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

95개 논제

마르틴 루터 · 1517년

영어 본문: R. S. 그리뇽 영역, 웨이스·부크하임 편 『종교개혁의 첫 원리』(1883) · CCEL · 우리말은 이 영어 본문에서 옮겼습니다.

해설

『95개 논제』는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면벌부 설교에 맞서 참회와 면벌부의 효력을 토론하자며 내놓은 명제들로, 마인츠의 대주교에게 보낸 편지와 함께 종교개혁의 첫걸음이 되었고, 교회의 참된 보화는 복음이라는 외침 때문에 오늘도 읽힙니다.

비텐베르크의 수도사와 마인츠의 대주교

마르틴 루터는 1483년 독일 중부의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났습니다. 1505년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에 들어갔고, 1512년 신학 박사가 되어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1517년까지 그는 시편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강의했고, 시 교회에서 설교하며 교인들의 고해를 듣는 사제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생애와 신학 전체는 신학 과정의 루터: 십자가 신학과 칭의 과에서, 종교개혁의 사건들은 개혁주의 신앙 과정의 종교개혁 이야기 과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무렵 독일에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다시 짓기 위해 교황 레오 10세가 선포한 면벌부가 돌고 있었습니다. 마그데부르크와 마인츠의 대주교 알브레히트의 땅에서는 이 면벌부가 그의 권위로 설교되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동생인 젊은 제후 알브레히트는 교황의 특별 허가를 받아 여러 주교 자리를 한꺼번에 차지하면서 교황청에 큰돈을 치렀는데, 그 돈은 아우크스부르크의 은행가 푸거 가문에게서 빌린 것이었고, 그는 면벌부로 거둔 돈의 절반으로 그 빚을 갚도록 허락받았습니다. 루터는 이 거래를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편지는 면벌부가 대주교의 이름 아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는다며 돌고 있다고만 말합니다 편지 5.

이 면벌부를 설교한 이 가운데 가장 이름난 이는 도미니코회 수사 요한 테첼이었습니다. 루터의 영주인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자기 땅에서 이 면벌부를 설교하지 못하게 했지만, 그 자신이 비텐베르크 성 교회에 모은 많은 성유물에도 그것을 보러 오는 이들을 위한 면벌이 붙어 있었습니다. 테첼이 국경 가까이에서 설교하자 비텐베르크 사람들도 그리로 건너가 면벌부를 사 왔습니다. 헌금함에 동전이 떨어져 소리가 나면 영혼이 연옥에서 튀어나온다는 노래는 흔히 테첼이 한 말로 전해집니다. 루터는 그 설교를 직접 듣지는 못했다고 밝히면서, 설교자들의 말보다 백성이 거기서 품게 된 그릇된 생각을 슬퍼한다고 씁니다 편지 5.

편지는 1517년 만성절 전날, 곧 10월 31일에 비텐베르크에서 쓴 것으로 되어 있고 편지 12, 덧붙인 말에서 대주교에게 이 토론 명제들을 살펴보시라고 청합니다 편지 13. 논제는 이 편지와 함께 갔습니다. 그가 같은 날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에 논제를 못 박았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주로 그가 죽은 뒤 멜란히톤이 남긴 기록에 기대고 있습니다. 멜란히톤은 1518년에야 비텐베르크에 왔고, 루터 자신은 이 일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교회 문이 대학의 게시판처럼 쓰였으니 토론 안내를 붙였을 수도 있다고 보는 학자도 있고, 그렇지 않았으리라고 보는 학자도 있어서, 실제로 그랬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10월 31일 마인츠의 대주교에게 편지와 함께 논제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논제는 학자들의 토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머리말은 진리를 밝히려는 뜻으로 비텐베르크에서 루터의 사회로 토론을 열겠다고 알리고, 올 수 없는 이들은 편지로 토론에 참여해 달라고 청합니다 머리말. 그러나 그 토론이 실제로 열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대신 논제는 그해가 가기 전에 여러 도시에서 인쇄되고 곧 독일어로도 옮겨져, 몇 주 사이에 독일 곳곳에서 읽혔습니다. 알브레히트는 논제를 로마로 보냈습니다. 1520년 교황의 칙서가 루터의 여러 명제를 정죄했고, 이듬해 초 그는 파문되었습니다. 바로 그 1520년에 그는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썼고, 고전 읽기는 이 책을 『95개 논제』와 나란히 둡니다.

