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28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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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컬 운동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20세기의 교회는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나 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에서 싹튼 에큐메니컬 운동은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로 모였고,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로 스스로를 새롭게 하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갈라진 형제들’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기둥이 선 교회 안에서 흰 중백의나 검은 가운을 입고 목사 깃을 단 여러 교회의 성직자들이 줄지어 서 있는 흑백 사진입니다.
세계교회협의회 제1차 총회에 모인 여러 교회의 성직자들, 암스테르담 신교회, 1948년 8월 22일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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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에서 암스테르담까지

19세기의 선교사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한 그리스도를 전했지만, 교회는 저마다 서양 교단의 이름으로 세웠습니다. 복음을 처음 듣는 이들에게 이 갈라짐은 걸림돌이었습니다. 1910년 6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개신교 선교 단체의 대표 1,200명쯤이 모여, 세계 선교를 위해 어떻게 협력할지를 논의했습니다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 보고서. 의장은 ‘이 세대 안에 세계 복음화를’이라는 학생자원운동의 표어로 알려진 미국의 평신도 존 모트였습니다. 대표 대부분은 유럽과 북미 사람이었고 아시아에서 온 이는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젊은 교회들이 서양 교회의 나뉨을 그대로 물려받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한 이도 있었습니다.

에든버러 뒤로 세 갈래의 물줄기가 생겨났습니다. 대회의 계속위원회는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가 되었습니다. 대회에 왔던 미국 성공회의 주교 찰스 브렌트는 교리와 교회 제도의 차이를 정직하게 마주하자며 ‘신앙과 직제’ 운동을 일으켰고(첫 세계 대회는 1927년 로잔), 스웨덴의 루터교 대주교 나탄 쇠데르블롬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와 평화의 문제에 함께 나서자며 ‘생활과 실천’ 운동을 이끌었습니다(1925년 스톡홀름). 1920년에는 콘스탄티노플 세계총대주교청도 교회들의 사귐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반면 가톨릭 교회는 1928년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으로 신자들이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신앙과 직제, 생활과 실천의 두 운동은 1948년 8월 암스테르담에서 하나로 모여 세계교회협의회를 세웠습니다. 147개 교회가 참여한 협의회는 스스로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사귐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 헌장의 기초. 협의회는 교회들 위에 선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 교회들이 함께 기도하고 대화하는 자리라고 밝혔습니다. 콘스탄티노플 세계총대주교청 등 몇몇 정교회는 처음부터 함께했고, 1961년 뉴델리 총회에서 러시아 정교회를 비롯한 동유럽의 정교회들이 가입하면서 대부분의 정교회가 협의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 총회에서 국제선교협의회도 합류했고, 기초에는 이 고백이 성경을 따른 것이라는 말과 성부, 성자, 성령 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고백이 더해졌습니다.

이 운동이 가장 자주 읽은 말씀은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드리신 기도입니다.

내가 이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말로 인하여 나를 믿을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오니 이것은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요 17:20-21

주님은 제자들의 온전한 하나 됨과 세상이 아버지의 보내심을 아는 것을 한데 묶으셨습니다 (요 17:23). 크리소스토무스는 이 기도를 풀며 "분열처럼 큰 거리낌은 없고, 믿는 이들 사이의 일치는 믿는 데 큰 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크리소스토무스. 바울은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하고 (엡 4:3), 그 까닭을 "한 주와 한 믿음과 한 침례가 있으며"라고 밝힙니다 (엡 4:5).

같은 말씀을 읽으면서도 많은 복음주의자는 협의회 앞에서 망설였습니다. 회원 교회 안에는 성경의 권위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지도자들도 있었고, 바울이 말한 일치는 ‘한 믿음’ 위의 일치이므로 진리를 덮어 둔 일치는 참된 일치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협의회가 인종 차별과 가난 같은 사회 문제에 힘을 쏟자, 복음 전도가 사회 변혁으로 바뀌어 가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습니다. 또 많은 복음주의자는 그리스도인의 일치가 성령께서 이미 주신 것이므로, 교회들을 하나의 기구로 묶기보다 진리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전도하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1846년의 복음주의 연맹에서 1974년 로잔 대회까지 자기들의 협력의 길을 걸었습니다 (복음주의와 세계 선교). 한국에서는 1959년 장로교회가 갈라질 때 협의회 가입이 큰 쟁점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20세기). 협의회에 함께한 이들은 갈라짐 자체가 주님의 기도를 거스르는 일이므로, 다름을 안은 채로라도 함께 기도하고 대화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붉은 추기경 모자와 어깨 망토를 걸치고 보석 박힌 가슴 십자가를 단 론칼리가 흰 레이스 소매 차림으로 옆을 바라보며 서 있는 컬러 사진입니다.
아네포, 〈교황 요한 23세〉(베네치아 총대주교 론칼리 추기경 시절), 1953–1958년 (네덜란드 국립 기록원) · 출처

1958년 교황이 된 요한 23세는 이듬해 1월 새 공의회를 열겠다고 알렸습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 뒤 거의 한 세기 만이었습니다. 그는 변하지 않는 신앙을 오늘의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교회를 ‘새롭게 하기’(아조르나멘토)를 바랐고, 그리스도인 일치 촉진 사무국을 세웠습니다. 1962년 10월 11일 2,000명이 넘는 주교가 로마에 모였고, 개신교회와 정교회의 참관인들도 함께했습니다. 요한 23세는 이듬해 6월 세상을 떠났고, 뒤를 이은 바오로 6세가 1965년 12월 공의회를 마쳤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 회의를 스물한째 보편 공의회로 받아들입니다.

