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 20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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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종교와 문화 앞에서

한국에는 무속과 불교와 유교가 오래 함께 살아 왔고, 복음은 그 사이로 들어왔습니다. 이 과는 각 종교를 그 신자들이 말하는 대로 존중하며 듣고, 공통의 다리를 찾되 복음이 다른 곳은 분명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길을 아테네의 바울과 『천주실의』에서 배웁니다.

훈장 앞에서 꾸중을 듣고 눈물을 훔치는 아이와, 둘러앉아 그 모습을 보며 웃는 아이들을 그린 조선의 풍속화.
김홍도, 〈서당〉, 18세기 후반 · 출처

여러 종교가 함께 사는 땅

한국은 여러 종교가 오래 함께 살아 온 땅입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무속이고, 불교는 4세기에 고구려로 들어왔으며, 유교는 조선의 나라와 집안을 다스린 가르침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천주교)는 18세기 말에, 개신교는 19세기 말에 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전통들을 한꺼번에 지니고 삽니다. 명절에는 차례를 지내고,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절에 등을 달고, 큰일을 앞두고는 점을 보기도 합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이런 자리에 섰습니다. 그는 그들의 종교심을 알아보고 말을 열었는데, 흠정역은 그 첫마디를 "너희 아테네 사람들아, 내가 알고 보니 너희가 모든 것에서 지나치게 미신에 사로잡혀 있도다"로 옮기는데 (행 17:22), ‘미신에 사로잡혀’로 옮긴 헬라어는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크다는 말이어서 ‘종교심이 많다’로 옮기는 번역도 많습니다. 그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친 단과 그들의 시인의 말에서 출발해 창조주와 심판과 부활을 전했습니다 (성경 속의 변증 과). 웨슬리는 바울이 "알지 못하는, 그러나 새롭지는 않은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라고 풉니다 웨슬리. 존중하며 다리를 찾되, 다리 끝에서는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바울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나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행 17:30).

유교와 『천주실의』

검은 사각 모자를 쓰고 중국 선비의 검은 옷을 입은 흰 수염의 리치가 팔짱을 끼고 서 있고, 오른쪽 위에 빛나는 해 모양의 문장이 있습니다.
유문휘(에마누엘 페레이라), 〈마테오 리치〉, 1610년 무렵 · 출처

유교를 따르는 이들은 그것을 신을 섬기는 종교라기보다 사람답게 사는 길로 말합니다.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인과 부모를 섬기는 효와 마땅한 몸가짐인 예를 가르쳤고, 사람은 자기를 닦아 군자가 되고 집안과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제사는 그 효를 세상을 떠난 부모와 조상에게까지 잇는 예로, 내가 어디서 왔는지 잊지 않는 감사입니다. 성경도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명합니다 (출 20:12). 여기에 다리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는 이 다리를 놓으려 한 사람입니다. 그는 유학자의 옷을 입고 한문으로 글을 썼고, 1603년 베이징에서 『천주실의』를 펴냈습니다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 중국 선비와 서양 선비가 묻고 답하는 이 책은 성경보다 이성에서 출발해, 만물을 지으신 천주가 계시고 사람의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논합니다. 옛 유교 경전이 말하는 상제가 곧 천주라고 하고, 불교의 공(空)과 성리학의 이(理)는 만물을 지은 인격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는 책 끝에 짧게 나옵니다. 이성과 공통의 바탕에서 시작하는 고전 변증의 길과 닮은 책입니다 (고전 변증과 증거 변증 과).

조선의 학자들도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수광은 『지봉유설』(1614)에서 이 책을 소개했고, 안정복 같은 학자는 반박하는 글을 썼습니다. 18세기 말에는 젊은 학자들이 이 책과 다른 한문 서학서를 읽고 토론하다가 신앙에 이르렀고, 1784년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한국의 교회는 책을 읽고 따져 본 이들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리가 어디까지 이어지느냐는 물음이 남았습니다. 리치는 조상 제사를 공경의 예로 보아 허락했지만, 로마는 18세기에 이를 금했습니다. 조선의 신자들도 베이징의 주교에게서 금한다는 답을 들었고, 1791년 윤지충은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주를 불살랐다는 이유로 외사촌 권상연과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조선 사회는 이를 부모를 저버린 일로 보았고, 두 사람은 신앙의 양심을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가톨릭 교회는 1939년 중국의 예식을 두고 판단을 바꾸었고 한국 교회도 이듬해 이를 따랐으며, 오늘 한국 개신교의 대부분은 추도예배를 드립니다. 이 물음은 그리스도인은 제사를 지내도 되는가?에서 다룹니다. 다만 유교와 복음이 갈리는 곳도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하늘은 도덕의 이치만이 아니라 우리를 아시고 부르시는 인격이신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스스로 닦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집니다.