편지 한 통과 아흔다섯 명제

여기에는 이 글이 한 부분으로 실려 있습니다. 먼저 알브레히트에게 보낸 편지가 오고, 토론을 알리는 머리말과 아흔다섯 개의 논제가 이어집니다. 영어 본문을 실은 1883년의 책이 95개조 뒤에 붙인 루터의 짧은 「항변」(Protestation)만은 싣지 않았습니다. 우리말로는 흔히 ‘95개조 반박문’이라고도 부르지만, 초기 인쇄본에 붙은 라틴어 제목은 면벌부의 효력을 밝히기 위한 토론이라는 뜻입니다. 라틴어로 쓴 원문은 한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짧습니다.

편지는 그 시대의 예법대로 한껏 몸을 낮춥니다. 루터는 자신을 사람 가운데 가장 낮은 찌꺼기요 한 알의 티끌이라고 부르며 대주교의 눈길을 구합니다 편지 4. 그러나 할 말은 분명합니다. 백성은 면벌부를 사면 구원이 확실하고, 헌금을 궤에 던져 넣자마자 영혼이 연옥에서 날아오르며, 용서받지 못할 만큼 큰 죄란 없고, 모든 벌과 죄책에서 풀려난다고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편지 5. 주교의 첫째이자 유일한 의무는 백성이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배우게 하는 것인데, 복음은 침묵 속에 묻히고 면벌부의 요란한 외침만 퍼진다고 그는 탄식합니다 편지 8.

대주교의 이름으로 나온 설교 지침은 영혼을 연옥에서 건지거나 고해 특허장을 사는 이에게는 통회가 필요 없다고까지 가르쳤습니다 편지 9. 루터는 그 지침을 거두고 설교자들에게 다른 설교 방식을 정해 달라고 청하며, 그러지 않으면 누군가 일어나 이를 반박하는 글을 내놓으리라고 경고합니다 편지 10.

논제는 대략 몇 덩어리로 나누어 읽을 수 있습니다. 읽는 이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누지만, 제1논제부터 4논제까지는 참회가 무엇인지, 제5논제부터 29논제까지는 벌과 연옥에 대한 교황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다룹니다. 제30논제부터 55논제까지는 참된 통회와 면벌부, 사랑의 행위와 말씀의 자리를, 제56논제부터 68논제까지는 교회의 보화를 다룹니다. 제69논제부터 80논제까지는 주교와 설교자의 책임을, 제81논제부터 91논제까지는 평신도들이 던질 법한 날카로운 물음을, 제92논제부터 끝까지는 십자가를 따르라는 권면을 담습니다. 42논제부터 51논제까지는 대부분 그리스도인에게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는 같은 말로 시작해 북소리처럼 귀에 남습니다.

참회와 면벌부

논제를 읽으려면 그 시대의 고해 성사를 조금 알아야 합니다. 중세 교회는 세례받은 뒤에 지은 죄가 통회와 고백과 보속, 그리고 사제의 사죄 선언으로 용서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때 죄책과 영원한 벌은 사해지지만, 이 세상에서 보속으로, 또는 죽은 뒤 연옥에서 치러야 할 한시적인 벌은 남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옛 교회는 교회법이 정한 무거운 보속을 사죄에 앞서 치르게 했는데 제12논제, 중세에 이르러 면벌은 사죄 뒤에 남은 이런 벌을 교회가 풀어 주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 근거로는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넘치는 공로가 쌓여 있다는 교회의 보화를 들었고, 15세기 후반부터 교황들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게도 대도(代禱), 곧 교회가 기도로 도움을 청하는 방식으로 면벌을 베풀 수 있다고 했습니다. 면벌부는 그 면벌을 받았다는 증서입니다. 흔히 면죄부라고 부르지만, 죄책이 아니라 벌을 면해 준다는 뜻에서 면벌부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합니다.

루터는 면벌부보다 더 깊은 데서 시작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하셨을 때, 신자의 삶 전체가 참회이기를 바라셨다는 것입니다 제1논제.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선포하기 시작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 4:17

라틴어 성경은 이 말씀을 ‘포에니텐티암 아기테’(poenitentiam agite)로 옮겼는데, 라틴어 포에니텐티아는 회개와 참회와 고해 성사를 함께 뜻하는 말이어서 흔히 고해를 행하라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는 마음과 삶의 방향을 돌이킨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이 말씀이 사제 앞에서 하는 고해 성사를 가리킬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제2논제, 마음속의 참회만 뜻하는 것도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속의 참회가 밖으로 육신을 죽이는 여러 열매를 맺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3논제.

