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족 2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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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확신

구원받았다는 확신은 그날그날의 느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과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 위에 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언하시며, 의심이 찾아와도 믿음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폭풍이 지나간 새벽, 거대한 파도 사이에서 몇 사람이 부서진 돛대에 매달려 있고, 그 위로 햇빛이 구름을 뚫고 바다를 비춘다.
이반 아이바좁스키, 〈아홉 번째 파도〉, 1850년 · 출처

알 수 있는 구원

예수를 믿게 된 지 얼마 안 되어 많은 사람이 내가 정말 구원받았는지 묻습니다. 어떤 날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아무 느낌이 없고 지은 죄만 떠오릅니다. 구원은 죄와 죽음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가 어디서나 함께 고백하는 대답은 이것입니다. 구원은 날마다 달라지는 느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일에 달려 있고, 그 일을 알려 주는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합니다. 예수께서 세워 보내신 증인, 곧 사도인 요한은 편지를 쓴 까닭을 이렇게 밝힙니다.

또 그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이니라 …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1-13

영생은 죽은 뒤에야 시작되는 생명이 아니라, 아들을 믿는 사람이 지금 이미 누리기 시작한 하나님과의 생명입니다. 요한은 그것을 짐작하라고 하지 않고 알게 하려고 썼습니다.

예수께서도 자기 양들에 대해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 10:28). 4–5세기의 교회 지도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말씀을 두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안전을 확신하십니다"라고 씁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바울도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고 (롬 8:38-39),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빌 1:6).

확신은 어디에 기댑니까

16세기 종교개혁, 곧 성경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려던 운동에서 칼뱅 같은 이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교회들을 개혁교회라고 부릅니다. 장로교회가 잘 알려져 있지만 유럽 대륙의 개혁교회도 있고, 침례교회 가운데에도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개혁파 침례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들의 신앙고백, 곧 믿는 바를 글로 정리한 고백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6)은 구원의 확신이 기대는 곳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 확실성은 … 구원의 약속들의 신적 진리와, 그 약속들이 주어진 은혜들의 내적 증거와,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는 양자 삼으시는 영의 증거에 근거한 믿음의 무오한 확신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 2항

‘무오한’은 틀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첫째 근거는 약속입니다. 확신은 무엇보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라는 말씀처럼 (요일 5:12)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약속 위에 섭니다. 개혁파 침례교회가 받는 제2차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1689)은 이 자리에 ‘복음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피와 의’를 둡니다 18장 2항.

둘째 근거는 성령, 곧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한 분 하나님이신 분의 증언입니다.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느니라. 그분을 힘입어 우리가,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느니라.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롬 8:15-16

양자는 남의 아이를 자기 자녀로 맞아들이는 것이고, ‘아바’는 예수께서 하나님을 부르실 때 쓰신 아람어로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를 자녀로 맞아들이셨고, 성령께서는 우리가 두려움 대신 아버지를 부르며 그분께 기대게 하심으로 그것을 증언하십니다. 도르트 신경(1619)도 이 확신이 말씀과 상관없는 특별한 계시가 아니라 약속을 믿는 믿음과 성령의 증거와 선한 양심을 지키려는 소원에서 생겨난다고 가르칩니다 도르트 신경 다섯째 교리 10항.

셋째 근거는 ‘은혜들’, 곧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맺으시는 새 생명의 열매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하고 (요일 3:14), 계명을 지키는 것도 그 표로 듭니다 (요일 2:3). 그래서 성경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고 하고 (고후 13:5), "더욱 열심을 내어 너희를 부르신 것과 선택하신 것을 확고히 하라"고 권합니다 (벧후 1:10). 부르신 것과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일입니다. 내 점수를 매기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일하신 흔적을 살펴보라는 초대입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확신은 먼저 그리스도와 그분의 약속에, 그다음에 성령의 증언과 열매에 기대며, 내 느낌이나 내가 얼마나 잘했는지에 기대지 않습니다. 묻고 답하며 신앙을 가르치는 요리문답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도 내가 신실하신 구주, 곧 나를 구원하시는 주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고백한 다음에야 ‘그러므로 그분은 그분의 성령으로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라고 이어 갑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문.

흔들릴 때

창을 든 거대한 거인이 바위 곁 들판에서 잠에서 깬 두 순례자에게 손을 뻗습니다.
리처드 헨리 브록, 〈거인 절망에게 붙잡힌 크리스천과 소망〉, 『천로역정』(1924년판)에서 · 출처

확신이 흔들린다고 믿음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확신이 믿음의 본질에 속하지 않아서, 참된 신자도 확신에 이르기까지 오래 기다리며 많은 어려움과 싸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18장 3항. 얻은 확신도 죄나 유혹으로 흔들릴 수 있지만, 믿음의 생명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으며 성령의 역사로 때가 되면 확신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위로합니다 4항.

시편의 시인은 낙망하는 자기 영혼에게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합니다 (시 42:5). 우리도 마가복음의 아버지처럼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막 9:24).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1678)에서 순례자 크리스천은 십자가 앞에 이르자 등에 진 무거운 짐이 풀려 굴러 떨어지는 것을 봅니다 천로역정. 그런 그도 나중에 절망 거인의 의심의 성에 갇히는데, 밤새 기도하다가 이렇게 외칩니다. "내 품에 약속이라는 열쇠가 있는데, 확신하건대 이것이 의심의 성의 어떤 자물쇠든 열 거예요" 천로역정. 열쇠는 처음부터 그의 품에 있었습니다. 의심 속에서 붙들 것도 새 느낌이 아니라 이미 받은 약속입니다.