불교와 무속

불자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네 가지 거룩한 진리로 말합니다. 삶에는 괴로움이 있고, 괴로움은 갈애와 집착에서 일어나며, 그것이 꺼진 자리인 열반이 있고, 거기에 이르는 바른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기대어 일어났다 사라지며, 변하지 않는 나라는 실체는 없다는 무아의 가르침도 그 중심에 있습니다. 부처는 ‘깨달은 이’라는 뜻이고, 한국 불교는 참선으로 마음을 깨닫는 선의 전통과 모든 생명을 향한 자비를 소중히 여깁니다. 괴로움과 덧없음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이 가르침에 그리스도인도 귀 기울일 것이 있습니다. 성경도 우리 생명을 "잠시 나타났다가 그 뒤에 사라져 버리는 수증기"라고 합니다 (약 4:14).

복음이 다른 곳은 세 가지입니다. 괴로움 너머에 우리를 지으시고 사랑하시는 인격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요일 4:10). 구원은 내가 애써 이르는 깨달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엡 2:8). 아미타불의 자비에 기대는 정토 신앙처럼 불교 안에도 바깥에서 오는 도움을 말하는 전통이 있어, 이 점은 좋은 대화의 자리가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사람을 하나님이 지으시고 이름으로 부르시는 인격으로 보고, 그 소망을 몸의 부활에 둡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무속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전통입니다. 그 안에 사는 이들은 산 사람과 죽은 이와 신령들이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말하고, 무당은 굿으로 그 사이를 잇습니다. 병을 낫게 하고 액을 막고 복을 빌며, 원통하게 떠난 이의 한을 풀어 산 사람과 화해시킵니다. 그 밑에는 아픔과 두려움, 억울하게 떠난 이를 위로하고 싶은 깊은 마음이 있습니다. 성경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엡 6:12).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정사들과 권능들을 벗기사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공공연히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고 말합니다 (골 2:15).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영들을 달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너희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그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라" (요일 4:4). 이 주제는 천사와 귀신은 실재하는가?에서 다룹니다. 한국 교회 안에도 복을 비는 데 머무는 신앙이 있었다는 지적이 많으니, 이 말은 우리에게도 해당합니다.

대화에서

해지고 누렇게 바랜 표지에, 줄을 그은 테두리 안 세로 세 줄로 가운데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와 양옆에 ‘광셔팔년’, ‘심양 문광셔원 간’이 한글로 크게 찍혀 있다.
존 로스와 한국인 번역자들,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의 표지, 1882년 · 출처

19세기 후반부터 한국에는 새 종교가 많이 생겼고, 그 가운데에는 성경의 말을 쓰면서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자리에 두거나 새 계시를 성경 위에 두는 무리도 있습니다. 분별의 표지는 이단은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그 안의 사람들도 조롱이 아니라 사랑으로 대합니다.

기독교는 서양 종교가 아니냐는 물음도 자주 듣습니다 (기독교는 서양 종교인가?). 한국 교회의 이야기가 한 대답입니다. 천주교는 한국 학자들이 책을 읽으며 시작되었고, 개신교는 한국 사람들이 함께 옮긴 한글 성경이 선교사보다 먼저 들어오며 시작되었습니다 (19세기 복음주의와 선교, 그리고 한국 과). 그 신앙은 나라 잃은 시대와 신사참배의 시련을 지나며 이 땅 사람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20세기 과).

대화에서 이것은 먼저 상대의 전통을 그 사람이 말하는 대로 듣는다는 뜻입니다. 절에 다니는 어머니께는 무엇이 마음에 평안을 주는지, 차례를 지키는 어른께는 그 상에 담긴 마음이 무엇인지 여쭈어 보십시오. 공통의 다리는 기쁘게 인정하고, 다른 곳은 분명하되 부드럽게 말하십시오. 무엇보다 부모를 정성껏 공경하는 삶이 가장 분명한 대답입니다. 다음 과 대화로서의 변증에서는 이 과정이 배운 것을 대화의 자리로 모읍니다.

연습

  1. 연습 1 / 8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어디서 말을 시작했습니까?

  2. 연습 2 / 8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는 어떤 책입니까?

  3. 연습 3 / 8

    1791년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된 이유로 전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8

    불교의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바르게 말한 것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8

    이 과가 말하는, 불교와 복음이 갈리는 곳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8

    무속의 세계에서 영들을 두려워하던 친구에게 복음이 주는 말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성경의 말을 쓰는 새 종교 모임에 대해 이 과가 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8. 연습 8 / 8

    차례를 지키는 어른과 이야기할 때 이 과가 권하는 태도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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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 — 1603년. 중국의 유학자와 서양 학자의 문답으로 천주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을 논하며, 옛 유교 경전의 상제를 천주와 잇는다. 조선의 학자들도 읽었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변증의 여러 방법과 논증, 반론을 그 주장하는 이들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하며, 어느 한 방법만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