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만이 길인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이 과는 다원주의와 포용주의와 배타주의가 이 고백 앞에서 각각 무엇을 말하는지 살피고, 다른 종교를 존중하면서 은혜와 십자가를 증언하는 길을 배웁니다.
하나의 고백, 세 가지 대답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예수께서는 길을 묻는 도마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요 14:6
사도들도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라고 했고 (행 4:12),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고 썼습니다 (딤전 2:5). 여러 종교가 이웃해 사는 오늘, 이 고백은 좁고 교만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와 왜 다른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인가?에서 다룹니다. 이 과는 그 대답들이 놓인 지도를 그립니다. 1980년대부터 신학자들은 여러 종교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견해를 흔히 다원주의, 포용주의, 배타주의의 셋으로 나누어 말합니다.
다원주의와 코끼리
다원주의는 여러 종교가 같은 궁극의 실재에 대한, 저마다의 문화에서 빚어진 서로 다른 응답이라고 봅니다. 어느 종교도 진리 전부를 갖지 못했고, 사람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그 실재를 향하는 변화는 모든 큰 전통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앞의 악과 고통의 문제 과에서 만난 영국의 존 힉이 이 견해를 대표합니다. 그는 기독교가 아니라 하나님을 가운데 두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말했습니다. 그 근거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거룩하고 선한 사람들은 여러 종교에 있고, 사람이 어떤 신앙을 갖는지는 흔히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원주의자들이 즐겨 드는 옛 인도의 비유가 있습니다. 눈먼 사람들이 코끼리를 만지는데, 코를 만진 이는 뱀 같다 하고 다리를 만진 이는 기둥 같다 하며 서로 다툽니다. 종교들도 저마다 진리의 한 부분을 만질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묻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그는 코끼리 전체를 봅니다. 어느 종교도 전체를 보지 못한다고 말하는 그 견해가, 스스로는 전체를 보는 자리를 차지하는 셈입니다. 다원주의자들은 이것이 종교의 다양함을 설명하려는 가설이고, 궁극의 실재는 우리의 모든 말을 넘어선다고 답합니다. 그래도 다원주의는 종교들이 스스로 하는 말을 고쳐 읽어야 합니다. 힉은 성육신을 은유로 읽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교회는 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여러 길 가운데 하나로 두는 것은 그분이 자신에 대해 하신 말씀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포용주의와 배타주의
포용주의와 배타주의는 둘 다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구주이시라는 교회의 오랜 고백을 따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하나님의 아들을 왜 예수, 곧 구주라 부르느냐고 묻고 이렇게 답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며, 다른 이에게서는 구원을 구해서도 안 되고 얻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9문
두 견해가 갈리는 것은 그분께 구원받으려면 이 세상에서 그분을 알아야 하느냐입니다. 포용주의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이름을 듣지 못한 어떤 이들도, 그들이 받은 빛에 응답하는 가운데 은혜로 구원하신다고 봅니다. 가톨릭 교회(천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라도,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은혜에 힘입어 양심이 알려 주는 그분의 뜻을 따라 살려 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교회 헌장 16항. 감리교 운동을 일으킨 존 웨슬리도 고넬료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록 그분을 알지 못하더라도" 받으신다고 풀었습니다 웨슬리.
