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근본주의
20세기 초 미국과 영국의 개신교회는 현대 세계 앞에서 깊이 갈라졌습니다. 자유주의 개신교는 기독교를 예수의 삶과 윤리로, 하나님 나라를 정의로운 사회로 보며 도시의 가난한 이들을 품으려 했고, 근본주의는 성경의 권위와 복음의 역사적 사실을 지키려 했습니다. 메이첸은 자유주의가 기독교의 다른 형태가 아니라 다른 종교라고 논증했습니다.
새 세기의 물음과 사회 복음
1900년 무렵 미국과 영국의 교회는 낯선 세상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공장을 따라 도시가 부풀었고, 유럽과 시골에서 몰려든 노동자 가족들은 비좁은 셋집에 살며 적은 품삯에 긴 시간을 일했습니다. 대학에서는 다윈의 진화론과 독일에서 건너온 역사 비평이 성경을 읽는 방식을 바꾸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 뿌리인 19세기의 신학은 이 과정의 계몽주의와 근대 신학 과에서 보았습니다. 교회는 물었습니다. 현대인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옛 믿음을 새로 풀어야 하는가, 아니면 무엇보다 받은 믿음을 그대로 지켜야 하는가?
첫째 길을 걸은 이들을 흔히 자유주의자 또는 현대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리츨과 하르낙처럼 기독교의 중심을 교리보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 곧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에서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밖에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 안에서 일하시는 분이니, 과학이 밝혀내는 것과 신앙이 다툴 까닭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지성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정직한 학문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보여 주려 했습니다.
이 흐름이 맺은 가장 따뜻한 열매는 사회 복음 운동이었습니다. 월터 라우셴부시(1861–1918)는 독일에서 건너와 로체스터 신학교에서 가르친 침례교 학자의 아들이었습니다. 1886년 그는 뉴욕 맨해튼 서쪽, ‘헬스 키친’(지옥의 부엌)이라 불리던 빈민가 곁의 작은 독일계 침례교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영혼을 구원하는 설교를 하러 갔지만, 일자리를 잃은 가장들을 만나고 가난 속에 죽어 간 아이들의 장례를 치르며, 사람들의 삶을 짓누르는 사회의 형편도 복음이 다루어야 할 문제임을 깨달았다고 회고합니다. 11년 뒤 로체스터 신학교의 교수가 된 그는 1907년 『기독교와 사회 위기』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1917년 예일 대학의 강연을 묶은 『사회 복음을 위한 신학』은 이 운동의 신학을 정리한 책입니다 라우셴부시, 사회 복음을 위한 신학. 그는 죄가 한 사람의 마음에만 있지 않고, 탐욕과 착취가 제도와 관습 속에 쌓여 대를 이어 전해지며 ‘악의 나라’를 이룬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개인의 회심에서 멈추지 말고 사회의 질서에까지 미쳐야 하며, 하나님 나라는 인류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짜인 사회, 곧 정의와 사랑이 다스리는 사회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종교적 편협과 부패한 권력과 군중의 광기 같은 사회의 죄였다고 그는 썼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회 복음이 옛 구원의 소식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넓히고 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라우셴부시는 정의를 외친 구약의 선지자들과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 출발했습니다.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0). 그와 뜻을 같이한 목사들은 어린이 노동을 막고 노동 시간을 줄이고 정당한 임금을 받게 하는 일에 힘을 보탰습니다. 그 자신은 1910년 기도문집을 펴낼 만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1918년, 그가 태어난 나라와 아버지의 나라는 서로 전쟁 중이었습니다.
『근본적인 것들』
다른 이들은 바로 그 옛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1910년부터 1915년까지 열두 권의 작은 책으로 나온 『근본적인 것들』이 그들의 대답이었습니다 딕슨·토리 엮음, 근본적인 것들. 캘리포니아의 석유 사업가 라이먼 스튜어트와 그의 형제 밀턴이 비용을 대고 A. C. 딕슨과 R. A. 토리 등이 엮었으며, 영어권 곳곳의 목사와 선교사와 신학생에게 모두 300만 부 가량이 무료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아흔 편의 글은 성경의 영감과 권위,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신성, 우리 대신 죽으신 속죄, 몸의 부활과 재림을 변호하고 고등 비평의 결론을 반박했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글쓴이 가운데는 프린스턴의 B. B. 워필드와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제임스 오르 같은 학자들도 있었고, 많은 역사가는 그 어조가 대체로 차분했다고 평가합니다.
