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 19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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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과 세속 사회

믿지 않음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불가지론, 아예 묻지 않는 무관심이 있습니다. 이 과는 니체와 러셀, 프로이트와 도킨스를 그들의 가장 강한 모습으로 듣고 정직하게 대답하며, 세속 사회에서 이웃의 평안을 구하는 삶과 좋은 물음으로 소망을 증언하는 길을 살핍니다.

짙은 콧수염의 니체가 손으로 머리를 괴고 옆을 바라보는 흑백 초상 사진.
구스타프 아돌프 슐체, 〈프리드리히 니체〉, 1882년 · 출처

믿지 않는 여러 모습

믿지 않는다는 말에는 여러 모습이 있습니다. 무신론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의 무신론자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단언하기보다 하나님을 믿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는 이도 많습니다. 불가지론은 하나님이 계신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19세기 영국의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가 만든 말입니다. 그러나 가장 흔한 모습은 아마 무관심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든 아니든 삶은 그대로 굴러가니 물을 까닭이 없다는 것입니다.

캐나다의 가톨릭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세속 시대(A Secular Age)』(2007)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찰스 테일러, 세속 시대. 1500년 무렵의 서구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가 거의 불가능했는데, 2000년에는 왜 많은 사람에게 믿지 않는 것이 쉽고 당연하게 되었는가? 그가 말하는 세속 시대는 믿음이 사라진 시대가 아니라, 믿음이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되어 더는 당연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믿는 이도 그것을 압니다. 한국도 비슷한 길에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조사에서 젊은 세대일수록 종교가 없다고 답하는 이가 많게 나오고, 그 가운데 많은 이는 신앙에 맞서기보다 신앙을 자기와 상관없는 일로 여깁니다.

성경은 이 모습들을 어떻게 봅니까? 흔히 인용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여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시 14:1

이 구절은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로 옮긴 은 머리가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업신여기는 도덕의 어리석음을 가리킵니다. 이 이름을 가진 나발은 다윗의 호의를 모욕으로 갚은 사람이었습니다 (삼상 25:25). 시편이 말하는 이는 이론을 따지는 사람보다 하나님이 보지 않으신다는 듯 사는 사람입니다 (시 10:4). 그리고 바울은 이 시편을 유대인과 이방인, 곧 모든 사람에게 적용합니다 (롬 3:10-12). 그러니 이 구절은 믿지 않는 이웃에게 붙일 이름표가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려는 모든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도 그 앞에 섭니다. 정직하게 묻고 진지하게 사는 무신론자는 많고,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니체와 러셀

흰 수염의 늙은 철학자가 지팡이를 짚고 등불 곁에 서 있고, 노인과 노파, 젊은이와 아이가 그를 둘러싸고 들여다봅니다.
피터르 판 몰,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는 디오게네스〉, 1620–1650년 사이 · 출처

프리드리히 니체는 『즐거운 학문』(1882)에서 환한 오전에 등불을 켜고 장터에서 신을 찾다가 신이 죽었다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고 외치는 미친 사람을 그립니다 니체, 즐거운 학문 125. 이것은 신이 없다는 증명이 아니라 진단입니다. 유럽은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었지만, 그분 위에 세운 도덕과 진리와 의미가 함께 무너지는 대가는 아직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신은 버리고 그리스도교 도덕은 지키려는 이들에게, 신앙을 버리면 그 도덕을 붙들 권리도 발밑에서 빠진다고 썼습니다 니체, 우상의 황혼. 그는 편안한 무신론을 비웃고, 신 없이 가치를 새로 세우는 용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정직함에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가에 정말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파스칼과 니체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1927년의 강연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하나님의 존재 논증들을 하나씩 거절했습니다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모든 것에 원인이 있어야 한다면 하나님에게도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종교가 주로 미지의 것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뿌리를 둔다고 보고, 지식과 친절과 용기로 세상을 정면으로 보자고 했습니다. 증거만큼만 믿으려는 그의 정직함은 존중할 만합니다. 그러나 고전적인 논증은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작이 있는 것이나 스스로 있지 않은 것에 원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주론적 논증과 설계 논증 과). 또 어떤 믿음이 두려움에서 생겼다고 해서 거짓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 점은 프로이트의 설명 앞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프로이트와 도킨스

