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 7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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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변증과 증거 변증

고전 변증은 먼저 이성과 창조 세계에서 하나님이 계심을 보이고 다음에 역사의 증거로 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하셨음을 보이는 두 걸음의 길이고, 증거 변증은 부활 같은 역사의 증거에서 바로 출발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함께 가리키는 한 걸음의 길입니다. 두 길 모두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가 함께 가진 이성과 증거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도미니코회 수도복을 입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책 앞에서 두 손을 들어 논증하는 초상화.
유스투스 판 헨트, 〈토마스 아퀴나스〉, 1474–1476년 무렵 · 출처

함께 가진 이성과 증거

첫 과에서 본 다섯 길 가운데 고전 변증과 증거 변증은 출발점이 같습니다.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는 같은 하나님의 세계에 살며, 같은 이성으로 생각하고, 같은 역사의 증거를 따져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길은 성경의 권위를 먼저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지 않고, 누구나 살펴볼 수 있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이것이 성경 자신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라고 하고 (롬 1:20),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에서 성경을 모르는 청중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전한 뒤 이렇게 끝맺습니다.

이는 그분께서 한 날을 정하사 그 날에 자신이 정하신 그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로 심판하실 터이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그 사람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심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일에 대한 확신을 주셨느니라, 하니라.

행 17:31

부활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일에 대한 확신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믿음 전체를 이 사건에 겁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지 아니하셨으면 우리의 선포하는 것이 헛것이요,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 15:14

베드로는 자기들이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사람들이라고 하고 (벧후 1:16), 누가는 "처음부터 목격자 되고 말씀의 사역자 된 사람들"이 전해 준 일을 "맨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한" 뒤 데오빌로가 "그 일들이 확실함을" 알게 하려고 씁니다 (눅 1:1-4). 크리소스토무스는 누가가 목격자를 앞세운 까닭을 이렇게 풉니다. "어떤 일을 믿는 가장 큰 근거가 실제로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에게서 그것을 받았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

두 걸음과 한 걸음

꽃과 덩굴무늬로 위와 왼쪽을 꾸민 필사본 첫 면으로, 금박을 입힌 큰 머리글자 Q로 시작하는 두 단의 라틴어 글이 쓰여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제1부 첫 면, 15세기 필사본(바젤 대학 도서관) · 출처

고전 변증은 두 걸음을 밟습니다. 첫걸음은 자연 신학, 곧 성경에 기대지 않고 이성과 창조 세계에서 하나님이 계심을 보이는 일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의 존재는, 그것이 우리에게 자명하지 않은 한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그분의 결과들로부터 논증될 수 있다"고 씁니다 신학대전 제1부 2문 2항. 움직임과 원인, 우연한 것들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다섯 길과 그 뒤의 논증들은 우주론적 논증과 설계 논증 과와 도덕 논증과 존재론적 논증 과에서 살핍니다.

그러나 첫 원인이 곧 삼위일체 하나님은 아닙니다. 아퀴나스도 이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삼위일체 같은 신앙 조항은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고, 계시를 전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의 반론에 답할 길만 남는다고 보았습니다. 진리의 반대는 논증될 수 없으므로 신앙을 반대하는 논거들은 "답변될 수 있는 난점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제1부 1문 8항. 그래서 둘째 걸음은 역사로 나아갑니다. 무엇보다 부활을 들어, 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하셨다는 증거를 보입니다. 아퀴나스는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리는 일 같은, 자연의 힘을 넘어서는 일들로 그 가르침을 확증하셨으니 계시를 믿는 것은 경솔한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1권 6장.

오늘 이 길을 대표하는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는 시작이 있는 것은 모두 원인이 있고 우주에는 시작이 있으니 우주에는 원인이 있다는 칼람 우주론적 논증으로 첫걸음을 딛습니다. 그다음에는 빈 무덤과 부활 후의 나타나심과 제자들이 부활을 믿게 된 일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예수의 부활이라는 역사의 논증으로 둘째 걸음을 딛습니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합리적 신앙. 고전 변증가들이 차례를 중요하게 보는 까닭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부활조차 설명되지 않은 이상한 일 하나로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먼저 알면 부활은 그분이 하신 일로 읽힌다는 것입니다.

