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증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논증은 걸림돌을 치우고 믿음이 합리적임을 보이며 그리스도를 권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믿음을 주지는 못합니다. 믿음은 성령께서 말씀으로 말미암아 또 말씀과 함께 일하셔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우리의 사랑과 삶도 그 증언의 일부입니다.
논증이 할 수 있는 일
앞의 두 과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네 논증을 살폈습니다. 이런 논증이 하는 일은 작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로막는 오해와 걸림돌을 치우고, 믿음이 이유 없는 도약이 아님을 보이며, 듣는 이를 그리스도께로 권합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니라"고 전합니다 (행 18:4). 그런데 그 고린도의 교회에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
유대인은 표적을,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권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전 1:24). 바울은 토론을 그치지 않았지만, 자기 말과 복음 선포를 "사람의 지혜의 유혹하는 말들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과 권능을 실증함으로" 하였다고 말합니다 (고전 2:4).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토론의 솜씨가 아니라 전해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논증이 할 수 없는 일
논증은 그것만으로 믿음을 주지 못합니다. 바울은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라고 하고 (고전 2:14),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라고 하셨습니다 (요 6:44). 바울은 은혜로 믿음을 통해 얻는 구원을 두고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고 말합니다 (엡 2:8). 매튜 헨리는 가장 힘 있는 논증과 간절한 호소도 사람을 어리석음에서 지키기에 넉넉하지 않다고 하며, "특별한 은혜가 없이는 죄인들의 마음을 하나님과 거룩함에게로 돌이킬 수는 더욱 없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 관계를 성경을 두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용의 하늘에 속함, 교리의 효력, 문체의 위엄, 모든 부분의 일치, … 그리고 그 전체의 완전함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풍성하게 스스로 증명하는 논증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성경의 무오한 진리와 신적 권위에 대한 우리의 온전한 확신과 보증은, 우리 마음속에서 말씀으로 말미암아 또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에서 나온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5항
이 항은 성경의 권위를 말하지만, 논증과 성령의 관계를 잘 보여 줍니다. 논증은 참되고 풍성하되, 온전한 확신은 성령께서 주십니다. 그분은 말씀을 떠나서가 아니라 말씀으로 말미암아, 또 말씀과 함께 일하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도 효과적 부르심을 ‘하나님의 영의 사역’이라 하고, 성령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설득하시고 능력을 주십니다’라고 가르칩니다 소요리문답 31문. 감리교회를 일으킨 존 웨슬리는 아버지께서 강제로가 아니라 은혜의 "강하고도 부드러우나 여전히 거절할 수 있는 움직임"으로 이끄신다고 풀었습니다 웨슬리. 그 이끄심을 사람이 거절할 수 있느냐를 두고 두 전통은 갈리지만, 믿음이 하나님의 이끄심에서 온다는 데는 뜻이 같습니다.
철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수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은 마음에는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썼습니다 파스칼, 팡세 277. 그는 1654년 11월 23일 밤의 체험을 짧게 적어 옷에 꿰매어 지녔는데, 거기서 그가 만난 분은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셨다고 고백합니다 파스칼, 메모리알. 그가 이성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첫 원인이 있다고 아는 것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의 내기도 이 자리에서 읽어야 합니다 파스칼, 팡세 233. 이성이 하나님이 계신지 결정해 주지 못한다고 여기는 이에게 그는, 우리는 이미 배에 오른 사람처럼 걸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이 계신 쪽에 걸어 이기면 모든 것을 얻으며 져도 잃는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심을 증명하는 논증이 아니라 무엇이 걸려 있는지 보게 하는 호소입니다. 믿음은 마음먹는다고 생기지 않는다는 반론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이에게 믿음을 가로막는 정념을 줄이고 찾으라고 권했습니다. 내기를 두고 나오는 다른 반론은 파스칼과 니체에서 다룹니다.
