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9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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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그레고리우스와 유럽의 선교

590년 로마의 감독이 된 대 그레고리우스는 목자로서 도시와 교회를 돌보았고, 그가 보낸 수도사들이 597년 잉글랜드의 켄트에 닿았습니다.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수도사들이 대륙으로 복음을 가져갔고, 800년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과 작센족의 강제 세례, 910년 클뤼니의 개혁이 이어졌습니다.

어두운 배경 앞에 삼중관을 쓰고 금실로 수놓은 망토를 걸친 늙은 교황이 펼친 책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그림.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대 그레고리우스〉, 1626–1627년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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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들의 종

그레고리우스(540년 무렵–604)는 로마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로마 시의 장관까지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려받은 재산으로 수도원들을 세우고, 자기 집을 수도원으로 바꾸어 스스로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교황의 사절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여러 해를 보낸 그는 590년 전염병이 돌던 로마에서 로마의 감독(교황)으로 뽑혔습니다. 그는 교회의 땅에서 거둔 곡식으로 굶주린 도시를 먹이고, 황제의 군대가 지켜 주지 못하는 도시를 위해 쳐들어온 롬바르드족과 협상하여 평화를 얻었습니다.

감독이 된 무렵 그는 『목회 규칙』을 썼습니다. 그는 영혼을 다스리는 일이 모든 기술 가운데 으뜸가는 기술이라며, 배우지 않은 이가 목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또 기쁜 이와 슬픈 이, 가난한 이와 부자, 젊은이와 노인에게 같은 말을 같은 방식으로 할 수 없으니 듣는 사람에 따라 말씀을 달리 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책은 중세 내내 목자들의 교본이 되었습니다. 그가 그린 목자는 베드로가 말한 목자였습니다.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오직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주인처럼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 떼에게 본이 되라.

벧전 5:2-3

그레고리우스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불렀고, 이 이름은 그 뒤 교황들의 칭호가 되었습니다. 그의 가르침과 이 시대 수도원의 신학은 신학 과정의 수도원, 선교, 동서 교회의 분열 과에서 다루고, 이 과는 그와 그 뒤 세 세기 동안 일어난 일을 따라갑니다.

켄트로 간 수도사들

나무와 묘비들에 둘러싸인 작은 돌 교회로, 서쪽 끝에 낮은 탑이 서 있다.
윌리엄 고슬링, 〈캔터베리의 성 마르틴 교회〉, 1825년 · 출처

596년 그레고리우스는 자기가 세운 로마의 수도원의 원장 아우구스티누스(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와 수도사들을 잉글랜드의 앵글족에게 보냈습니다. 731년 잉글랜드의 수도사 베다는 『영국민의 교회사』 1권 23–26장에서 이 일을 전하며 그레고리우스의 편지들을 옮겨 실었습니다. 일행은 갈리아에서 말도 모르는 사나운 민족에게 갈 일이 두려워 돌아가기를 청했지만, 그레고리우스는 선한 일을 시작했다가 그만두느니 아예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며 그들을 격려해 다시 보냈습니다.

597년, 베다의 말로 마흔 명가량인 일행이 켄트에 닿았습니다. 프랑크족의 그리스도인 왕비 베르타를 둔 애설버트 왕은 그들이 마술을 쓸까 두려워 바깥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수도사들은 은 십자가와 판자에 그린 구주의 그림을 앞세우고 기도하며 나아왔고, 왕은 그들이 캔터베리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왕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601년 그레고리우스는 두 번째 일행과 함께 떠난 수도원장 멜리투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잘 지은 신전은 허물지 말고 그 안의 우상만 없애며, 성수를 뿌리고 제단을 세워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으로 바꾸라는 것이었습니다. 소를 잡아 제사하던 날에는 교회 둘레에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잔치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굳은 마음에서 모든 것을 단번에 잘라 낼 수는 없고, 높은 곳에 오르려는 사람은 뛰어서가 아니라 한 걸음씩 오른다는 것이 그의 까닭이었습니다 베다, 영국민의 교회사 1.30. 복음이 한 민족의 오랜 풍습을 만날 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는 그 뒤 모든 선교사가 씨름한 물음입니다.