자기를 미워하는 참된 참회가 이어지는 동안, 곧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까지 벌도 이어진다고 그는 말합니다 제4논제. 회개는 한 번 치르고 끝내는 거래가 아니라 평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논제는 교황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짚어 갑니다. 교황은 자기 권위나 교회법으로 지운 벌 말고는 어떤 벌도 면해 줄 뜻도 힘도 없고 제5논제, 죄책은 하나님께서 사하셨음을 선언하고 보증하는 것 말고는 사할 수 없습니다 제6논제. 참회 법규는 산 사람에게만 지우는 것이므로 죽어 가는 이는 죽음으로 모든 벌을 치르며 제13논제, 교회법상의 벌을 연옥의 벌로 바꾼다는 생각은 주교들이 잠든 사이에 뿌려진 가라지 같다고 그는 말합니다 제11논제.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렸다는 주님의 비유(마 13:25)를 떠올리게 하는 말입니다.

교황이 연옥의 영혼에게 면벌을 베풀 때도 열쇠의 권세가 아니라 대도의 방식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그는 말하고 제26논제, 궤 속에 던져 넣은 돈이 짤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이 연옥에서 날아오른다고 말하는 이들은 사람의 교훈을 설교할 뿐이라고 꼬집습니다 제27논제.

면벌부가 위험한 까닭은 거짓 평안을 주기 때문입니다. 면벌부로 자기 구원이 확실해졌다고 믿는 이들은 그렇게 가르친 이들과 함께 영원히 정죄받으리라고 그는 경고합니다 제32논제. 반대로 참으로 뉘우치는 그리스도인은 면벌부 없이도 벌과 죄책에서 온전히 놓일 권리가 있고 제36논제, 참된 그리스도인은 살아 있든 죽었든 하나님께서 주신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복에 이미 참여한다고 말합니다 제37논제. 용서는 문서로 사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이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도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요일 1:9).

사랑의 행위는 면벌부보다 앞섭니다. 가난한 이에게 주거나 궁핍한 이에게 꾸어 주는 것이 면벌부를 사는 것보다 낫다고 그리스도인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제43논제. 주님도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네게 빌리고자 하는 자를 너는 물리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 5:42). 사랑의 행위로는 사랑이 자라고 사람이 나아지지만, 면벌부로는 사람이 나아지지 않고 벌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뿐입니다 제44논제.

곤궁한 이웃을 지나쳐 면벌부에 돈을 내는 이는 교황의 면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고 제45논제, 교황이 설교자들의 착취를 안다면 자기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 대성당을 세우기보다 차라리 그것이 불타 재가 되기를 바라리라고 그는 말합니다 제50논제. 작은 일인 면벌부를 종 하나로 알린다면, 큰일인 복음은 종 백 개와 행렬 백 번과 예식 백 번으로 전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제55논제.

교회의 참된 보화

그리고 논제는 이 모든 것의 뿌리를 묻습니다. 교황이 면벌을 베푸는 근거라는 교회의 보화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땅의 재물이 아니고 제57논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공로도 아니라고 루터는 말합니다. 그 공로는 교황이 없어도 언제나 속사람에게는 은혜를, 겉사람에게는 십자가와 죽음과 지옥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제58논제.

로마 교회의 집사로 순교한 라우렌티우스는 교회의 가난한 이들이 교회의 보화라고 했고 제59논제,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진 교회의 열쇠의 권세를 그 보화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고 루터는 말합니다 제60논제. 그러나 참된 보화는 따로 있습니다. 교회의 참된 보화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제62논제. 바울이 자기 생명보다 귀히 여긴 사명도 "이 일들 중 어떤 것도 결코 나를 움직이지 못하며 또한 내가 나의 생명도 내게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니 이것은 내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님께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기쁨으로 끝마치고자 함이라."이었습니다 (행 20:24).

