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 10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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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론적 논증과 설계 논증

우주론적 논증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서 그 첫 원인을, 설계 논증은 세계의 질서에서 그 뒤의 지성을 가리킵니다. 두 논증은 창조주를 가리키지만, 그것만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검은 하늘의 수많은 별 가운데 타원형으로 빛나는 안드로메다 성운을 찍은 흑백 천체 사진.
아이작 로버츠, 〈안드로메다 성운〉, 1888년 · 출처

하늘이 선포하는 것

성경은 하나님이 계심을 논증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첫 문장은 선언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 1:1). 그러면서도 성경은 창조 세계가 지으신 분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1). 존 웨슬리는 하늘이 "달려가는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읽기 쉬운 책과 같습니다"라고 덧붙입니다 웨슬리.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롬 1:20

바울은 성경을 모르는 루스드라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비를 주시며 결실의 계절을 주사 음식과 기쁨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 주심으로써 증거 없이 자신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행 14:17). 성경에 기대지 않고 이성과 창조 세계에서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을 따지는 일을 자연 신학이라 하고, 고전 변증은 이것을 첫걸음으로 삼습니다 (고전 변증과 증거 변증 과). 다만 히브리서는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라고 말합니다 (히 11:3). 논증은 이정표가 될 수 있어도 믿음을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신지에 대한 물음 자체는 하나님은 존재하는가?에서 다룹니다.

왜 무엇인가가 있는가

길게 늘어진 검은 곱슬 가발을 쓰고 갈색 벨벳 망토를 두른 남자가 차분히 이쪽을 바라보는 초상입니다.
크리스토프 베른하르트 프랑케,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1695년 무렵 · 출처

우주론적 논증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그 원인을 묻습니다. 그 모양은 여럿입니다.

논증전제결론
아퀴나스의 첫째·둘째 길움직이는 것은 다른 것에 의해 움직여지고,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의 원인이 아니다. 이 사슬은 무한히 이어질 수 없다움직여지지 않는 제일 원동자, 제일 원인이 있다
아퀴나스의 셋째 길, 라이프니츠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것들은 그 있음의 까닭을 자기 밖에 둔다스스로 필연적으로 있는 존재가 있다
칼람 논증시작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원인이 있다. 우주는 시작이 있다우주는 원인이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에서 내놓은 다섯 길 가운데 앞의 셋이 이 논증입니다. 둘째 길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러므로 제일 작용인을 상정하는 것이 필연적이며, 모든 사람은 이것에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신학대전 제1부 2문 3항. 그가 말하는 사슬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줄이 아니라, 손이 지팡이를 움직이듯 지금 기대어 있는 원인들의 사슬입니다. 그는 세계에 시작이 있다는 것은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고 믿음으로만 받는다고 보았습니다 신학대전 제1부 46문 2항.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느냐고 물은 것도 셋째 길과 같은 물음입니다.

칼람 논증은 이 논증을 발전시킨 중세 이슬람 신학의 한 갈래(칼람)에서 이름을 얻었고, 오늘날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가 다시 세웠습니다. 크레이그는 둘째 전제를 위해, 끝없는 과거의 사건을 하나하나 거쳐 오늘에 이를 수는 없다는 철학적 논증과 우주론의 증거를 듭니다. 그리고 공간과 시간의 원인은 그것들 너머에 있으며 인격적이라고 논합니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합리적 신앙. 다만 대폭발(빅뱅) 이론은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가 뜨겁고 조밀한 상태에서 팽창해 왔다고 말할 뿐, 그 상태가 절대적인 시작이었는지는 아직 답하지 못합니다. 우주론은 둘째 전제를 뒷받침할 수는 있어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흔히 나오는 반론은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모든 것에 원인이 있어야 한다면 하나님에게도 원인이 있어야 하고, 원인 없는 것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세계여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그러나 이 논증들은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에 기대어 있거나 시작이 있는 것에 원인이 있다고 말하고, 그 끝에서 기대지도 시작되지도 않은 존재에 이릅니다. 성경도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이라 부릅니다 (시 90:2). 그러니 물음의 무게는 러셀의 뒷말, 왜 세계가 아니냐는 데 있고, 그 대답은 세계가 기대어 있거나 시작이 있다는 전제입니다. 비판자들은 그 전제와 함께, 세계 안의 인과 원리가 세계의 시작에도 맞는지를 묻습니다. 논증은 그 전제들만큼 강합니다.

