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2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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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와 순교자들

네로 뒤로 4세기 초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신들과 황제에게 제사하지 않는다는 까닭으로 때때로 붙잡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155년 무렵 서머나의 폴리캅, 203년 카르타고의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 250년 데키우스와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를 지나며 교회는 순교자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기억했고, 넘어진 이들을 다시 받는 길도 배웠습니다.

금빛 바탕에 흰 옷을 입은 순교자들이 종려나무 사이로 면류관을 받쳐 들고 걸어가며, 머리 위에 폴리캅 같은 이들의 이름이 적힌 모자이크.
작자 미상, 〈순교자들의 행렬〉(부분), 라벤나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6세기 · 출처

연표에서 보기

이름 때문에

로마 제국은 여러 민족의 신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지켜 준다는 신들과 황제의 형상 앞에 제사하는 일은 백성의 의무로 여겨졌고,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거절했습니다. 이웃들은 그들을 신을 섬기지 않는 무리, 황제에게 충성하지 않는 무리로 보았습니다. 이런 비난에 변증가들이 어떻게 답했는지는 변증학 과정의 초대 교회의 변증가들 과에서 봅니다.

112년 무렵 비두니아의 총독 소 플리니우스는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신처럼 찬송한다고 알리고, 끝까지 고백하는 이들을 처형했다고 쓴 뒤, 다른 죄가 없어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만으로 벌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황제는 그들을 찾아다니지는 말되, 고발되어 뉘우치지 않으면 벌하라고 답했습니다 소 플리니우스, 서간집 10.96–97. 그래서 2세기의 박해는 제국 전체에서가 아니라, 고발하는 이웃과 총독에 따라 이곳저곳에서 때때로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날을 내다보며 썼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그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6

‘순교자’로 옮기는 헬라어 는 본래 증인이라는 뜻입니다. 순교자는 목숨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한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서머나 교회에 "너는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하고 (계 2:10), 웨슬리는 서머나를 두고 "그곳에서는 초기 시대에 많은 순교자의 피가 흘렸습니다"라고 덧붙입니다 웨슬리.

서머나와 카르타고

누렇게 바랜 양피지에 라틴어가 두 단으로 쓰여 있고, 오른쪽 단 가운데에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수난기가 시작됨을 알리는 붉은 제목이 있다.
장크트갈렌 수도원 필사자,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수난기〉 첫머리, 9–10세기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 필사본 577) · 출처

155년 무렵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이 붙잡혔습니다. 이레나이우스는 그가 사도들에게 배웠고 아주 늙어서 순교했다고 전합니다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3.3.4. 총독이 그리스도를 욕하라고 다그치자, 노인은 여든여섯 해를 섬기는 동안 그분이 자기에게 해를 끼치신 적이 없으니 자기를 구원하신 왕을 욕할 수 없다고 답했고, 화형대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다른 교회들에 이 일을 알린 편지는 신약 밖에서 남아 있는 가장 이른 순교 이야기로 꼽힙니다. 편지는 해마다 그가 순교한 날 모여 그날을 그의 생일로 지키겠다고 말하는데 서머나 교회, 폴리캅의 순교, 순교자가 죽은 날을 하늘에 태어난 날로 기념하는 관습이 여기서 보입니다.

203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는 젖먹이 아들을 둔 젊은 어머니 페르페투아가 여종 펠리키타스, 세례를 준비하던 다른 이들과 함께 붙잡혔습니다. 페르페투아가 옥에서 쓴 일기는 그리스도인 여성이 직접 쓴 글로 남아 있는 가장 이른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신앙을 버리라고 애원하는 아버지에게 그는 옆에 놓인 물병을 가리키며,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없듯 자기도 그리스도인 말고 다른 무엇으로 불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수난기. 좋은 집안의 딸과 여종은 원형 경기장에서 함께 죽었고, 가톨릭 교회(천주교)는 지금도 미사의 오랜 감사 기도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부릅니다.

