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와 부활 때
소요리문답 37문과 38문은 신자가 그리스도께 받는 유익을 죽을 때와 부활 때로 나눕니다. 죽을 때 영혼은 온전해져 곧바로 영광에 들어가고 몸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채 쉬며, 부활 때 신자는 공개적으로 인정받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합니다.
이번 주 문답
신자들은 죽을 때에 그리스도께로부터 어떤 유익을 받습니까? 신자들의 영혼은 죽을 때에 거룩함에서 온전하게 되어 곧바로 영광에 들어가며, 그들의 몸은 여전히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어서 부활 때까지 무덤에서 쉽니다.
37문
신자들은 부활 때에 그리스도께로부터 어떤 유익을 받습니까? 부활 때에 신자들은 영광 가운데 일으켜져서, 심판 날에 공개적으로 인정받고 무죄 선언을 받으며, 하나님을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함 가운데 완전히 복되게 됩니다.
38문
지난주의 36문이 이생에서 누리는 유익을 헤아렸다면, 이번 주의 두 문답은 죽음과 그 너머에서 받는 유익을 말합니다. 이 두 문답으로 믿을 것을 가르치는 첫 부분이 끝나고, 다음 주부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무를 배웁니다. 첫 부분이 어떻게 1문으로 돌아와 맺어지는지는 소요리문답 해설에 있습니다.
죽을 때: 곧바로, 그리고 여전히
37문은 먼저 영혼을 말합니다. 첫 증거 구절인 히브리서는 하늘에 모인 무리 가운데 이미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히 12:23). 평생 씨름하던 죄가 죽음과 함께 끝나고, 신자는 거룩함에서 온전해진 채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 일은 ‘곧바로’ 일어납니다. 바울은 삶과 죽음 사이에 끼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좋다고 썼습니다 (빌 1:23). 십자가의 강도가 들은 약속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 23:43).
몸에 대한 말은 더 놀랍습니다. 무덤의 몸도 여전히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죽은 이들을 이렇게 부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살전 4:14
죽은 신자는 예수 밖으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잠들었습니다. 대요리문답은 그 몸이 ‘침상에서처럼 무덤에서 쉬다가’ 마지막 날에 다시 영혼과 연합한다고 말합니다 대요리문답 86문. 그래서 흙을 덮는 일은 몸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부활의 아침까지 주님께 맡기는 일입니다. 베드퍼드의 설교자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에서, 죽음의 강을 건너던 크리스천이 두려움에 가라앉을 때 곁의 소망이 말합니다. "형제여, 안심해요. 바닥이 닿아요. 단단한 바닥이에요." 천로역정 사랑하는 이를 보낸 슬픔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슬픔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
죽음과 부활 사이의 중간 상태에 대해 교회의 대부분은 신자가 의식을 지닌 채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재림교회와 16세기의 일부 재세례파는 성경이 죽은 이를 잠든 이로 부르는 말씀을 (요 11:11) 그대로 받아, 죽은 이가 부활 때까지 의식 없이 쉰다고 믿습니다. 가톨릭 교회(천주교)는 은혜 안에서 죽었어도 정화가 덜 된 이들은 영원한 구원이 이미 확실하지만 죽은 뒤 깨끗하게 되는 과정을 거쳐 하늘에 들어간다고 가르치고 이를 연옥이라 부르며, 교회가 처음부터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해 왔다고 말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0–1032항. 동방의 오랜 교회인 정교회는 예배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되 연옥을 교리로 세우지 않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영혼이 ‘죽지도 잠들지도 않는’다고 하고, 몸을 떠난 영혼을 위한 곳으로 성경이 하늘과 지옥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32장 1항. 개혁파 침례교회의 제2차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1689)도 같은 말로 고백합니다 31장 1항. 이 견해들은 ‘죽음과 중간 상태’ 과에서 살핍니다.