시계와 미세 조정

설계 논증은 세계의 질서에서 출발합니다. 아퀴나스의 다섯째 길은 지성이 없는 것들이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두고 "화살이 궁수에 의해 과녁으로 쏘아지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다섯째 길. 1802년 영국의 윌리엄 페일리는 이렇게 논했습니다 윌리엄 페일리, 자연 신학. (1) 들판에서 주운 시계처럼 부분들이 한 목적을 위해 맞물린 것은 만든 이를 가리킨다. (2) 눈 같은 생물의 기관은 어떤 시계보다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3) 그러므로 생물도 지은 이를 가리킨다.

그보다 앞서 데이비드 흄은 이런 논증에 두 가지를 물었습니다 데이비드 흄,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 세계는 기계보다 동물이나 식물을 더 닮았으니 사람의 작품에 빗대는 유비는 약하고, 설계자가 있다 해도 그가 한 분이며 선하고 무한하다는 데까지는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찰스 다윈의 자연 선택은 더 큰 도전이었습니다. 생물이 환경에 맞게 짜인 것을 설계자 없이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다윈 자신도 자서전에서, 한때 확실해 보였던 페일리의 논증이 자연 선택이 발견된 뒤로 힘을 잃었다고 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대답은 갈립니다. 진화를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쓰시는 길로 보는 이들이 있고, 생물의 짜임에서 여전히 설계를 읽는 이들도 있습니다 (과학과 신앙 과). 그리고 많은 변증가는 설계 논증의 무게를 생물에서 우주의 법칙과 상수로 옮겼습니다.

이것이 미세 조정 논증입니다. 많은 물리학자는 중력의 세기 같은 자연의 상수나 우주의 처음 조건이 조금만 달랐어도 별과 화학과 생명이 있을 수 없었으리라고 봅니다. 그 범위가 얼마나 좁은지, 거기에 확률을 매길 수 있는지, 더 깊은 이론이 그 값을 설명할지는 지금도 논쟁 중입니다. 크레이그는 이렇게 논합니다. (1) 미세 조정은 물리적 필연이나 우연이나 설계에서 왔다. (2) 필연이나 우연에서 오지 않았다. (3) 그러므로 설계에서 왔다. 가장 널리 논의되는 반론은 다중 우주입니다. 서로 다른 상수를 가진 우주가 셀 수 없이 많다면, 생명이 가능한 우주에 우리가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다른 우주에는 그것을 볼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물리학적 이유로 다중 우주를 진지하게 여기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대답하는 이들은 다중 우주가 관측되지 않았고, 우주들을 낳는 장치에도 다시 조정이 필요할 수 있으며, 그래도 왜 무엇인가가 있는지는 남는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의 반론은 이 논증들이 과학이 아직 설명하지 못한 틈새에 하나님을 끼워 넣어, 틈새가 메워질 때마다 하나님이 물러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경고를 귀담아들어 왔습니다. 대답하는 이들은 강한 형태의 논증이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 곧 세계와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이 생명을 허락한다는 데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과학은 법칙으로 설명하지만 왜 법칙이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여 주는가

검은 우주 속에 둥근 지구 전체가 떠 있고, 흰 구름 사이로 푸른 바다와 아프리카와 아라비아의 갈색 땅, 남극의 얼음이 보입니다.
아폴로 17호 승무원(NASA), 〈푸른 구슬〉, 1972년 12월 7일 · 출처

