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와 세계 선교
20세기 중엽 근본주의 안에서 자란 젊은 세대는 성경의 권위와 복음을 그대로 붙들면서도 학문과 사회를 등지지 않는 복음주의를 일구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대회와 1974년 로잔 대회를 거치며 이 운동은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백했고, 그사이 세계 기독교의 중심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로 옮겨 갔습니다.
근본주의 다음 세대
1920년대의 논쟁 뒤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의 권위와 복음의 역사적 사실을 지켜 냈지만, 많은 이가 주류 교단과 대학과 공적 생활에서 물러나 자기들의 학교와 교회 안에 머물렀습니다 (이 과정의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과). 1940년대에 그 안에서 자란 젊은 세대가 물었습니다. 복음을 조금도 내려놓지 않으면서 세상을 등지지 않을 길은 없는가?
이 물음을 가장 날카롭게 던진 이는 신학자 칼 F. H. 헨리(1913–2003)였습니다. 그는 1947년의 작은 책 『현대 근본주의의 불편한 양심』에서, 근본주의가 침략 전쟁과 인종 차별과 노동 착취 같은 시대의 악 앞에서 침묵해 왔다고 꼬집었습니다 칼 헨리, 현대 근본주의의 불편한 양심. 그렇다고 사회 복음처럼 복음을 사회 개혁으로 바꾸자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복음이야말로 세상의 문제에 대한 답이니, 그 복음을 믿는 이들이 세상의 문제 한가운데서 그 답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스턴 파크 스트리트 교회의 목사 해럴드 오켕가(1905–1985)는 1942년 여러 교파의 복음주의자들이 함께 세운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의 첫 회장이 되었습니다. 1947년에는 라디오 전도자 찰스 풀러와 함께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풀러 신학교를 세워 초대 총장을 맡았고, 헨리도 첫 교수진에 들었습니다. 오켕가는 이 흐름을 ‘새 복음주의’라고 불렀습니다. 1956년에는 빌리 그레이엄이 앞장서 잡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를 창간했고, 헨리가 첫 편집장이 되어 복음주의의 생각을 목회자들에게 전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과 영국의 목소리들
노스캐롤라이나의 농장에서 자란 빌리 그레이엄(1918–2018)은 1934년 한 순회 전도자의 집회에서 그리스도께 돌아섰고, 남침례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1949년 가을 3주로 예정되었던 로스앤젤레스의 천막 집회가 8주 동안 이어지며 신문에 크게 실리자, 그는 온 나라에 알려진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뒤 반세기 넘게 그는 런던과 뉴욕을 비롯한 세계 여러 도시의 경기장에서 설교했습니다. 그는 ‘성경은 말합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죄와 십자가와 회개를 쉬운 말로 전하고,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께 나오라고 초청했습니다. 1950년대부터는 흑인과 백인의 자리를 갈라놓는 집회를 거부했습니다. 1973년 서울 여의도 광장의 전도 대회에는 마지막 날 백만 명이 넘게 모였다고 전해지며, 김장환 목사가 그의 설교를 통역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옥스퍼드의 영문학자 C. S. 루이스(1898–1963)가 제2차 세계 대전 중 BBC 라디오에서 기독교를 설명했습니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의 방송 강연은 뒤에 『순전한 기독교』(1952)로 묶였습니다. 그는 거의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함께 믿어 온 신앙을 변호하면서, 예수를 그저 위대한 도덕 선생으로 여기는 길은 열려 있지 않다고 논증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한 이는 참으로 주님이시거나, 그렇지 않다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거나 그보다 더 나쁜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성공회 평신도였던 그는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 부르지 않았지만, 수많은 복음주의자가 그의 책에서 믿음의 이유를 배웠습니다.
웨일스 사람 마틴 로이드존스(1899–1981)는 왕의 주치의 밑에서 일하던 촉망받는 의사였으나 설교자가 되었고, 런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30년 가까이 로마서와 에베소서를 한 절씩 풀어 설교했습니다. 성공회 신학자 J. I. 패커(1926–2020)는 그와 함께 청교도 연구 모임을 이끌며 청교도의 책들을 다시 읽게 했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1973)으로 널리 읽혔습니다. 런던 올 소울즈 교회의 존 스토트(1921–2011)는 성경 강해와 대학생 사역, 『그리스도의 십자가』(1986) 같은 책으로 영국 밖의 교회들에도 깊은 자국을 남겼습니다.
