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6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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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과 수도원

3세기 말 이집트의 사막에서 안토니우스가 시작한 수도 생활은 파코미우스의 공동체와 동방의 바실리우스를 거쳐, 529년 무렵 몬테카시노의 베네딕투스에 이르러 서방의 모양을 얻었습니다. 수도사들은 기도와 노동, 손님 대접과 병자 돌봄, 책과 선교로 교회를 섬겼고, 종교개혁자들은 서원과 공로의 위험을 물었습니다.

시나이 사막의 높은 바위산 아래 골짜기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수도원과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있고, 낙타를 탄 나그네들이 다가오는 그림.
데이비드 로버츠, 〈호렙 산과 성 카타리나 수도원〉, 1839년 · 출처

연표에서 보기

사막으로 간 안토니우스

270년 무렵 이집트의 한 마을에서 부모를 여읜 젊은 안토니우스가 교회에 들어갔을 때, 마침 복음서의 이 말씀이 읽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완전하게 되려거든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매

마 19:21

그는 이 말씀을 자기에게 하신 말씀으로 듣고 물려받은 땅을 마을 사람들에게 주고 나머지는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었습니다. 누이는 믿을 만한 동정녀들의 공동체에 맡기고, 홀로 기도하며 일하다가 점점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를 가까이 알던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는 그가 356년 무렵 세상을 떠난 뒤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써서, 그가 사막에서 기도하며 유혹과 싸운 삶을 전했습니다.

이 책은 곧 라틴어로도 옮겨져 서방까지 읽혔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386년 밀라노에서 한 손님에게 안토니우스 이야기를 처음 듣고 놀랐던 일과, 트리어의 황제 관리 두 사람이 이 책을 읽고 그 자리에서 세상의 일을 내려놓았다는 이야기를 『고백록』 8권 6장에 전합니다. 박해가 끝나 교회가 편안해지던 4세기, 많은 이가 이렇게 사막으로 갔습니다. 역사가들은 순교의 길이 닫힌 뒤 그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다른 길을 찾았다고 봅니다 (눅 9:23). 사막에는 남자들만 간 것이 아니어서, 신클레티카 같은 ‘사막의 어머니’들도 이름을 남겼습니다.

함께 사는 수도원: 파코미우스와 바실리우스

아치 아래에서 초록 옷을 입은 수도원장 파코미우스가 날개 달린 천사에게서 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고, 뒤에서 수도사들이 지켜본다.
작자 미상, 〈천사에게서 규칙을 받는 파코미우스〉, 아런들 시편집, 캔터베리, 1012–1023년 (영국도서관) · 출처

혼자 사는 은수자와 다른 길을 연 사람은 파코미우스(약 292–346)였습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그는 군대에 끌려가던 젊은 날 낯선 그리스도인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준 일로 그리스도께 나아왔다고 합니다. 320년대 이집트 남부 타벤니시에서 그는 수도사들이 한 규칙 아래 함께 먹고 일하고 기도하는 공동체를 세웠고, 그가 죽을 무렵에는 여러 수도원과 여성의 수도원까지 생겼습니다. 그들이 본으로 삼은 것은 첫 교회였습니다.

믿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자기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대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행 2:44-45

존 웨슬리는 이 구절을 두고 "그렇게 하라는 어떤 명백한 명령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 사랑이 그들을 강권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씁니다 웨슬리.

사막 교부들의 짧은 말과 이야기는 뒤에 모음으로 엮여 지금도 읽힙니다. 가르침을 청하는 형제에게 한 노인은 네 방에 앉아 있으면 그 방이 모든 것을 가르쳐 주리라고 했습니다. 한 형제의 잘못을 심판하는 자리에 불려 간 노인은 물이 새는 항아리를 지고 가서, 자기 죄는 등 뒤로 흘러내려 보지 못하면서 남의 죄를 심판하러 왔다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동방에서는 카파도키아 가이사랴의 감독 대 바실리우스(약 330–379)가 이집트와 시리아의 수도사들을 찾아본 뒤 함께 사는 수도사들을 위해 『수도 규칙(긴 규칙과 짧은 규칙)』을 남겼습니다. 그는 혼자 사는 사람은 누구의 발을 씻기겠느냐고 물으며 사랑을 위해 함께 사는 삶을 권했고, 370년 무렵에는 가이사랴 성 밖에 가난한 이와 병자와 나그네를 돌보는 집을 세웠습니다. 동방의 오랜 교회인 정교회의 수도원들은 오늘도 그를 수도 생활의 아버지로 기립니다.

베네딕투스와 그의 규칙

서방 수도원의 모양을 정한 사람은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약 480–547)입니다. 로마에서 공부하다 떠나 수비아코에서 은수자로 살며 제자들을 모았던 그는 529년 무렵 로마와 나폴리 사이의 몬테카시노에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그의 생애는 주로 반세기쯤 뒤 대 그레고리우스가 『대화』 둘째 권에 모은 이야기들로 알려져 있는데, 기적 이야기가 많아 어디까지가 역사인지 가리기 어렵습니다.

그가 남긴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은 하루를 정해진 기도 시간과 손노동과 성경 읽기로 나누고, 수도사가 한 공동체에 평생 머물게 했습니다. 찾아오는 손님은 그리스도처럼 맞으라 했으니, 주님이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받아들였고"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25:35). 사막의 엄격함에 견주면 이 규칙은 절제와 중용으로 이름났고, 9세기 무렵에는 서방 수도원 대부분의 규칙이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유명한 말은 규칙에 그대로 나오지 않는 후대의 요약입니다. 수도원이 이 시대 교회의 신앙과 배움을 어떻게 지켰는지는 신학 과정의 수도원, 선교, 동서 교회의 분열 과에서 봅니다.

