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15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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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재판과 이단

12세기 서방에는 가난한 삶과 사람들의 말로 옮긴 성경을 앞세운 발도파와, 선과 악의 두 원리를 믿은 카타리파가 퍼졌습니다. 교회는 1184년 베로나 교령, 1209년 알비 십자군, 1233년부터 그레고리우스 9세가 보낸 종교재판관들로 그들을 억눌렀고, 개신교회도 이단을 불태웠으며,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진리를 섬긴다며 쓴 폭력의 용서를 구했습니다.

돌로 지은 방 한가운데 불 속에 책들이 던져져 타고 있고, 그 가운데 한 권이 불길 위로 떠오르며, 수사들과 사람들이 둘러서서 지켜보는 그림.
페드로 베루게테, 〈성 도미니코와 알비파〉, 1493–1499년 무렵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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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설교자들과 ‘선한 사람들’

1170년대 리옹의 부유한 상인 발데스(흔히 발도라고 부릅니다)는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복음서와 성경의 여러 부분을 자기 지방 말로 옮기게 했습니다. 그와 그를 따르는 ‘리옹의 가난한 이들’은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보내시며 돈주머니에 금이나 은을 준비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대로 (마 10:9-10) 둘씩 다니며 가난하게 살고 설교했습니다. 1179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는 그의 가난의 서원을 칭찬하면서도 감독의 허락 없이 설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사람들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는 말씀을 들어 설교를 멈추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행 5:29). 발도파는 자기들을 사도들의 가난과 설교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이해했습니다.

같은 무렵 남프랑스의 툴루즈와 알비 둘레와 북이탈리아에는 자기 감독들을 둔 다른 교회가 자랐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선한 그리스도인’, ‘선한 사람들’이라 불렀고, 반대자들은 그들을 카타리파 또는 알비파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영의 세계는 선한 하나님에게서, 보이는 물질세계는 악한 원리에서 왔다고 믿었고, 영혼은 육체에 갇힌 영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육신을 입지 않으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성례를 거부하고 손을 얹는 단 하나의 예식을 지켰으며, 그것을 받은 ‘완전한 자’들은 고기를 먹지 않고 혼인하지 않으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세상에 물든 성직자들 곁에서 그들의 엄격한 삶은 많은 이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대부분 그들을 반박하고 심문한 이들의 기록에서 오고, 그들 자신의 글은 몇 편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얼마나 하나로 짜인 교회였는지를 두고 역사가들의 의견이 갈립니다. 교회는 창조의 선함과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카타리파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판단했고, 발도파는 가르침보다 허락 없는 설교 때문에 정죄되었습니다. 무엇이 이단이며 어떻게 분별하는지는 이단은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에서 다룹니다.

베로나에서 알비까지

오르브강의 다리 너머 언덕 위에 베지에 시가지와 생나제르 대성당이 솟아 있고, 앞쪽에 풀밭과 나무들이 있다.
포토글로브사, 〈베지에 전경〉, 1890–1900년 무렵 (미국 의회도서관) · 출처

1184년 교황 루키우스 3세는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 함께 베로나에서 교령을 내려, 카타리파와 리옹의 가난한 이들을 비롯한 여러 무리를 이단으로 정죄했습니다. 감독은 해마다 자기 교구를 돌며 맹세한 이들에게 이단을 알리게 하고, 뉘우치지 않는 이는 세속 권력에 넘겨 벌하게 했습니다. 설교할 허락만 구했던 발도파는 이렇게 이단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1208년 교황의 사절이 남프랑스에서 살해되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그곳의 이단과 그들을 감싸는 영주들을 치는 십자군을 일으키고 성지 원정과 같은 죄의 사함을 약속했습니다. 1209년 7월 22일 북쪽에서 온 십자군은 베지에를 함락하고, 교회로 피한 이들까지 가톨릭 신자와 카타리파를 가리지 않고 주민들을 학살했습니다. 교황 사절인 시토회 수도원장 아르노 아모리는 교황에게 신분도 성별도 나이도 가리지 않았다고 보고했습니다. 누가 이단인지 묻는 이들에게 그가 ‘모두 죽여라,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는 십여 년 뒤 독일의 시토회 수도사 하이스터바흐의 카이사리우스가 엮은 『기적에 관한 대화』에 처음 나오는 것으로, 그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는지 의심하는 역사가가 많습니다. 그러나 학살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시몽 드 몽포르가 이끈 전쟁은 북프랑스 영주들이 남쪽 땅을 차지하는 정복이 되었고, 1229년 그 땅의 대부분이 프랑스 왕의 다스림 아래 들어가며 끝났습니다. 그 사이 여러 곳에서 카타리파의 완전한 자들이 무리로 화형을 당했습니다. 같은 시기 도미니코는 가난한 설교자로 카타리파를 찾아가 말씀으로 설득하려 했습니다(탁발 수도회 과).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는 정죄된 이단을 세속 권력에 넘기게 했고(3조), 유대인과 사라센인(무슬림)에게 그리스도인과 구별되는 옷을 입게 했습니다(68조) 제4차 라테란 공의회, 법령. 이 법령은 뒷날 여러 나라에서 유대인에게 표지를 달게 한 일로 이어졌습니다.

