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파 인식론과 누적 논증
개혁파 인식론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믿는 믿음처럼 논증 없이도, 그러나 근거 없이가 아니라 경험에 근거해 합리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누적 논증은 우주와 도덕과 역사의 예수와 삶의 경험을 함께 모아 기독교가 그 모두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논하며, 실제 대화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여러 길을 함께 씁니다.
논증 없이도 합리적인 믿음
하나님 존재 논증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신자가 많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비합리적입니까? 미국의 철학자 앨빈 플랜팅가는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와 함께 그렇지 않다고 답한 길을 열었고, 이 길을 개혁파 인식론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믿는 많은 것은 다른 믿음에서 추론하지 않아도 합리적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나처럼 마음이 있다는 것, 오늘 아침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아무도 이것을 먼저 논증으로 증명하고 나서 믿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을 기본 믿음이라 하고, 알맞은 상황에서 생긴 기본 믿음을 ‘적절하게 기본적’이라 합니다.
플랜팅가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앨빈 플랜팅가, 보증된 기독교 믿음.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볼 때, 잘못을 깨닫고 마음이 무너질 때, 용서받았음을 알 때, 사람은 추론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지으셨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신다고 믿게 됩니다. 시편 기자도 하늘을 보며 곧바로 하나님께 말합니다.
주의 하늘들 곧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작품과 주께서 정하신 달과 별들을 내가 깊이 생각하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 속에 깊이 두시나이까?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찾아오시나이까?
시 8:3-4
이 길의 뿌리는 칼뱅입니다. 믿음과 이성 과에서 본 대로 칼뱅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신성에 대한 감각을 심어 두셨다고 가르쳤고, 성경에 대한 확신은 성령의 증거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확신을 "이유를 구하지 않는 확신이요, 가장 높은 이성과 일치하는 지식"이라고 부릅니다 기독교 강요 1.7.5. 플랜팅가는 이 두 가르침에서 출발해, 하나님이 지으신 능력이 바르게 작동하여 생긴 믿음은 ‘보증’을 얻는다고 논합니다. 기독교가 참이라면 그 믿음도 보증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물음은 논증이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참이냐로 돌아갑니다.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논증 없이’는 ‘이유 없이’가 아닙니다. 기본 믿음은 경험이라는 근거에서 생기며, 반론을 만나면 대답이 필요합니다. 플랜팅가 자신도 하나님에 대한 여러 논증을 소중히 여겼고, 하나님과 악이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주장에 맞서 자유 의지 변호를 폈습니다. 참으로 자유로운 피조물이 있는 세상을 위해 하나님께 악을 허락하실 선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앨빈 플랜팅가, 하나님, 자유, 악. 개혁파 인식론은 이성을 버리고 믿기만 하라는 신앙주의가 아니라, 평범한 신자의 믿음도 합리적일 수 있음을 지키는 길입니다. 성경의 믿음이 눈을 감은 도약이 아니라는 것은 믿음이란 무엇인가?에서도 다룹니다.
가장 잘 알려진 반론은 플랜팅가 자신이 1983년의 논문에서 꺼내 답했습니다 앨빈 플랜팅가, 이성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논증 없이 기본적일 수 있다면, 만화 『피너츠』의 라이너스가 핼러윈마다 기다리는 ‘큰 호박’을 믿는 것도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어떤 믿음이 적절하게 기본적이라는 말은 아무 믿음이나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억을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해서 아무 공상이나 합리적이 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기본 믿음은 그것을 낳는 알맞은 상황과 진리를 향해 지어진 능력에 근거하는데, 큰 호박 믿음에는 그런 근거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아보는 타고난 감각은 있어도 큰 호박을 알아보는 감각은 없습니다.
여러 실마리를 함께
누적 논증은 다른 길을 걷습니다. 하나의 결정적인 증명도 하나의 직접적인 앎도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증거를 함께 모아 기독교가 그 모두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논합니다. 탐정이 발자국과 시간과 동기를 모아 한 사람을 가리키듯, 법정이 서로 모르는 증인들의 말을 함께 저울질하듯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질 미첼은 역사가나 재판관이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를 고를 때처럼 종교적 믿음도 그렇게 정당화된다고 논했습니다 베이질 미첼, 종교적 믿음의 정당화.
그 실마리는 여럿입니다. 우주가 있고 시작이 있다는 것, 생명이 살 수 있게 세밀히 맞추어진 듯한 자연의 질서, 누구나 아는 옳고 그름의 법, 역사 속의 예수와 빈 무덤, 그리고 사람의 갈망과 하나님을 만난 경험입니다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사람마다 아는 도덕법을 우주의 뜻을 푸는 실마리로 삼고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1권, 거기서 예수가 누구인가 하는 물음으로 나아갑니다 순전한 기독교 2.3. 그는 1944년의 한 강연에서 기독교를 해에 견주었습니다. 해는 그것을 보아서만이 아니라 그 빛으로 다른 모든 것을 보기에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 신학은 시인가. G. K. 체스터턴은 자기가 믿는 까닭이 이런저런 증명 하나가 아니라, 작지만 한결같이 같은 곳을 가리키는 수많은 사실이 쌓인 데 있다고 썼습니다 G. K. 체스터턴, 정통. 팀 켈러는 의심하는 이들의 흔한 반론을 먼저 다룬 뒤, 하나하나는 증명이 아니어도 함께 모이면 힘이 있는 단서들을 내놓습니다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이 길에 대한 비판은 약한 논증은 아무리 모아도 강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는 양동이를 열 개 모아도 물을 담지 못한다는 비유가 흔히 쓰입니다. 누적 논증은 그 비유가 각 논증에 아무 무게도 없을 때에만 맞는다고 대답합니다. 실마리마다 얼마쯤의 무게가 있고 서로 따로 나온 것이라면, 그것들이 한곳을 가리킬 때 결론은 하나만 있을 때보다 훨씬 그럴듯해집니다. 서로 모르는 여러 증인의 말이 맞아떨어질 때 법정이 그 말을 무겁게 듣는 것과 같고, 가는 실도 여러 가닥을 꼬면 튼튼한 밧줄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대화에서: 길들을 함께
실제 대화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여러 길을 함께 씁니다. 존 프레임은 전제 변증 안에서 증거를 쓰고, 팀 켈러는 의심하는 이에게 그 의심 밑에 깔린 믿음도 살펴보자고 청하면서 단서들과 부활의 역사를 함께 내놓습니다. 바울도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갔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어찌하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 내가 복음을 위하여 이것을 행함은 너희와 함께 복음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자 함이라.
