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오늘
계몽주의가 이성을 재판관으로 세우자 변증가들은 개연성과 설계와 역사의 증거로 답했고, 개혁파 안에서는 변증의 자리를 두고 프린스턴과 암스테르담이 다르게 보았습니다. 20세기의 작가들과 기독교 철학의 부흥은 오늘 우리가 걷는 변증의 여러 길을 열었습니다.
이성의 시대
18세기 계몽주의는 이성을 모든 것의 재판관으로 세웠습니다. 많은 교양인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은 믿으면서도 계시와 기적과 예언은 의심하는 이신론으로 기울었습니다. 그 배경과 칸트의 비판은 신학 과정의 계몽주의와 근대 신학 과에서 다룹니다. 뒷날 더럼의 주교가 된 조지프 버틀러는 1736년 『종교의 유비』에서 이신론자들에게 답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작품으로 받아들이는 자연에도 그들이 성경에서 걸려 넘어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어려움이 있으니, 그 어려움은 계시를 버릴 까닭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삶의 거의 모든 일을 확실한 증명이 아니라 개연성에 따라 정하니, 개연성이야말로 삶의 안내자라고 했습니다 조지프 버틀러, 종교의 유비.
1802년 윌리엄 페일리는 『자연 신학』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들판을 걷다 돌에 걸리면 그 돌이 늘 거기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계를 주웠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부품들이 시간을 알리는 목적에 맞게 짜여 있으니 시계를 만든 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는 눈 같은 생물의 짜임이 시계보다 훨씬 정교하다며, 그것이 설계자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윌리엄 페일리, 자연 신학. 시편 기자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오 주여, 주께서 행하신 일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것들을 다 만드셨사오니 주의 부요하심이 땅에 가득하나이다.
시 104:24
이에 앞서 데이비드 흄은 그가 죽은 뒤 1779년에 나온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이런 설계 논증을 비판했습니다. 세상과 사람이 만든 기계 사이의 유비는 약하고, 설계자가 있다 해도 그가 하나요 선하며 무한하다는 데까지는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흄,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 기적에 대한 증언을 믿을 수 없다는 그의 논증은 기적은 가능한가 과에서 다룹니다 데이비드 흄,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 10장.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생물이 사는 곳에 맞게 짜인 것을 자연 선택으로 설명했고, 다윈 자신도 페일리의 논증이 이제는 서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의 법칙과 과정 자체에서 하나님의 설계를 보는 이들과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로 갈렸습니다 (과학과 신앙 과).
프린스턴과 암스테르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개혁파 안에서는 변증의 자리를 두고 두 목소리가 났습니다. 증거 변증(또는 고전 변증)의 대표로 꼽히는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의 B. B. 워필드는 변증이 신학의 맨 앞에서 그 기초를 놓는다고 보았습니다. 바른 이성은 기독교의 증거를 따져 볼 수 있고, 성령께서는 그 증거를 떠나서가 아니라 증거와 함께 믿음을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B. B. 워필드, 변증학.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는 강조점이 달랐습니다. 그는 1898년 바로 프린스턴에서 한 강연에서,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학문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 4강. 이 출발점의 대립 때문에, 믿지 않는 이와 같은 바닥에 서서 믿음을 지키려는 변증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첫 강연에서 그는 변증이 교회를 한 걸음도 나아가게 하지 못했다며, 한 ‘삶의 체계’에는 다른 삶의 체계로 맞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칼빈주의 강연 1강.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이 죄를 억제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선물을 주시는 일반 은총 덕분에 믿지 않는 이들도 학문과 문화에서 참되고 좋은 것을 많이 이룬다고 가르쳤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 일반 은총. 하나님은 "자신의 해를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내려 주시느니라"고 하십니다 (마 5:45).