공의회의 첫 문서인 1963년의 「전례 헌장」은 신자들이 미사를 알아듣고 온전히 참여해야 한다며 라틴어와 함께 각 나라 말을 쓸 길을 열고, 미사에서 성경을 훨씬 더 많이 읽게 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 몇 해 지나지 않아 가톨릭 신자들은 자기 말로 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1965년의 「계시 헌장」은 성경과 전통, 가톨릭 교회의 말로 ‘성전(聖傳)’이 함께 하나님이 교회에 맡기신 하나의 계시를 전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을 권위 있게 풀이하는 일은 교회의 가르치는 직무인 교도권만이 할 수 있지만, 교도권은 하나님 말씀의 주인이 아니라 그 말씀의 종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 또 모든 신자가 성경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원어에서 바로 옮긴 좋은 번역을 마련하되, 할 수 있으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만들라고 권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977년 가톨릭과 개신교 학자들이 함께 옮긴 『공동번역 성서』가 나왔습니다.

1964년의 「교회 헌장」은 교회를 무엇보다 ‘하느님의 백성’으로 그렸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하나님을 하느님이라 부릅니다. 헌장은 교회의 위계보다 세례받은 모든 신자가 함께 이루는 백성을 먼저 말하고, 모든 신자가 거룩함으로 부름받았다고 했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교회는 교황과 그와 하나 된 주교들이 이끄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속한다’고 가르치면서도, 그 보이는 울타리 밖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은사와 참된 것이 많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같은 해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은 분열의 책임이 어느 한쪽에만 있지 않았다고 인정했습니다. 오늘 다른 교회에서 자라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옛 갈라짐의 책임을 질 사람이 아니며,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세례를 받은 그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이니 가톨릭 신자들이 형제로 맞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개신교인과 정교인은 이제 ‘갈라진 형제들’이 되었고, 일치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일이 권해졌습니다. 공의회가 끝나기 하루 전, 바오로 6세와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는 1054년의 파문을 함께 거두었습니다 (수도원, 선교, 동서 교회의 분열).

해방신학

라틴아메리카는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인 대륙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극심한 가난과 독재 아래 살았습니다. 1968년 콜롬비아 메데인에 모인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는 공의회의 정신을 그 땅에 적용하며 가난을 낳는 불의한 구조를 죄의 문제로 다루었습니다. 페루의 사제 구스타보 구티에레스(1928–2024)는 1971년 『해방신학』을 펴냈습니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해방신학. 그에게 신학은 먼저 가난한 이들 곁에서 살고 일한 다음, 그 삶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가져가 되짚어 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억눌린 이들 편에 서신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생각은 뒤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가 거듭 읽은 본문은 출애굽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의 고난을 분명히 보았고 또 그들이 그들의 작업 감독들로 인하여 부르짖는 것을 들었나니 내가 그들의 고통을 아노라. 내가 그들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고

출 3:7-8

구티에레스는 해방을 세 겹으로 말했습니다. 사회와 경제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 사람이 자기 역사를 책임 있게 짊어지는 것, 그리고 모든 불의의 뿌리인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이웃과 사귀는 것입니다. 1984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 분석을 비판 없이 빌려 오고 구원을 정치적 해방으로 좁힐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르네 파디야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복음주의자들은 이 물음을 피하지 않고 전도와 정의를 함께 붙드는 ‘통합적 선교’를 말했습니다. 매튜 헨리도 이 본문에서 "하나님은 고난받는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구티에레스 자신도 죄에서의 해방을 가장 깊은 것으로 말했지만,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먼저 가난한 이들의 투쟁이라는 틀로 읽을 때 복음이 사회적 해방으로 줄어들 위험을 보았습니다. 출애굽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죄에서의 구속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매튜 헨리는 같은 곳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영적인 이집트에서 건져 내시는 사람들을 그분은 하늘의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라고 맺습니다 매튜 헨리.

