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 3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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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의 변증

성경의 사람들은 듣는 이가 선 자리에서 대답을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아는 이에게는 성경과 증인으로, 성경을 모르는 이에게는 창조와 섭리와 그들의 시인들의 말로 말했지만,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부활과 회개로 이끌었습니다.

기둥이 선 광장에서 바울이 손을 들어 말하고, 둘러앉은 아테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몸짓으로 듣는 판화.
베르나르 피카르 공방, 〈아테네에서 설교하는 바울〉, 1709년 · 출처

살아 계신 하나님과 우상

변증은 교회가 나중에 만들어 낸 일이 아닙니다. 성경 속에서 이미 하나님의 사람들은 묻는 이들과 맞서는 이들에게 이유를 들어 대답했습니다.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바알 사이를 오갔습니다. 갈멜 산에 모인 백성에게 엘리야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의견 사이에서 머뭇거리려느냐"고 묻고 (왕상 18:21), 불로 응답하는 신이 하나님이라는 시험을 내놓았습니다 (왕상 18:24). 제단 앞에서 그는 "주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과 또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다시 돌이키신 것을 이 백성이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왕상 18:37). 불이 내리자 백성은 엎드려 "주 그분은 하나님이시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왕상 18:39). 이 장면에서 대답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엘리야가 구한 것은 논쟁의 승리가 아니라 백성의 마음이 돌아오는 일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우상을 만드는 사람을 차근차근 따라가며 그 속을 드러냅니다. 그는 한 나무의 얼마로는 불을 피워 떡을 굽고 고기를 구워 먹고, 그 나머지로는 신상을 만들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내 신이니 나를 건지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사 44:17). 그런데도 "내가 나무줄기에 엎드리리요"라고 말하는 이가 없습니다 (사 44:19). 선지자는 그 까닭을 "그들의 마음을 닫으사 그들이 깨닫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사 44:18). 첫 과에서 본 변증의 세 면으로 말하면, 믿지 않는 생각이 스스로 안고 있는 모순을 드러내는 ‘공격’입니다. 이 날카로운 말은 먼저 우상에 끌리던 하나님의 백성에게 한 것이었고, 그 끝은 초대였습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느니라" (사 44:22).

예수와 사도들의 대답

노란 겉옷을 두른 흰 머리의 베드로가 손을 들어 말하고, 그 앞에 모인 남녀가 앉고 서서 귀 기울여 듣습니다.
마솔리노, 〈베드로의 설교〉, 1426–1427년 (피렌체 브란카치 경당) · 출처

예수께서는 질문과 성경으로 대답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시고 (마 22:42), 다윗이 시편에서 그리스도를 주라 부르는데 어떻게 그의 자손이 되느냐고 되물으셨습니다 (마 22:43-46). 자기가 하시는 일도 증거로 내놓으셨습니다.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들은 믿으라" (요 10:38). 또 세례 요한과 자기의 일과 아버지와 성경을 증인으로 세우시며 성경 기록들을 두고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요 5:39).

사도들도 증인과 증거를 들었습니다. 누가는 목격자들이 전해 준 일들을 "맨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한" 뒤 차례대로 썼다고 밝히고 (눅 1:3), 그 까닭을 "각하가 이미 설명 받은 그 일들이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눅 1:4). 오순절에 베드로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너희 자신도 아는 바와 같이" 일어난 표적에서 시작해 (행 2:22) 다윗의 시편과 이 날까지 남아 있는 다윗의 돌무덤을 들고 (행 2:29), "우리는 다 그 일에 증인이로다"라고 선언합니다 (행 2:32).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기 말이 "참된 말과 맑은 정신의 말"이며 (행 26:25) 이 일이 "한 구석에서 일어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행 26:26).

그 중심에 부활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받아 전한 것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게바에게 보이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다는 것이라. 그 뒤에 그분께서 오백여 형제에게 한 번에 보이셨는데 그중의 대다수는 지금 이때까지 남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잠들었느니라.

고전 15:3-6

많은 이가 이 말을 살아 있는 증인들에게 물어보라는 뜻으로 읽습니다. 바울은 그 일이 없었다면 "우리의 선포하는 것이 헛것이요,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며"라고까지 말합니다 (고전 15:14). 성경의 믿음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 위에 서 있습니다. 그 증거는 예수는 정말 부활했는가?에서, 그 논증은 이 과정의 역사적 예수와 부활 과에서 다룹니다.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에서

바울은 아테네에서 "그 도시가 온통 우상 숭배에 빠진 것을 보매 그의 영이 그의 속에서 격동하므로" (행 17:16) 회당에서, 또 장터에서 날마다 논쟁했습니다. 에피쿠루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이 그를 아레오바고로 데려가자 (행 17:18-19), 그는 그들의 제단에서 말을 시작합니다.

그때에 바울이 마르스의 언덕 한가운데 서서 이르되, 너희 아테네 사람들아, 내가 알고 보니 너희가 모든 것에서 지나치게 미신에 사로잡혀 있도다. 내가 지나다니며 너희가 섬기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글이 있는 제단을 발견하였나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경배하는 그분을 내가 너희에게 밝히 알려 주리라.