증거 변증은 한 걸음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먼저 따로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말한 이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면, 그 한 사건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이자 그분이 예수의 말을 인정하셨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존 웨슬리도 사도행전 17:31을 풀며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심으로 그분이 모든 이의 영광스러운 재판관이 되실 것임을 이로써 증명하셨습니다"라고 씁니다 웨슬리. 고전 변증가들의 염려에 대해 증거 변증가들은, 부활이 아무 데서나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던 이에게 이스라엘의 성경이 기다리던 대로 일어났으므로 그 맥락 안에서 스스로 뜻을 드러낸다고 대답합니다.

프린스턴 신학교의 B. B. 워필드는 증거 변증(또는 고전 변증)의 대표로 꼽힙니다. 그는 1908년의 글 「변증학」에서 변증학을 신학의 기초를 놓는 학문으로 보고, 믿음은 증거에 근거한 확신이라고 했습니다 B. B. 워필드, 변증학. 그렇다고 증거만으로 사람이 믿게 된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죄인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되, 성령께서는 증거를 떠나서가 아니라 증거와 함께 믿음을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변증의 일을 하나님의 존재에서 기독교의 신적 기원과 성경으로 나아가는 차례로 나누었기에, 그를 고전 변증에 넣는 책도 있습니다.

오늘의 게리 하버마스는 마이클 리코나와 함께 ‘최소 사실’ 접근을 폅니다 게리 하버마스, 마이클 리코나, 예수 부활 변증. 회의적인 학자들도 대부분 받아들이는 몇 가지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고 믿은 체험을 했다는 것,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과 예수를 믿지 않던 주의 형제 야고보가 돌아섰다는 것, 그리고 그보다 수는 적지만 많은 학자가 받아들이는 빈 무덤입니다. 이 사실들을 함께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증거는 역사적 예수와 부활 과와 예수는 정말 부활했는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장점과 비판, 그리고 대답

두 길의 장점은 분명합니다. 상대가 서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고, 누구나 따져 볼 수 있는 사실을 내놓으며, 기독교가 역사에 일어난 일에 자기를 건 신앙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물음 앞에 선 신자에게도 붙잡을 이유를 줍니다. 매튜 헨리는 아테네에서 바울의 일이 "섭리의 일반적인 역사로 그들을 창조주를 알고 그분을 예배하도록 이끄는 것이었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다른 길들은 이렇게 비판합니다. 첫째, 전제 변증은 하나님을 증거의 재판정에 세우면 타락한 사람의 이성을 재판관 자리에 앉히는 셈이고, 그렇게 얻은 ‘있을 법한 신’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두 길은 이성을 쓰는 것이 이성을 하나님 위에 두는 일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이성도 증거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창조 세계는 분명히 말하여 바울이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고 할 정도이며 (롬 1:20), 성경 스스로 부활을 증거로 내놓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죄가 생각을 어둡게 했고 성령께서 마음을 여셔야 한다고 믿습니다.

둘째, 개혁파 인식론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합리적이려고 반드시 논증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크레이그는 여기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그는 신자가 기독교가 참인 줄 ‘아는’ 것은 성령의 증거로 말미암고, 논증과 증거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데 쓰인다고 나눕니다. 논증은 믿음의 기초를 대신하지 않고, 묻는 이에게 대답하고 걸림돌을 치우는 일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셋째, 역사의 논증은 기껏해야 개연성을 줄 뿐인데 믿음은 확실하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두 길은 믿음의 확신이 논증의 무게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의 일에 기댄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조지프 버틀러가 말했듯 우리는 삶의 거의 모든 일에서 개연성을 길잡이로 삼고 조지프 버틀러, 종교의 유비, 법정이 증언으로 판결하듯 증언을 믿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덧붙입니다. 높은 개연성은 믿음을 대신하지 못해도, 믿음이 맹목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대화에서

누가복음의 첫 낱말 'Quoniam'이 얽힘무늬와 붉은 점으로 꾸민 커다란 머리글자로 한 면을 채운 중세 필사본.
〈린디스판 복음서〉, 누가복음 첫머리, 715년 무렵 · 출처