교회들이 가르치는 확신

가톨릭 교회(천주교)는 누구도 하나님의 긍휼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의심해서는 안 되지만, 누구도 자기가 은혜, 곧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시는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오류 없는 믿음의 확실성으로 알 수는 없고, 특별한 계시 없이는 자기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도우심에 가장 굳은 소망을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제6회기 9장, 12–13장.

감리교회와 성결교회 같은 웨슬리 전통은 성령께서 믿는 사람에게 지금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주신다고 힘주어 가르칩니다. 18세기 잉글랜드의 설교자 존 웨슬리는 성령께서 "참된 믿는 자 각 사람의 영과 함께, 그 자신의 영의 증거나 선한 양심의 증거와는 구별되는 증거로 증거하십니다"라고 썼습니다 웨슬리. 마르틴 루터의 가르침을 따르는 루터교회는 의심이 들 때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기보다 말씀과 성례(그리스도께서 정하신 거룩한 예식)로 주어진 약속을 붙들라고 가르칩니다. 루터의 소교리문답은 세례, 곧 물로 씻어 그리스도와 교회에 속한 사람이라는 표를 주는 예식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것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을 준다고 가르칩니다 소교리문답.

참된 신자가 끝내 떨어져 나갈 수 있는지는 교회마다 다르게 가르칩니다. 웨슬리 전통과 루터교회, 가톨릭 교회와 동방의 오랜 교회인 정교회는 그리스도를 저버리면 그럴 수 있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는 회개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개혁교회는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을 끝까지 지키신다는 성도의 견인을 고백하고, 도르트 신경은 참된 신자가 자기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마침내 영생을 상속하리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고 또 얻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섯째 교리 9항. 이 차이는 개혁주의 과정과 교리 과정의 견인을 다룬 과, 구원은 잃을 수 있는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의심해도 괜찮은가?도 읽어 보십시오.

이번 주에 해 볼 것

두 단으로 쓰인 라틴어 본문 아래 여백에 요한일서 5:7의 한 구절이 따로 적혀 있는 9세기 필사본의 한 면.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 63번 사본〉, 요한일서 4–5장, 9세기 · 출처

요한일서를 한자리에서 끝까지 읽어 보십시오. 다섯 장의 짧은 편지입니다. 요한이 무엇을 ‘안다’고 하거나 ‘알게’ 하려고 쓴다고 말하는 곳마다 표시하고, 무엇으로 안다고 하는지 적어 보십시오.

약속의 말씀 한 구절을 적어 두십시오. 요한복음 10:28이나 요한일서 5:13을 종이에 적어 두고, 의심이 들 때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오.

의심을 혼자 품고 있지 마십시오. 목사님이나 믿음의 선배에게 이 과를 읽으며 생긴 물음을 이야기해 보십시오. 다음 과에서는 믿은 뒤에도 죄를 지을 때 어떻게 하는지 봅니다.

연습

  1. 연습 1 / 8

    요한일서 5:13에서 요한은 왜 이 편지를 썼다고 말합니까?

  2. 연습 2 / 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 2항은 구원의 확신이 무엇에 근거한다고 말합니까?

  3. 연습 3 / 8

    로마서 8:15-16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무엇을 하십니까?

  4. 연습 4 / 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확신은 ‘믿음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그 뜻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8

    큰 잘못을 저지른 뒤, 나는 처음부터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과가 권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8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의심의 성을 빠져나올 때 쓴 열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하나님의 긍휼은 누구도 의심해서는 안 되지만, 자기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오류 없는 믿음의 확실성으로 알 수는 없다고 가르치는 전통은 어디입니까?

  8. 연습 8 / 8

    성령께서 믿는 사람의 영에 직접 증언하셔서 지금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주신다고 힘주어 가르치면서, 참된 신자도 그리스도를 저버리면 떨어져 나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전통은 어디입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출처

  1. 존 버니언, 천로역정 1678 — 감옥에서 구상한 우의(寓意) 이야기. 순례자 크리스천이 멸망의 도시를 떠나 천성에 이르는 길을 그린다. 읽기
  2.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 칭의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 가르침.
  3. 존 웨슬리, 성경적 구원의 길 설교 43 / Sermon 43 (1765) — 선행 은총, 믿음으로 받는 칭의와 성화를 설명하는 설교. 구원은 앞서 오는 은총에서 시작하니, 흔히 양심이라 불리는 것,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모든 손길, 따르면 자라나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 세상에 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첫 소원과 처음 깨닫는 죄가 다 그 은총이라고 한다. 믿음은 칭의의, 또한 성화의 조건이요 유일한 조건이다. 읽기

성경과 교회의 신경, 개혁교회의 신앙고백(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 도르트 신경, 제2차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모든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믿음을 먼저 가르치고, 개혁교회의 고백으로 그 뜻을 밝히며, 다른 전통의 견해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