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법 13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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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네 복음서는 한 분 예수를 네 사람이 저마다의 목적으로 그린 초상이며, 모두 십자가와 부활을 향해 갑니다. 각 복음서를 끝까지 읽고 나란히 견주되 억지로 하나로 맞추지 않으며, 하나님 나라와 비유를 복음서가 말하는 대로 읽는 법을 배웁니다.

네 사람이 한데 모여 펼친 책을 들여다보고, 한 사람은 손에 깃펜을 쥐고 있는 그림.
야코프 요르단스, 〈네 복음서 저자〉, 1625–1630년 무렵 · 출처

네 사람이 그린 한 분

신약은 예수의 이야기를 네 번 들려줍니다. 네 복음서는 같은 한 분을 그리지만, 그린 사람마다 첫머리와 목적이 다릅니다.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한 줄로 곧장 이야기에 들어가고 (막 1:1), 마태는 예수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하는 족보로 시작하여 (마 1:1)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이 그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거듭 말합니다. 누가는 목격자들이 전한 것을 자세히 살펴 차례대로 썼다고 밝히고 (눅 1:1-4), 요한은 책의 끝에서 왜 썼는지 말합니다.

이것들을 기록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네 복음서는 모두 십자가와 부활을 향해 갑니다. 마가복음은 열여섯 장 가운데 11장부터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한 주간을 전하고, 예수께서는 자기가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사흘 뒤에 다시 일어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거듭 가르치셨습니다 (막 8:31). 복음서는 한 위인의 전기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살아나신 분을 믿게 하려고 쓴 책입니다.

그래서 복음서는 한 권씩 끝까지 읽는 것이 좋습니다. 한 장면만 떼어 읽으면 그 복음서가 그 장면을 어디에 두고 무엇을 보이려 하는지 놓치기 쉽습니다. 마가복음은 한자리에서 끝까지 읽을 수 있을 만큼 짧습니다. 각 복음서의 짜임과 강조점, 그리고 왜 넷인지는 성경 개관 과정의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과가 다룹니다.

나란히 읽되 억지로 맞추지 않기

새와 꽃으로 꾸민 아치 아래, 네 복음서의 같은 이야기가 있는 곳을 나란히 찾도록 번호를 적은 세로 칸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토로스 로슬린, 〈복음서 대조표〉, 아르메니아 복음서, 1256년 (월터스 미술관) · 출처

네 복음서가 같은 일을 저마다 다르게 전하는 곳이 많습니다. 한 복음서를 읽다가 관주를 따라 다른 복음서의 같은 장면을 펴 보면, 누가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뺐는지, 어떤 말을 어디에 두었는지 보입니다. 그 차이에서 각 복음서 기자가 무엇을 보이려 하는지 묻는 것이 나란히 읽는 길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의 대답은 마가복음에서 주는 그리스도시라는 고백이고 (막 8:29),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라는 고백입니다 (눅 9:20). 마태복음에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이 더해지고 (마 16:16),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마 16:17-19). 고백은 하나이지만, 저마다의 복음서 안에서 그 자리와 무게를 얻습니다.

교회는 일찍부터 이 차이를 진지하게 다루었습니다. 400년 무렵 북아프리카 히포의 감독 아우구스티누스는 『복음서의 조화』에서 네 복음서 기록의 차이를 체계 있게 다루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복음서의 조화. 그러나 나란히 읽는다는 것은 모든 세부를 억지로 한 줄의 이야기로 맞추는 일이 아니고, 다른 점이 보이자마자 틀렸다고 단정하는 일도 아닙니다. 서로 다른 증언을 교회가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는 성경에는 모순이 있는가?에서 다룹니다.

하나님 나라와 비유

복음서의 중심에는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마가가 전하는 예수의 첫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예수의 기적과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가 그분 안에서 왔음을 보이고, 그 나라를 가장 자주 그리는 것이 비유입니다. 비유는 요점이 있는 이야기이고, 그 요점은 흔히 비유를 말씀하신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누가복음 15장은 먼저 그 자리를 알려 줍니다.

그때에 모든 세리들과 죄인들이 그분의 말씀을 들으러 그분께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며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먹는다, 하더라.