수도사들이 남긴 것, 개혁자들의 물음

바닷가 절벽 위에 탑이 있는 수도원이 서 있고 그 뒤로 아토스산 봉우리가 분홍빛으로 솟았으며, 앞쪽 길에는 검은 옷의 수도사 세 사람이 걷는다.
에드워드 리어, 〈아토스산과 스타브로니키타 수도원〉, 1857년 · 출처

수도사들은 교회에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드린 기도, 손으로 베껴 다음 세대에 넘긴 성경과 책, 나그네를 맞은 집과 병자를 돌본 방이 있었고, 군인이었다가 수도사가 된 4세기 투르의 마르티누스처럼 시골 마을에 복음을 전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위험도 있었고, 교부들 사이에서도 생각이 갈렸습니다. 히에로니무스는 모든 것을 판 이들을 첫째 등급에 두었고 히에로니무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온전해지기 위해 자기 소유를 모두 팔거나 내어놓는 자들만이 천국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종교개혁자들은 이 위험을 더 날카롭게 물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평생의 서원에 묶이는 일, 그리고 수도 생활로 하나님 앞에서 공로를 쌓는다는 생각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사였던 마르틴 루터는 1521년 『수도 서원에 관하여』에서 평생의 서원으로 공로를 쌓는다는 생각이 믿음과 복음의 자유에 어긋난다고 했고, 1530년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루터교회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은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는 수도원 공동체가 자유로웠다"고 하며 뒤에 서원이 지워진 일을 문제 삼았습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27조.

가톨릭 교회(천주교)와 정교회는 수도 서원을 모든 이에게 요구되는 길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은혜에 응답하여 자기를 온전히 드리는 길로 이해합니다. 바울도 결혼하지 않은 이가 주의 일을 염려한다고 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올무를 놓고자 함이 아니요"라고 덧붙였습니다 (고전 7:35). 수도사들은 그 말씀에서 "너희가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게" 하시는 부르심을 들었고 (고전 7:35), 개혁자들은 누구에게도 올무를 씌우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습니다.

오늘도 수도 생활은 여러 전통에 살아 있습니다. 오리엔트 정교회의 하나인 이집트의 콥트 교회는 홍해 가까이에 안토니우스의 이름을 딴 옛 수도원을 지키고, 그리스의 아토스 산에는 정교회의 수도원들이 모여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베네딕투스의 규칙을 따르는 베네딕도회를 비롯한 많은 수도회가 있고, 한국에도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있습니다. 독일 북부 뤼네부르크 지방의 몇몇 수녀원은 루터교회의 여성 공동체로 남았고, 19세기부터 잉글랜드 교회에서 자란 성공회에도 수도 공동체들이 다시 생겼습니다. 1940년 개혁교회 출신의 로제 수사가 프랑스에 세운 떼제 공동체에는 여러 교회의 형제들이 함께 살며, 1965년 성공회 사제 대천덕(1918–2002)이 강원도 태백에 세운 예수원도 기도와 노동의 공동체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막으로 가지는 않지만, 모두 같은 주님을 따릅니다. 웨슬리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을 풀며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지 않은 날은 잃어버린 날입니다"라고 씁니다 웨슬리. 다음 과 로마의 몰락과 아우구스티누스에서는 안토니우스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렸던 아우구스티누스가 무너지는 로마를 바라본 이야기를 봅니다.

연습

  1. 연습 1 / 7

    안토니우스가 가진 것을 나누고 사막으로 간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2. 연습 2 / 7

    파코미우스가 연 수도 생활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3. 연습 3 / 7

    다음 가운데 일어난 차례대로 바르게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7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7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27조가 수도 서원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7

    고린도전서 7:35에서 바울이 독신에 대해 덧붙인 말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7

    1940년 프랑스에 세워진 떼제 공동체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출처

  1. 아타나시우스, 안토니우스의 생애 — 360년경.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는 말씀(마태복음 19:21)을 교회에서 듣고 재산을 나눈 뒤 사막으로 들어간 안토니우스가 기도하며 유혹과 싸운 삶을 전한다.
  2.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읽기
  3. 바실리우스, 수도 규칙(긴 규칙과 짧은 규칙) 긴 규칙 7 / Longer Rules 7 — 4세기 후반. 함께 사는 수도사들을 위해 문답으로 엮은 규칙으로, 긴 규칙 7에서 혼자 사는 사람은 누구의 발을 씻기겠느냐고 물으며 사랑을 위해 함께 사는 삶을 권한다.
  4. 대 그레고리우스, 대화 2권 / Book 2 — 593–594년. 이탈리아 성인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으로, 둘째 권 전체가 베네딕투스의 생애를 전한다. 그가 죽은 지 반세기쯤 뒤 그의 제자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엮어 기적 이야기가 많으므로, 어디까지가 역사인지 가리기 어렵다.
  5.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 — 기도와 노동, 날마다 드리는 성무일과, 한 공동체에 머무는 삶을 정한 서방 수도원의 규칙.
  6. 마르틴 루터, 수도 서원에 관하여 1521 — 1521년.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사였던 루터가 바르트부르크에서 쓴 글로, 평생의 서원으로 하나님 앞에서 공로를 쌓는다는 생각은 믿음과 복음의 자유에 어긋난다고 하며 서원에 묶인 이들이 양심에 거리낌 없이 수도원을 떠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회 역사의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교회의 이야기를 각 전통이 기억하는 대로 공정하게 전하며, 교회가 지은 죄의 역사도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