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단, 그리고 성장
1945년의 해방은 곧 분단으로 이어졌고, 북쪽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의 전쟁 속에서 손양원 목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살았고, 그 뒤 한국 교회는 나뉘면서도 크게 자라 세계로 선교사를 보냈지만, 그 성장은 크기와 돈과 분열의 유혹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해방과 분단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갇혔던 목사와 신자들이 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해방은 곧 분단으로 이어져, 북위 38도선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들어왔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개신교회가 가장 많았던 곳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쪽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쥔 북쪽에서 교회는 점점 더 큰 압박을 받았습니다. 1946년 당국은 조선기독교도연맹을 세워 그리스도인들을 그 아래 묶으려 했고, 이에 들지 않은 목사들은 갇히거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천주교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도 1949년 붙잡혀 간 뒤 소식이 끊겼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1945년 12월 목사 한경직은 북쪽에서 내려온 피난민들과 함께 서울에서 예배를 시작했고, 이 모임이 영락교회가 되었습니다. 북쪽에 남은 이들이 그 뒤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지금도 다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전쟁 속의 교회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도선을 넘어 전쟁이 시작되었고, 1953년 7월 휴전 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전선은 남북으로 오르내렸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가족이 흩어졌으며, 많은 예배당이 무너졌습니다. 전선의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목사와 신자들이 죽임을 당했고, 많은 목사와 신부가 북으로 끌려갔습니다. 1950년 가을 공산군이 물러갈 때 전라남도 증도의 성결교회 전도사 문준경과 영광 염산교회의 교인들처럼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가 많았습니다. 피난민으로 가득 찬 부산에서는 북쪽과 서울에서 내려온 교인들이 천막과 판잣집에 모여 예배하며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에서 거기에 앉아 참으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 137:1
손양원(1902–1950)은 신사참배를 거부해 해방 때까지 옥에 있었고, 여수 애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섬긴 목사입니다. 1948년 10월 여순 사건 때 그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좌익 학생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손양원은 두 아들을 죽인 청년을 살려 달라고 탄원했고, 1949년 안용준이 쓴 그의 전기 『사랑의 원자탄』이 전하는 대로 그를 용서하여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1950년 9월 그는 피난하지 않고 애양원에 남았다가 물러가던 공산군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가 따른 것은 주님의 이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악의를 품고 너희를 다루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마 5:44
크리소스토무스는 이 말씀이 우리를 이끄는 계단을 하나하나 세며 끝에 이렇게 말합니다. "일곱째는 그를 사랑하는 것이고, 여덟째는 그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
나뉨과 성장
해방 뒤 장로교회는 거듭 나뉘었습니다. 신사참배의 회개를 두고 1952년 고신이, 성경관을 두고 1953년 기장이 따로 섰고, 1959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 가입 문제 등을 두고 합동과 통합이 갈라졌습니다. 각 교단이 지키려 한 것은 한국의 장로교회 과에서 봅니다. 바울은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했고 (엡 4:3), 웨슬리는 그 띠를 이렇게 풀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은 사랑입니다" 웨슬리.
1960년대부터 나라가 빠르게 산업화되고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는 동안 교회는 크게 자랐습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불이 켜졌고, 산의 기도원에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이들이 모였습니다. 1973년 빌리 그레이엄의 집회와 1974년 8월 한국대학생선교회의 엑스플로 74가 서울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웠고, 여의도순복음교회 같은 큰 교회들이 생겨났습니다. 천주교도 같은 시기에 크게 자랐습니다. 1980년대부터 한국 교회는 세계 곳곳에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1974년 7월 스위스 로잔의 세계복음화국제대회에는 한국의 복음주의자들도 참석했습니다. 대회가 채택한 로잔 언약은 교회의 섬김 가운데 전도를 으뜸에 두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함께 고백했습니다 로잔 언약.
유신 체제와 군사 정부 아래에서 교회의 길은 갈렸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속한 교회들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같은 이들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외치다 옥에 갇히기도 했고, 민중신학이 이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많은 복음주의 교회는 교회의 첫 일이 복음 전도와 기도라고 보며 정치에 나서기를 삼갔고, 공산주의를 피해 내려온 이들의 두려움도 그 선택에 담겨 있었습니다. 1987년 6월 서울 명동성당은 시위하던 이들의 피난처가 되었고, 같은 해 복음주의자들은 교회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바로 세우자며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성장의 빛과 그림자
한국 교회의 성장은 새벽에 무릎 꿇은 평범한 신자들의 기도와 가난 속의 헌금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성장은 유혹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숫자와 건물을 자랑하는 마음, 돈을 둘러싼 잘못, 교회의 자리를 둘러싼 다툼과 분열이 그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탐욕을 주의하고 조심하라. 사람의 생명이 그의 풍부한 소유물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고 (눅 12:15), 매튜 헨리는 "탐욕은 우리가 끊임없이 경계받아야 할 죄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이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쟁의 상처 위에서 원수를 용서한 이들이 있었고, 같은 교회 안에서 서로 갈라선 이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것은 둘 다이며, 그 앞에서 교회는 감사하고 회개합니다. 이 시대를 신학의 물음으로 돌아보는 일은 신학 과정의 한국 교회의 20세기 과에서 다룹니다. 다음 과 오늘의 세계 교회는 이 과정의 마지막 과로, 남쪽과 동쪽으로 옮겨 간 세계 교회의 오늘을 봅니다.
연습
- 연습 1 / 7
1945년 해방 뒤 북쪽 교회의 사정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7
시편 137:1이 노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7
『사랑의 원자탄』이 전하는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 연습 4 / 7
해방 뒤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을 일어난 차례대로 바르게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7
1974년 로잔 언약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7
1970–1980년대 한국 교회와 민주화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7
누가복음 12:15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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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출처
- 안용준, 사랑의 원자탄 1949 — 1949년. 손양원 목사의 전기로, 1948년 여순 사건 때 두 아들을 죽인 청년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은 일을 전한다.
- 로잔 세계복음화국제대회, 로잔 언약 1974 — 1974년. 전도의 우선성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백한 복음주의 선언. 3항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자연에서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한다.
-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신학위원회 엮음, 민중신학 1981 — 고난받는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보는 한국 민중신학을 소개한 책.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회 역사의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교회의 이야기를 각 전통이 기억하는 대로 공정하게 전하며, 교회가 지은 죄의 역사도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