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과 고난을 지날 때
그리스도인은 죄로 끌어당기는 유혹과 삶을 흔드는 고난이라는 두 가지 시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유혹 가운데 피할 길을 내시고, 고난 가운데서도 아버지의 손으로 우리를 붙드시며, 넘어진 자녀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두 가지 시험
예수를 믿고 교회, 곧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오기 시작하면 어려운 일이 사라지리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사람도 시험을 만난다고 미리 말해 줍니다. 야고보서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다 기쁨으로 여기라"고 하고 (약 1:2), 조금 뒤에는 "아무도 자기가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고 합니다 (약 1:13). 앞의 시험은 믿음을 단련하는 어려움이고, 뒤의 시험은 죄로 끌어당기는 유혹입니다. 신약 성경이 쓰인 헬라어에서도 두 시험은 라는 한 낱말과 그 동사로 쓰입니다.
같은 일이 두 얼굴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병이나 가난, 관계가 깨어지는 아픔은 믿음을 단단하게 할 수도 있고, 우리를 원망과 절망과 죄로 끌고 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으로 우리를 세우시고, 마귀는 같은 시험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사탄이라고도 불리는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을 죄로 이끄는 악한 영입니다.
유혹을 받을 때
유혹은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으로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 1:13). 유혹은 우리 안의 욕심을 붙잡고, 그 욕심이 자라면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맙니다 (약 1:15).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어떤 시험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 당하는 것을 너희에게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그 시험과 함께 피할 길을 내사 너희가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신실하시다는 말은 믿을 수 있고 약속을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고, 세 번 모두 "기록된바"라고 하시며 성경 말씀으로 답하셨습니다 (마 4:4). 히브리서는 예수를 두고 이렇게 말하며 우리를 부릅니다.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갈 것이니라
히 4:15-16
긍휼은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고, 은혜는 받을 자격 없는 이에게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그 왕좌 앞에 나아가는 길은 기도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며 (엡 6:11), 그 가운데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고 합니다 (엡 6:17). 전신갑주는 온몸을 가리는 무장이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한 분 하나님이신 분입니다. 어떤 유혹은 믿음을 굳게 하여 맞서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 (약 4:7, 벧전 5:8-9). 어떤 유혹은 피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딤후 2:22) 순수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이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유혹이 자주 오는 자리와 시간을 알아 미리 피하고, 혼자 싸우지 마십시오.
16세기 종교개혁, 곧 성경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려던 운동에서 칼뱅 같은 이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교회들을 개혁교회라고 부릅니다. 장로교회가 잘 알려져 있지만 유럽 대륙의 개혁교회도 있고, 침례교회 가운데에도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개혁파 침례교회가 있습니다.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곧 교회가 믿는 바를 글로 정리한 고백은 이 싸움에서 기댈 분을 가리킵니다. 묻고 답하며 신앙을 가르치는 요리문답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우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우리를 건지시옵소서"라는 간구를 (마 6:13) 이렇게 풉니다.
우리는 스스로 너무나 연약하여 한순간도 설 수 없고, 게다가 우리의 치명적인 원수들, 곧 마귀와 세상과 우리 자신의 육신이 쉬지 않고 우리를 공격하므로, 아버지의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강하게 하셔서, 우리가 그들을 굳게 대적하고 이 영적 싸움에서 쓰러지지 않게 하시되,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그리하소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27문
여기서 육신은 몸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남아 죄로 기우는 마음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자녀들을 한동안 시험 가운데 두실 때에도 의롭고 거룩한 목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을 낮추시고, 더 가깝고 변함없이 하나님께 의지하게 하시며, 죄에 대해 더 깨어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5장 5항.