성경의 권위와 대위임령
복음주의는 한 교파가 아니라 몇 가지 확신을 함께 나누는 이들의 운동입니다. 영국의 역사가 데이비드 베빙턴은 그 특징을 넷으로 간추렸습니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받는 것,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복음의 중심에 두는 것, 사람은 회개하고 믿어 거듭나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복음을 부지런히 전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첫째 확신의 근거는 바울의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그러나 1960–70년대에는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성경은 믿음과 행위에 관한 가르침에서만 오류가 없는가, 아니면 그 모든 말에서 그러한가를 두고 논쟁이 일었습니다. 1978년 10월 시카고에 모인 학자와 목회자 수백 명은 「성경 무오에 관한 시카고 선언」을 내놓았습니다 시카고 선언. 열아홉 조항의 긍정과 부정으로 된 이 선언은 성경이 원본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에 오류가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기록자들의 문체와 비유와 어림수를 인정하고 본문을 그 장르에 따라 읽으라고 했습니다. 서명한 이들 가운데는 헨리와 패커도 있었습니다. 이 고백을 여러 전통이 어떻게 보는지는 교리 과정의 성경의 영감과 권위 과에서 다룹니다.
복음주의자들을 세계로 보낸 말씀은 대위임령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게 주어졌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마 28:18-20
매튜 헨리는 이 대목에서 "그들이 전파할 구원은 공통의 구원입니다"라고 주해합니다 매튜 헨리. 19세기 선교 운동이 이 말씀에서 시작되었듯이 (19세기 복음주의와 선교, 그리고 한국 과), 20세기 복음주의자들도 이 말씀을 들고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갔습니다.
로잔 1974: 전도와 사회적 책임
1974년 7월 그레이엄의 부름으로 스위스 로잔에서 세계복음화국제대회가 열렸습니다. 150여 나라에서 2천 명이 넘는 지도자가 모였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이도 많았습니다. 그 무렵 에큐메니컬 운동 안에서 선교를 주로 사회 정의와 인간다운 삶을 이루는 일로 보는 목소리가 커지자, 많은 복음주의자는 전도가 밀려날까 염려했습니다 (에큐메니컬 운동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과). 거꾸로 라틴 아메리카의 르네 파디야와 사무엘 에스코바르는 대회 강연에서, 복음을 영혼 구원만의 일로 좁히고 가난과 불의를 외면하는 것도 복음을 일그러뜨린다고 호소했습니다.
스토트가 이끈 위원회가 다듬은 로잔 언약은 이 두 염려를 함께 붙들었습니다 로잔 언약. 언약은 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가 모두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고백하고, 둘을 서로 배타적인 것처럼 여겨 온 것을 뉘우쳤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의 여러 섬김 가운데 전도를 으뜸으로 두었습니다. 또 선교가 때로 복음과 함께 낯선 문화를 실어 보냈다고 인정하고, 여러 나라 교회가 동반자로 함께 일하기를 바랐습니다.
선지자 미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의롭게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미 6:8). 매튜 헨리는 이 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선은 죄의 용서와 하나님께 받아들여짐을 위해 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에 대한 사랑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의롭게 행함과 긍휼은 구원을 사는 값이 아니라 구원받은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남쪽으로 옮겨 간 중심
1900년에는 세계 그리스도인의 대부분이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 세기 동안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교회가 크게 자라고 유럽에서는 교회를 떠나는 이가 늘면서, 많은 학자는 20세기가 끝날 무렵 이 세 대륙의 그리스도인이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그리스도인보다 많아졌다고 봅니다. 아프리카의 독립 교회들,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빠르게 자란 오순절 교회들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 과), 어려움 속에서 자란 중국의 교회, 세계 곳곳에 선교사를 보내는 한국 교회가 그 얼굴입니다 (한국 교회의 20세기 과). 로잔 운동도 1989년 마닐라와 2010년 케이프타운을 거쳐 2024년에는 한국 인천에서 네 번째 대회를 열었습니다. 이 변화가 묻는 것은 기독교는 서양 종교인가?에서 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울에 달아 보면
이 운동의 선물은 분명합니다. 근본주의가 지킨 복음과 성경의 권위를 그대로 지니고 학문과 사회 앞에 다시 섰고, 교파를 넘어 함께 복음을 전했으며, 전도와 사랑의 섬김을 함께 붙들도록 서로를 일깨웠습니다. 남쪽 세계의 목소리가 그 대화에 들어온 것도 이 운동 안에서였습니다.