공동 선언과 남은 차이

높은 시계탑 곁에 큰 시청 건물이 서 있고, 앞 광장에 마차들이 오가는 아우크스부르크의 컬러 사진입니다.
포토글로브사, 〈아우크스부르크의 시장 광장과 시청〉, 1890–1900년 무렵 · 출처

1999년 10월 31일 루터교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에 서명했습니다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가톨릭 교회는 칭의를 ‘의화’라고 부릅니다. 두 교회는 우리가 무슨 공로를 쌓아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며, 하나님이 성령을 주셔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고 선한 일을 하게 하신다고 함께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언에 담긴 상대편의 가르침에는 16세기의 서로에 대한 정죄가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가톨릭 개혁과 영국의 종교개혁 과 참고). 그러나 선언 스스로 교회와 권위, 직제와 성례에 관한 물음이 남아 있다고 밝혔고, 독일의 많은 개신교 신학 교수들은 차이가 가려졌다며 반대 성명을 냈습니다. 그 뒤 감리교회, 성공회, 개혁교회의 세계 연합체들도 이 선언에 뜻을 같이했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이 이 시대에서 반길 것은 적지 않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자기 말로 예배하고 성경을 손에 들게 된 것,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이 분열의 책임을 함께 고백하고 서로를 그리스도 안의 형제로 부르며 함께 기도하게 된 것은 종교개혁자들도 바라던 일입니다. 그러나 차이도 분명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교도권이 성경과 성전을 권위 있게 해석한다고 가르치지만, 복음주의자는 성경만을 모든 가르침의 최종 판단자로 삼습니다. 미사를 십자가의 제사가 피 흘림 없이 현재화되는 것으로 보는 이해와 화체설,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1854)와 몸과 영혼의 승천(1950)을 믿어야 할 교리로 정한 가르침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삼십 년의 물음은 이런 것들입니다. 일치란 하나의 보이는 교회인가, 다름을 인정하는 화해인가, 진리 안의 사귐과 협력인가? 남반구에서 크게 자란 오순절 교회와 복음주의 교회들은 이 대화에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 2013년 부산에서 열린 협의회의 제10차 총회를 두고 한국 교회의 찬반이 갈린 것도 이 물음들과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니케아 신경으로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니케아 신경. 그 일치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신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진리와 사랑 안에서 힘써 지킵니다. 진리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같은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이들과 함께 기도하고 섬기는 것이 주님의 기도 앞에 선 우리의 몫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는 교리 과정의 교회란 무엇인가 과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는 가톨릭과 개신교는 무엇이 다른가?에서, 여러 교단의 차이는 교단마다 무엇이 다른가?에서 더 다룹니다.

연습

  1. 연습 1 / 8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2. 연습 2 / 8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는 자신을 어떻게 규정했습니까?

  3. 연습 3 / 8

    많은 복음주의자가 세계교회협의회 앞에서 망설인 까닭으로 이 과가 든 것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8

    크리소스토무스는 요한복음 17:21을 풀며 믿는 이들의 일치를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5. 연습 5 / 8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서와 그 가르침을 바르게 짝지은 것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8

    구티에레스가 말한 해방의 세 겹 가운데 모든 불의의 뿌리와 관련된 것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1999년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에서 루터교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가 함께 고백한 것은 무엇입니까?

  8. 연습 8 / 8

    다음 사건들을 일어난 순서대로 바르게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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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세계선교대회,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 보고서 1910 — 세계 선교를 위한 협력을 논의하여 에큐메니컬 운동의 출발점이 된 대회의 보고서. 대표의 대부분은 서구 교회에서 왔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이는 손에 꼽을 만큼이었다. 인도의 V. S. 아자리아는 선교사들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호소했다.
  2. 세계교회협의회, 세계교회협의회 헌장의 기초 1948 —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사귐이라는 협의회의 기초. 1948년 암스테르담의 첫 총회는 전쟁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고 선언했다.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 1963 — 미사를 비롯한 전례를 각 나라 말로 드릴 수 있게 한 가톨릭 교회의 문헌.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하느님의 말씀) 1965 — 성경과 성전(聖傳)이 하나의 계시를 이루며 교도권이 이를 해석한다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10항). 성경을 읽을 때 저자의 의도와 문학 양식, 성경 전체의 통일성을 살피라고 한다(12항).
  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8; chs. 2, 5 (1964) —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말하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톨릭 교회 안에 존속한다고 하며, 모든 신자가 거룩함으로 부름받았다고 가르친 가톨릭 교회의 문헌.
  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3 (1964) — 교회의 분열에 양편 모두의 책임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갈라진 형제들을 존중하며 일치를 구한다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7.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해방신학 1971 — 가난한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우선적 선택에서 신학을 시작한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대표작.
  8. 루터교 세계연맹·가톨릭교회,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1999 — 칭의에 대한 기본 진리에 함께 동의한 문서로, 1999년 10월 31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서명되었다. 우리가 쌓은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이루신 일을 믿을 때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고 함께 고백하고, 여기 설명된 가르침에는 16세기에 서로 내린 정죄가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며, 남은 차이도 밝힌다. 세계감리교협의회가 2006년에, 세계개혁교회커뮤니언이 2017년에 이 선언에 함께했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에 서서, 각 전통과 신학자를 먼저 그들 자신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한 뒤 성경에 비추어 살핍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