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와 종교개혁
중세의 안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믿는 것을 이성으로 이해하고, 믿지 않는 이에게도 그 이유를 보이려 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성을 버리지 않았지만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재판하는 것은 거절하고 성경을 확신하게 하시는 성령의 증거를 가르쳤으며, 파스칼은 마음과 내기로 찾는 이를 불렀습니다.
중세: 이해를 구하는 믿음
믿음과 이성 과에서 본 안셀무스의 두 책은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이 변증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보여 줍니다. 『프로슬로기온』에서 그는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라는 말씀에서 출발합니다 (시 14:1). 우리는 하나님을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분으로 믿는데, 그 어리석은 자도 이 말을 들으면 이해하니 그런 분은 적어도 생각 속에는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 속에만 있다면 실재 속에도 있는 것을 더 크게 생각할 수 있으니, 그분은 생각 속에도 실재 속에도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셀무스는 이 논증을 기도로 맺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 이것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안셀무스, 프로슬로기온 3장.
같은 시대의 수도사 가우닐로는 이 논리라면 더없이 훌륭한 섬도 생각하기만 하면 있어야 하느냐고 반박했습니다. 이 논쟁과 뒷날의 비판은 도덕 논증과 존재론적 논증 과에서, 안셀무스의 생애와 신학은 신학 과정의 안셀무스와 스콜라 신학의 시작 과에서 다룹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는 변증을 위한 책이었습니다. 안셀무스는 이 책을 청한 이들이 이성으로 믿음에 이르려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이해하며 기뻐하고,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누구에게든지 그를 납득시킬 준비를 항상 갖추기 위해서"라고 씁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 1권 1장. 이 과정의 표어가 된 베드로의 말씀입니다 (벧전 3:15).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여자에게서 나시고 주리고 목마르며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말이라고 비웃었습니다 1권 3장. 앞 과에서 본 켈수스의 반론이 천 년 뒤에도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안셀무스는 그리스도에 관해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그리스도를 잠시 제쳐 두고 이성으로 따라가 보자고 했습니다. 죄의 빚을 갚아야 할 이는 사람이지만 갚을 수 있는 이는 하나님뿐이니,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분이 오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하나님이 계신가를 묻고, 운동에서, 작용인에서, 우연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에서, 완전함의 정도에서, 세계의 다스림에서 출발하는 다섯 길을 내놓았습니다. 움직이는 것은 다른 것에 의해 움직여지고 그 사슬은 끝없이 거슬러 갈 수 없으니, 다른 무엇에도 움직여지지 않는 첫째 원동자가 있어야 하며 "모든 사람은 이것을 하나님으로 이해한다"는 식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제1부 2문 3항. 같은 항에서 그는 악이 있다는 반론을 첫째로 정직하게 들었습니다. 그가 기댄 말씀은 바로 앞 항에서 든 로마서입니다 제1부 2문 2항.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롬 1:20
다섯 길이 이르는 곳은 첫째 원동자, 첫째 원인, 필연적 존재, 가장 완전한 존재, 모든 것을 목적으로 이끄는 지성입니다. 토마스는 이어지는 문제들에서 그 존재가 어떤 분인지 따지지만, 삼위일체와 성육신은 계시로만 안다고 보았습니다. 이 논증들의 오늘의 모습과 반론은 우주론적 논증과 설계 논증 과에서 다룹니다. 그는 『대이교도대전』도 썼는데, 구약을 받는 유대인과는 구약에서, 성경을 함께 받지 않는 이슬람교도와 이교도와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자연 이성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신학 전체는 신학 과정의 토마스 아퀴나스 과에서 봅니다.
종교개혁: 말씀 아래의 이성
종교개혁자들도 이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장 칼뱅은 어디에나 종교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 마음에 신성에 대한 감각이 있다는 증거로 들며 "우상숭배조차 이 사실을 넉넉히 증명한다"고 썼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1.3.1. 그러나 죄로 흐려진 눈에 성경은 안경과 같아서, 성경은 "우리 마음속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신성에 대한 인상들을 모아" 참 하나님을 분명히 보여 준다고 했습니다 1.6.1.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어디서 오느냐는 물음에 칼뱅은, 논증으로 성경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보이기는 쉽다고 하면서도 "성령의 증거가 이성보다 뛰어나다"고 답했습니다 1.7.4.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그 말씀을 인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렇게 씁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전 2:12
그러면서도 칼뱅은 다음 장에서 성경의 오래됨과 이루어진 예언과 순교자들의 증언 같은 논증을 길게 펼치고, 그것들을 연약한 우리를 돕는 둘째 자리의 도움이라 불렀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1.8. 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여러 논증을 꼽은 뒤, 우리의 온전한 확신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또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에서 나온다고 고백합니다 1장 5항.