행 17:22-23

이어 그는 만물을 지으시고 생명과 숨을 주시는 창조주, 인류를 한 피에서 만드시고 그 때와 거주의 경계를 정하시는 섭리의 하나님을 전합니다 (행 17:24-27). 그들의 시인 아라투스의 시구 "우리 또한 그분의 후손이라"도 인용합니다 (행 17:28). 그리고 이제는 모든 사람이 회개해야 한다고, 하나님이 심판할 날을 정하시고 그 일을 맡기신 사람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일에 대한 확신을 주셨느니라"고 맺습니다 (행 17:31). 어떤 이는 비웃고 어떤 이는 다시 듣겠다고 했으며, 디오니시우스와 다마리스를 비롯한 몇 사람은 믿었습니다 (행 17:32-34).

매튜 헨리는 바울이 유대인에게는 예언과 이적으로 구속자를 가리켰지만, 여기서 할 일은 "섭리의 일반적인 역사로 그들을 창조주를 알고 그분을 예배하도록 이끄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풉니다 매튜 헨리. 이 연설을 두고 변증가들의 읽기는 갈립니다. 고전 변증과 증거 변증에 선 이들은 바울이 듣는 이들도 받아들이는 것, 곧 그들의 종교심과 시인의 말과 창조와 섭리에서 출발해 참 하나님께로 이끌었다고 봅니다. 이성과 창조 세계는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에게 함께 열린 바탕이라는 것입니다. 웨슬리도 바울이 "그들에게 자연 신학을 강의합니다"라고 씁니다 웨슬리. 자연 신학은 성경에 기대지 않고 창조 세계와 이성에서 하나님을 아는 일입니다.

전제 변증에 선 이들은 같은 장면에서 맞섬을 봅니다. 아테네 사람들도 하나님의 세계에 살며 그분을 알지만 그 진리를 붙잡아 두고 있고 (롬 1:18), 바울은 그들의 출발점을 중립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들의 예배를 알지 못하고 하는 것이라 부르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으신 창조주와 심판자를 선포했습니다. 신들이 사람의 일에 무관심하다는 에피쿠루스 학파와 신을 세상에 깃든 이성으로 보던 스토아 학파의 전제에 함께 맞선 것이고, 시인의 말도 그들의 체계가 아니라 자기의 가르침 안에서 썼다고 봅니다. 웨슬리의 같은 주석도 바울이 "에피쿠루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를 똑같이 논박합니다"라고 덧붙입니다 웨슬리.

두 읽기 모두 바울이 듣는 이가 선 자리에서 시작했고, 끝내 회개와 심판과 부활로 이끌었다는 데는 뜻을 같이합니다. 갈리는 것은 그 출발점이 어떤 바탕이냐입니다. 이 과정은 어느 쪽도 고르지 않으며, 두 읽기는 고전 변증과 증거 변증 과와 전제 변증 과에서 이어집니다.

대화에서

왼쪽에서 바울이 겉옷을 찢고, 가운데에서 바나바가 두 팔을 들어 무리가 가져오는 화관과 제물 그릇을 물리치며, 무릎 꿇은 사람들 너머 언덕으로는 제물을 끌고 오는 행렬이 내려온다.
야코프 피나스, 〈루스드라에서 신으로 떠받들리는 바울과 바나바〉, 1628년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 출처

성경의 대답들은 듣는 이가 선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바울은 성경을 아는 아그립바에게 "대언자들의 글을 믿으시나이까"라고 묻고 (행 26:27), 성경을 모르는 루스드라 사람들에게는 비와 결실의 계절을 주시는 하나님을 말했습니다 (행 14:15-17). 그러나 어디서 시작하든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로, 회개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아테네에서도 비웃는 이와 더 듣겠다는 이와 믿는 이가 함께 있었습니다.

대화에서 이것은 먼저 상대의 제단과 시인을 알아보는 일입니다. 친구가 아끼는 노래나 책, 그가 바라는 정의와 사랑에는 그보다 큰 것을 가리키는 실마리가 있곤 합니다. 거기서 시작하되 거기에 머물지 말고 예수와 그분의 부활로 이야기를 이어 가십시오. 사도행전 전체의 흐름은 성경 개관 과정의 사도행전 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음 과 초대 교회의 변증가들에서는 사도들 뒤의 교회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봅니다.

연습

  1. 연습 1 / 8

    갈멜 산에서 엘리야가 백성에게 던진 물음의 뜻은 무엇입니까?

  2. 연습 2 / 8

    이사야 44장은 우상을 만드는 사람의 어떤 모순을 드러냅니까?

  3. 연습 3 / 8

    마태복음 22:41-46에서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4. 연습 4 / 8

    누가는 복음서를 쓴 목적을 무엇이라고 밝힙니까?

  5. 연습 5 / 8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에서 바울은 어디서 말을 시작해 어디로 이끌었습니까?

  6. 연습 6 / 8

    아테네 연설을 두고, 바울이 그들의 출발점을 중립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창조주와 심판자를 선포해 그 전제에 맞섰다고 읽는 길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아테네 연설을 공통 기반으로 읽는 이들과 전제의 맞섬으로 읽는 이들이 함께 인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8. 연습 8 / 8

    친구가 자기가 아끼는 노래 가사를 들려주며 그 속의 그리움을 이야기합니다. 이 과의 가르침에 맞는 태도는 무엇입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변증의 여러 방법과 논증, 반론을 그 주장하는 이들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하며, 어느 한 방법만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