그래도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같은 죄에 또 넘어졌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만일 누가 죄를 지어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1). 교회가 대언자라고 부르는 이 변호자는 우리 편에 서서 말해 주는 분입니다. 숨지 말고 하나님께 고백하고 다시 일어나십시오. 이것은 ‘죄와 회개, 용서’ 과에서 보았습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고난이 모두 벌은 아닙니다.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두고 제자들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나 죄를 짓지 아니하였으며 다만 이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고 답하셨습니다 (요 9:3).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도 일하십니다. 바울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 이루는 줄 우리가 아노라"라고 말합니다 (롬 5:3-4). 체험은 어려움을 지나며 하나님이 붙들어 주심을 겪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바울 자신도 육체에 박힌 가시 같은 고통을 없애 달라고 세 번 기도했지만 가시는 남았습니다 (고후 12:7-8).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느니라
고후 12:9
고난 중에 탄식하는 것도 기도입니다. 시편 기자는 "오 주여, 어느 때까지 나를 잊으려 하시나이까? 영원히 잊으려 하시나이까?"라고 부르짖다가 (시 13:1) "내가 주의 긍휼을 신뢰하였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시 13:5). 긍휼은 불쌍히 여기시는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시편 42편은 낙심하는 자기 영혼에게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합니다 (시 42:5). 하나님 앞에서 아픔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셔서 "어떤 고난 중에 있는 자들도 능히 위로하게" 하십니다 (고후 1:4).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첫 물음의 답에서, 하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내 머리에서 머리털 하나도 떨어질 수 없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게’ 되어 있다고 고백합니다 1문. 요리문답은 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지금도 붙드시고 다스리시는 일, 곧 섭리를 가르치며,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도 우연이 아니라 ‘그분의 아버지다운 손길로’ 온다고 말합니다 27문. 이것을 아는 유익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역경 중에는 인내하고, 형통할 때에는 감사하며, 장래 일에 대해서는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신뢰하여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그분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한다고 확신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8문
다른 전통들도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 함께하시며 선을 이루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에 대한 설명의 차이는 교리 과정의 ‘섭리’ 과에서 다룹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이 있으면 병이 낫고 형편이 넉넉해지니, 병과 가난은 믿음이 부족하다는 표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굳게 믿으려는 마음에서 나온 가르침으로, "네 혼이 형통하는 것같이 네가 형통하고 건강하기를 내가 바라노라" 같은 말씀을 듭니다 (요삼 1:2). 그러나 개혁교회를 비롯한 역사적 교회들은 성경 전체로 답합니다. 예수께서는 눈먼 사람의 고난이 그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하셨고, 바울은 가시를 지닌 채 은혜로 살며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거기에 만족하는 것을 내가 배웠노니"라고 했습니다 (빌 4:11). 낫기를 구하는 기도는 옳지만, 낫지 않는다고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이 깊을 때 혼자 견디지 마십시오. 목사님과 믿을 만한 성도, 곧 함께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이야기하십시오. 우울증과 병에는 기도와 함께 의사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치료를 받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면 오늘 바로 가까운 사람과 의사에게 알리십시오. 우울증은 믿음이 부족해서인가?, 병은 죄의 벌인가?, 고난에도 의미가 있는가?, 선하신 하나님이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도 읽어 보십시오.
이번 주에 해 볼 것
유혹이 올 때 성경 한 구절을 소리 내어 기도하십시오. 예수께서 말씀으로 답하셨듯이, 고린도전서 10:13이나 "우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우리를 건지시옵소서"를 (마 6:13) 외워 두었다가 유혹이 올 때 소리 내어 기도하십시오.
믿음의 친구 한 사람에게 지금 씨름하는 일을 이야기하십시오. 다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그 친구를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다음 과에서는 교회에 속한다는 것을 봅니다.
연습
- 연습 1 / 8
야고보서 1장에 나오는 ‘시험’에 대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8
야고보서 1:13-15에 따르면 사람이 유혹을 받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됩니까?
- 연습 3 / 8
고린도전서 10:13은 유혹 가운데 있는 신자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하신다고 약속합니까?
- 연습 4 / 8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예수께서는 어떻게 답하셨습니까?
- 연습 5 / 8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27문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하는 까닭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 연습 6 / 8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8문이 말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8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기도했을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 연습 8 / 8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한 죄에 또 넘어졌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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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성경과 교회의 신경, 개혁교회의 신앙고백(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 도르트 신경, 제2차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모든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믿음을 먼저 가르치고, 개혁교회의 고백으로 그 뜻을 밝히며, 다른 전통의 견해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