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 27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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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계명: 칠 일 가운데 하루

넷째 계명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곧 칠 일 가운데 온전한 하루를 하나님께 거룩한 안식일로 지키라고 요구합니다. 소요리문답은 그 하루가 그리스도의 부활 때까지는 일곱째 날이었고, 그 뒤로는 한 주의 첫날, 곧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라고 가르칩니다.

잎이 진 나무들 사이 작은 시골 교회 앞으로, 예배를 마친 사람들이 무리 지어 걸어 나옵니다.
빈센트 반 고흐, 〈뉘넌 개혁교회에서 나오는 회중〉, 1884–1885년 · 출처

이번 주 문답

넷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넷째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네가 수고하고 네 모든 일을 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주 네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 안에 거하는 네 나그네나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주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입니다.

57문

넷째 계명에서 요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넷째 계명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안에서 정하신 그러한 정해진 때를 하나님께 거룩하게 지킬 것을 요구하며, 명백히 칠 일 가운데 하루를 온전히 그분을 위한 거룩한 안식일로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58문

칠 일 가운데 어느 날을 하나님께서 주간 안식일로 정하셨습니까? 세상의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부활 때까지는 하나님께서 한 주의 일곱째 날을 주간 안식일로 정하셨고, 그 이후로는 세상 끝까지 계속될 한 주의 첫째 날을 주간 안식일로 정하셨으니,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입니다.

59문

넷째 계명은 하나님을 향한 의무를 다루는 네 계명의 마지막으로, 지난주에 배운 이름에 이어 하나님의 날을 거룩히 지키라고 합니다. 이번 주에는 어느 날을 왜 지키는지를, 다음 주에는 그 날을 어떻게 지키는지를 봅니다.

창조와 구속을 기억하는 날

안식일 초를 밝힌 흰 식탁 곁에 흰 머릿수건을 쓴 여인이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앉아 쉬고 있다.
이지도어 카우프만, 〈금요일 저녁〉, 1920년 무렵 · 출처

계명은 ‘기억하여’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하루의 뿌리가 시내산보다 깊은 창조에 있기 때문입니다. 59문의 첫 증거 구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으니 이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며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안식하셨기 때문이더라.

창 2:3

하나님은 지치셔서가 아니라 일을 다 마치시고 쉬셨고, 그 쉼을 나누시려고 한 날을 복 주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시간의 알맞은 부분을 하나님 예배에 떼어 두는 것이 본성의 법이며, 하나님께서 칠 일 중 하루를 ‘도덕적이며 영속적인 계명’으로 정하셨다고 고백합니다 21장 7항.

58문의 증거 구절인 신명기는 그 쉼이 종과 나그네에게까지 미친다고 말합니다.

일곱째 날은 주 네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안에 거하는 네 나그네나 아무 일도 하지 말지니 이것은 너뿐만 아니라 네 남종이나 네 여종도 안식하게 하려 함이니라.

신 5:14

이어지는 절은 출애굽기와 다른 이유를 듭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이었으나 하나님께서 건져 내셨으니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신 5:15). 출애굽기는 창조를, 신명기는 구속을 기억하게 합니다. 대요리문답도 이 계명을 기억하는 유익으로 ‘창조와 구속이라는 두 큰 은택’을 감사하며 기억하는 것을 꼽습니다 대요리문답 121문. 그러니 이 하루는 짐이기 전에 선물입니다. 예수께서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하셨습니다 (막 2:27).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59문은 그 하루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한 주의 첫날로 옮겨졌다고 가르칩니다. 예수께서는 한 주의 첫날 살아나셨고 (요 20:1), 그날 저녁과 여드레 뒤에 제자들 가운데 서셨습니다 (요 20:19, 20:26). 59문의 나머지 증거 구절은 교회가 그날 모였음을 보여 줍니다. 드로아의 신자들은 그날 떡을 떼려고 모였고 (행 20:7),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그날마다 성도를 위한 연보를 따로 떼어 두게 했습니다 (고전 16:2). 밧모섬의 요한은 그날을 ‘주의 날’이라 부릅니다 (계 1:10). 100년 무렵의 『디다케』는 그날의 모임을 떡을 떼고 감사하는 자리로 그리며 디다케 14장, 150–155년 무렵 로마의 유스티누스는 일요일이 하나님이 어둠을 바꾸어 세상을 지으신 첫날이요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날이라고 그 까닭을 밝힙니다 제1변증서 67장. 32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농사일은 자유롭게 두고 ‘해의 날’에 도시 사람들을 쉬게 한 법은 해의 날에 관한 법 그보다 훨씬 뒤의 일로, 그리스도도 주의 날도 이름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콘스탄티누스 과).