이 보화는 먼저 된 자를 나중 되게 하므로 미움을 받고, 면벌부의 보화는 나중 된 자를 먼저 되게 하므로 환영을 받는다고 그는 대구를 지어 말합니다 제63논제. 그 뒤에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마 20:16)이 있습니다. 복음의 보화는 옛날 부자들을 낚던 그물이었고, 면벌부의 보화는 이제 사람들의 재물을 낚는 그물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제66논제.

81논제부터 그는 면벌부 설교가 불러온 평신도들의 날카로운 물음을 옮깁니다. 교황이 대성당을 지을 돈 때문에 수많은 영혼을 연옥에서 건진다면 왜 가장 거룩한 사랑 때문에 연옥을 비우지는 않느냐는 물음 제82논제, 누구보다 부유한 교황이 왜 가난한 신자들의 돈이 아니라 자기 돈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지 않느냐는 물음이 그것입니다 제86논제. 이런 물음을 이유를 들어 풀지 않고 힘으로만 누르면 교회와 교황을 원수들의 웃음거리로 만들 뿐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제90논제.

논제는 면벌부가 아니라 십자가로 끝납니다. 예레미야는 백성의 상처를 대충 싸매며 평안을 외치는 이들을 두고 "그들이 또한 내 백성의 딸의 상처를 조금 고쳐 주고는 평안이 없는데도 말하기를,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였도다."라고 탄식했습니다 (렘 6:14). 루터는 평강이 없는데 평강을 외치는 선지자들은 물러가라고 하고 제92논제, 십자가를 외치는 선지자들에게 복이 있으라고 합니다 제93논제. 그리스도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고통과 죽음과 지옥을 지나기를 힘써야 하며 제94논제, 평안의 안전보다는 많은 환난을 지나 하늘에 들어가기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 논제입니다 제95논제.

제자들의 혼을 굳건하게 하며 그들을 권면하여 믿음 안에 거하게 하고 또 우리가 반드시 많은 환난을 거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야 하리라 하더라.

행 14:22

논제 이후, 서로 다르게 읽는 눈

논제가 던진 물음은 곧 더 깊은 데로 나아갔습니다. 1518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교황 사절 카예탄 추기경은 루터에게 두 가지를 따졌습니다.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공로가 교회의 보화가 아니라는 제58논제가 1343년 교황 클레멘스 6세의 칙서와 어긋난다는 것, 그리고 고해하는 이가 사죄의 말씀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는 루터의 가르침이었습니다. 1517년의 루터는 아직 모든 안전을 경계하며 누구도 자기 통회가 참된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지만 제30논제, 곧 확신의 근거를 우리의 통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두게 됩니다. 그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면벌부와 연옥 자체를 성경에 근거가 없다고 보아 거부했습니다.

오늘의 가톨릭 교회는 면벌을 ‘대사’(大赦)라고 부르며, 이 문제를 자기 말로 이렇게 가르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1563년 면벌을 베푸는 권한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것이고 그 사용이 신자들에게 유익하다고 확인하면서도, 그 시대에 남용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면벌을 얻는 일에 얽힌 부당한 이익은 모두 없애라고 명했습니다. 그 뒤 면벌을 헌금과 묶는 일은 금지되었습니다.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황령 『대사 교리』(Indulgentiarum doctrina)로 이 제도를 크게 고쳤습니다.

이 가르침에서 면벌은 죄책을 이미 용서받은 죄에 따르는 한시적인 벌, 곧 가톨릭 교회가 ‘잠벌’이라고 부르는 벌을 하나님 앞에서 면해 주는 것이며, 교회가 구원의 봉사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의 보화를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그것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회개하고 용서받은 이에게 베풀어집니다. 날수와 햇수로 셈하던 옛 방식은 없어졌고, 온전한 면벌에는 고해 성사와 성찬, 교황의 뜻을 위한 기도, 그리고 가벼운 죄에 대한 애착까지 끊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한시적인 벌을 하나님이 밖에서 내리시는 앙갚음이 아니라 죄가 남긴 그릇된 애착에서 정화되는 일로 설명하고, 면벌을 성도의 교제 안에서 교회가 회개하는 이를 돕는 일로 이해합니다.

