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너머의 교회
4–5세기 복음은 로마의 국경 너머로도 퍼졌습니다. 330년 무렵 악숨의 에자나 왕과 프루멘티우스, 아르메니아와 405년 무렵 메스로프의 문자, 조지아의 니노, 박해를 견딘 페르시아의 동방 교회, 그리고 노예였다가 그 땅으로 돌아간 아일랜드의 패트릭이 그 이야기이며, 성경은 여러 민족의 말로 옮겨졌습니다.
악숨, 아르메니아, 조지아
로마 제국 안의 이야기만 들으면 교회가 처음부터 로마의 교회였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일찍부터 국경 너머로 갔습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돌아가던 한 아프리카 사람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가 일어나 가는데, 보라, 에티오피아 사람 곧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여왕 간다게 밑에서 그녀의 모든 국고를 맡아 큰 권세를 가진 내시가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면서 자기 병거에 앉아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행 8:27-28
세례를 받은 그는 "기뻐하며 자기 길을 가되"라는 말을 끝으로 (행 8:39) 다시 기록에 나오지 않습니다. 에티오피아 교회는 이 내시를 자기 땅에 복음을 처음 가져간 이로 기억하지만, 기록으로 알 수 있는 악숨 왕국의 교회는 4세기에 시작됩니다. 402년 무렵 에우세비우스의 뒤를 이어 교회의 역사를 쓴 루피누스는 이렇게 전합니다. 두로 출신의 젊은 그리스도인 프루멘티우스가 동생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 들른 바닷가에서 붙잡혀 악숨의 왕궁으로 끌려갔고, 왕궁에서 신임을 얻어 복음을 전했으며, 뒤에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아타나시우스에게서 그 땅의 감독으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루피누스, 교회사 10.9–10.
330년 무렵 악숨을 다스린 에자나 왕은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의 동전에는 옛 신들의 초승달과 원반 대신 십자가가 새겨졌습니다. 오리엔트 정교회의 한 가족인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프루멘티우스를 ‘평화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바 살라마로 부르며 기억합니다. 이 교회는 1959년까지 알렉산드리아의 콥트 교회에서 감독을 받았고, 전승은 5세기 말 로마 제국의 동방에서 온 아홉 성인이 성경을 이 땅의 옛말인 게에즈어로 옮겼다고 전합니다.
동쪽 산악 지대의 아르메니아는 자기 나라를 그리스도를 신앙으로 받아들인 첫 왕국으로 기억합니다. 아르메니아 교회의 전승은 계몽자 그레고리우스가 왕 티리다테스 3세에게 세례를 준 해를 301년으로 전하고, 314년 무렵으로 보는 학자도 많습니다. 사도 다대오와 바돌로매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믿기에 이 교회는 스스로를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라 부릅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는 아직 자기 글자가 없어, 예배에서 성경을 헬라어와 시리아어로 읽어야 했습니다. 405년 무렵 수도사 메스로프 마슈토츠는 교회의 수장 사하크와 함께 아르메니아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 글자로 처음 옮긴 말씀은 잠언의 첫머리, "이것은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들을 파악하게 하고"였습니다 (잠 1:2). 몇십 년 안에 성경 전체가 아르메니아어로 옮겨졌고, 아르메니아 교회는 오늘도 해마다 거룩한 번역자들의 축일을 지킵니다.
그 북쪽의 조지아에서는 한 여인이 복음을 전했다고 조지아 교회는 기억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4세기 니노라는 여인이 병든 왕비 나나를 위해 기도하여 낫게 했고, 왕 미리안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동방의 오랜 교회인 정교회의 한 가족인 조지아 교회는 그를 ‘사도와 동등한 이’로 기립니다.
페르시아, 그리고 칼케돈 뒤의 교회들
로마의 동쪽 맞수 페르시아 제국에도 시리아어로 예배하는 교회가 일찍부터 자랐습니다. 이 교회가 동방 교회(경교)입니다. 로마의 황제가 그리스도인이 되자, 로마와 전쟁을 거듭하던 페르시아의 왕 샤푸르 2세는 그리스도인들을 적국의 편으로 의심했습니다. 340년대부터 그의 긴 통치 동안 박해가 이어졌고, 수도 셀레우키아-크테시폰의 감독 시메온을 비롯한 많은 이가 순교했습니다. 로마에서 박해를 끝낸 일이 국경 너머의 형제들에게는 새 박해의 빌미가 된 것입니다.