길들의 대답과 삶의 증언
변증의 다섯 길은 모두 믿음이 성령의 선물이라고 고백하면서, 논증이 그 일을 어떻게 섬기는지는 다르게 봅니다. 고전 변증과 증거 변증은 성령께서 논증과 증거를 도구로 쓰시며, 워필드의 말처럼 증거를 떠나서가 아니라 증거와 함께 믿음을 주신다고 봅니다 워필드, 변증학 (고전 변증과 증거 변증 과). 전제 변증은 논증이 중립 지대가 아니라 하나님을 고백하는 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보고, 불신앙의 전제가 이성과 의미를 떠받치지 못함을 보인 뒤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전제 변증 과). 개혁파 인식론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논증 없이도 합리적이며, 논증은 반론에 답하고 믿음을 굳히는 데 쓰인다고 봅니다. 누적 논증은 여러 실마리를 모아 그리스도를 권합니다 (개혁파 인식론과 누적 논증 과).
삶도 그 증언의 일부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고 (요 13:35), 베드로는 비방하는 이웃이 "너희의 선한 행위들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벧전 2:12). 소망의 이유를 대라는 명령도 온유함과 두려움과 선한 양심 안에 있습니다 (벧전 3:15-16).
그래도 모든 물음이 풀리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더 분명히 나타나지 않으시느냐는 물음은 정직한 물음이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억지로 끌지 않고 사랑으로 부르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왜 보이지 않는가?). 모세는 "은밀한 일들은 주 우리 하나님께 속하거니와 계시된 그 일들은 영원토록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속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신 29:29). 그러니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해도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아버지께서 누구를 이끄시는지 감히 판단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끌림을 받지 못했거든 이끌림을 받도록 기도하십시오"라고 권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대화에서는 할 수 있는 만큼 이유를 대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상대가 설득되지 않았다고 실패한 것이 아니고, 설득되었다고 우리의 공로도 아닙니다. 바울이 말할 때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여시므로" 루디아가 주의를 기울였듯이 (행 16:14), 우리는 말하고 기도하며 살고, 마음을 여시는 일은 그분께 맡깁니다. 다음 과 역사적 예수와 부활에서는 기독교의 중심에 있는 부활을 두고 역사의 증거를 살핍니다.
연습
- 연습 1 / 8
이 과에 따르면 논증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8
고린도전서 1:24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권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이들은 누구입니까?
- 연습 3 / 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5항에 따르면 성경의 권위에 대한 온전한 확신은 어디에서 옵니까?
- 연습 4 / 8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31문은 효과적 부르심을 무엇이라고 가르칩니까?
- 연습 5 / 8
파스칼의 내기는 어떤 성격의 말입니까?
- 연습 6 / 8
파스칼이 1654년 밤의 체험을 적은 글에서 고백한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 연습 7 / 8
변증의 다섯 길이 논증에 대해 함께 고백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8 / 8
오랜 대화 끝에도 친구가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과에 맞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끝까지 읽으면 읽음이 됩니다. 눌러서 끄고 켤 수 있습니다.
관련 주제
출처
- 블레즈 파스칼, 팡세 277 (Brunschvicg), 423 (Lafuma) — 마음에는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 블레즈 파스칼, 메모리알 1654 (Lafuma 913) — 1654년 11월 23일 밤의 체험을 적어 옷에 꿰매 지닌 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다.'
- 블레즈 파스칼, 팡세 233 (Brunschvicg), 418 (Lafuma) — 내기: 신이 있다는 쪽에 걸어 이기면 모든 것을 얻고, 져도 잃는 것이 없다.
- B. B. 워필드, 변증학 1908 — 1908년. 변증학을 신학의 기초를 놓는 학문으로 보고, 바른 이성이 기독교의 증거를 따져 볼 때 성령께서 그 증거와 함께 믿음을 일으키신다고 쓴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변증의 여러 방법과 논증, 반론을 그 주장하는 이들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하며, 어느 한 방법만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