프린스턴의 J. 그레셤 메이첸은 기독교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 위에 서 있다고 보고 그 역사를 학문으로 변호했으며, 1923년 『기독교와 자유주의』에서 자유주의가 기독교의 다른 형태가 아니라 다른 종교라고 논증했습니다 J. 그레셤 메이첸, 기독교와 자유주의. 그 논쟁은 신학 과정의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과에서 다룹니다. 메이첸이 1929년에 세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오래 가르친 코넬리우스 반 틸은 카이퍼의 대립을 더 밀고 나갔습니다.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 사이에 중립 지대는 없으며, 변증은 성경의 하나님을 전제할 때에만 생각과 지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코넬리우스 반 틸, 믿음의 변호. 그는 옛 프린스턴의 방법이 믿지 않는 이의 이성을 재판관 자리에 앉힌다고 비판했지만, 변증이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믿지 않는 생각에 맞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카이퍼보다 워필드와 뜻을 같이했습니다. 전제 변증이 자주 드는 말씀은 그리스도에 관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 2:3
20세기와 오늘
20세기 영어권에서는 평신도 작가들이 변증의 큰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G. K. 체스터턴은 1908년 『정통』에서 자기 나름의 새 사상을 세우고 보니 그것이 정통이더라는 이야기를 하며, 기독교가 세상과 사람의 수수께끼에 꼭 맞는 열쇠라고 했습니다 G. K. 체스터턴, 정통. 옥스퍼드의 영문학자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예수께서 자신에 대해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 그런 말을 한 이가 사람일 뿐이라면 훌륭한 도덕 선생이 아니라 미치광이이거나 그보다 더 나쁜 자일 것이니,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거나 아니면 미치광이이거나 더 나쁜 자라는 선택 앞에 독자를 세웠고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기적』에서는 자연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자연주의가 이성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만든다고 논했습니다 C. S. 루이스, 기적. 스위스 라브리에서 질문하는 젊은이들을 맞아들인 프랜시스 쉐퍼는 1968년 『거기 계시는 하나님』에서, 상대의 전제를 그 끝까지 따라가 무너지는 자리를 보여 주고 그리스도께로 이끌라고 했습니다 프랜시스 쉐퍼, 거기 계시는 하나님.
20세기 후반에는 대학의 철학에서 그리스도인 철학자들이 다시 힘 있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앨빈 플랜팅가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논증 없이도 합리적일 수 있다고 논했고 앨빈 플랜팅가, 보증된 기독교 믿음,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는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데서 출발하는 칼람 논증과 부활의 역사적 논증을 다듬어 대학에서 무신론자들과 공개 토론을 벌였습니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합리적 신앙. 뉴욕 맨해튼에 리디머 장로교회를 세운 팀 켈러는 2008년 『하나님을 말하다』에서 도시의 의심하는 이들이 흔히 드는 반론을 차례로 다룬 뒤 믿을 이유를 하나씩 쌓아 갔습니다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보다 훨씬 앞서 1603년 가톨릭 교회(천주교)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 유학자와 서양 학자의 문답으로 『천주실의』를 펴냈고, 조선의 학자들도 읽은 이 책의 이야기는 한국의 종교와 문화 앞에서 과에서 이어집니다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
대화에서
이 세 세기의 변증가들은 서로 다른 길로 대답했습니다. 버틀러는 개연성으로, 페일리는 설계로, 워필드는 증거로, 반 틸은 전제로, 체스터턴과 루이스는 이야기와 상상력으로, 플랜팅가와 크레이그는 철학으로, 켈러는 도시의 물음으로 말했습니다. 첫 과에서 본 다섯 길은 이 이야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친구가 영상에서 본 반론을 꺼낼 때, 흄의 반론처럼 날카로운 것도 그 가장 강한 모습으로 듣고, 버틀러처럼 우리도 삶의 많은 일을 확실한 증명이 아니라 이유 있는 신뢰로 정한다는 것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루이스가 그리스도를 믿게 된 길에도 친구 톨킨과 밤늦도록 나눈 대화가 있었습니다. 변증은 토론의 승리보다 긴 우정 속에서 열매를 맺곤 합니다. 다음 과 고전 변증과 증거 변증부터는 이 길들을 하나씩 살핍니다.
연습
- 연습 1 / 7
조지프 버틀러가 『종교의 유비』에서 이신론자들에게 한 대답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7
윌리엄 페일리가 『자연 신학』 첫머리에서 든 비유는 무엇입니까?
- 연습 3 / 7
데이비드 흄이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설계 논증을 두고 한 비판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7
변증의 자리를 두고 워필드와 카이퍼는 어떻게 달랐습니까?
- 연습 5 / 7
코넬리우스 반 틸이 말한 전제 변증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7
앨빈 플랜팅가가 논한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7
친구가 영상에서 본 날카로운 반론을 꺼냅니다. 이 과의 변증가들에게서 배울 대화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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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주제
출처
- 조지프 버틀러, 종교의 유비 — 1736년. 자연에서 보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계시된 종교 사이의 유비로, 자연을 받아들이는 이신론자가 성경의 어려움 때문에 계시를 버릴 수 없다고 논한다. 개연성이 삶의 안내자라고 말한다.