배타주의는 구원이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보통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는다고 봅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롬 10:17). 사람을 밀어낸다는 인상을 피해, 예수라는 한 분에게 초점을 둔다는 뜻으로 특수주의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개혁교회의 신앙고백과 많은 복음주의 교회, 곧 성경의 권위와 복음 전도를 중시하는 교회들이 이 견해를 따르며, 1974년의 로잔 언약은 하나님이 자연 속에서 자신을 알리시지만 그 앎이 사람을 구원하지는 못하고 구주는 한 분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로잔 언약 3항. 포용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은 하나님이 고넬료에게 구원받을 말씀을 들려주시려고 베드로를 보내셨다는 데 주목하고 (행 11:14), 배타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은 듣지 못한 이들에게 공정하냐고 묻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바울은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모든 사람에게 보였으나 사람들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고 하면서도 (롬 1:18-20), "자기들이 듣지 못한 분을 어찌 믿으리요"라고 묻습니다 (롬 10:14). 어떤 이들은 이 땅에서 복음을 들어야 한다고 보고,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사람들의 외모를 중시하지 아니하시고" (행 10:34) 각 나라에서 그분을 경외하는 이를 받으신다는 말씀을 듭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 답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모두가 함께 붙드는 것은 아브라함의 물음입니다. "온 땅의 심판자께서 의롭게 행하여야 하지 아니하리이까" (창 18:25). 이 물음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에서 다룹니다.
다른 종교 앞에서
바울은 우상이 가득한 아테네에서 그들의 종교심을 알아보며 말을 꺼냈습니다. 흠정역은 그 첫마디를 "너희 아테네 사람들아, 내가 알고 보니 너희가 모든 것에서 지나치게 미신에 사로잡혀 있도다"로 옮기는데 (행 17:22), ‘미신에 사로잡혀’로 옮긴 헬라어는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크다는 말이어서 ‘종교심이 많다’로 옮기는 번역도 많습니다. 그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에서 시작했고 (행 17:23), 웨슬리는 그가 아테네 사람들에게 "알지 못하는, 그러나 새롭지는 않은 하나님을" 전했다고 풉니다 웨슬리. 2세기의 유스티누스는 말씀의 씨앗이 모든 사람에게 뿌려져 있어, 누구든 바르게 말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스티누스, 제2변증서 13. 그러니 우리는 다른 종교를 그 신자들이 말하는 대로 듣고, 거기 있는 참되고 선한 것을 기쁘게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복음이 다른 곳을 정직하게 말합니다. 많은 종교가 사람이 걸어야 할 길과 닦아야 할 수행을 가르치고, 자비와 용서를 말하는 종교도 많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 사람이 되어 오셔서 죄인을 위해 죽으셨고, 하나님이 그 은혜로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 하신다고 말합니다 (롬 3:24). 이슬람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큰 예언자로 존경하지만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바울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니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라고 했습니다 (고전 1:23). 매튜 헨리의 말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소망의 기초이며 모든 기쁨의 샘입니다" 매튜 헨리.
대화에서는 먼저 친구가 믿는 것을 그의 말로 배우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더 나아서가 아니라 은혜를 받았기에 이 길을 걷는다고 말하십시오. 많은 이가 떠날 때 베드로는 "주여,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이 주께 있사온대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리이까"라고 고백했습니다 (요 6:68). 그것은 다른 길을 공격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쉼을 얻은 곳에 대한 증언입니다. 다음 과 무신론과 세속 사회에서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회 앞에서의 대화를 살핍니다.
연습
- 연습 1 / 7
다원주의는 여러 종교를 어떻게 봅니까?
- 연습 2 / 7
코끼리를 만지는 눈먼 사람들의 비유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던지는 물음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7
포용주의와 배타주의가 함께 고백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7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 헌장』 16항에서 가르친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7
배타주의, 또는 특수주의는 구원을 어떻게 받는다고 봅니까?
- 연습 6 / 7
바울이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에서 말을 시작한 방식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7
다른 종교를 믿는 친구와 이야기할 때 이 과에 맞는 태도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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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출처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인류의 빛) 16 (1964) —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구원 가능성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 로잔 세계복음화국제대회, 로잔 언약 1974 — 1974년. 전도의 우선성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백한 복음주의 선언. 3항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자연에서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한다.
- 유스티누스, 제2변증서 13 — 2세기. 모든 사람 안에 '말씀(로고스)의 씨앗'이 있다고 말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변증의 여러 방법과 논증, 반론을 그 주장하는 이들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하며, 어느 한 방법만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