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과 고통의 문제
악의 문제는 논리의 물음, 증거의 물음, 그리고 상처의 물음으로 찾아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유 의지 변호와 여러 신정론으로 대답해 왔지만, 그 대답의 중심에는 이론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오래된 물음
악과 고통의 물음은 성경 안에서 먼저 들립니다. 하박국은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들으려 하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라고 묻고 (합 1:2), 욥은 까닭 모를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따집니다. 철학자들은 이 물음을 날카롭게 다듬었습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흄은 대화편 속 회의론자의 입을 빌려 옛 에피쿠로스의 물음을 되살렸습니다. 하나님이 악을 막으려 하시나 막지 못하신다면 전능하지 않으시고, 막을 수 있으나 막으려 하지 않으신다면 선하지 않으시며, 둘 다라면 악은 어디서 오느냐는 것입니다 흄,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 10부. 토마스 아퀴나스도 하나님이 계심을 논하기 전에 이 물음을 첫째 반론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악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신다" 신학대전 제1부 2문 3항.
이 물음에는 세 얼굴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악이 논리적으로 함께 있을 수 없다는 논리적 문제, 세상의 악이 하나님이 없다는 쪽을 가리키는 증거라는 증거적 문제, 그리고 고통 한가운데서 하나님께 왜냐고 부르짖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성경이 주는 대답은 선하신 하나님이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에서 다룹니다. 이 과는 물음과 대답의 짜임을 살핍니다.
논리적 문제와 자유 의지 변호
1955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철학자 J. L. 매키는 이 물음을 논리의 언어로 다듬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선하시다, 그런데 악이 있다. 선한 이는 할 수 있는 만큼 악을 없애고 전능한 이에게는 못 할 일이 없다면, 이 세 명제는 함께 참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유신론이 근거가 모자랄 뿐 아니라 스스로 모순이라고 보았고,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대답도 미리 겨누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유롭게 선을 택하는 사람들을 지으실 수 없었느냐는 것입니다 J. L. 매키, 악과 전능.
미국의 철학자 앨빈 플랜팅가는 1974년 『하나님, 자유, 악』에서 자유 의지 변호로 답했습니다. 참으로 자유로운 피조물이 선을 택할지 악을 택할지는 그들에게 달린 일이니,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자유로운 사람들이 언제나 선만 택하는 세상을 지으실 수 없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선을 행하는 피조물이 있는 세상은 그런 피조물이 없는 세상보다 값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악을 허락하실 선한 이유가 있을 수 있고, 세 명제는 모순이 아닙니다 앨빈 플랜팅가, 하나님, 자유, 악. 무신론자인 윌리엄 로우도 이 모순을 보인 사람은 없다고 인정했고, 오늘날 많은 철학자가 논리적 형태의 논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플랜팅가는 자기 대답을 ‘변호’라고 불렀습니다. 변호는 하나님이 악을 허락하시는 실제 이유를 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것만 보여도 모순은 걷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신정론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밝힌다는 이름 그대로, 하나님이 악을 허락하시는 이유를 실제로 말하려는 시도입니다.
증거적 문제와 세 대답
1979년 로우는 다른 길로 물었습니다. 깊은 숲에 번개가 떨어져 불이 나고, 새끼 사슴 한 마리가 불길에 갇혀 끔찍한 화상을 입은 채 며칠을 고통스러워하다 죽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그 고통이 이루는 선은 없어 보입니다. 전능하고 모든 것을 알며 온전히 선한 이라면, 막는 것이 더 큰 선을 잃거나 그만큼 또는 더 나쁜 악을 허용하는 일이 되지 않는 한, 막을 수 있는 극심한 고통은 막았을 것이니, 이런 고통은 그런 하나님이 아마 없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로우는 자기를 ‘친절한 무신론자’라 부르며, 하나님을 믿는 이도 합리적일 수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윌리엄 로우, 악의 문제와 몇 가지 무신론.