그레고리우스가 수도사들을 보낸 것은 바울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런즉 그들이 자기들이 믿지 아니한 분을 어찌 부르리요? 자기들이 듣지 못한 분을 어찌 믿으리요? 선포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어지지 아니하였으면 그들이 어찌 선포하리요? 이것은 기록된바,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며 좋은 일들의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함과 같으니라.

롬 10:14-15

칠십 인을 앞서 보내신 말씀을 두고 그는 "주께서는 자기의 전도자들을 뒤따라오시기 때문입니다"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

바다를 건넌 수도사들, 그리고 칼

잉글랜드보다 먼저 복음을 받은 아일랜드의 수도사들도 바다를 건넜습니다 (제국 너머의 교회 과). 스코틀랜드의 아이오나에 수도원을 세운 콜룸바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켄트에 닿은 597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콜룸바누스는 590년 무렵 갈리아로 건너가 수도원들을 세우고 이탈리아의 보비오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이어 잉글랜드의 수도사들이 대륙으로 갔습니다. 웨식스의 수도사 보니파키우스는 716년 처음 프리슬란트로 건너갔고, 교황에게서 사명을 받은 뒤 오늘의 독일 땅에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그가 죽은 뒤 사제 빌리발트가 쓴 『보니파키우스의 생애』는 그가 헤센의 가이스마르에서 이교의 신에게 바쳐진 큰 참나무를 베고 그 나무로 작은 예배당을 지었다고 전합니다. 754년 무렵 그는 프리슬란트에서 동료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768년 프랑크족의 왕이 된 카롤루스 대제는 772년부터 30년 넘게 이웃 작센족과 싸웠습니다. 그는 정복한 땅에서 세례를 거부하고 이교도로 남으려는 자를 죽이게 하는 법을 내렸고, 782년 페르덴에서는 반란에 가담한 많은 작센인을 처형하게 했습니다. 800년 성탄절,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레오 3세가 그에게 황제의 관을 씌웠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에는 이미 로마 황제로 다스리는 이레네 여제가 있었기에 동방은 이 대관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 일은 동방과 서방이 멀어지는 길의 한 걸음이 되었습니다.

카롤루스는 학교를 세우고 성경과 고전을 베끼게 했습니다. 그의 궁정 학교를 이끈 잉글랜드의 학자 알퀴누스는 796년 아바르족을 정복한 왕과 그 신하들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믿음은 사람의 뜻에서 나오는 것이라 억지로 시킬 수 없고 사람을 세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믿음으로 끌고 갈 수는 없다고 썼습니다 알퀴누스, 서간집. 먼저 가르치고 그 뒤에 세례를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28:19-20). 2000년 ‘용서의 날’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의 아들딸들이 진리를 섬긴다며 쓴 폭력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기억과 화해.

클뤼니, 그리고 로마의 감독

소와 나그네들이 지나가는 길과 들판 너머로 첨탑이 여럿 솟은 클뤼니 수도원의 큰 교회와 성벽이 보인다.
장바티스트 랄망, 〈클뤼니 수도원 풍경〉, 1780년대 (프랑스 국립도서관) · 출처

910년 아키텐의 공작 기욤은 부르고뉴의 클뤼니에 수도원을 세우고 베르노를 원장으로 세웠습니다. 그는 이 수도원을 사도 베드로와 바울에게 바치고 교황의 보호 아래 두어, 어떤 영주나 감독도 그 재산과 원장 선출에 손대지 못하게 했습니다 클뤼니 수도원 설립 헌장. 그 무렵 많은 수도원과 교회는 영주의 손에 들어가 있었지만, 클뤼니는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을 엄격히 지키며 함께 드리는 기도에 하루의 많은 시간을 바치고 가난한 이들을 먹였습니다. 유럽 곳곳의 많은 수도원이 클뤼니의 원장 아래 모였고, 이 바람은 11세기 교회의 개혁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교황과 황제, 그리고 십자군 과). 그러나 수도원들에 부가 쌓이자 1098년 시토의 수도사들이 더 단순한 삶을 찾아 새로 시작했듯, 개혁된 교회도 다시 개혁되어야 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오늘 여러 전통이 함께 기리는 사람입니다. 가톨릭 교회(천주교)는 그를 교회 학자 성 대 그레고리오로 기념하고, 교황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온 교회의 일치를 섬기는 이로 고백합니다. 동방의 오랜 교회인 정교회는 그를 대화자 그레고리오스라는 이름의 성인으로 기리면서, 첫 천 년의 로마에 명예의 첫자리를 인정하되 온 교회를 다스리는 권한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595년 그레고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세계 총대주교’라는 칭호를 교만하다고 반대한 편지들을, 정교회는 어느 감독도 온 교회의 감독일 수 없다는 증거로 읽고 가톨릭 교회는 다른 감독들의 존엄을 지킨 교황의 말로 읽습니다. 개신교회는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 한 분이시라며 교황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지만, 잉글랜드 교회에서 자란 성공회와 마르틴 루터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러 루터교회는 그를 기념일에 기억합니다.

