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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소망의 이유시작하기변증이란 무엇인가
- 소망의 이유 변증은 마음속에 주를 거룩히 모신 신자가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하는 일입니다. 변증은 믿음의 이유를 보이고 반론에 답하며 불신앙의 약점을 드러내지만, 복음과 성령의 일을 대신하지 않고 섬깁니다.
- 믿음과 이성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이유 없이 믿는 일도, 신뢰 없는 계산도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해를 구하는 일입니다. 교회의 스승들은 오래전부터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고 말해 왔고, 죄가 이성을 얼마나 어둡게 했는지는 변증의 방법들이 서로 다르게 저울질합니다.
- 성경 속의 변증 성경의 사람들은 듣는 이가 선 자리에서 대답을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아는 이에게는 성경과 증인으로, 성경을 모르는 이에게는 창조와 섭리와 그들의 시인들의 말로 말했지만,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부활과 회개로 이끌었습니다.
교회 역사 속의 변증가들
- 초대 교회의 변증가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신론과 식인과 근친상간과 불충이라는 비난, 그리고 박해 속에서 신앙을 글로 변호했습니다. 변증가들은 그리스도인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 보여 비난에 답하고, 이루어진 예언과 육신이 되신 말씀으로 신앙이 참됨을 보였습니다.
- 중세와 종교개혁 중세의 안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믿는 것을 이성으로 이해하고, 믿지 않는 이에게도 그 이유를 보이려 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성을 버리지 않았지만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재판하는 것은 거절하고 성경을 확신하게 하시는 성령의 증거를 가르쳤으며, 파스칼은 마음과 내기로 찾는 이를 불렀습니다.
- 근대와 오늘 계몽주의가 이성을 재판관으로 세우자 변증가들은 개연성과 설계와 역사의 증거로 답했고, 개혁파 안에서는 변증의 자리를 두고 프린스턴과 암스테르담이 다르게 보았습니다. 20세기의 작가들과 기독교 철학의 부흥은 오늘 우리가 걷는 변증의 여러 길을 열었습니다.
변증의 방법
- 고전 변증과 증거 변증 고전 변증은 먼저 이성과 창조 세계에서 하나님이 계심을 보이고 다음에 역사의 증거로 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하셨음을 보이는 두 걸음의 길이고, 증거 변증은 부활 같은 역사의 증거에서 바로 출발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함께 가리키는 한 걸음의 길입니다. 두 길 모두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가 함께 가진 이성과 증거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전제 변증 전제 변증은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가 함께 설 중립 지대는 없다고 보고, 논리와 과학과 도덕은 성경의 하나님을 전제할 때에만 설 수 있음을 보이는 길입니다. 믿지 않는 생각의 전제가 이성과 의미를 떠받치지 못함을 드러낸 뒤 그리스도를 전하며, 코넬리우스 반 틸이 세우고 그레그 반센과 존 프레임이 이었습니다.
- 개혁파 인식론과 누적 논증 개혁파 인식론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믿는 믿음처럼 논증 없이도, 그러나 근거 없이가 아니라 경험에 근거해 합리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누적 논증은 우주와 도덕과 역사의 예수와 삶의 경험을 함께 모아 기독교가 그 모두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논하며, 실제 대화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여러 길을 함께 씁니다.
하나님에 대한 논증
- 우주론적 논증과 설계 논증 우주론적 논증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서 그 첫 원인을, 설계 논증은 세계의 질서에서 그 뒤의 지성을 가리킵니다. 두 논증은 창조주를 가리키지만, 그것만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 도덕 논증과 존재론적 논증 도덕 논증은 객관적인 선과 의무가 있다면 하나님이 그 가장 나은 근거라고 논하고, 존재론적 논증은 하나님이라는 생각 자체에서 그분이 계심을 이끌어 내려 합니다. 두 논증 모두 진지한 반론을 만났고, 그것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 논증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논증은 걸림돌을 치우고 믿음이 합리적임을 보이며 그리스도를 권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믿음을 주지는 못합니다. 믿음은 성령께서 말씀으로 말미암아 또 말씀과 함께 일하셔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우리의 사랑과 삶도 그 증언의 일부입니다.
예수와 성경
- 역사적 예수와 부활 부활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로 선포되었기에, 변증가들은 역사의 방법으로 그 증거를 저울질합니다. 회의적인 학자들도 대체로 받아들이는 사실들에서 출발해 어떤 설명이 그 사실들을 가장 잘 묶어 내는지 묻되, 역사가 보일 수 있는 것과 믿음이 고백하는 것을 구별합니다.
- 성경은 믿을 만한가 성경을 두고 묻는 사본, 정경, 역사, 모순, 예언의 물음에 변증가들은 증거를 정직하게 살펴 대답합니다. 성경의 권위 자체를 두고는 변증의 길들이 출발점을 달리하지만, 그 권위가 하나님께 달려 있고 온전한 확신은 성령께서 주신다는 고백에서 다시 만납니다.
- 기적은 가능한가 성경의 기적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가리키는 표적입니다. 데이비드 흄은 한결같은 경험에 맞서는 증언은 기적을 믿게 할 만큼 강할 수 없다고 논증했고, 변증가들은 그 논증이 결론을 미리 전제하지 않는지, 증언과 개연성을 어떻게 저울질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반론 앞에서
- 악과 고통의 문제 악의 문제는 논리의 물음, 증거의 물음, 그리고 상처의 물음으로 찾아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유 의지 변호와 여러 신정론으로 대답해 왔지만, 그 대답의 중심에는 이론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 과학과 신앙 과학과 신앙이 처음부터 싸워 왔다는 이야기는 19세기에 굳어졌고, 오늘 많은 과학사가는 그 이야기가 너무 단순하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과 말씀이라는 두 책을 함께 읽으며, 과학의 방법과 ‘자연이 전부’라는 철학을 구별합니다.
- 예수만이 길인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이 과는 다원주의와 포용주의와 배타주의가 이 고백 앞에서 각각 무엇을 말하는지 살피고, 다른 종교를 존중하면서 은혜와 십자가를 증언하는 길을 배웁니다.
오늘의 대화
- 무신론과 세속 사회 믿지 않음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불가지론, 아예 묻지 않는 무관심이 있습니다. 이 과는 니체와 러셀, 프로이트와 도킨스를 그들의 가장 강한 모습으로 듣고 정직하게 대답하며, 세속 사회에서 이웃의 평안을 구하는 삶과 좋은 물음으로 소망을 증언하는 길을 살핍니다.
- 한국의 종교와 문화 앞에서 한국에는 무속과 불교와 유교가 오래 함께 살아 왔고, 복음은 그 사이로 들어왔습니다. 이 과는 각 종교를 그 신자들이 말하는 대로 존중하며 듣고, 공통의 다리를 찾되 복음이 다른 곳은 분명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길을 아테네의 바울과 『천주실의』에서 배웁니다.
- 대화로서의 변증 변증은 논쟁에서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먼저 듣고, 예수처럼 묻고,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정직하게 대답하며,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대화가 이르는 곳에서 복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