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19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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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개혁과 세계 선교

16세기 가톨릭 교회는 1540년 인가된 예수회와 1545년에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로 안에서부터 새로워졌고, 그 선교사들은 일본과 중국에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같은 시대 아메리카에서는 정복이 원주민을 짓밟았고, 그들 편에 서서 항의한 수도사들이 있었습니다.

금빛 구름 사이로 포르투갈의 큰 배가 일본 항구에 닿아 짐을 내리고, 물가에 포르투갈 사람들의 행렬이 늘어선 일본 병풍 그림.
가노 나이젠, 〈남만 병풍〉의 포르투갈 배(부분), 1600년 무렵 · 출처

연표에서 보기

안에서 시작된 새로움

가톨릭 교회(천주교)는 16세기를 분열의 시대로만 기억하지 않고, 성인들이 교회를 안에서부터 새롭게 한 ‘가톨릭 개혁’의 시대로도 기억합니다. 그 가르침은 신학 과정의 가톨릭 개혁과 영국의 종교개혁 과에서 다루고, 이 과는 그 사람들과 사건을 따라갑니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귀족 로욜라의 이냐시오(1491–1556)는 1521년 팜플로나에서 싸우다 크게 다쳤고, 회복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삶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가 기도 가운데 얻은 것을 엮은 『영신 수련』은 네 주간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이끄는 수련입니다. 1534년 그는 파리의 여섯 동료와 함께 가난과 정결을 서원했고,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가 그들을 예수회로 인가했습니다. 예수회는 교황이 보내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고 약속했고, 학교를 세우고 먼 나라로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스페인의 수녀 아빌라의 테레사(1515–1582)는 1562년 아빌라에 작은 수녀원을 세워 가르멜회를 기도와 가난의 삶으로 되돌리려 했고, 기도에 관한 책들을 남겼습니다. 그와 함께 수도사들의 개혁에 나선 십자가의 요한(1542–1591)은 개혁을 반대한 같은 수도회 형제들에게 1577년 톨레도에서 갇혔고, 그 좁은 방에서 하나님을 찾는 영혼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두 사람을 성인이자 교회 학자로 기립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아디제강이 휘돌아 흐르는 성벽 도시 트리엔트를 위에서 내려다본 채색 지도로, 붉은 지붕들 사이에 대성당이 있고 앞쪽에 차려입은 남녀 네 사람이 서 있다.
프란스 호헨베르크, 〈트리엔트〉, 『세계의 도시들』, 1581–1621년 사이 · 출처

1545년 12월 교황 바오로 3세는 트리엔트(오늘날 이탈리아의 트렌토)에서 공의회를 열었습니다. 전쟁과 정치 사정으로 여러 번 멈춘 공의회는 세 시기에 걸쳐 1563년 12월에야 끝났습니다. 공의회는 1546년에 성경과 전승에 대해, 1547년에 칭의에 대해, 1562년에 미사에 대해 교령을 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교령. 가톨릭 교회는 칭의를 ‘의화’라고 부릅니다.

공의회는 교리만 다루지 않았습니다. 주교는 자기 교구에 머물며 설교해야 했고, 1563년의 교령은 교구마다 사제를 길러 낼 신학교를 세우게 했습니다. 그 뒤 1566년에는 본당 사제들을 위한 교리서가, 1570년에는 1960년대까지 가톨릭 예배의 틀이 된 미사 경본이 나왔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를 교회의 가르침을 분명히 하고 목자들을 새롭게 한 개혁의 공의회로 기억합니다. 개신교회는 이 공의회가 종교개혁이 다시 밝힌 복음에 문을 닫았다고 보았습니다. 1551년부터 이듬해까지의 둘째 시기에는 몇몇 개신교 제후의 사절이 왔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논의할지부터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칼뱅은 1547년의 의화 교령에 답하여, 오직 믿음이 의롭게 하지만 의롭게 하는 믿음은 홀로 있지 않다고 썼습니다 칼뱅, 트리엔트 공의회에 대한 해독제. 1999년 루터교 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는 칭의의 기본 진리에 함께 동의했지만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차이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까지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땅의 맨 끝 지역까지" 보내셨습니다 (행 1:8).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마 28:19-20