부활 때: 인정받고 즐거워함
몸의 부활과 심판은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으로 모든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38문은 몸까지 영광스럽게 되는 날, 곧 영화(榮化)를 말합니다. 첫 증거 구절에서 바울은 몸의 부활을 씨 뿌림에 견주어 "수치 가운데 뿌려지고 영광 가운데 일으켜지며 연약함 가운데 뿌려지고 권능 가운데 일으켜지며"라고 씁니다 (고전 15:43). 그날 신자는 공개적으로 인정받습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마 10:32). 유럽 대륙 개혁교회의 벨직 신앙고백도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신자들의 이름을 ‘시인하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37조. 무죄 선언은 이생에서 믿음으로 받은 칭의가 모든 이 앞에 드러나는 일입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무슨 일로 고소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롬 8:33).
그렇다고 행위가 아무 뜻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 자기 몸 안에서 행한 것에 따라 받습니다 (고후 5:10). 불이 각 사람의 일을 시험하여, 그 일이 남는 이는 보상을 받고 불타 버린 이는 보상의 손실을 당하되 그 자신은 구원을 받습니다 (고전 3:12-15). 개혁교회는 이 보상을 공로의 값이 아닌 은혜의 상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그 아들 안에서 보시고, 연약함이 섞인 그들의 진실한 행위를 받아 주시고 상 주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장 6항.
마지막 말은 하나님을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함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
요일 3:2
지금은 거울을 통하여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을 마주 대하여 봅니다 (고전 13:12). 북아프리카 히포의 감독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성』의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그립니다. "거기서 우리는 쉬며 볼 것이요, 보며 사랑할 것이요, 사랑하며 찬양할 것이다" 하나님의 도성 22.30. 부활과 새 창조는 교리 과정의 마지막 과에서, 죽음 뒤의 물음들은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와 천국에서 서로 알아볼 수 있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이번 주의 물음
‘하나님을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함’은 어떤 것이며, 이번 주 그 기쁨을 미리 맛볼 수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시편 16편의 끝 절은 생명의 행로와 주의 오른쪽에 있는 영원한 즐거움을 노래합니다 (시 16:1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신자가 지금 마음속에 ‘영원한 기쁨의 시작’을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8문. 예배와 기도와 말씀 앞에서 하나님을 기뻐한 순간을 하루에 하나씩 적어 보십시오. 슬픔 중에 있는 이가 있다면, 말을 많이 하기보다 찾아가 곁에 있어 주십시오.
연습
- 연습 1 / 6
소요리문답 37문에 따르면 신자들의 영혼은 죽을 때에 어떻게 됩니까?
- 연습 2 / 6
37문은 무덤에 있는 신자의 몸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 연습 3 / 6
37문의 ‘곧바로’를 가르치는 증거 구절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오늘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말씀은 어디에 있습니까?
- 연습 4 / 6
38문이 말하는 대로 신자들이 심판 날에 공개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과 가장 가까운 예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6
죽음과 부활 사이에 관하여, 교회나 신앙고백과 그 가르침을 바르게 짝지은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6
38문의 마지막 말, 하나님을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함은 소요리문답의 어느 문답으로 돌아갑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관련 주제
출처
- 존 버니언, 천로역정 1678 — 감옥에서 구상한 우의(寓意) 이야기. 순례자 크리스천이 멸망의 도시를 떠나 천성에 이르는 길을 그린다. 읽기
- 가톨릭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0–1032 — 1992년. 하나님과 화목한 가운데 죽었으나 아직 다 깨끗해지지 않은 이들은 구원이 확실하지만, 하늘에 들어갈 만큼 거룩해지도록 죽은 뒤에 깨끗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며 교회는 이 마지막 정화를 연옥이라 부른다고 한다(1030–1031항). 또 교회는 첫 세대부터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 왔다고 한다(1032항).
-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도성 — 413–426년. 410년 로마가 약탈당한 뒤 그리스도인 탓을 하는 이교도들에게 답하여 쓰기 시작했다. 두 사랑이 두 도성을 이루었으니, 자기를 사랑하여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랑이 땅의 도성을,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기를 업신여기는 사랑이 하늘의 도성을 이루었다(14.28). 두 도성, 곧 하나님의 도성과 땅의 도성의 역사를 창조에서 종말까지 다룬다. 20권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교회의 시대로 읽고, 21권은 영원한 형벌을 다룬다. 읽기
성경과 교회의 신경,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과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소요리문답을 개혁교회의 고백으로 한 주에 한 걸음씩 가르치고, 개혁교회 안에서 갈리는 곳은 양쪽을, 다른 전통의 견해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