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22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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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성과 감리교 운동

1738년 5월 24일 런던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고 적은 존 웨슬리는 조지 휫필드와 함께 들판에서 설교하고 회심한 이들을 속회로 길렀습니다. 1740년 무렵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에드워즈의 노샘프턴과 휫필드의 순회 설교로 대각성이 일어났고,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사람들 가운데서도 교회가 자랐습니다.

탁 트인 들판의 나무 아래에서 검은 가운의 설교자가 높은 곳에 서서 두 팔을 들어 말하고, 수많은 사람이 풀밭에 서고 앉아 듣는 그림.
토머스 월리, 〈1750년 6월 볼턴에서 설교하는 조지 휫필드〉, 1863년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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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존 웨슬리(1703–1791)는 잉글랜드 국교회의 사제였습니다. 1735년 북아메리카의 조지아 식민지로 선교하러 갔던 그는 실망을 안고 1738년 초 돌아왔습니다. 그해 5월 24일 저녁, 그는 마지못해 런던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한 신앙 모임에 갔습니다. 누군가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고, 아홉 시 15분 전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마음에 이루시는 변화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는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고 적었습니다.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 신뢰한다고 느꼈고, 그분이 자기 죄를, 바로 자기의 죄를 없애 주셨다는 확신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웨슬리, 일지.

루터가 비텐베르크에서 붙든 복음이 두 세기 뒤 한 잉글랜드 사제의 마음에 닿은 것입니다(1517년 비텐베르크 과). 이 밤의 뜻과 웨슬리의 가르침은 신학 과정의 웨슬리와 감리교 운동 과에서 다룹니다.

이듬해 2월, 옥스퍼드 시절의 벗 조지 휫필드(1714–1770)는 교회 강단이 닫히자 브리스틀 근처 킹스우드의 탄광 노동자들에게 들판에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건물 밖에서 설교하기를 몹시 꺼리던 웨슬리도 1739년 4월 2일 브리스틀 근처에서 처음으로 야외 설교를 했습니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고 했고 (롬 10:17), 교회에 오지 않던 광부와 노동자들이 들판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속회와 말 탄 설교자들, 그리고 찬송

흰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노년의 감리교 감독 애즈베리가 검은 옷을 입고 책상에 손을 얹은 채 앞을 바라본다.
존 패러다이스, 〈프랜시스 애즈베리〉, 1813년 · 출처

웨슬리는 회심한 이들을 그냥 두지 않고 신도회로 모았습니다. 1742년 브리스틀에서 집회소의 빚을 갚으려고 열두 명 안팎씩 한 주에 한 푼을 모으게 한 일이, 속장이 매주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살피는 속회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신도 설교자들을 세웠고, 1744년부터 해마다 설교자들과 연회를 열었습니다. 웨슬리 자신은 반세기 동안 말을 타고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다니며 들판과 장터에서 설교했고, 때로는 폭도에게 맞고 쫓겨났습니다. 설교자들도 정해진 구역을 말을 타고 돌았습니다.

동생 찰스 웨슬리(1707–1788)는 이 부흥을 수천 편의 찬송으로 노래했습니다. 그가 1739년 자기 회심 한 해를 기념해 지은 찬송은 「만 입이 내게 있으면」으로 한국 교회에서도 불립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고 했고 (고후 5:17), 존 웨슬리는 이 구절에 "세상을 만드시는 능력만이 그리스도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주해했습니다 웨슬리.

웨슬리는 평생 국교회 사제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독립한 뒤 1784년 그곳의 감리교인들은 볼티모어에서 감리교회를 조직했고, 프랜시스 애즈베리를 비롯한 순회 설교자들이 말을 타고 개척지를 누볐습니다. 영국의 감리교인들도 1791년 웨슬리가 죽은 뒤 차츰 국교회에서 따로 섰습니다.

아메리카의 대각성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1734년부터 이듬해까지 매사추세츠 노샘프턴의 회중교회 목사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의 교회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1737년에 펴낸 『놀라운 회심 이야기』는 대서양 양쪽에서 읽히며 대각성의 앞선 보고가 되었습니다. 1739년 다시 아메리카에 온 휫필드는 이듬해까지 조지아에서 뉴잉글랜드까지 다니며 수천 명이 모인 들판과 광장에서 설교했습니다. 1740년 무렵 식민지 곳곳에서 일어난 이 부흥을 대각성이라 부릅니다. 순회 설교자들을 반기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 사이에서 교회들이 갈라지기도 했고, 장로교회는 1741년 둘로 나뉘었다가 1758년 다시 합쳤습니다.

부흥의 설교는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도 닿았습니다. 휫필드는 그들에게도 설교했고, 1740년 남부 식민지의 농장주들에게 공개 편지를 보내 노예를 잔혹하게 다루는 죄를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예제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았고, 뒤에는 조지아에서 노예제를 허락하자고 했으며 자기 고아원을 위해 노예를 부렸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흑인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1770년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실버블러프에서 흑인 침례교회가 모였고, 주인에게서 풀려난 설교자 조지 리일은 조지아에서 설교하다 뒤에 자메이카로 건너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노예로 태어나 자유를 산 감리교 설교자 리처드 앨런이, 기도하던 흑인 교인들을 백인 교인들이 끌어내자 그 교회를 떠나 1794년 베델 교회를 세웠고, 1816년 아프리카 감리교 감독교회의 첫 감독이 되었습니다 앨런, 리처드 앨런 감독의 생애와 체험과 복음 사역.