- 윌리엄 페일리, 자연 신학 — 1802년. 들판에서 주운 시계가 시계공을 가리키듯, 생물의 정교한 짜임이 설계자를 가리킨다고 논한다.
- 데이비드 흄,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 — 1779년(사후). 설계 논증을 비판한다: 세상과 사람의 작품의 유비는 약하고, 설계자가 있다 해도 그가 하나요 선하며 무한하다는 데까지는 가지 못한다. 10부에서는 회의론자 필로의 입으로 에피쿠로스의 물음, 곧 악이 있는데 하나님이 전능하고 선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되살린다.
- 데이비드 흄,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 10장 / Section 10 (1748) — 기적에 대한 증언을 믿을 수 없다는 고전적 논증.
- B. B. 워필드, 변증학 1908 — 1908년. 변증학을 신학의 기초를 놓는 학문으로 보고, 바른 이성이 기독교의 증거를 따져 볼 때 성령께서 그 증거와 함께 믿음을 일으키신다고 쓴다.
-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 — 1898년 프린스턴의 스톤 강연. 거듭난 이와 거듭나지 않은 이는 학문을 다른 출발점에서 한다고 말한다(4강 칼빈주의와 학문). 1강에서는 변증이 교회를 한 걸음도 나아가게 하지 못했다며, 한 삶의 체계에는 다른 삶의 체계로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 아브라함 카이퍼, 일반 은총 1902–1904 — 하나님이 죄를 억제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선한 선물을 베푸시어 문화와 학문이 자라게 하신다는 가르침.
- J. 그레셤 메이첸, 기독교와 자유주의 1923 — 자유주의는 기독교의 다른 형태가 아니라 다른 종교라고 논증한 책.
- 코넬리우스 반 틸, 믿음의 변호 — 1955년. 그리스도인과 불신자가 중립 지대를 공유하지 않으며, 변증은 성경의 하나님을 전제할 때만 사고와 지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는 일이라고 말한다(전제 변증).
- G. K. 체스터턴, 정통 — 1908년. 자신이 기독교에 이르게 된 길을 그리며, 기독교만이 세상과 사람의 수수께끼에 맞아떨어지는 열쇠라고 논한다. 9장은 자신의 믿음이 작지만 한결같은 사실들이 쌓인 데서 왔다고 말한다.
-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2.3 — 예수에 대한 선택: 그런 말을 한 이가 사람일 뿐이라면 미치광이이거나 더 나쁜 자이니,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거나 아니면 미치광이이거나 더 나쁜 자다(뒤에 ‘거짓말쟁이, 미치광이, 주님’으로 요약되었다).
- C. S. 루이스, 기적 — 1947년. 자연주의가 자기 논증을 스스로 무너뜨린다고 논하며, 기적은 자연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밖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사건이라고 말한다.
- 프랜시스 쉐퍼, 거기 계시는 하나님 — 1968년. 서양 사상이 절망의 선 아래로 내려갔다고 진단하고, 불신자의 전제가 그 끝에서 무너지는 지점을 보여 주어 복음으로 이끌라고 말한다.
- 앨빈 플랜팅가, 보증된 기독교 믿음 — 2000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논증 없이도 ‘기본적’으로 합리적일 수 있으며, 그것이 참이라면 성령의 일로 보증을 얻는다고 논한다(개혁파 인식론).
-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합리적 신앙 — 1994년(1984년의 『변증학 입문』을 고쳐 낸 책). 칼람 우주론적 논증(시작이 있는 것은 원인이 있고 우주는 시작이 있다)과 부활의 역사적 논증을 편다. 믿음이 참임을 아는 것(성령의 증언)과 다른 이에게 보이는 것(논증)을 구분한다.
-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 2008년. 의심하는 이들의 흔한 반론을 차례로 다룬 뒤, 기독교를 믿을 이유를 누적해서 제시한다. 믿는 이는 자기 믿음을, 믿지 않는 이는 자기 의심을 함께 의심해 보라고 권한다.
-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 — 1603년. 중국의 유학자와 서양 학자의 문답으로 천주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을 논하며, 옛 유교 경전의 상제를 천주와 잇는다. 조선의 학자들도 읽었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변증의 여러 방법과 논증, 반론을 그 주장하는 이들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하며, 어느 한 방법만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