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등장과 동방 교회
7세기 아랍 군대가 시리아와 이집트를 차지하고 638년 무렵 예루살렘이 항복하자, 그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슬림의 다스림 아래 보호받는 백성(딤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같은 무렵 동방 교회(경교)의 알로펜은 635년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이르렀고, 그 이야기는 781년의 비석에 남았습니다.
이슬람의 등장
610년 무렵부터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무함마드(570년 무렵–632)가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슬림은 아랍어로 알라라고 부르는 한 분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무함마드에게 꾸란을 내려 주셨고, 그가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의 뒤를 잇는 마지막 예언자라고 믿습니다(아랍어를 쓰는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릅니다). 이슬람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 자기를 온전히 맡기고 복종한다는 뜻입니다. 무슬림은 예수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큰 예언자로 존경하지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과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른 신앙을 그 신자들이 말하는 대로 존중하며 복음을 증언하는 길은 변증학 과정의 예수만이 길인가 과와 한국의 종교와 문화 앞에서 과에서 다룹니다.
베드로는 믿지 않는 이웃 사이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며
벧전 3:15
존 웨슬리는 온유함으로 하라는 까닭을 "분노는 여러분의 영혼뿐 아니라 여러분의 일에도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라고 풉니다 웨슬리.
632년 무함마드가 죽을 무렵 아라비아의 많은 부족이 이슬람 아래 하나가 되었고, 그를 이은 칼리프들의 군대가 북쪽으로 나아갔습니다. 동로마(비잔티움)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은 오랜 전쟁으로 지쳐 있었습니다. 아랍 군대는 635년 무렵 다마스쿠스를 얻고 636년 야르무크 전투에서 이겨 시리아를 차지했으며, 639년부터 몇 해 사이에 이집트도 정복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도 무너졌고, 한 세기가 지나지 않아 무슬림의 다스림은 서쪽의 에스파냐에서 동쪽의 중앙아시아까지 이르렀습니다.
예루살렘은 오랜 포위 끝에 638년 무렵(637년으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항복했고, 총대주교 소프로니우스는 칼리프 우마르에게 도성을 넘겨주었습니다. 뒷날의 기록들은 우마르가 주민의 목숨과 재산과 교회를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리스도의 무덤 자리에 선 성묘 교회 안에서 기도하기를 사양했다고 전하지만, 이런 이야기와 약속의 글이 어디까지 그때의 것인지는 학자들의 의견이 갈립니다. 칼케돈 공의회를 받지 않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른 사정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칼케돈을 따르는 콘스탄티노플의 황제들에게 오래 핍박을 받아 왔고, 콥트 교회는 숨어 지내던 총대주교 베냐민이 아랍 장군 아므르의 보장을 받고 돌아왔다고 기억합니다. 이 갈라짐의 신학은 신학 과정의 칼케돈: 한 인격, 두 본성 과에서 봅니다.
무슬림의 다스림 아래에서
이슬람의 법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경전을 받은 백성으로 여겨, 인두세(지즈야)를 내고 보호받는 백성, 곧 딤미로 살게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와 교회를 지키고 혼인 같은 일을 자기 교회의 법으로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 교회를 짓거나 십자가를 드러내 들고 다니는 일은 흔히 금지되었고,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무슬림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한은 다스리는 이에 따라 느슨하기도 하고 혹독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여러 세기에 걸쳐 천천히 일어났고, 많은 곳에서 그리스도인이 오래 다수로 남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회 안에서 관리와 의사와 학자로 일했습니다. 9세기 바그다드에서는 동방 교회(경교)의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 같은 그리스도인 학자들이 헬라의 철학과 의학 책을 아랍어로 옮겼습니다. 다마스쿠스의 요한(749년 죽음)의 집안도 대대로 칼리프의 재정을 맡았고, 그 자신도 칼리프의 궁정에서 일하다가 예루살렘 가까운 마르 사바 수도원의 수도사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헬라 교부들의 가르침을 정리한 『정통 신앙에 대한 정확한 해설』로 동방 신학의 고전을 남겼습니다. 『이단들에 관하여』 끝부분의 한 장에서 그는 이슬람을 그리스도교에서 갈라져 나온 한 이단으로 보고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무슬림은 이슬람을 아브라함의 처음 신앙을 되찾은 것으로 이해하며 그 설명에서 자기를 알아보지 않습니다.
이런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예레미야가 바빌론의 포로들에게 보낸 편지를 자기 이야기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내가 너희로 하여금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해서 거하게 한 그 도시의 평안을 구하고 그것을 위하여 주에게 기도하라. 그 도시가 평안하여야 너희도 평안하리라.