물음도 여러 쪽에서 나왔습니다. 분리를 지킨 근본주의자들은 그레이엄이 1957년 뉴욕 집회처럼 자유주의 교회들과 손잡은 것을 복음의 경계를 흐리는 타협으로 보았고, 새 복음주의자들은 어디서든 복음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전했다고 답했습니다. 영국에서는 1966년 로이드존스가 복음주의자들에게 교리가 뒤섞인 교단을 떠나 함께 모이자고 호소했고, 그 자리를 이끌던 성공회의 스토트는 교단 안에 남아 증언하자며 공개적으로 반대했습니다. 무오라는 말을 어떻게 쓸지,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관계를 어떻게 말할지를 두고서도 신실한 복음주의자들은 오늘까지 의견이 갈립니다.
오늘의 지도
지난 30여 년의 물음을 짧게 그려 보면 이렇습니다. 영어권의 젊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청교도와 에드워즈와 스펄전을 다시 읽는 개혁주의의 부흥이 일었고,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설교와 교회 생활을 어떻게 빚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1977년 E. P. 샌더스의 연구 뒤 일어난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은 1세기 유대교가 어떤 종교였는지, 바울이 말한 ‘율법의 행위’와 칭의가 이방인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이는 일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묻습니다. 예일의 한스 프라이와 조지 린드벡에게서 나온 후기 자유주의 신학은 근대 이성의 틀을 거치지 않고 교회가 성경의 이야기 안에서 그 말을 배우고 사는 길을 묻습니다. 그리고 남쪽 세계의 오순절과 은사주의 교회들은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오늘 교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묻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단순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십자가의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며, 그 복음이 낳는 공의와 긍휼로 이웃을 섬기는 일입니다.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하신 약속은 (행 1:8) 이제 서울과 라고스와 상파울루의 교회들이 함께 지고 가는 부름이 되었습니다.
연습
- 연습 1 / 7
칼 헨리가 1947년 『현대 근본주의의 불편한 양심』에서 촉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7
1947년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풀러 신학교를 세운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
- 연습 3 / 7
C. S. 루이스가 BBC 방송 강연을 묶은 『순전한 기독교』에서 논증한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7
1978년의 「성경 무오에 관한 시카고 선언」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7
1974년 로잔 언약이 전도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백한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7
20세기 세계 기독교의 변화에 대해 많은 학자가 보는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7
1966년 영국 복음주의자들의 모임에서 드러난 로이드존스와 스토트의 생각을 바르게 말한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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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출처
- 칼 F. H. 헨리, 현대 근본주의의 불편한 양심 1947 — 근본주의가 사회 문제를 외면했다고 비판하며 복음주의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한 책.
-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2.3 — 예수에 대한 선택: 그런 말을 한 이가 사람일 뿐이라면 미치광이이거나 더 나쁜 자이니,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거나 아니면 미치광이이거나 더 나쁜 자다(뒤에 ‘거짓말쟁이, 미치광이, 주님’으로 요약되었다).
- 국제 성경 무오 협의회, 성경 무오에 관한 시카고 선언 1978 — 성경이 원본에서 모든 가르침에 오류가 없다는 복음주의자들의 선언.
- 로잔 세계복음화국제대회, 로잔 언약 1974 — 1974년. 전도의 우선성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백한 복음주의 선언. 3항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자연에서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에 서서, 각 전통과 신학자를 먼저 그들 자신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한 뒤 성경에 비추어 살핍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