같은 카르타고에서 몇 해 앞서 테르툴리아누스는 박해자들을 향해, 너희가 우리를 칠 때마다 우리 수는 늘어나니 그리스도인의 피는 씨앗이라고 썼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 변증 50. 흔히 들리는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은 그의 말을 뒷날 다듬은 꼴입니다.

데키우스와 디오클레티아누스

250년 데키우스 황제는 제국의 모든 주민에게 신들에게 제사하고 그 증명서를 받으라고 명했는데, 제국 전체에 걸친 첫 박해였습니다. 많은 이가 고문을 받거나 죽었지만, 두려움에 제사를 드리거나 돈을 주고 증명서만 산 이도 많았습니다. 카르타고의 감독 키프리아누스는 박해 동안 몸을 숨기고 편지로 교회를 돌보았고, 이 일로 비판도 받았습니다. 박해가 그친 251년 그는 『배교자들에 관하여』에서 넘어진 이들을 어떻게 다시 받을지 다루며, 회개의 길은 열려 있으나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자신은 258년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303년 2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아래에서 대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를 직접 겪은 에우세비우스는 교회 건물이 헐리고 성경이 불태워졌으며 많은 이가 고문을 받고 죽었다고 전합니다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8권. 315년 무렵 락탄티우스는 『박해자들의 죽음에 관하여』에서 이 박해와 박해한 황제들의 최후를 기록했습니다. 박해는 동방에서 313년 무렵까지 이어졌습니다. 박해 때 성경을 내어 준 성직자들을 어떻게 대할지를 두고 북아프리카 교회는 뒤에 도나투스파의 분열을 겪었습니다.

순교자를 기억하는 교회

순교자 라우렌티우스의 무덤 위에 세운 옛 성당 안, 홈이 파인 큰 돌기둥들 사이에서 한 여인이 아이를 안고 무릎 꿇어 기도한다.
콘스탄틴 한센, 〈로마 성벽 밖 산 로렌초 성당 내부〉, 1850년 무렵 · 출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 나로 인해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며 너희를 대적하여 거짓으로 온갖 종류의 악한 것을 말할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0-11

히에로니무스는 이 말씀을 풀며 "그분이 「의로 인하여」라고 분명히 덧붙이신 것은, 많은 사람이 자기 죄 때문에 핍박을 받으나 그렇다고 의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씁니다 히에로니무스. 순교자를 순교자로 만든 것은 고난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증언한 분이었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폴리캅의 날을 지켰듯, 교회는 순교자들이 죽은 날을 기념일로 지키고 그들의 무덤 위에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가톨릭 교회와 동방의 오랜 교회인 정교회는 오늘도 교회력에서 2월 23일에 폴리캅을 기념하고, 순교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어 우리를 위해 기도한다고 믿어 그들의 기도를 청합니다(가톨릭 교회는 이를 ‘전구’라고 부릅니다). 개신교회는 대개 성인에게 기도를 청하지 않지만 순교자들을 믿음의 본으로 기억합니다. 잉글랜드 교회에서 자란 성공회와 마르틴 루터의 가르침을 따르는 루터교회의 교회력에도 폴리캅의 날이 있고, 16세기 잉글랜드의 존 폭스가 옛 교회와 자기 시대의 순교자들을 엮은 『행전과 기념비(순교자의 책)』는 오래 개신교인들에게 읽혔고, 가톨릭 교회는 같은 시대 잉글랜드에서 신앙 때문에 죽은 자기 신자들을 순교자로 기억합니다. 한국의 순교자들은 한국 천주교의 시작과 박해 과에서 만납니다.

박해는 지나간 일이 아닙니다. 오늘도 여러 나라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때문에 갇히고 죽임을 당하며, 그 이야기는 오늘의 세계 교회 과에서 이어집니다. 순교자들은 칼을 들지 않고 그 이름을 지켰고, 요한은 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의 말로" 그를 이겼다고 말합니다 (계 12:11).