종교재판관들, 1233년부터

123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이단을 다스리는 법을 정했고, 1233년부터 주로 도미니코회 수사들을 교황이 직접 세운 종교재판관으로 남프랑스와 여러 지방에 보냈습니다. 재판관은 한 고장에 이르러 설교한 뒤 스스로 나와 고백하고 다른 이를 알릴 기간을 주었고, 그 뒤에 의심받는 이들을 불러 심문했습니다. 증인의 이름은 숨겨졌고 변호인은 대개 없었으며, 1252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는 고문을 허락했습니다. 뉘우친 이들은 순례나 옷에 꿰매 단 노란 십자가나 감옥 같은 벌을 받았고, 끝내 뉘우치지 않거나 다시 이단으로 돌아간 이들은 세속 권력에 넘겨져 화형을 당했습니다. 교회는 스스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지만, 넘겨진 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습니다.

남은 기록을 연구한 역사가들은 판결받은 이들 대부분이 참회의 벌을 받았고 화형은 그 가운데 적은 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웃의 이름을 대게 하고 두려움으로 고을을 다스린 이 제도는 공동체를 깊이 상하게 했습니다. 1478년에는 교황 식스투스 4세의 허락으로 스페인 왕실 아래 따로 종교재판소가 세워져 처음에는 유대교를 몰래 지킨다고 의심받은 개종 유대인을, 뒤에는 개종한 무슬림과 개신교도를 재판했고, 역사가들은 1834년 폐지될 때까지 처형된 이를 수천 명으로 추산합니다.

이단을 나라의 칼에 넘기는 일은 한 전통만의 죄가 아니었습니다. 1553년 제네바에서는 삼위일체를 부인한 미카엘 세르베투스를 칼뱅이 앞장서 고발했고 시의회가 그를 화형에 처했으며,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 재세례파를 물에 빠뜨리거나 불태웠습니다(취리히, 제네바, 스코틀랜드 과). 아우구스티누스가 도나투스파를 두고 강제를 받아들인 논리는 중세 내내 이런 일의 근거로 쓰였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 은혜의 박사 과). 그러나 그보다 앞서 크리소스토무스는 가라지 비유를 풀며 "우리는 이단자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면 끝없는 전쟁이 세상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

그가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가라지를 모으다가 그것들과 함께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수확 때까지 같이 자라게 두어라.

마 13:29-30

회개와 오늘의 교회

넓은 돌계단 위에 둥근 창이 있는 단정한 정면과 양쪽 종탑을 갖춘 발도파 교회가 서 있다.
작자 미상, 〈토레 펠리체의 발도파 교회〉, 1895년 무렵 · 출처

2000년 3월 12일 ‘용서의 날’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의 자녀들이 진리를 지킨다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억누르고 해친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기억과 화해. 2015년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 토리노의 발도파 교회를 찾아, 가톨릭 신자들이 역사 속에서 그들을 박해하고 모질게 대한 일에 대해 용서를 구했습니다. 발도파는 이를 감사히 받으면서도, 고난받고 죽은 옛 신앙인들을 대신해 용서할 권한은 자기들에게 없다고 답했습니다 토리노 발도파 교회 방문과 발도파의 답신. 1532년 종교개혁에 합류한 발도파는 오늘 이탈리아에서 개혁교회 전통의 교회로 살아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한 마을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제자들은 하늘에서 불을 내리자고 했습니다.

