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 17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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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과학과 신앙이 처음부터 싸워 왔다는 이야기는 19세기에 굳어졌고, 오늘 많은 과학사가는 그 이야기가 너무 단순하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과 말씀이라는 두 책을 함께 읽으며, 과학의 방법과 ‘자연이 전부’라는 철학을 구별합니다.

창가 책상에서 한 학자가 앞에 책을 펼쳐 두고 천구의에 손을 뻗는 그림.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천문학자〉, 1668년 무렵 · 출처

갈등의 이야기

과학과 신앙은 원수라는 이야기를 흔히 듣습니다. 이 이야기는 19세기에 굳어졌습니다. 1874년 미국의 과학자 존 윌리엄 드레이퍼는 종교와 과학 사이 ‘갈등’의 역사를, 1896년 코넬 대학교의 첫 총장 앤드루 딕슨 화이트는 과학과 신학이 벌인 ‘전쟁’의 역사를 썼고, 두 책은 널리 읽혔습니다. 중세 사람들이 땅을 평평하다고 믿었다는 이야기도 이런 책들과 함께 퍼졌지만, 중세의 학자들은 땅이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많은 과학사가는 과학과 종교의 역사가 늘 싸움만은 아니었고, 싸움과 협력과 무관심이 뒤섞인 복잡한 이야기라고 봅니다. 과학과 신앙이 충돌하느냐는 물음의 대답은 과학과 신앙은 충돌하는가?에서 다루고, 이 과에서는 그 이야기와 생각의 짜임을 살핍니다.

이 이야기의 대표 장면은 갈릴레오입니다. 그는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과 금성의 위상을 관찰하고, 땅이 해를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변호했습니다. 1616년 로마의 가톨릭 교회(천주교)는 지동설을 붙들거나 변호하지 말라고 그에게 명했고, 1632년 그가 낸 『대화』 때문에 이듬해 로마 종교재판소는 그에게 지동설을 버리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는 고문을 받거나 감옥에서 죽지 않았고, 피렌체 근처의 집에 연금된 채 연구를 이어 가다 164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은 복잡했습니다. 당시에는 땅이 돈다는 결정적 증거가 아직 없었고, 대학의 아리스토텔레스 학자들도 그를 반대했으며, 그의 날카로운 글은 교황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신학자들이 "해야, 너는 기브온 위에 멈추어 서라" 같은 말씀을 (수 10:12) 우주의 구조를 가르치는 말로 읽어 당시의 우주관을 성경과 혼동한 것도 분명한 원인이었습니다.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때 신학자들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갈릴레오 자신은 끝까지 가톨릭 신자였고, 1615년 크리스티나 대공비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경과 자연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으니 두 진리가 서로 어긋날 수 없다고 썼습니다. 그는 또 성령께서 가르치시려는 것은 하늘에 어떻게 가는지이지 하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아니라는 한 고위 성직자의 말도 옮겼습니다 갈릴레오, 크리스티나 대공비에게 보낸 편지.

두 책

주름 깃을 단 수염 난 케플러의 반신상이 그의 이름과 직함을 라틴어로 두른 타원 테 안에 있습니다.
야코프 판 데르 헤이던, 〈요하네스 케플러〉, 1601–1633년 사이 · 출처

근대 과학을 연 이들 가운데 많은 이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행성의 운동 법칙을 찾은 요하네스 케플러, 화학의 길을 연 로버트 보일, 아이작 뉴턴, 전자기를 연구한 마이클 패러데이와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입니다. 맥스웰이 첫 소장이었던 케임브리지의 캐번디시 연구소 문에는 "주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위대하므로 그것들을 기뻐하는 모든 자가 그것들을 탐구하는도다"라는 말씀이 (시 111:2) 라틴어로 새겨졌습니다. 모두가 정통 신앙을 따른 것은 아니어서, 뉴턴은 삼위일체에 대해 교회와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래도 많은 역사가는 세상이 한 분 지혜로운 창조주의 질서 있는 작품이고, 하나님이 자유롭게 지으셨으니 머리로 짐작만 할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아야 하며, 그분의 형상인 사람이 그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근대 과학이 자라는 데 한몫했다고 봅니다. 다만 그것이 유일한 뿌리는 아니었습니다.

이 확신 뒤에는 하나님이 두 책으로 말씀하신다는 오랜 생각이 있습니다. 시편 19편은 앞에서 하늘을 노래하고 뒤에서 율법을 노래합니다.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보이니

시 19:1-2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시키고 주의 증언은 확실하여 단순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주의 법규들은 올발라서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

시 19:7-8

존 웨슬리는 하늘이 "달려가는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읽기 쉬운 책과 같습니다"라고 하고 웨슬리, 7절에서 시인이 율법을 앞의 것과 "견주며 그보다 앞세웁니다"라고 풉니다 웨슬리. 유럽 대륙 개혁교회의 벨직 신앙고백(1561)도 하나님을 아는 두 방편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주는 우리 눈앞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책과 같아서,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은 마치 그 책의 많은 글자들처럼 우리를 이끌어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성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으로 자신을 우리에게 더 분명하고 충분하게 알리신다.