그리스도인들의 대답은 세 갈래이고, 서로를 보완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가 그분의 이유를 다 보지 못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라는 대답입니다. 이것을 회의적 유신론이라 부르는데, 하나님을 의심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분의 이유를 헤아리는 우리 능력을 겸손히 본다는 뜻입니다. 젖먹이가 부모의 이유를 다 모르듯, 무한한 지혜와 우리 사이에는 그만한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이유 대신 물음으로 답하셨습니다.
그때에 주께서 회오리바람 속에서 욥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지식이 없는 말들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이자는 누구냐? 이제 남자답게 허리를 동이고 내가 네게 물을 터이니 너는 내게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이 있거든 밝히 고하라.
욥 38:1-4
비판하는 이들은 그러면 우리의 도덕 판단도 흔들리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이 대답을 하는 이들은 우리의 의무가 숨은 이유가 아니라 나타난 말씀에 달려 있다고 답합니다 (신 29:29).
둘째, 영혼 형성의 신정론입니다. 영국의 종교철학자 존 힉은 1966년, 2세기의 이레나이우스를 따라 하나님이 사람을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로 지으시지 않고 자라 가도록 지으셨다고 보았습니다. 고통도 위험도 없는 세상에서는 용기와 인내, 긍휼과 희생이 자랄 수 없으니, 이 세상은 영혼이 빚어지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존 힉, 악과 사랑의 하나님. 비판하는 이들은 사람을 세우기는커녕 짓밟는 고통을 들고, 힉은 그 빚어짐이 죽음 너머까지 이어진다고 답했습니다.
셋째, 더 큰 선의 대답입니다. 용서는 잘못이 있어야, 위로는 슬픔이 있어야 있을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이 하나님이 지으신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핍이며, 하나님은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실 만큼 전능하고 선하시기에 악을 허락하신다고 가르쳤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엔키리디온 11. 아퀴나스는 앞의 반론에 이 말을 들어 답하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이 존재하도록 허용하시고 그것에서 선을 만들어 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선하심의 일부이다" 신학대전 제1부 2문 3항. C. S. 루이스는 자유로운 이들이 함께 살려면 정해진 성질을 지닌 자연 세계가 있어야 하고, 그런 세계에서는 서로 도울 수도 해칠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비판하는 이들은 이반 카라마조프처럼, 어떤 선도 한 아이의 눈물을 값으로 치를 만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 아이들이 고통받는가?).
루이스는 또 고통이 ‘문제’가 되는 것은 세상의 근원이 의롭고 사랑이 많다는 확신이 우리에게 이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C. S. 루이스, 고통의 문제. 여기서 악의 문제는 믿지 않는 이에게도 물음을 돌려줍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일을 그저 싫은 일이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될 악이라 부르느냐는 것입니다. 자연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보는 자연주의 철학자들은 사람의 번영 같은 데서 도덕의 기준을 찾을 수 있다고 답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기준이 우리의 항변을 떠받칠 만큼 단단한지 함께 물어보자고 청합니다 (도덕 논증과 존재론적 논증 과).
탄식과 십자가
논증이 다 풀지 못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고통 속의 사람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는 기도입니다. 성경은 그런 기도, 곧 탄식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오 주여, 어느 때까지 나를 잊으려 하시나이까? 영원히 잊으려 하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어느 때까지 내게 숨기려 하시나이까? 내가 어느 때까지 날마다 마음속에서 슬퍼하며 내 혼 안에서 계획하리이까? 내 원수가 어느 때까지 내 위로 높여지리이까? 오 주 내 하나님이여, 나를 깊이 살피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나의 눈을 밝히소서.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염려하며 나의 원수가 말하기를, 내가 그를 쳐서 이겼다, 할까 염려하고 내가 흔들릴 때에 나를 괴롭히는 자들이 기뻐할까 염려하나이다. 그러나 내가 주의 긍휼을 신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이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시 13:1-5
탄식은 믿음이 무너진 표가 아니라 아픔을 들고 하나님께 가는 믿음의 말입니다. 매튜 헨리는 이 시편에서 "고통의 빵이 때로는 성도의 일용할 양식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주께서도 친히 슬픔의 사람이셨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하나님의 가장 깊은 대답은 논증이 아니라 고난받으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벧전 2:24), 악을 멀리서 보지 않고 몸으로 받으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구조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고 (히 2:18), 바울은 "이 현 시대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라고 하고 (롬 8:18),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합니다 (롬 8:28). 그리고 성경은 마지막 날을 두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고 약속하며 (계 21:4), 다시는 사망도 슬픔도 아픔도 없으리라고 말합니다.