친구가 증거가 있느냐고 물으면, 세상이 있다는 것, 우리가 옳고 그름을 안다는 것, 많은 역사가가 인정하는 예수의 죽음과 제자들의 변화처럼 그가 이미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아테네에서 그들의 제단과 시인들의 말에서 시작했습니다 (행 17:23, 17:28). 그리고 논증이 보여 주는 것과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을 정직하게 말하십시오.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수학의 증명이 아니고, 부활의 증거는 저울질할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누가가 바란 대로 그 확실함을 스스로 살펴보도록 누가복음을 함께 읽자고 청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른 길들이 일깨우는 것도 새겨 두십시오. 증거 앞에서 귀를 여시는 분은 성령이시고, 우리는 판결을 내리는 이가 아니라 증인입니다. 다음 과 전제 변증에서는 출발점 자체를 묻는 길을 살핍니다.

연습

  1. 연습 1 / 8

    역사의 증거, 무엇보다 부활에서 바로 출발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함께 가리키는 한 걸음의 길은 무엇입니까?

  2. 연습 2 / 8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제1부 2문 2항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무엇으로부터 논증될 수 있다고 말합니까?

  3. 연습 3 / 8

    아퀴나스에 따르면 계시를 전혀 믿지 않는 사람과 신앙을 두고 이야기할 때 남는 길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8

    고전 변증가들이 자연 신학을 먼저 세우는 까닭으로 이 과가 든 것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8

    하버마스와 리코나의 ‘최소 사실’ 접근은 어디에서 출발합니까?

  6. 연습 6 / 8

    전제 변증은 이 두 길이 타락한 이성을 하나님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힌다고 비판합니다. 두 길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크레이그가 기독교가 참인 줄 ‘아는’ 일과 그것을 ‘보이는’ 일을 나누어 한 말은 무엇입니까?

  8. 연습 8 / 8

    친구가 증거를 보여 주면 생각해 보겠다고 말합니다. 이 과에 맞는 대답은 무엇입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출처

  1.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 1265–1274년. 중세 신학을 집대성한 저작. 하나님과 창조와 섭리, 인간과 은혜, 그리스도와 성례를 두루 다루며, 하나님은 이성으로도 알려지시나 구원의 진리는 계시로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세계에 시작이 있었다는 것은 이성으로 증명되지 않고 믿음으로 붙든다고 한다(제1부 46문 2항). 읽기
  2.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1.6 — 1259–1265년경. 믿음의 진리를 믿는 것이 가벼운 일이 아님을, 하나님이 기적으로 그 가르침을 확증하셨다는 데서 보인다(1권 6장).
  3.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합리적 신앙 — 1994년(1984년의 『변증학 입문』을 고쳐 낸 책). 칼람 우주론적 논증(시작이 있는 것은 원인이 있고 우주는 시작이 있다)과 부활의 역사적 논증을 편다. 믿음이 참임을 아는 것(성령의 증언)과 다른 이에게 보이는 것(논증)을 구분한다.
  4. B. B. 워필드, 변증학 1908 — 1908년. 변증학을 신학의 기초를 놓는 학문으로 보고, 바른 이성이 기독교의 증거를 따져 볼 때 성령께서 그 증거와 함께 믿음을 일으키신다고 쓴다.
  5. 게리 하버마스, 마이클 리코나, 예수 부활 변증 — 2004년. 회의적인 학자들도 대부분 받아들이는 몇 가지 사실(예수의 죽음, 제자들의 체험, 바울과 야고보의 회심, 빈 무덤)에서 부활을 논하는 ‘최소 사실’ 접근.
  6. 조지프 버틀러, 종교의 유비 — 1736년. 자연에서 보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계시된 종교 사이의 유비로, 자연을 받아들이는 이신론자가 성경의 어려움 때문에 계시를 버릴 수 없다고 논한다. 개연성이 삶의 안내자라고 말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변증의 여러 방법과 논증, 반론을 그 주장하는 이들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하며, 어느 한 방법만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