 장대현교회 사경회의 저녁 집회를 어떻게 전합니까?

  3. 연습 3 / 7

    다음 사건을 일어난 차례대로 바르게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7

    1919년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7

    1938년 9월 장로교 제27회 총회에서 일어난 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7

    주기철 목사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7

    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무엇이라고 답했습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출처

  1. 윌리엄 N. 블레어, 한국의 오순절과 선교지의 다른 경험들 — 1910년경. 평양의 선교사로서 1907년 1월 장대현교회 사경회에서 일어난 부흥을 목격한 그가, 사람들이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서로 화해한 일을 전하며, 그 앞서 1906년 여름 선교사들이 하디와 함께 요한일서를 공부하며 기도한 일을 적는다.
  2. 조너선 고퍼스, 성령의 불이 한국을 휩쓸 때 1943 — 1907년 평양 대부흥을 목격한 선교사의 증언.
  3. 민족 대표 33인, 기미독립선언서 1919 — 1919년 3월 1일 발표된 독립선언서.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16인이 개신교인이었다(천도교 15인, 불교 2인).
  4.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제27회 총회 회의록 1938 — 1938년 9월, 평양. 일제의 압력 아래 총회가 신사참배는 종교 의식이 아니라 국민의 의례라는 결의를 하고 참배하였다. 반대 발언은 막혔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회 역사의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교회의 이야기를 각 전통이 기억하는 대로 공정하게 전하며, 교회가 지은 죄의 역사도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