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 세계대전과 교회
1914년 유럽의 교회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전쟁을 축복했고, 1915년 오스만 제국에서는 아르메니아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의 길로 내몰렸습니다. 나치 독일에서 고백교회는 바르멘에서 그리스도만을 주로 고백했지만, 교회 지도자들은 유대인을 위해 거의 소리를 내지 못했고, 전쟁 뒤 교회들은 죄를 고백하며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로 모였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부른 전쟁
1914년 8월 스스로 기독교 국가라 여기던 유럽의 나라들이 서로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독일 병사들의 허리띠 버클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의 글귀(Gott mit uns)가 새겨져 있었고, 독일과 영국과 프랑스와 러시아의 강단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싸움을 거룩한 일이라고 축복했습니다. 같은 기도문으로 기도하던 그리스도인들이 참호 양편에서 서로를 죽였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거듭 평화를 호소하며 1917년 8월 평화안을 내놓았지만 어느 편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퀘이커와 메노파를 비롯해 무기를 들기를 거부한 그리스도인들은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이 전쟁이 신학에 남긴 충격은 신학 과정의 바르트와 신정통주의 과에서 봅니다.
그가 많은 백성들 가운데서 심판하며 멀리 있는 강한 민족들을 꾸짖으리니 그들이 자기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자기들의 창을 쳐서 가지 치는 낫을 만들리라. 민족이 민족을 치려고 칼을 들지 아니하며 그들이 다시는 전쟁을 배우지 아니하고
미 4:3
매튜 헨리는 이 약속 앞에서 "열방은 아직 평강의 왕께 복종하여 자기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지 않았고, 전쟁도 그치지 않았습니다"라고 인정합니다 매튜 헨리. 그러면서도 그는 약속하신 분이 신실하시니 이 약속이 점점 더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1915년 4월 24일 오스만 제국 정부는 콘스탄티노플의 아르메니아인 지도자들을 붙잡아 갔고, 이어 아나톨리아의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시리아 사막으로 내몰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하거나 행렬 속에서 굶주려 죽었고, 시리아 정교회와 동방 교회(경교)와 그리스 정교회의 그리스도인들도 비슷한 일을 당했습니다. 대부분의 역사가는 이를 한 민족을 없애려 한 집단 학살로 보며, 튀르키예 정부는 이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목숨을 걸고 이웃을 숨겨 준 무슬림들이 있었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합니다. 오리엔트 정교회의 한 가족인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2015년 이때 죽은 이들을 모두 순교자로 시성했습니다.
독일 교회의 시험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독일 그리스도인’ 운동은 교회를 나치의 민족주의에 묶고, 유대인 혈통의 목사들을 교회에서 몰아내려 했습니다. 베를린의 목사 마르틴 니묄러는 이에 맞서 목사 긴급 동맹을 만들었고, 1934년 5월 루터교회와 개혁교회와 연합교회의 대표들이 바르멘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에 교회가 따를 다른 계시나 주인은 없다고 고백하며, 국가가 교회를 손에 넣으려는 것을 물리쳤습니다 바르멘 신학 선언. 가톨릭 교회에서는 1937년 교황 비오 11세가 나치 정권의 불의를 꾸짖는 회칙을 독일의 강단에서 읽게 했습니다. 니묄러는 1937년 체포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젊은 루터교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는 처음부터 고백교회에 섰습니다. 그는 『나를 따르라(제자도)』에서 십자가와 제자도가 빠진 값싼 은혜를 경고했고, 히틀러에 맞선 저항에 가담했다가 1943년 체포되어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의 가르침과 고백교회의 신학은 바르트와 신정통주의 과에서 다룹니다.
침묵과 구한 사람들
1938년 11월 독일 곳곳에서 회당이 불타고 유대인의 상점이 부서졌을 때, 교회 지도자들은 대부분 입을 다물었습니다. 뷔르템베르크의 시골 목사 율리우스 폰 얀은 며칠 뒤 회개의 날 설교에서 이 일을 죄라고 불렀다가 폭도에게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전쟁 동안 나치 독일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였고, 유럽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침묵했으며 그 일에 가담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교황 비오 12세가 더 분명히 말했어야 했는지는 역사가들 사이에 지금도 의견이 갈립니다.
그러나 이웃을 구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개혁교회 마을 르샹봉쉬르리뇽에서는 목사 앙드레 트로크메와 그의 아내 마그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쫓기는 유대인, 특히 아이들을 숨겼습니다. 네덜란드 하를럼의 시계방 집 딸 코리 텐 붐(1892–1983)의 가족은 집에 유대인을 숨겼다가 1944년 붙잡혔고, 아버지와 언니 벳시는 갇힌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1943년 불가리아 정교회의 주교들은 유대인을 실어 가는 일에 맞서 항의했고, 같은 해 로마의 여러 수도원은 유대인을 숨겼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따랐습니다.