벨직 신앙고백 2조

신학은 앞의 것을 일반 계시, 뒤의 것을 특별 계시라고 부릅니다. 두 책의 저자가 같으니, 둘을 바르게 읽으면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어긋나 보일 때 틀린 것은 책이 아니라 우리의 읽기일 수 있습니다.

창조와 진화

창조 세계의 나이와 생명의 역사를 두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다르게 읽습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은 창세기 1장의 날을 보통의 하루로, 세상을 수천 년 되었다고 보며, 본문의 평이한 뜻과, 엿새 동안 만드셨다는 십계명의 말씀을 듭니다 (출 20:11). 오랜 지구 창조론은 지구가 아주 오래되었다고 봅니다. 날을 하나님이 단계마다 일하신 긴 시대로 읽는 이도 있고, 창조를 그려 보이는 문학의 틀이나 우리의 한 주에 견주어 말한 하나님의 일하신 날로 읽는 이도 있습니다. 진화적 창조론은 하나님이 진화의 과정을 통해 생명을 지으셨고, 자연의 질서를 통해 일하시는 것도 그분의 창조라고 봅니다. 세 견해 모두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창세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과정은 어느 하나를 고르지 않습니다. 각 견해의 근거는 교리 과정의 창조 과, 성경 개관의 창세기 과, 그리고 창세기는 역사인가?에서 다룹니다.

과학과 과학주의

어두운 방에서 붉은 옷의 강연자가 유리 공기 펌프 속 새를 두고 실험을 보이고, 촛불 빛을 받은 어른과 아이들이 탁자 둘레에 모여 지켜봅니다.
조지프 라이트, 〈공기 펌프 속의 새 실험〉, 1768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 출처

과학이 할 수 있는 일은 크고, 그 일은 하나님의 세계를 아는 귀한 길입니다. 그러나 과학만이 참된 앎을 준다는 과학주의는 과학이 아니라 철학입니다. 과학으로 증명된 것만 믿을 수 있다는 그 주장부터가 어떤 실험으로도 증명되지 않습니다. 과학은 오히려 자기가 증명하지 못하는 것들 위에 섭니다. 자연에 질서가 있다는 것, 우리 마음이 그 질서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 실험 결과를 정직하게 적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것은 도덕의 진리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자연주의를 구별해야 합니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자연 현상을 자연의 원인으로 설명하려는 과학의 작업 규칙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 과학자가 이 규칙을 따르며, "모든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는 말씀대로 (골 1:17) 자연의 원인을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붙드시는 평소의 방식으로 봅니다. 다만 어떤 그리스도인 학자들은 과학이 이 규칙에 꼭 묶일 필요는 없다고 비판합니다.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는 자연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세계관입니다. 앞의 것은 방법이고 뒤의 것은 믿음이니, 과학의 성공이 곧 하나님이 없다는 증명은 아닙니다.

C. S. 루이스는 1947년 『기적』에서 형이상학적 자연주의가 스스로를 무너뜨린다고 논했습니다. 자연이 전부라면 우리의 생각도 이성과 상관없는 원인들이 낳은 결과일 뿐이니, 자연주의에 이른 그 추론을 믿을 까닭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 기적. 철학자 엘리자베스 앤스콤의 비판을 받은 루이스는 1960년 판에서 그 장을 고쳐 썼고, 자연주의자들은 참된 생각이 살아남는 데 유리하니 진화가 믿을 만한 이성을 길렀다고 답합니다. 이 논증은 과학을 하는 마음 자체가 어디서 왔느냐를 묻습니다.

대화에서 친구가 과학이 신을 몰아냈다고 말한다면, 어떤 발견이 그것을 보였는지 함께 물어보십시오. 대개 그것은 과학의 발견이 아니라 과학주의나 자연주의라는 철학입니다. 그리스도인도 과학이 밝힌 것 앞에서는 겸손히 배우고, 창조의 연대를 믿음의 시험으로 삼지 마십시오. 다음 과 예수만이 길인가에서는 여러 종교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일을 살핍니다.

연습

  1. 연습 1 / 8

    19세기에 과학과 종교가 처음부터 싸워 왔다는 ‘갈등’과 ‘전쟁’의 역사를 써서 이 이야기를 굳힌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2. 연습 2 / 8

    갈릴레오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8

    벨직 신앙고백 2조가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두 방편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8

    방법론적 자연주의와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5. 연습 5 / 8

    과학으로 증명된 것만 믿을 수 있다는 과학주의의 약점으로 이 과가 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8

    C. S. 루이스가 『기적』에서 편 이성의 논증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하나님이 진화의 과정을 통해 생명을 지으셨다고 보는 그리스도인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8. 연습 8 / 8

    친구가 과학이 신을 몰아냈다고 말합니다. 이 과가 권하는 대화의 방향은 무엇입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출처

  1. 갈릴레오 갈릴레이, 크리스티나 대공비에게 보낸 편지 1615 — 1615년. 성경과 자연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니 두 진리는 서로 모순될 수 없으며, 성경은 하늘이 어떻게 가는지가 아니라 하늘에 어떻게 가는지를 가르친다는 말을 인용한다.
  2. C. S. 루이스, 기적 — 1947년. 자연주의가 자기 논증을 스스로 무너뜨린다고 논하며, 기적은 자연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밖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사건이라고 말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변증의 여러 방법과 논증, 반론을 그 주장하는 이들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하며, 어느 한 방법만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