정신분석을 연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환상의 미래』(1927)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지켜 주는 아버지를 바라던 어린아이의 마음이 하늘에 비친 소원 성취라고 보았습니다 프로이트, 환상의 미래. 그도 소원에서 나온 생각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설명은 양날의 칼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를 바랄 수 있듯이, 아무도 내게 셈을 묻지 않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어디서 생겼는지는 믿는 이에게도 믿지 않는 이에게도 참과 거짓을 정해 주지 않습니다. 물음은 다시 이유로 돌아옵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2006)에서 하나님을 과학의 가설로 다루면 거의 확실히 틀렸다고 주장했습니다 도킨스, 만들어진 신. 우주를 설계할 만한 존재라면 그 설계보다 더 복잡해서 그 자신이 설명을 요구하고, 자연 선택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이 나오는 길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그는 샘 해리스, 대니얼 데닛,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함께 ‘새 무신론’으로 불렸고, 종교가 폭력과 억압을 낳는다고 고발했습니다. 그 바탕에는 증거를 중히 여기는 마음과 종교의 피해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고, 둘 다 귀 기울여 들을 만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 가지로 대답합니다. 첫째, 교회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우주 안의 복잡한 사물이 아니라 무엇이든 있게 하시는 분이어서, 그분의 설계자를 묻는 것은 다른 종류의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둘째, 과학은 자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밝히지만, 자연이 있는 것의 전부인지는 과학이 아니라 철학의 물음입니다 (과학과 신앙 과). 셋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지른 잘못은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같은 믿음이 병든 이와 가난한 이를 돌보게 했고, 무엇이 해롭다고 말하려면 선의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도덕 논증과 존재론적 논증 과).

세속 사회에서

비에 젖은 파리의 넓은 돌길 교차로에서 우산을 쓴 사람들이 저마다 제 길을 가고, 앞쪽에서는 우산을 함께 쓴 남녀가 걸어옵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1877년 (시카고 미술관) · 출처

바빌론에 사로잡혀 간 이들에게 예레미야는 이렇게 썼습니다.

또 내가 너희로 하여금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해서 거하게 한 그 도시의 평안을 구하고 그것을 위하여 주에게 기도하라. 그 도시가 평안하여야 너희도 평안하리라.

렘 29:7

매튜 헨리는 포로들이 "자기들이 포로로 있는 나라의 유익을 구하라는 지시를 받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믿음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은 숨지도 다스리려 하지도 않고, 이웃의 평안을 구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고 (마 5:16), 베드로는 비방을 받는 이들에게 "이방인들 가운데서 너희 행실을 정직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벧전 2:12). 세속 사회에서 변증은 먼저 삶으로 합니다.

그다음은 물음입니다. 무관심한 친구에게 논증부터 꺼내기보다, 무엇이 당신의 삶에 의미를 주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옳고 그름은 무엇에 근거하는지, 맹목적인 과정에서 나온 이성이라면 왜 믿을 만한지도 물을 수 있습니다. 이 물음들은 상대를 몰아넣는 덫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자는 초대이고, 진지한 무신론자들은 저마다 대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답을 끝까지 들으십시오. 다음 과 한국의 종교와 문화 앞에서에서는 우리 곁의 여러 종교를 살핍니다.

연습

  1. 연습 1 / 8

    불가지론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 연습 2 / 8

    니체의 미친 사람이 신이 죽었다고 외친 장면은 무엇을 말합니까?

  3. 연습 3 / 8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면 하나님의 원인은 무엇이냐는 러셀의 물음에 이 과는 어떻게 대답합니까?

  4. 연습 4 / 8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소원 성취라는 프로이트의 설명에 대해 이 과가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8

    시편 14:1의 ‘어리석은 자’를 바르게 읽은 것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8

    찰스 테일러가 말한 세속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7. 연습 7 / 8

    예레미야 29:7에서 바빌론에 사로잡혀 간 이들이 받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8. 연습 8 / 8

    종교가 없고 하나님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친구에게 이 과가 권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출처

  1. 찰스 테일러, 세속 시대 — 2007년. 1500년 무렵 서구에서는 믿지 않기가 거의 불가능했는데 오늘은 믿음이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된 까닭을 묻는다.
  2.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125 (1882) — 미친 사람이 밝은 오전에 등불을 켜고 장터에서 신을 찾다가 '신은 죽었다! …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고 외친다.
  3.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IX.5 (1889) —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5, 조지 엘리엇처럼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버리고 그 도덕은 지키려는 영국인들에게: 신앙을 버리면 그 도덕을 붙들 권리를 제 발밑에서 빼내는 것이다.
  4.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1927 — 1927년의 강연. 하나님의 존재 논증들을 거부하고, 종교가 두려움에 뿌리를 둔다고 말한다.
  5. 지크문트 프로이트, 환상의 미래 — 1927년. 종교를 지켜 주는 아버지를 바라는 어린아이의 소원이 만든 환상으로 보면서도, 환상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6.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 2006년. 하나님이 있다는 가설은 과학적 가설로서 거의 확실히 틀렸고, 종교가 해롭다고 주장한다(새 무신론).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변증의 여러 방법과 논증, 반론을 그 주장하는 이들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하며, 어느 한 방법만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