이 논증들이 성공한다면, 우주론적 논증은 스스로 있는 첫 원인을, 설계 논증은 세계의 질서 뒤에 있는 지성을 보여 줍니다. 그 원인이 한 분이며 선하고 무한하다는 것은 흄이 물은 대로 더 따져야 할 일이고, 아퀴나스도 다섯 길 뒤에 그것을 길게 논했습니다. 삼위일체와 성육신은 그도 계시로만 안다고 했습니다 (믿음과 이성 과). 논증은 창조주를 가리키지만, 그것만으로 그리스도 안의 은혜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변증의 다섯 길은 이 논증들의 자리를 다르게 봅니다. 고전 변증은 이것을 첫걸음으로, 역사의 증거를 둘째 걸음으로 삼습니다. 증거 변증은 이 논증을 거치지 않고 부활 같은 증거에서 바로 출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전제 변증의 반 틸은 이 논증들이 중립적 출발점에서 ‘있을 법한’ 신에 이르면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신을 남긴다고 비판했지만, 원인과 질서가 성경의 하나님을 전제할 때에만 설명된다는 것을 보이는 데에는 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전제 변증 과). 개혁파 인식론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이 논증 없이도 합리적이지만 논증이 그 믿음을 굳혀 줄 수 있다고 보고, 누적 논증은 이것을 여러 실마리 가운데 하나로 엮습니다 (개혁파 인식론과 누적 논증 과). 그 한계는 논증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과에서 이어 살핍니다.

대화에서는 이 논증들을 이기는 수단이 아니라 함께 생각해 보자는 초대로 건네십시오. 친구가 우주는 그냥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는지 함께 물어볼 수 있습니다. 대폭발과 미세 조정에 대해서는 과학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을 정직하게 나누고, 믿음을 오늘의 물리학이나 지식의 빈틈에 걸지 마십시오. 이정표가 가리키는 분을 성경은 이름으로 부릅니다. 만물이 아들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고 "모든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 (골 1:17). 과학과 신앙의 관계는 과학과 신앙은 충돌하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다음 과 도덕 논증과 존재론적 논증에서는 양심과 하나님이라는 생각 자체에서 출발하는 논증을 봅니다.

연습

  1. 연습 1 / 8

    칼람 논증의 둘째 전제는 무엇입니까?

  2. 연습 2 / 8

    토마스 아퀴나스의 첫째·둘째 길이 말하는 원인의 사슬은 어떤 사슬입니까?

  3. 연습 3 / 8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반론에 이 과가 소개한 대답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8

    데이비드 흄이 설계 논증에 제기한 비판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8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이 나온 뒤 많은 변증가가 설계 논증의 무게를 옮긴 곳은 어디입니까?

  6. 연습 6 / 8

    미세 조정 논증에 대한 다중 우주 반론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이 과에 따르면 두 논증이 성공할 때 보여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8. 연습 8 / 8

    친구가 과학이 우주의 시작을 이미 다 설명했다고 말합니다. 이 과가 권하는 대화는 무엇입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출처

  1.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 1265–1274년. 중세 신학을 집대성한 저작. 하나님과 창조와 섭리, 인간과 은혜, 그리스도와 성례를 두루 다루며, 하나님은 이성으로도 알려지시나 구원의 진리는 계시로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세계에 시작이 있었다는 것은 이성으로 증명되지 않고 믿음으로 붙든다고 한다(제1부 46문 2항). 읽기
  2.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합리적 신앙 — 1994년(1984년의 『변증학 입문』을 고쳐 낸 책). 칼람 우주론적 논증(시작이 있는 것은 원인이 있고 우주는 시작이 있다)과 부활의 역사적 논증을 편다. 믿음이 참임을 아는 것(성령의 증언)과 다른 이에게 보이는 것(논증)을 구분한다.
  3.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1927 — 1927년의 강연. 하나님의 존재 논증들을 거부하고, 종교가 두려움에 뿌리를 둔다고 말한다.
  4. 윌리엄 페일리, 자연 신학 — 1802년. 들판에서 주운 시계가 시계공을 가리키듯, 생물의 정교한 짜임이 설계자를 가리킨다고 논한다.
  5. 데이비드 흄,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 — 1779년(사후). 설계 논증을 비판한다: 세상과 사람의 작품의 유비는 약하고, 설계자가 있다 해도 그가 하나요 선하며 무한하다는 데까지는 가지 못한다. 10부에서는 회의론자 필로의 입으로 에피쿠로스의 물음, 곧 악이 있는데 하나님이 전능하고 선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되살린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변증의 여러 방법과 논증, 반론을 그 주장하는 이들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하며, 어느 한 방법만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