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고리
Allegory
알레고리는 본문의 인물과 사건과 낱말이 글자 그대로의 뜻 너머에 있는 다른 영적인 뜻을 가리킨다고 보고 그 뜻을 찾아 읽는 방법입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쓰인 글이 있지만, 문맥과 저자의 뜻에 매이지 않은 알레고리 해석은 본문에 없는 뜻을 넣어 읽기 쉽습니다.
다른 것을 빗대어 말함
‘알레고리’는 ‘다른 것을 빗대어 말하다’라는 헬라어 알레고레오(ἀλληγορέω)에서 왔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두 아내 이야기를 두고 이 말을 씁니다.
그것들은 풍유니라. 이들은 두 언약인데 하나는 시내 산에서 나와 속박 당하게 하는 자니 곧 하갈이라.
갈 4:24
웨슬리는 이 말을 "한 가지를 말하면서 다른 것을 의도하는 비유적인 말"이라고 풉니다 웨슬리. 성경에는 처음부터 이렇게 쓰인 글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집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비유를 말하여" 베풀라고 하셨고 (겔 17:2), 예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풀며 씨를 천국 말씀으로, 길가를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마음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마 13:19). 이런 본문을 빗댄 뜻으로 읽는 것은 저자가 의도한 뜻을 따라 읽는 것입니다.
해석 방법으로서의 알레고리는 다릅니다. 그것은 본래 이야기나 역사로 쓰인 본문에서도 낱말과 세부마다 숨은 영적인 뜻을 찾습니다. 카테나에 실린 풀이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강도 만난 사람을 아담으로 읽고, "여리고는 달이라고 해석되며 우리의 죽을 운명을 나타내니"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 읽기에서 사마리아인은 그리스도이시고 주막은 교회이며, 데나리온 둘은 사랑의 두 계명입니다.
교회가 걸어온 길
3세기의 오리게네스는 사람에게 몸과 혼과 영이 있듯 성경에도 글자의 뜻과 도덕적 뜻과 영적 뜻이 있다고 보고, 글자대로는 말이 되지 않는 대목은 더 깊은 뜻을 찾으라는 표지라고 했습니다 오리게네스, 원리론. 알렉산드리아 전통은 이런 읽기를 사랑했고, 안디옥의 교사들은 본문의 역사적 뜻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중세 교회는 문자와 알레고리와 도덕과 아나고기의 네 가지 뜻을 말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영적인 뜻이 문자적 뜻 위에 서 있으며 논증은 문자적 뜻에서만 끌어낼 수 있다고 한계를 그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종교개혁자들은 이 선을 더 굵게 그었습니다. 루터는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알레고리가 교리를 증명하지는 못하고 이미 세운 가르침을 그림처럼 꾸며 줄 뿐이라고 했고 루터, 갈라디아서 강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한 구절의 참되고 온전한 뜻은 ‘여러 가지가 아니고 하나’라고 고백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9항).
서로 다르게 말하는 곳
교부들의 알레고리에는 배울 것과 조심할 것이 함께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믿었고, 같은 비유에서 크리소스토무스는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도움이 필요하면 따지지 말라"는 가르침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 그러나 데나리온 둘이 해석자마다 다른 것을 뜻했듯, 본문에 닻을 내리지 않은 알레고리는 읽는 사람의 생각을 본문에 넣기 쉽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오늘도 문자적 의미와 함께 알레고리적 의미를 포함한 영적 의미를 말하며, 예컨대 홍해를 건넌 일을 세례의 표지로 읽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정교회도 교부들과 예배 속에서 영적인 읽기를 이어 갑니다. 개신교회는 대체로 본문의 한 뜻을 세우고, 신약이 보여 준 예표와 본문 자체가 비유로 쓴 곳을 받아들입니다. 성경을 묵상하며 삶에 비추어 보는 일은 귀하지만, 그것으로 교리를 세우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학 과정의 성경을 해석하는 길 과와 예수는 왜 비유로 말씀하셨는가?도 읽어 보십시오.
출처
- 오리게네스, 원리론
-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읽기
- 마르틴 루터, 갈라디아서 강해 1535
- 가톨릭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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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