대화에서 이것은 먼저 들으라는 뜻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욥 2:13). 그러나 그의 고난의 까닭을 안다는 듯이 말하던 그들은 끝내 하나님을 두고 옳게 말하지 못했다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욥 42:7). "슬피 우는 자들과 함께 슬피 울라" (롬 12:15). 생각으로 묻는 친구와는 변호와 신정론을 함께 따져 볼 수 있지만,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십시오. 고난을 지나는 길은 새가족 과정의 시험과 고난을 지날 때 과에서, 하나님이 악까지 다스리시는 일은 교리 과정의 섭리 과에서 봅니다. 다음 과 과학과 신앙에서는 과학이 신앙과 맞서느냐는 물음을 살핍니다.
연습
- 연습 1 / 8
J. L. 매키가 1955년에 편 논리적 악의 문제는 무엇을 주장합니까?
- 연습 2 / 8
앨빈 플랜팅가의 자유 의지 변호가 보이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8
변호와 신정론은 어떻게 다릅니까?
- 연습 4 / 8
윌리엄 로우가 증거적 악의 문제를 펴며 든 예는 무엇입니까?
- 연습 5 / 8
하나님이 욥에게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고 물으신 말씀은 증거적 문제에 대한 어떤 대답과 이어집니까?
- 연습 6 / 8
존 힉의 영혼 형성 신정론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 연습 7 / 8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을 무엇이라고 보았습니까?
- 연습 8 / 8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 과에 맞는 태도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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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출처
- 데이비드 흄,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 — 1779년(사후). 설계 논증을 비판한다: 세상과 사람의 작품의 유비는 약하고, 설계자가 있다 해도 그가 하나요 선하며 무한하다는 데까지는 가지 못한다. 10부에서는 회의론자 필로의 입으로 에피쿠로스의 물음, 곧 악이 있는데 하나님이 전능하고 선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되살린다.
-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 1265–1274년. 중세 신학을 집대성한 저작. 하나님과 창조와 섭리, 인간과 은혜, 그리스도와 성례를 두루 다루며, 하나님은 이성으로도 알려지시나 구원의 진리는 계시로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세계에 시작이 있었다는 것은 이성으로 증명되지 않고 믿음으로 붙든다고 한다(제1부 46문 2항). 읽기
- J. L. 매키, 악과 전능 1955 — 1955년. 하나님이 전능하고 전적으로 선하며 악이 있다는 세 명제는 서로 모순된다는 ‘논리적 악의 문제’.
- 앨빈 플랜팅가, 하나님, 자유, 악 — 1974년. 하나님과 악이 논리적으로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주장에 맞서, 자유 의지 변호를 펼친다.
- 윌리엄 로우, 악의 문제와 몇 가지 무신론 1979 — 1979년. 아무 선도 이루지 않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가 된다는 ‘증거적 악의 문제’.
- 존 힉, 악과 사랑의 하나님 — 1966년. 세상은 사람을 하나님의 모습으로 빚어 가는 ‘영혼을 빚는 골짜기’라는 이레나이우스 형의 신정론.
- 아우구스티누스, 신앙 핸드북(엔키리디온) 11 — 악은 선의 결핍이며, 하나님은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신다.
- C. S. 루이스, 고통의 문제 — 1940년.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고통이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는지 다루며, 고통은 듣지 않는 세상의 귀를 여는 하나님의 소리이며, 고통이 문제가 되는 것은 세상의 근원이 의롭고 선하다고 믿을 까닭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변증의 여러 방법과 논증, 반론을 그 주장하는 이들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하며, 어느 한 방법만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