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은 두 공간 사이에 놓여 한 걸음에 넘는 자리입니다. 다섯 고리는 역사의 자리에서 성경을 다른 고대 문서처럼 사료로 읽었고, 여기부터는 말씀의 자리에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습니다. 두 자리 사이를 넘는 이 단계를 문턱이라 부릅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증명하고 있지는 않은가
방법
지금까지의 다섯 고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전제하지 않았습니다. 신약 문서를 다른 고대 문서처럼 다루고, 비기독교 자료와 맞춰 보았습니다.
이제부터 고백, 선물, 생명 단계는 성경을 말씀으로 읽습니다. 이것은 증명이 아니라 고백의 언어입니다. 이 전환을 숨기지 않는 것이 정직하다고 보아, 여기에 문턱을 두었습니다.
두 자리를 잇는 다리는 예수 자신입니다. 부활로 확증된 분이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셨고 사도들을 증인으로 세우셨다면, 성경을 말씀으로 받는 근거는 성경의 자기 주장이 아니라 예수의 권위가 됩니다.
구약과 신약은 다르게 쓰입니다
- 신약예수 사후 1세기 안에 쓰인 27개 문서입니다. 고리 1–5에서는 사료로, 고백 단계부터는 말씀으로 읽습니다.
- 구약예수 이전의 문서라서 예수의 생애에 대한 사료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신약 저자들이 예수를 이해한 틀입니다.
- 사해사본쿰란의 이사야 두루마리(주전 2세기경)는 이사야 53장이 예수보다 앞서 존재했음을 보여 줍니다(사해 사본). 본문의 연대에 대한 독립 증거이지, 성취에 대한 증거는 아닙니다.
반론예수의 권위도 결국 복음서에서 오니, 그것도 순환 아닌가요?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그래서 이 안내서는 예수의 말 가운데 역사학 기준으로 가장 견고한 것(마가복음, 바울 서신)에만 기대고, 요한복음의 말씀은 고백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남는 의존은 결론을 전제에 넣는 악순환이 아니라, 여러 증거를 쌓는 누적 논증의 한계입니다. 한편 전제주의 변증은 이성이나 과학을 포함한 모든 궁극적 권위가 스스로를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성경에서 출발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