5세기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한 분 안에 계신지를 두고 교회가 갈라질 때, 동방 교회는 안디옥 전통의 가르침을 지키며 에베소 공의회를 받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이 교회를 ‘네스토리우스파’라 불렀지만, 이 교회는 그 이름이 자기 신앙을 바르게 나타내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 교회는 인도와 중앙아시아로 퍼졌고, 635년에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 (이슬람의 등장과 동방 교회 과).
이집트의 콥트 교회,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와 에티오피아의 교회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를 받지 않아 오늘 오리엔트 정교회라 불립니다. 이들은 키릴루스를 따라 말씀이신 하나님의 성육하신 한 본성을 고백하며, 에우티케스를 정죄하고 ‘단성론’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과 에베소의 신앙을 지켜 왔다고 이해합니다. 칼케돈을 받은 황제들은 이들의 감독을 내쫓기도 했습니다. 이 갈라짐의 신학은 신학 과정의 칼케돈: 한 인격, 두 본성 과에서 다룹니다.
서쪽 끝 섬으로: 패트릭
로마 제국의 서쪽 끝 브리타니아에 살던 소년 패트릭은 열여섯 살에 아일랜드의 약탈자들에게 붙잡혀 그 섬에서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는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뒤에 자기를 노예로 삼았던 그 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다시 아일랜드로 갔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아는 것은 그가 직접 쓴 『고백록』 덕분입니다. 그가 아일랜드로 간 해는 전통적으로 432년이지만, 그의 활동 연대를 두고 학자들의 의견은 갈립니다. 토끼풀로 삼위일체를 가르쳤다거나 뱀을 쫓아냈다는 이야기는 뒷날의 전설입니다.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에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이렇게 놀랐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각 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우리 언어로 듣느냐? 우리는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이며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부근의 리비아의 여러 지방에 거하는 사람이고 또 로마에서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 개종자와 크레테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이라. 그들이 우리 언어들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말함을 우리가 듣는도다, 하고
행 2:8-11
매튜 헨리는 "바벨에서 생긴 언어의 차이는 지식과 종교의 전파를 크게 가로막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그 막힘을 넘어서려고 교회는 성경을 옮겼습니다. 5세기가 끝나기 전에 성경은 시리아어와 콥트어, 울필라스가 문자를 만든 고트어, 그리고 아르메니아어와 조지아어로 읽히고 있었습니다. 복음은 어느 한 민족의 옷을 입지 않고 각 민족의 말로 들렸습니다. 기독교가 서양 종교인가 하는 물음은 기독교는 서양 종교인가?에서 더 다룹니다.
이 오랜 교회들의 신자 가운데 많은 이가 오늘 중동의 전쟁과 박해 속에 고향을 떠나고 있습니다(오늘의 세계 교회 과). 요한이 본 마지막 날의 무리에는 그들도 우리도 함께 서 있습니다.
이 일 뒤에 내가 보니, 보라,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모든 민족과 족속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큰 무리가 흰 예복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왕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계 7:9
다음 과 대 그레고리우스와 유럽의 선교에서는 아일랜드와 로마에서 다시 유럽 곳곳으로 떠난 선교사들을 봅니다.
연습
- 연습 1 / 7
루피누스가 전하는 프루멘티우스의 이야기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7
405년 무렵 메스로프 마슈토츠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7
아르메니아가 그리스도를 신앙으로 받아들인 해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7
4세기 페르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샤푸르 2세에게 박해를 받은 까닭으로 이 과가 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7
칼케돈 공의회를 받지 않은 오리엔트 정교회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7
패트릭이 『고백록』에서 직접 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7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이 놀란 까닭은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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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출처
- 루피누스, 교회사 — 402년경.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를 이어 쓰며, 포로로 잡혀 간 프루멘티우스가 악숨 왕실에서 복음을 전하고 아타나시우스에게서 감독으로 세움을 받았다고 전한다(10.9–10). 이베리아(조지아)에 사로잡혀 간 한 여인이 왕실을 믿음으로 이끈 일(10.11)과, 391년 알렉산드리아의 세라피스 신전이 헐린 일(11.22–23)도 전한다.
- 동방 교회, 대진경교유행중국비 781 — 781년 장안에 세워진 비석으로, 635년 동방 교회(경교)의 알로펜이 당나라 수도에 와서 황제의 환대를 받은 일과 그 뒤의 일을 한문과 시리아 문자로 기록한다.
- 패트릭, 고백록 — 5세기. 열여섯 살에 노예로 잡혀 아일랜드로 끌려갔다가 도망쳐 돌아온 뒤, 다시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간 일을 패트릭이 직접 전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회 역사의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교회의 이야기를 각 전통이 기억하는 대로 공정하게 전하며, 교회가 지은 죄의 역사도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