루터교회는 회개가 죄에 대한 통회와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진다고 고백합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2조. 그리스도께서 죄책과 벌을 모두 지셨으므로 교회가 덜어 줄 벌이 남아 있지 않다고 보아 면벌부와 연옥을 거부하지만, 개인 고해와 사죄 선언은 복음의 위로를 전하는 열쇠의 권세로 소중히 지켜 왔습니다. 루터는 소교리문답에서, 세례가 뜻하는 것은 우리 안의 옛 아담이 날마다 통회와 회개로 죽고 새사람이 날마다 일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루터, 소교리문답. 신자의 삶 전체가 참회라는 첫 논제가 이렇게 삶의 길이 되었습니다.

개혁교회와 성공회를 비롯한 다른 개신교회들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면벌부와 연옥을 길게 반박하고, 믿음의 확신은 하나님이 내미시는 자비의 약속을 속으로 받아들여 내 것으로 삼는 데서 나온다고 가르쳤습니다 3권 2장 16절. 성공회의 39개 신조는 면벌에 관한 로마의 교리를 연옥에 관한 교리와 함께 성경에 근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39개 신조 22조. 웨슬리 전통을 비롯한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 헌물을 드림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는 말씀 (히 10:14)에 기대어, 신자는 누구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지만, 참된 회개 없이는 용서가 없고, 용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이며, 은혜는 돈으로 사고팔 수 없다는 데에는 모든 전통이 뜻을 같이합니다. 이 이야기는 20세기에도 이어져, 1999년 루터교 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는 칭의에 관한 기본 진리에 함께 동의했습니다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그러나 면벌을 보는 눈은 지금도 다릅니다. 두 전통의 차이는 가톨릭과 개신교는 무엇이 다른가?에서, 연옥에 관한 견해들은 교리 과정의 죽음과 중간 상태 과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잘 읽으려면

먼저 이것이 토론을 위한 명제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논제는 신앙고백도, 교회를 떠나겠다는 선언문도 아닙니다. 어떤 논제는 지옥과 연옥과 하늘이 절망과 절망에 가까운 상태와 마음의 평안이 다르듯 다른 듯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제16논제, 어떤 논제는 상대의 반박을 부르려고 일부러 날카롭고 비꼬는 말투를 씁니다. 하나하나를 루터의 마지막 생각으로 읽기보다 한 수도사가 동료 학자들에게 던진 물음으로 읽으면 좋습니다.

또 1517년의 루터는 아직 로마 교회 안의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설교자들에게서 교황의 뜻을 지키려 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책을 사하실 때 그를 모든 일에 낮추어 그분의 대리자인 사제의 권위 아래 두신다고 하며 제7논제, 교황의 사면도 하나님의 용서를 선언하는 것이니 결코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제38논제. 면벌의 진리를 거스르는 이는 저주를 받으라고까지 하고 제71논제, 연옥도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제15논제. 그러니 이 논제에서 훗날의 개신교 신학을 다 찾으려 해서도 안 되고, 그 씨앗을 놓쳐서도 안 됩니다. 복음이 교회의 참된 보화라는 고백이 그 씨앗입니다.

낯선 말도 몇 있습니다. 교회법상의 벌은 옛 교회법이 죄에 따라 정해 둔 보속이고, 유보된 사건은 교황이나 주교만 풀 수 있도록 남겨 둔 죄이며, 고해 특허장은 이런 죄까지 풀 수 있는 고해 사제를 스스로 고르게 해 준 문서입니다. 처음 읽을 때는 교회법을 따지는 5–29논제를 가볍게 지나가도 괜찮습니다. 대신 주교의 의무를 말하는 편지 8, 처음 네 논제, 제62논제, 그리고 마지막 네 논제에서 천천히 머무십시오.

면벌부 설교자들은 벌 없는 안전을 약속했지만, 논제는 그리스도인을 십자가의 길로 부르며 끝납니다. 그것은 어두운 결말이 아닙니다. 그 길에서 그리스도인이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복음의 보화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보화를 이렇게 말합니다.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지고 있나니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6-7

출처

  1. 마르틴 루터, 95개 논제 1517 읽기
  2. 마르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520 읽기
  3. 가톨릭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92
  4. 루터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530
  5. 마르틴 루터, 소교리문답 1529
  6.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읽기
  7. 잉글랜드 교회, 39개 신조 1571
  8. 루터교 세계연맹·가톨릭교회,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1999

차례

싣지 않은 부분: 95개조 뒤에 붙은 루터의 짧은 「항변」(Protestation)은 싣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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