렘 29:7
매튜 헨리는 이 구절을 두고 "그들은 자기들이 포로로 있는 나라의 유익을 구하라는 지시를 받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장안의 알로펜, 635년
같은 무렵 페르시아 제국 안에서 자란 동방 교회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635년 그 교회의 선교사 알로펜(阿羅本)이 경전을 가지고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왔고, 태종 황제는 신하를 보내 그를 맞아들이고 궁궐의 서고에서 그 경전을 옮기게 했습니다. 638년 황제는 이 가르침이 백성에게 이롭다며 전하도록 허락하고 장안에 수도원을 세워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781년 장안에 세워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가 한문과 시리아 문자로 전합니다. 비석은 그 뒤 여러 황제 아래에서 교회가 퍼지고 시련도 겪은 일을 적었고, 머리에는 연꽃과 구름 위에 선 십자가를 새겼습니다.
비석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불교와 도교의 말을 빌려 풀었습니다. 이를 지혜로운 번역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 복음의 분명함이 흐려졌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845년 무종 황제가 불교를 비롯한 외래 종교를 금하자 동방 교회도 큰 타격을 입었고, 그 뒤 한 세기 남짓 만에 중국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입니다. 13세기 몽골의 원나라 때 동방 교회가 다시 들어왔지만, 원나라가 무너진 뒤 다시 사라졌습니다. 땅에 묻혔던 비석은 17세기 초에 다시 발견되었고, 중국에 온 예수회 선교사들이 이를 서방에 알렸습니다.
소수로 남은 교회들, 그리고 오늘
이집트의 콥트 교회,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교회, 그리고 칼케돈을 받은 안디옥과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의 정교회는 무슬림이 다스리는 땅에서 대대로 예배를 이어 왔습니다. 동방 교회는 바그다드에 총대주교를 두고 중앙아시아와 인도와 중국까지 교회를 세웠지만, 14세기 말 티무르의 원정 등으로 크게 무너졌습니다. 그 후예인 아시리아 동방 교회와, 로마와 교제하는 칼데아 가톨릭 교회가 오늘 이라크와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평화로운 때도 있었지만 1009년 이집트의 칼리프 알하킴은 예루살렘의 성묘 교회를 허물었고, 1915년 무렵 오스만 제국에서는 수많은 아르메니아인과 시리아 그리스도인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도 전쟁과 박해로 많은 이가 오랜 고향을 떠나고 있습니다.
서방의 그리스도인들도 이 교회들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뒤에 볼 십자군은 무슬림과 유대인뿐 아니라 동방의 그리스도인들도 해쳤습니다 (교황과 황제, 그리고 십자군 과).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결박 중에 있는 자들을 기억하되 그들과 함께 결박당한 것 같이 기억하고 너희 자신도 몸 안에 있은즉 역경 당하는 자들을 기억하라.
히 13:3
웨슬리는 그 까닭을 "여러분이 서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풉니다 웨슬리.
이 과의 이야기는 교회가 서방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복음은 7세기에 이미 중국에 닿았고, 아랍어와 시리아어와 콥트어로 기도하는 교회들은 권력 없는 소수로 살면서 천 년 넘게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사는 도시의 평안을 구했고, 이웃 앞에서 자기 소망의 이유를 대답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른 신앙의 이웃을 존중하며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증언하고, 고난받는 형제자매를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 과 성상 논쟁과 슬라브 선교에서는 비잔티움에서 일어난 이콘 논쟁과 슬라브인에게 간 선교사들을 봅니다.
연습
- 연습 1 / 7
무슬림이 스스로 고백하는 신앙을 바르게 설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7
638년 무렵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7
무슬림의 다스림 아래 딤미로 산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7
다마스쿠스의 요한에 대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7
635년 장안에 온 알로펜에 대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7
장안의 비석,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 대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7
히브리서 13:3이 그리스도인에게 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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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출처
- 다마스쿠스의 요한, 정통 신앙에 대한 정확한 해설 — 8세기. 헬라 교부들의 가르침을 정리한 동방 교회의 고전.
- 다마스쿠스의 요한, 이단들에 관하여 100 — 740년대 무렵. 『지식의 샘』의 둘째 부분으로 이단들을 차례로 다루며, 끝부분의 한 장에서 ‘이스마엘의 자손들’의 종교를 그리스도교에서 갈라져 나온 이단으로 보고 무함마드와 꾸란의 가르침을 날카롭게 반박한다. 무슬림이 자기 신앙으로 알아보지 않는 논박이다.
- 동방 교회, 대진경교유행중국비 781 — 781년 장안에 세워진 비석으로, 635년 동방 교회(경교)의 알로펜이 당나라 수도에 와서 황제의 환대를 받은 일과 그 뒤의 일을 한문과 시리아 문자로 기록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회 역사의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교회의 이야기를 각 전통이 기억하는 대로 공정하게 전하며, 교회가 지은 죄의 역사도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