‘근본주의자’라는 이름은 1920년에 생겼습니다. 한 침례교 주간지의 편집인 커티스 리 로스가 이 근본적인 진리들을 위해 싸울 각오가 된 이들을 그렇게 부르자고 했고, 많은 보수적 신자가 이 이름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근본주의는 한 교파가 아니라 여러 교파에 걸친 운동이었고, 그 안의 많은 이는 세대주의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영국에서는 다툼이 덜 격렬했지만, 1910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기독학생회가 학생기독교운동이 복음의 중심에서 멀어졌다며 갈라섰습니다.
1922년 5월 뉴욕 제일장로교회의 강단에서 침례교 목사 해리 에머슨 포스딕은 ‘근본주의자들이 이길 것인가?’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교회가 너그러워야 하며, 동정녀 탄생이나 성경의 무오를 믿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에게도 교회 안에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미국 북장로교 총회는 이미 1910년 성경의 무오와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대속, 몸의 부활, 그리스도의 기적이 사실임을 꼭 필요한 교리로 선언한 바 있었습니다. 1924년에는 천 명이 넘는 북장로교 목사가 ‘오번 선언’에 서명해, 교회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총회가 이 다섯 가지 진술을 목사의 시금석으로 삼을 수는 없으며 같은 사실을 서로 다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메이첸: 다른 복음은 없다
이 논쟁에서 가장 깊은 목소리를 낸 사람은 프린스턴 신학교의 신약학자 J. 그레셤 메이첸(1881–1937)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독일에서 공부할 때 그는 자유주의 신학자 빌헬름 헤르만의 뜨거운 경건에 깊이 끌렸고, 한동안 신앙의 의심과 씨름했습니다. 그는 자유주의의 가장 좋은 모습을 안에서 알았던 사람입니다. 1923년의 『기독교와 자유주의』에서 그는 자유주의가 기독교의 말을 그대로 쓰면서도 그 말에 다른 뜻을 담으므로, 기독교의 한 형태가 아니라 아예 다른 종교라고 논증했습니다 메이첸, 기독교와 자유주의.
그는 바울에게 기대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를 흔든 교사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지만 구원에 율법의 행위를 덧붙였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그것은 또 다른 참 복음이 아니며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 하는 자들이 더러 있도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한 것 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6-9
메이첸은 바울이 이토록 엄하게 말한 것은 복음이 사람이 할 일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의 소식이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바울이 전한 것은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라는 소식이었습니다 (고전 15:3-4).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것은 역사이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셨다는 것은 그 역사에 하나님이 주신 뜻을 밝히는 교리이며,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유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할 일을 명령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일을 알리는 승리의 소식으로 시작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웨슬리도 갈라디아의 거짓 교사들이 전한 것을 두고 "기쁜 소식이 아니라 무거운 소식이니,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일을 수행할 수 없는 조건 위에 놓기 때문입니다"라고 풀었습니다 웨슬리. 매튜 헨리는 고린도전서의 이 대목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교리는 기독교의 기초입니다. 이것을 제거하면 영원에 대한 우리의 모든 소망이 단번에 무너집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메이첸은 이 소식을 전하는 성경을 사람의 종교 경험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는 앞선 프린스턴의 신학자들처럼 바울이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라고 한 말씀에 (딤후 3:16) 기대어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가르침은 교리 과정의 성경의 영감과 권위 과와 개혁주의 신앙 과정의 오직 성경 과에서 다룹니다.
그러나 메이첸 자신은 ‘근본주의자’라는 이름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대주의자가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르는 장로교인이었고, 교회가 학문에서 물러나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 사이 1925년 테네시주 데이턴에서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친 교사 존 스콥스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재판을 전한 신문들이 근본주의자들을 배움을 두려워하는 시골 사람들로 그리면서 그 모습이 오래 굳어졌습니다.