네가 만일 죽음으로 끌려가는 자들과 죽임 당할 자들을 구출하려 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보라,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그것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시겠느냐?
잠 24:11-12
매튜 헨리는 이 구절을 풀며 "자기 이웃이 어떤 불의한 처사로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를 건져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의무가 있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고백과 새 출발
1945년 10월 독일 개신교회의 지도자들은 슈투트가르트에서 세계 교회의 대표들을 맞아, 나치 시대에 자기들의 증언이 너무 약했고 기도와 믿음과 사랑이 모자랐다고 고백하며 스스로 허물을 물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죄책 고백. 니묄러도 서명한 이 고백은 유대인을 따로 말하지 않았고, 1950년 독일 개신교회 총회는 침묵으로 유대인에게 지은 죄를 따로 고백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비그리스도교 선언(우리 시대)』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유대인 전체에게 돌릴 수 없다고 하며 반유대주의를 슬퍼했고, 1998년 교황청 유대인 종교 관계 위원회는 『우리는 기억한다: 쇼아에 대한 성찰』에서 쇼아 앞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보인 잘못과 실패를 돌아보며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미리 아신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라고 말합니다 (롬 11:2).
1948년 8월 암스테르담에서는 몇 해 전까지 서로 총을 겨누던 나라들의 교회가 함께 세계교회협의회를 세웠습니다. 협의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요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이 서로 사귀는 자리로 섰고 세계교회협의회 헌장의 기초, 첫 총회에서 교회들은 전쟁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고 함께 밝히면서도, 그리스도인이 무기를 들 수 있는지에는 서로 생각이 다름을 인정했습니다. 이 운동의 이야기는 에큐메니컬 운동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과에서 봅니다.
두 전쟁은 교회가 자기 나라의 깃발을 하나님의 뜻과 혼동할 때 얼마나 쉽게 눈이 머는지 보여 줍니다. 위험에 처한 이웃 앞에서 우리는 몰랐다고 말할 수 없고, 교회가 할 일은 원수 된 이들을 화해시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라고 하셨고 (마 5:9), 크리소스토무스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까닭을 이렇게 말합니다. "갈라진 것들을 화해시키고 싸우는 것들에게 평화를 주는 것이 독생자의 주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 다음 과 전쟁과 분단, 그리고 성장에서는 해방과 전쟁을 지난 한국 교회를 봅니다.
연습
- 연습 1 / 7
1914년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유럽 교회들의 모습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7
1915년 오스만 제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7
1934년 바르멘에 모인 고백교회가 고백한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7
디트리히 본회퍼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7
르샹봉쉬르리뇽 마을과 코리 텐 붐의 가족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7
1945년 10월 슈투트가르트 죄책 고백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7
다음 사건을 일어난 차례대로 바르게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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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출처
- 독일 고백교회, 바르멘 신학 선언 1934 —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듣고 신뢰하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라고 고백하며 국가의 교회 장악을 거부한 선언.
- 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제자도) 1937 —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구별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순종을 말한 책.
- 독일 개신교회 협의회, 슈투트가르트 죄책 고백 1945 — 1945년 10월 19일. 세계 교회의 대표들 앞에서, 독일 개신교회가 나치 시대에 증언하고 기도하고 믿고 사랑하는 일에 마땅히 그래야 했던 만큼 담대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고발한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비그리스도교 선언(우리 시대) 4 (1965) — 1965년 10월 28일.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를 밝힌 가톨릭 교회의 선언으로, 4항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그때의 모든 유대인에게도 오늘의 유대인에게도 돌릴 수 없다고 하고, 어느 때 누구에게서 나왔든 반유대주의를 슬퍼한다.
- 교황청 유대인 종교 관계 위원회, 우리는 기억한다: 쇼아에 대한 성찰 1998 — 1998년 3월. 쇼아(홀로코스트) 때 교회의 아들딸들이 보인 잘못을 뉘우치며 회개(테슈바)를 촉구한다.
- 세계교회협의회, 세계교회협의회 헌장의 기초 1948 —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사귐이라는 협의회의 기초. 1948년 암스테르담의 첫 총회는 전쟁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고 선언했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회 역사의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교회의 이야기를 각 전통이 기억하는 대로 공정하게 전하며, 교회가 지은 죄의 역사도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