모든 교회가 부활의 날을 귀히 여기되, 안식일 계명과의 관계는 달리 설명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요리문답 116문, 개혁파 침례교회의 제2차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1689) 22장 7항은 소요리문답과 같이, 이 하루를 모든 시대의 사람을 매는 계명으로 고백합니다. 장 칼뱅과 유럽 대륙의 개혁교회는 강조점이 다릅니다. 칼뱅은 안식일의 의식적인 면은 그리스도 안에서 폐하여졌으나,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위해 모이는 정한 날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이들의 쉼은 교회의 질서로 남는다고 가르치며 교회를 일곱이라는 수에 묶지는 않았고 기독교 강요 2.8.28–34,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안식의 날의 모임과 함께, 평생 악한 일을 쉬고 ‘주께서 그분의 성령으로 내 안에서 일하시게’ 하는 쉼을 말합니다 103문. 두 흐름 모두 개혁교회의 고백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가르침을 따르는 루터교회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은 복음 아래에서 안식일은 폐하여졌고, 백성이 모일 때를 알도록 교회가 주일을 정했으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본이 된다고 말합니다 28조. 이 계명을 셋째로 세는 루터의 소교리문답은 설교와 말씀을 멸시하지 말고 기꺼이 듣고 배우라고 풉니다 소교리문답. 가톨릭 교회(천주교)는 주일을 안식일 다음의 여덟째 날로, 새 창조를 가리키며 안식일을 이루는 날로 가르치고, 주일의 성찬을 교회 생활의 중심에 둡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74–2177항. 동방의 오랜 교회인 정교회도 부활의 날인 주일에 함께 모여 성찬을 나눕니다.

제칠일 침례교회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지금도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그들은 창조 때 복 받은 날을 계명이 그대로 명하고, 예수께서 율법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으며 (마 5:17-18), 여인들이 주님의 죽음 뒤에도 명령에 따라 안식일에 안식하였다는 것을 (눅 23:56) 계명이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로 읽습니다. 주일과 예배는 ‘예배와 주일’ 과, ‘말씀 중심의 예배’ 과, ‘예배와 기도’ 과, 왜 쉬어야 하는가?와 구약의 율법은 지금도 지켜야 하는가?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주의 물음

제라늄 화분이 놓인 창가 방에서 늙은 남편은 탁자에 책을 펴 읽고, 아내는 묵주를 손에 쥐고 조용히 앉아 있다.
한스 토마, 〈일요일의 평화〉, 1876년 · 출처

이번 주의 주일을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라 받아야 할 선물로 맞는다면,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주일 아침에는 부활하신 주님이 그날 저녁 제자들 가운데 서셔서 평강을 비신 장면을 읽어 보십시오 (요 20:19). 저녁에는 그날 받은 쉼 하나를 두고 감사해 보십시오.

연습

  1. 연습 1 / 5

    소요리문답 58문에 따르면 넷째 계명이 명백히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연습 2 / 5

    59문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주간 안식일로 정해진 날은 어느 날입니까?

  3. 연습 3 / 5

    신명기 5장은 안식일 계명에 어떤 이유를 덧붙입니까?

  4. 연습 4 / 5

    59문의 증거 구절 가운데, 신자들이 한 주의 첫날에 떡을 떼려고 모였다고 전하는 구절은 어디입니까?

  5. 연습 5 / 5

    안식일과 주일에 관하여, 교회와 그 가르침을 바르게 짝지은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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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초대 교회, 디다케(열두 사도의 가르침) — 100년경. 7장은 삼위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를, 9–10장은 성찬의 기도를 전한다. 읽기
  2. 유스티누스, 제1변증서 — 150–155년경. 그리스도인을 이름이 아니라 행위로 재판해 달라고 황제에게 청하고(3–4장), 선지자들의 예언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길게 보인다(30–53장). 65–67장은 2세기 교회의 세례와 성찬, 주일 예배를 묘사한다.
  3. 콘스탄티누스, 해의 날에 관한 법 321 — 321년 3월 7일. 도시의 재판관과 주민과 모든 장인은 존귀한 해의 날에 쉬게 하되, 농사짓는 이들은 곡식을 뿌리고 포도나무를 심을 때를 놓치지 않도록 그날에도 자유롭게 일하게 했다. 법문은 그리스도도 주의 날도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3.12.2)에 전한다.
  4. 장 칼뱅, 기독교 강요 2.8.28–34 — 1559년. 넷째 계명을 풀며, 안식일의 의식적인 면은 그리스도 안에서 폐하여졌으나 말씀을 듣고 성례에 참여하며 함께 기도할 정한 날과 종들의 쉼은 교회의 질서로 남는다고 한다. 옛 교회가 안식일 대신 주일을 택한 데에는 까닭이 있었으나, 일곱이라는 수에 교회를 묶지는 않겠다고 한다.
  5. 가톨릭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74–2177 — 1992년. 주일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첫날로 첫 창조를 기억하게 하고, 안식일 다음의 여덟째 날로 새 창조를 가리키며, 그리스도인에게 안식일을 이루는 날이고, 주일에 거행하는 성찬이 교회 생활의 중심이라고 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과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소요리문답을 개혁교회의 고백으로 한 주에 한 걸음씩 가르치고, 개혁교회 안에서 갈리는 곳은 양쪽을, 다른 전통의 견해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