1929년 북장로교 총회는 프린스턴 신학교의 이사회를 새로 짜서 학교가 교단 안의 여러 견해를 함께 품게 했습니다. 메이첸과 몇몇 동료 교수는 이를 옛 프린스턴 신앙과의 결별로 보고, 같은 해 가을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변증학자 코넬리우스 반 틸도 그 초기 교수진에 있었습니다. 메이첸은 자기가 앞장서 세운 독립 선교부에서 물러나라는 교단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징계를 받았고, 1936년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새 장로교회(뒤의 정통장로교회)를 세웠으며, 이듬해 1월 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경으로 달아 보기
자유주의와 사회 복음이 붙든 것 가운데에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를 돌보는 일은 현대의 발명이 아니라 성경의 마음입니다. 요한은 "누가 이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동정하는 마음을 닫아 그를 피하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겠느냐"라고 묻습니다 (요일 3:17). 라우셴부시는 죄가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제도와 관습 속에도 뿌리내린다는 것을 보았고, 자유주의자들은 어려운 질문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은 그 대가가 너무 컸다고 보았습니다. 복음이 하나님이 하신 일의 소식에서 우리가 할 일의 윤리로 바뀌었고, 많은 이에게 동정녀 탄생과 대속과 부활은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인 것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점점 나아져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리라는 낙관은 1914년에 시작된 전쟁 앞에서 무너졌고, 그 이야기는 다음 바르트와 신정통주의 과로 이어집니다.
근본주의자들은 복음의 역사적 사실과 성경의 권위를 바르게 지켰습니다. 그들이 세운 성경 학교와 선교 단체와 라디오 방송은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이끌고 다음 세대에 그 신앙을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싸움이 길어지면서 그들의 세계는 좁아졌습니다. 신앙에서 멀어졌다고 본 교단을 떠날 뿐 아니라 그 교단에 남은 신자들과도 사귐을 끊는 분리주의가 퍼졌고, 그들끼리도 거듭 갈라져 메이첸이 세운 새 교회조차 이듬해 다시 나뉘었습니다. 사회 복음에 대한 반발로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까지 의심하는 이들이 생겼고, 많은 이가 학문과 문화에서 물러났습니다.
1940년 이후 젊은 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의 신앙 고백은 이으면서도 이 좁아짐에서 벗어나려 했고, 그 이야기는 복음주의와 세계 선교 과에서 이어집니다. 같은 물음은 한국 장로교회에도 건너왔습니다 (한국 교회의 20세기).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복음과 가난한 이웃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복음은 먼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일의 소식이고, 그 소식을 받는 믿음은 "오직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입니다 (갈 5:6). 복음의 사실을 지키는 일과 궁핍한 형제를 돌보는 일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습니다. 오늘 ‘근본주의’라는 말은 흔히 여러 종교의 과격한 운동까지 가리키지만, 본래는 복음의 근본을 지키려 한 개신교인들이 스스로 택한 이름이었습니다.
연습
- 연습 1 / 8
라우셴부시는 『사회 복음을 위한 신학』(1917)에서 하나님 나라를 무엇이라고 보았습니까?
- 연습 2 / 8
라우셴부시를 사회 복음으로 이끈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 연습 3 / 8
『근본적인 것들』(1910–1915)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8
‘근본주의자’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 연습 5 / 8
메이첸은 『기독교와 자유주의』(1923)에서 무엇을 논증했습니까?
- 연습 6 / 8
메이첸이 다른 복음은 없다고 말하며 기댄 바울의 말씀은 어디에 있습니까?
- 연습 7 / 8
1929년에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 연습 8 / 8
이 과의 평가에 맞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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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출처
- A. C. 딕슨·R. A. 토리 엮음, 근본적인 것들 1910–1915 — 성경의 권위, 동정녀 탄생, 대속, 부활, 재림을 변호한 아흔 편의 글 모음.
- J. 그레셤 메이첸, 기독교와 자유주의 1923 — 자유주의는 기독교의 다른 형태가 아니라 다른 종교라고 논증한 책.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에 서서, 각 전통과 신학자를 먼저 그들 자신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한 뒤 성경에 비추어 살핍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