그런데 박해받던 교회도 힘을 얻은 뒤에는 다른 이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래서 순교자를 기리는 교회는 넘어진 이들에게 회개의 길을 열어 두었던 것처럼, 자기 죄도 회개하며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 과 초대 교회의 예배와 삶에서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모이고 살았는지 봅니다.

연습

  1. 연습 1 / 7

    112년 무렵 소 플리니우스의 물음에 트라야누스 황제가 내린 답은 무엇입니까?

  2. 연습 2 / 7

    ‘순교자’로 옮기는 헬라어 마르튀스의 본래 뜻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7

    서머나 교회의 편지가 전하는 폴리캅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7

    다음 사건을 일어난 차례대로 바르게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7

    페르페투아가 옥중 일기에서 아버지에게 한 말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7

    데키우스의 박해 뒤에 키프리아누스는 넘어진 이들에 대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7. 연습 7 / 7

    테르툴리아누스가 『변증』에서 쓴 말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출처

  1. 소(小) 플리니우스, 서간집 10.96 — 112년경.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신처럼' 찬송한다고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고하고, 끝까지 고백하는 이들을 처형했다며 이름만으로 벌해야 하는지 묻는다. 트라야누스는 그리스도인을 찾아다니지는 말되, 고발되어 뉘우치지 않으면 벌하라고 답한다(10.97).
  2.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 180년경. 영지주의에 맞서 창조주 하나님과 성육신을 변호하고,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새롭게 하신다(총괄갱신)고 가르친다. 5권은 의인들이 새로워진 창조 안에서 다스린다는 소망을 말한다. 읽기
  3. 서머나 교회, 폴리캅의 순교 — 155–160년경.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이 체포되어 순교한 일을 서머나 교회가 전한 편지로, 그리스도를 욕하라는 요구에 ‘86년 동안 그분을 섬겼다’고 답한 말(9장)과 교회가 해마다 그의 순교일을 기념하려 한 일(18장)을 전한다.
  4. 페르페투아와 익명의 편집자,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수난기 — 203년. 카르타고에서 순교한 젊은 어머니 페르페투아와 여종 펠리키타스의 이야기로, 페르페투아가 옥중에서 직접 쓴 일기를 담고 있다. 신앙을 버리라고 애원하는 아버지 앞에서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말고는 달리 불릴 수 없다며 물러서지 않은 일을 전한다.
  5. 테르툴리아누스, 변증 50 — 197년경. 로마의 총독들에게 그리스도인을 변호하며,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의 피가 씨앗이 된다고 말한다(50장).
  6. 키프리아누스, 배교자들에 관하여 251 — 251년. 데키우스 박해 때 제사를 드리거나 증명서를 산 배교자들을 교회가 어떻게 다시 받을지를 다루며, 회개의 길을 열되 가볍게 넘기지 말라고 한다.
  7.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8 — 325년경. 303년부터 디오클레티아누스 아래에서 일어난 대박해를 직접 본 이로서 전한다. 교회 건물이 헐리고 성경이 불태워졌으며, 많은 이가 고문과 죽음을 당했다.
  8. 락탄티우스, 박해자들의 죽음에 관하여 — 315년경. 303년부터의 대박해와 박해한 황제들의 최후를 전한다. 콘스탄티누스가 밀비우스 다리 전투 전날 꿈에서 하늘의 표지를 병사들의 방패에 그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고(44장), 313년 밀라노에서 합의하고 리키니우스가 공포한 문서, 곧 그리스도인과 모든 사람에게 예배의 자유를 준 이른바 밀라노 칙령을 옮겨 싣는다(48장).
  9. 존 폭스, 행전과 기념비(순교자의 책) 1563 — 1563년. 잉글랜드의 존 폭스가 초대 교회의 순교자들부터 메리 1세 때 불타 죽은 개신교인들까지의 이야기를 엮은 책으로, 흔히 ‘순교자의 책’이라 불리며 판을 거듭해 오래 개신교인들에게 읽혔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회 역사의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교회의 이야기를 각 전통이 기억하는 대로 공정하게 전하며, 교회가 지은 죄의 역사도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