마르틴 루터는 이성을 두 자리에서 다르게 보았습니다. 이 세상의 일을 다스리는 데서는 이성을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로 높였고, 1521년 보름스 제국 의회에서는 성경의 증언이나 분명한 이성으로 설득되지 않으면 취소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이성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길을 스스로 정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재판하려 들면 거칠게 꾸짖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논제에서 그는 지음 받은 것들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 보려는 영광의 신학 대신,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아는 십자가의 신학을 말했습니다 루터, 하이델베르크 논제. 바울도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라고 말합니다 (고전 1:21). 종교개혁자들이 거절한 것은 생각하는 일이 아니라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재판관으로 앉는 일이었습니다 (루터: 십자가 신학과 칭의 과, 츠빙글리, 칼뱅, 개혁파 신학 과).
파스칼: 마음과 내기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기독교를 변호하는 책을 준비하다 세상을 떠났고, 그 메모가 『팡세』로 남았습니다. 그는 이성이 하나님이 계신지 결정해 주지 못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이 물음 앞에서 걸지 않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쪽에 걸어 이기면 모든 것을 얻고, 져도 잃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파스칼, 팡세 233. 이것은 증명이 아니라, 이성이 데려다주지 못한 문턱에서 찾기 시작할 이유를 주는 말입니다. 그는 마음에는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도 썼습니다 팡세 277. 히브리서는 하나님이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히 11:6). 내기를 두고 나오는 반론과 대답은 파스칼과 니체: 신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에서 다룹니다.
대화에서
이 시대의 변증가들은 서로 다른 자리에 섰습니다. 안셀무스와 토마스는 이성이 믿음을 섬기며 믿지 않는 이와도 함께 걸을 수 있다고 보았고, 종교개혁자들은 이성이 말씀 아래에서 일할 때 바로 선다고 보았으며, 파스칼은 이성이 멈춘 자리에서 마음에 호소했습니다. 이 과정은 이들을 서로 보완하는 목소리로 듣습니다.
칼뱅은 악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떠드는데도 그 입을 막을 분명한 증거가 손에 없어 당황하는 선량한 이들을 위로합니다. 성령께서 경건한 이들의 믿음을 굳게 하시는 보증과 인이시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1.7.4. 대화에서 모든 반론을 그 자리에서 이기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안셀무스처럼 기도하며 생각하고, 토마스처럼 상대의 가장 강한 반론을 먼저 들으며, 파스칼처럼 찾는 사람 곁에 서십시오. 다음 과 근대와 오늘에서는 이성이 모든 것의 재판관으로 나선 시대의 변증을 봅니다.
연습
- 연습 1 / 8
안셀무스는 『프로슬로기온』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는다고 말합니까?
- 연습 2 / 8
수도사 가우닐로가 안셀무스의 논증에 맞서 든 예는 무엇입니까?
- 연습 3 / 8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가 답하려 한 불신자들의 반론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8
토마스 아퀴나스의 다섯 길 가운데 첫째 길은 무엇에서 출발합니까?
- 연습 5 / 8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섯 길만으로는 무엇을 알 수 없다고 보았습니까?
- 연습 6 / 8
칼뱅에 따르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온전한 확신은 어디서 옵니까?
- 연습 7 / 8
루터가 거칠게 꾸짖은 이성은 어떤 이성입니까?
- 연습 8 / 8
파스칼의 내기는 무엇을 하려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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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출처
-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프로슬로기온 1077–1078 —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으로 쓴 기도이자 논증. 하나님을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논한다. 읽기
- 안셀무스,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 1098 — 속죄와 성육신에 대한 고전적 논의. 읽기
-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 1265–1274년. 중세 신학을 집대성한 저작. 하나님과 창조와 섭리, 인간과 은혜, 그리스도와 성례를 두루 다루며, 하나님은 이성으로도 알려지시나 구원의 진리는 계시로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세계에 시작이 있었다는 것은 이성으로 증명되지 않고 믿음으로 붙든다고 한다(제1부 46문 2항). 읽기
-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첫 판은 1536년 바젤에서 나온 작은 책이었고, 1559년의 마지막 판까지 고쳐 쓰며 늘어났다. 1권 7–8장은 성경의 권위가 성령의 내적 증언으로 확증된다고 하고, 성경의 신빙성을 보이는 증거들(8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이차적인 도움이라고 한다. 읽기
- 마르틴 루터, 하이델베르크 논제 1518 — ‘영광의 신학자’와 ‘십자가의 신학자’를 대비하며, 하나님은 고난과 십자가 안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신다고 말한다.
- 블레즈 파스칼, 팡세 233 (Brunschvicg), 418 (Lafuma) — 내기: 신이 있다는 쪽에 걸어 이기면 모든 것을 얻고, 져도 잃는 것이 없다.
- 블레즈 파스칼, 팡세 277 (Brunschvicg), 423 (Lafuma) — 마음에는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변증의 여러 방법과 논증, 반론을 그 주장하는 이들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하며, 어느 한 방법만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