눅 15:1-2

이 원망에 예수께서는 잃은 양과 잃은 은전과 두 아들의 비유로 답하십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올 때 아버지는 멀리서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눅 15:20). 그리고 이야기는 잔치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맏아들을 아버지가 나와 달래는 말로 끝나며, 맏아들이 들어갔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눅 15:28-32). 비유는 죄인을 맞으시는 하나님의 기쁨을 보이고, 원망하던 이들에게 당신도 들어가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비유의 세부마다 따로 뜻이 있습니까? 비유는 세부 하나하나가 무엇을 가리키는 알레고리라기보다 이야기 전체로 한두 요점을 말하는 것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예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풀어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느니라"고 세부의 뜻을 밝히신 곳도 있습니다 (막 4:14). 교회도 오래 세부를 읽어 왔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그 사람은 인류를 대표하는 아담 자신으로 이해됩니다"라고 읽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교부들 사이에도 조심하는 목소리가 있어서,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크리소스토무스는 두 아들을 천사와 사람으로 읽는 풀이를 두고 "이 해석은 참으로 너그러워 보이나, 진실한지는 나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썼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 가톨릭 교회는 오늘도 문자적 뜻과 그것에 바탕을 둔 영적인 뜻을 함께 가르치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115–119항, 동방의 오랜 교회인 정교회는 교회의 예배 안에서 교부들과 함께 성경을 읽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세부마다 뜻을 붙이는 읽기를 경계했고, 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한 구절의 참되고 온전한 뜻이 ‘여러 가지가 아니고 하나’라고 고백합니다 1장 9항. 예수께서 왜 비유로 말씀하셨는지는 예수는 왜 비유로 말씀하셨는가?가, 교회가 비유를 읽어 온 역사는 신학 과정의 ‘성경을 해석하는 길’ 과가 다룹니다.

해 보기

어두운 방에서 한 여인이 몸을 깊이 숙이고 등잔불을 바닥 가까이 비추며 잃어버린 은전을 찾습니다.
도메니코 페티,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 1618년 무렵 · 출처

누가복음 15장을 지도에서 여십시오. 예수 탭의 지도에서 누가복음을 열고 15장을 누르면 ‘한 줄 요약’과 ‘관찰’ 칸이 있습니다.

1-2절에서 비유를 말씀하신 자리를 먼저 적으십시오. 누가 가까이 왔고 누가 원망했는지 보고 ‘1-2절: 원망하는 이들에게 하신 세 비유’처럼 적은 뒤, 세 비유에서 되풀이되는 것을 찾으십시오. ‘잃은 것, 되찾은 것, 함께 기뻐함’처럼 적으면 됩니다.

맏아들에게서 멈추십시오. 비유가 맏아들에게 하는 아버지의 말로 끝나는 것을 보고 (31-32절), 이 끝이 1-2절의 원망하던 이들에게 무엇을 묻는지 물음으로 적으십시오. 마지막으로 15장 전체를 한 줄 요약으로 쓰십시오.

연습

  1. 연습 1 / 7

    요한복음 20:31에서 요한은 왜 이 책을 썼다고 말합니까?

  2. 연습 2 / 7

    복음서를 읽는 좋은 길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7

    아우구스티누스의 『복음서의 조화』는 어떤 책입니까?

  4. 연습 4 / 7

    마가복음 1:15에서 예수께서 전하신 첫 말씀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7

    누가복음 15장의 세 비유는 무엇에 대한 대답입니까?

  6. 연습 6 / 7

    비유의 세부를 읽는 법에 대해 맞는 것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7

    네 복음서의 이야기는 어디를 향해 갑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출처

  1. 아우구스티누스, 복음서의 조화 — 네 복음서 기록의 차이를 다룬 초기의 체계적 연구.
  2. 가톨릭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115–119 — 1992년. 성경의 뜻을 문자적 의미와 영적 의미로 나누고, 영적 의미를 알레고리적·도덕적·아나고기적 의미로 설명한다. 모든 의미는 문자적 의미에 바탕을 두며(116항), 성경 해석은 마지막에 교회의 판단 아래 있다고 한다(119항).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푼다는 교회의 오랜 읽기 원칙을 기준으로 삼아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으로 그 뜻을 밝히고, 여러 전통의 읽는 방법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