열매와 비판, 그리고 오늘

가운데 작은 종탑이 있는 길고 단정한 3층 석조 건물 위로 아기 천사 둘이 라틴어 표어가 적힌 띠를 펼쳐 들고 있다.
작자 미상, 〈나소 홀〉, 뉴저지 대학(오늘의 프린스턴 대학교), 1760년 · 출처

부흥은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교회에 들어왔고, 1746년 뉴저지 대학(오늘의 프린스턴 대학) 같은 학교들이 세워졌으며, 원주민에게 가는 선교사들이 나섰습니다.

그러나 비판도 따랐습니다. 보스턴의 목사 찰스 촌시는 1743년 『뉴잉글랜드 신앙의 형편에 관한 때맞은 생각』에서 부흥의 많은 부분이 참된 신앙이 아니라 들뜬 감정이라고 보았고, 회심 체험을 말하지 못하는 목사들을 거듭나지 않은 자라고 몰아세우는 순회 설교자들과 예배의 무질서를 걱정했습니다. 그는 북받친 감정이 아니라 진리로 밝아진 이성이 신앙을 이끌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실제로 지나친 이들도 있었습니다. 1743년 뉴런던에서 책들을 불태운 설교자 제임스 대븐포트는 이듬해 자기 잘못을 공개로 고백했습니다.

에드워즈는 부흥을 버리지도 모든 것을 감싸지도 않았습니다. 1746년 『신앙 감정론』에서 그는 참된 신앙이 거룩한 감정에 크게 있으며, 그 참됨은 삶의 열매로 드러난다고 분별했습니다. 열두째 표지는 ‘은혜롭고 거룩한 감정은 그리스도인의 실천에서 활동하고 열매를 맺는다’고 말합니다 신앙 감정론 III.12.1. 그 가르침은 신학 과정의 경건주의와 대각성 과에서 봅니다.

부흥의 모습은 오순절과 닮았습니다.

이제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찔려 베드로와 나머지 사도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까? 하거늘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7-38

에스겔은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서 "이 뼈들이 살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들었습니다 (겔 37:3).

이에 내가 그분께서 명령하신 대로 대언하였더니 숨이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살아서 자기 발로 서는데 심히 큰 군대더라.

겔 37:10

웨슬리는 이 환상이 영혼의 부활과 몸의 부활과 함께 "환난의 상태에서 자유와 평화로 교회가 부활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풀었습니다 웨슬리. 18세기의 부흥은 말씀을 전하고 들을 때 성령께서 메마른 교회를 살리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동시에 그 열매는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바뀐 삶으로 분별해야 하고, 회심한 이들은 작은 모임 속에서 길러져야 하며, 노예를 부린 설교자들 곁에서 노예 된 이들이 세운 교회가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 과 근대 선교의 세기에서는 이 부흥에서 자라난 선교의 시대를 봅니다.

연습

  1. 연습 1 / 7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웨슬리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2. 연습 2 / 7

    웨슬리가 회심한 이들을 기른 방법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7

    다음 일을 일어난 차례대로 바르게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7

    휫필드와 노예제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7

    리처드 앨런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7

    보스턴의 목사 찰스 촌시는 대각성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7. 연습 7 / 7

    웨슬리는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 환상이 무엇을 나타낸다고 풀었습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출처

  1. 존 웨슬리, 일지 1738 —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이트 거리 모임의 기록. 루터의 로마서 서문이 읽힐 때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고 쓴다.
  2. 조나단 에드워즈, 놀라운 회심 이야기 1737 — 1737년. 1734–1735년 노샘프턴에서 일어난 부흥과 회심들을 목사로서 기록한 글로, 대각성의 앞선 보고가 되었다.
  3. 리처드 앨런, 리처드 앨런 감독의 생애와 체험과 복음 사역 1833 — 1833년. 앨런이 죽은 뒤 펴낸 자서전으로, 노예로 태어나 자유를 사고 감리교 설교자가 된 일, 필라델피아 성 조지 교회에서 기도하던 흑인 교인들이 무릎 꿇은 채 끌려 나와 그 교회를 떠난 일, 1794년 베델 교회와 1816년 아프리카 감리교 감독교회를 세운 일을 전한다. 교회를 떠난 해를 그는 1787년으로 적었지만 몇 해 뒤로 보는 역사가들도 있다.
  4. 찰스 촌시, 뉴잉글랜드 신앙의 형편에 관한 때맞은 생각 1743 — 1743년. 보스턴의 목사 촌시가 에드워즈의 부흥 변호에 맞서 쓴 책으로, 부흥의 많은 부분이 참된 신앙이 아니라 들뜬 감정이라 하고, 회심 체험을 말하지 못하는 목사들을 거듭나지 않은 자로 모는 순회 설교자들과 예배의 무질서를 비판하며, 들뜬 감정이 아니라 깨우친 이성이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5.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 감정론 1746 — 참된 신앙은 거룩한 감정에 크게 있으며, 그 참됨은 삶의 열매로 드러난다고 분별한다. 읽기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회 역사의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교회의 이야기를 각 전통이 기억하는 대로 공정하게 전하며, 교회가 지은 죄의 역사도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