고전 9:22-23
웨슬리는 이것을 "진리와 진실에 어긋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에게 자기를 맞춘 것이라고 풉니다 웨슬리. 다가가는 길은 달라도 복음은 바뀌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역사를 묻고, 어떤 이는 출발점을 묻습니다. 논증을 몰라 자기 믿음이 부끄러운 신자도 있고, 큰 그림을 보고 싶은 이도 있으며, 아픔 속에서 묻는 이에게는 논증보다 먼저 곁에 있어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먼저 그 물음을 듣고, 다섯 길이 저마다 지키는 것을 빌려 대답할 수 있습니다. 고전 변증과 증거 변증은 믿음이 공적인 역사 위에 서 있음을, 전제 변증은 하나님이 생각의 주인이심을, 개혁파 인식론은 평범한 신자의 믿음도 합리적일 수 있음을, 누적 논증은 삶 전체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웁니다.
다섯 길은 순위가 아니라 같은 복음을 섬기는 여러 손입니다. 대화로서의 변증은 이 과정의 마지막 과인 대화로서의 변증에서 다시 살핍니다. 다음 과 우주론적 논증과 설계 논증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논증들을 하나씩 살핍니다.
연습
- 연습 1 / 8
플랜팅가가 논증 없이도 합리적인 믿음의 예로 든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8
개혁파 인식론에서 하나님을 믿는 기본 믿음은 어디에서 생깁니까?
- 연습 3 / 8
칼뱅이 『기독교 강요』 1.7.5에서 성령의 증거로 얻는 확신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 연습 4 / 8
‘큰 호박’ 반론에 대한 플랜팅가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8
누적 논증은 어떻게 논합니까?
- 연습 6 / 8
약한 논증은 모아도 강해지지 않는다는 비판에 누적 논증은 어떻게 대답합니까?
- 연습 7 / 8
고린도전서 9:22-23이 여러 길을 함께 쓰는 일에 대해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8 / 8
교회의 한 친구가 하나님 존재 논증을 하나도 모르니 자기 믿음은 비합리적인 것 같다고 걱정합니다. 이 과에 맞는 대답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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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출처
- 앨빈 플랜팅가, 보증된 기독교 믿음 — 2000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논증 없이도 ‘기본적’으로 합리적일 수 있으며, 그것이 참이라면 성령의 일로 보증을 얻는다고 논한다(개혁파 인식론).
-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첫 판은 1536년 바젤에서 나온 작은 책이었고, 1559년의 마지막 판까지 고쳐 쓰며 늘어났다. 1권 7–8장은 성경의 권위가 성령의 내적 증언으로 확증된다고 하고, 성경의 신빙성을 보이는 증거들(8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이차적인 도움이라고 한다. 읽기
- 앨빈 플랜팅가, 하나님, 자유, 악 — 1974년. 하나님과 악이 논리적으로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주장에 맞서, 자유 의지 변호를 펼친다.
- 앨빈 플랜팅가, 이성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 1983 — 1983년의 논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적절하게 기본적’일 수 있다고 논하고, 그렇다면 무엇이든 기본적일 수 있느냐는 ‘큰 호박’ 반론을 스스로 제기하여 답한다.
- 베이질 미첼, 종교적 믿음의 정당화 — 1973년. 종교적 믿음은 하나의 결정적 증명이 아니라 여러 증거가 함께 쌓여 가장 잘 설명하는 누적 논증으로 정당화된다고 논한다.
-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1.1–1.5 — 1권. 사람마다 아는 옳고 그름의 법이 우주의 뜻을 푸는 실마리라고 논한다(도덕 논증).
-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2.3 — 예수에 대한 선택: 그런 말을 한 이가 사람일 뿐이라면 미치광이이거나 더 나쁜 자이니,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거나 아니면 미치광이이거나 더 나쁜 자다(뒤에 ‘거짓말쟁이, 미치광이, 주님’으로 요약되었다).
- C. S. 루이스, 신학은 시인가 1944 — 1944년의 강연. 자신이 기독교를 믿는 것은 해가 떠오른 것을 믿는 것과 같아서, 해를 보기 때문만이 아니라 해로 말미암아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G. K. 체스터턴, 정통 — 1908년. 자신이 기독교에 이르게 된 길을 그리며, 기독교만이 세상과 사람의 수수께끼에 맞아떨어지는 열쇠라고 논한다. 9장은 자신의 믿음이 작지만 한결같은 사실들이 쌓인 데서 왔다고 말한다.
-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 2008년. 의심하는 이들의 흔한 반론을 차례로 다룬 뒤, 기독교를 믿을 이유를 누적해서 제시한다. 믿는 이는 자기 믿음을, 믿지 않는 이는 자기 의심을 함께 의심해 보라고 권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변증의 여러 방법과 논증, 반론을 그 주장하는 이들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하며, 어느 한 방법만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