그레고리우스의 이야기는 목자의 자리가 다스림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것을, 그리고 복음은 보내심을 받은 이들의 발로 땅끝까지 간다는 것을 일러 줍니다. 그러나 복음이 칼과 함께 갈 때 교회는 그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알퀴누스가 말했듯 믿음은 억지로 생기지 않습니다. 다음 과 이슬람의 등장과 동방 교회에서는 같은 7세기에 동쪽에서 일어난 큰 변화와, 중국까지 간 동방 교회의 이야기를 봅니다.

연습

  1. 연습 1 / 7

    그레고리우스가 『목회 규칙』에서 가르친 것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2. 연습 2 / 7

    597년 켄트에 닿은 선교단에 대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7

    601년 그레고리우스가 멜리투스에게 보낸 편지의 권고는 무엇입니까?

  4. 연습 4 / 7

    다음 사건을 일어난 차례대로 바르게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7

    작센족에게 세례를 강요하던 시절 알퀴누스가 편지에 쓴 것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7

    910년에 세워진 클뤼니 수도원에 대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7

    대 그레고리우스와 로마의 감독을 두고 오늘의 전통들에 대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출처

  1. 대 그레고리우스, 목회 규칙 — 목자의 부르심과 삶, 듣는 사람에 따라 말씀을 다르게 전하는 법을 가르친 중세 목회의 교본.
  2. 베다, 영국민의 교회사 — 731년. 대 그레고리우스가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를 켄트로 보낸 일(1.23–26)과, 신전은 허물지 말고 우상만 없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으로 바꾸라고 멜리투스에게 쓴 그레고리우스의 편지(1.30)를 전한다.
  3. 빌리발트, 보니파키우스의 생애 6 — 760년대 무렵. 보니파키우스가 순교한 뒤 사제 빌리발트가 쓴 전기로, 6장에서 그가 헤센의 가이스마르에서 이교의 신에게 바쳐진 큰 참나무를 베고 그 나무로 사도 베드로에게 바친 작은 예배당을 지었다고 전한다.
  4. 알퀴누스, 서간집 796 — 796년. 아바르족을 정복한 카롤루스 대제와 그 신하들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믿음은 뜻에서 나오는 것이라 억지로 시킬 수 없고 사람을 세례로 몰아갈 수는 있어도 믿음으로 몰아갈 수는 없다고 하며, 작센족의 일을 거울삼아 먼저 가르치고 그 뒤에 세례를 주라고 권한다.
  5. 국제신학위원회·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기억과 화해: 교회와 과거의 잘못, 그리고 용서의 날 2000 — 2000년. 3월에 발표된 국제신학위원회의 문서는 교회가 지난날 그 자녀들이 지은 죄를 고백하는 근거를 밝히고, 같은 해 3월 12일 ‘용서의 날’에 요한 바오로 2세는 진리를 섬긴다며 쓴 폭력,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해친 죄, 유대인에게 지은 죄 등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다.
  6. 아키텐의 공작 기욤, 클뤼니 수도원 설립 헌장 910 — 910년. 기욤이 부르고뉴의 클뤼니 땅을 사도 베드로와 바울에게 바쳐 베르노를 원장으로 하는 수도원을 세우고 교황의 보호 아래 두며, 어떤 영주나 감독도 그 재산을 빼앗거나 원장 선출에 손대지 못하게 한 문서다. 수도사들은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을 지키며 날마다 가난한 이와 나그네를 돌보아야 했다.
  7.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 — 기도와 노동, 날마다 드리는 성무일과, 한 공동체에 머무는 삶을 정한 서방 수도원의 규칙.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회 역사의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교회의 이야기를 각 전통이 기억하는 대로 공정하게 전하며, 교회가 지은 죄의 역사도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