이냐시오의 파리 동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는 포르투갈 왕의 요청으로 동방에 보내져 1542년 인도의 고아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인도 남부 해안에서 기도문과 교리를 어부들의 말로 옮겨 가르쳤습니다. 말라카에서 만난 일본 사람 안지로와 함께 1549년 8월 일본 가고시마에 닿은 그는, 그해 가고시마에서 쓴 편지에서 일본 사람들을 지금까지 만난 민족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했습니다 하비에르, 서한집. 두 해 동안 일본에서 복음을 전한 그는 중국에 들어가기를 기다리다 1552년 중국 해안의 한 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본의 교회는 빠르게 자랐지만, 나라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선교사들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1597년 2월 나가사키의 언덕에서 스물여섯 명의 그리스도인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외국에서 온 프란치스코회 선교사들, 바오로 미키를 비롯한 일본인 예수회원들, 어린 소년들을 포함한 일본인 평신도들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미키가 십자가 위에서 설교하며 자기를 죽이는 이들을 용서했다고 전하고, 1862년 이들을 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일본은 1614년 그리스도교를 금했지만, 숨은 그리스도인들은 사제 없이 두 세기 넘게 신앙을 지키다가 1865년 나가사키에서 프랑스 신부에게 그 신앙을 밝혔습니다.

예수회의 마테오 리치(1552–1610)는 1582년 마카오에 와서 중국어와 유교 경전을 익혔고, 뒤에는 유학자의 옷을 입고 세계 지도와 시계와 수학으로 학자들의 벗이 되었습니다. 1601년 그는 베이징에 들어가 황제의 허락을 받고 머물렀고, 1610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1603년에 펴낸 『천주실의』는 중국 학자와 서양 학자의 문답으로 옛 유교 경전의 상제를 천주와 잇습니다. 조선의 학자들도 이 책을 읽었습니다(한국 천주교의 시작과 박해 과).

정복과 항의, 그리고 오늘

흰 옷깃에 검은 망토를 두른 도미니코회 수사 라스 카사스가 책상 앞에 앉아 깃펜으로 글을 쓰고 있다.
작자 미상,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수사〉, 16세기 · 출처

1492년 콜럼버스가 카리브해에 이른 뒤, 스페인 사람들은 1520년대 초에 멕시코의 아즈텍을, 1530년대에 페루의 잉카를 무너뜨렸습니다. 정복자들은 원주민에게 신앙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일꾼으로 나누어 받았고, 전쟁과 강제 노동과 유럽에서 건너온 전염병으로 수많은 원주민이 죽었습니다. 칼과 십자가가 함께 들어간 이 일은 교회사의 어두운 장입니다.

그러나 원주민 편에 선 수도사들도 있었습니다. 1511년 대림절에 도미니코회 수도사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는 히스파니올라 섬의 정착민들에게 무슨 권리로 원주민을 이토록 잔인한 종살이에 묶어 두느냐고 설교했습니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는 처음에는 자신도 원주민을 부리던 정착민이었으나, 1514년 설교를 준비하며 집회서(가톨릭 교회가 읽는 제2정경) 34장을 읽다가, 원주민을 부려 얻은 것으로 드리는 제물은 죄라는 것을 깨닫고 자기에게 맡겨진 원주민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이 일을 뒤에 쓴 『인디아스의 역사』 3권에서 들려줍니다. 도미니코회 수도사가 된 그는 1552년 펴낸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로 정복자들의 학살을 고발하는 등, 156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스페인 왕과 법정 앞에서 그들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런 그도 한때 원주민의 짐을 덜려고 아프리카 사람 노예를 들여오자고 했다가, 같은 책에서 그것도 똑같이 불의했다고 뉘우쳤습니다. 1537년 교황 바오로 3세는 『숭고하신 하나님』에서 원주민도 믿음을 받을 수 있는 참된 사람이니 그들의 자유와 재산을 빼앗거나 종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2015년 7월 볼리비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가 아메리카에서 지은 죄와 정복 때 원주민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 용서를 청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제2차 민중 운동 세계 대회 연설.

바울은 복음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르는지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즉 그들이 자기들이 믿지 아니한 분을 어찌 부르리요? 자기들이 듣지 못한 분을 어찌 믿으리요? 선포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어지지 아니하였으면 그들이 어찌 선포하리요? 이것은 기록된바,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며 좋은 일들의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함과 같으니라.