그분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보고 이르되, 주여, 엘리야가 행한 것 같이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저들을 멸하도록 우리가 명령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거늘 그분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생명을 멸하러 오지 아니하고 구원하러 왔느니라, 하시니라. 그들이 다른 마을로 가니라.

눅 9:54-56

웨슬리는 이 꾸짖음의 말씀을 풀며, 그리스도교의 영이 "진노와 복수의 영이 아니라 평화와 온유와 사랑의 영입니다"라고 풉니다 웨슬리. 베지에의 이야기가 빌려 쓴 말씀은 "주께서 자신의 백성인 자들을 아시느니라"는 디모데후서의 구절이지만 (딤후 2:19), 같은 장은 몇 절 뒤에서 주의 종은 다투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우며 반대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딤후 2:24-26). 야고보는 "율법을 주시는 이가 한 분 계시는데 그분께서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라고 합니다 (약 4:12).

교회는 오늘도 거짓 가르침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말씀과 온유함으로 해야 하며, 사람의 마음과 마지막 심판은 율법을 주시는 오직 한 분께 맡겨야 합니다. 이단으로 몰려 죽은 이들 가운데에는 참으로 그릇된 가르침을 따른 이들도, 성경을 사랑해 가난하게 산 이들도 있었습니다. 다음 과 흑사병과 대분열, 그리고 후스에서는 흑사병과 교회의 분열 속에서 성경을 붙들다 1415년 화형을 당한 얀 후스를 봅니다.

연습

  1. 연습 1 / 8

    리옹의 발데스와 발도파가 바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2. 연습 2 / 8

    카타리파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8

    1184년 베로나 교령이 정한 것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8

    베지에에서 했다는 말 ‘모두 죽여라,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8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가 정한 것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8

    다음 사건을 일어난 차례대로 바르게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이단을 처형한 역사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8. 연습 8 / 8

    크리소스토무스는 가라지 비유(마 13:29-30)를 풀며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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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하이스터바흐의 카이사리우스, 기적에 관한 대화 5.21 — 1219–1223년 무렵. 독일 하이스터바흐의 시토회 수도사가 수련 수사들을 가르치려고 엮은 이야기책으로, 5권 21장에서 1209년 베지에가 함락될 때 이단을 어떻게 가리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시토회 수도원장 아르노 아모리가 ‘모두 죽여라,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라고 답했다고 전해진다고 쓰는데, 이것이 그 말의 첫 기록이다.
  2. 제4차 라테란 공의회, 법령 1215 — 1215년. 인노켄티우스 3세가 소집한 공의회로, 정죄된 이단을 세속 권력에 넘기게 하고(3조), 신자는 해마다 적어도 한 번 고해하고 적어도 부활절에는 성찬을 받게 하며(21조), 유대인과 사라센인(무슬림)은 그리스도인과 구별되는 옷을 입게 했다(68조).
  3. 국제신학위원회·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기억과 화해: 교회와 과거의 잘못, 그리고 용서의 날 2000 — 2000년. 3월에 발표된 국제신학위원회의 문서는 교회가 지난날 그 자녀들이 지은 죄를 고백하는 근거를 밝히고, 같은 해 3월 12일 ‘용서의 날’에 요한 바오로 2세는 진리를 섬긴다며 쓴 폭력,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해친 죄, 유대인에게 지은 죄 등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다.
  4. 프란치스코 교황·발도파 교회, 토리노 발도파 교회 방문과 발도파의 답신 2015 — 2015년. 6월 22일 토리노의 발도파 교회당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사 속에서 가톨릭 교회가 그들에게 보인 그리스도인답지 않고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태도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8월 발도파·감리교 총회는 이를 감사히 받으면서도, 복음의 증언 때문에 피 흘리고 고난받은 옛 신앙인들을 대신해 용서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회 역사의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교회의 이야기를 각 전통이 기억하는 대로 공정하게 전하며, 교회가 지은 죄의 역사도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