롬 10:14-15

매튜 헨리는 이 대목에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어야 했던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그들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보여 주어야 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16세기의 가톨릭 선교사들은 목숨을 걸고 그 부름에 응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대에 복음은 정복자의 칼과 함께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하비에르와 리치가 그 백성의 말을 배우고 라스 카사스가 짓밟힌 이들의 편에 섰듯, 교회는 기도와 가르침으로 안에서부터 새로워지고 섬기는 이로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다음 과 종교 전쟁과 관용에서는 종교개혁 뒤 신앙의 이름으로 벌어진 전쟁들과 그 속에서 자라난 양심의 자유를 봅니다.

연습

  1. 연습 1 / 7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가 인가한 것은 무엇입니까?

  2. 연습 2 / 7

    트리엔트 공의회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7

    칼뱅은 1547년 트리엔트의 의화 교령에 답하며 무엇이라고 썼습니까?

  4. 연습 4 / 7

    1549년 하비에르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7

    1597년 2월 나가사키에서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7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서 한 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7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출처

  1. 이냐시오 데 로욜라, 영신 수련 1548 —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이끄는 네 주간의 수련. 예수회 영성의 바탕.
  2. 트리엔트 공의회, 트리엔트 공의회 교령 1545–1563 — 1545–1563년. 가톨릭 개혁의 공의회로, 성경과 전승(1546), 칭의(1547), 성례와 미사(1547–1562)에 관한 교령을 내리고, 사제 양성을 위한 신학교를 세우게 하였다.
  3. 장 칼뱅, 트리엔트 공의회에 대한 해독제 1547 — 트리엔트의 칭의 교령에 답한 글. 오직 믿음이 의롭게 하지만, 의롭게 하는 믿음은 홀로 있지 않다고 말한다.
  4. 루터교 세계연맹·가톨릭교회,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1999 — 칭의에 대한 기본 진리에 함께 동의한 문서로, 1999년 10월 31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서명되었다. 우리가 쌓은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이루신 일을 믿을 때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고 함께 고백하고, 여기 설명된 가르침에는 16세기에 서로 내린 정죄가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며, 남은 차이도 밝힌다. 세계감리교협의회가 2006년에, 세계개혁교회커뮤니언이 2017년에 이 선언에 함께했다.
  5.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서한집 — 1542–1552년. 인도와 일본에서의 선교를 전하는 편지들로, 1549년 가고시마에서 쓴 편지에서는 일본 사람들을 지금까지 만난 민족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평한다.
  6.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 — 1603년. 중국의 유학자와 서양 학자의 문답으로 천주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을 논하며, 옛 유교 경전의 상제를 천주와 잇는다. 조선의 학자들도 읽었다.
  7.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인디아스의 역사 3 — 1527년경부터 쓰기 시작해 그가 죽은 뒤에 출간되었다. 3권에서 1514년 집회서 34장을 읽다가 원주민의 노동으로 얻은 것을 바치는 일이 죄임을 깨닫고 자기 땅과 원주민을 내놓았다고 말하며, 원주민 대신 아프리카 노예를 들이자고 했던 일을 뒤늦게 뉘우친다.
  8.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 1552 — 1552년. 1542년 왕에게 올리려고 쓰고 1552년 세비야에서 펴낸 글로, 히스파니올라에서 페루까지 정복자들이 원주민에게 저지른 학살과 잔혹한 종살이를 지역마다 고발하며 그들을 지켜 달라고 호소한다. 그가 1514년 집회서를 읽고 돌아선 일과 아프리카 사람 노예를 들여오자고 한 일을 뉘우친 고백은 이 글이 아니라 그의 『인디아스의 역사』에 나온다.
  9. 교황 바오로 3세, 숭고하신 하나님 1537 — 1537년. 아메리카의 원주민과 다른 모든 민족이 믿음을 받을 수 있는 참된 사람이니, 그리스도교 밖에 있더라도 그들의 자유와 재산을 빼앗거나 종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말씀의 설교와 선한 삶의 본으로 믿음에 이끌어야 한다고 선언한 교황의 문서다.
  10. 프란치스코 교황, 제2차 민중 운동 세계 대회 연설 2015 — 2015년 7월 9일, 볼리비아 산타크루스. 교회가 아메리카에서 지은 죄를 인정하며, 교회 자신의 잘못만이 아니라 이른바 아메리카 정복 때 원주민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겸손히 용서를 구했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회 역사의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교회의 이야기를 각 전통이 기억하는 대로 공정하게 전하며, 교회가 지은 죄의 역사도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