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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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24

은혜의 복음

구름 낀 하늘 아래 무너진 아치와 나무 곁에서 사람들이 쉬고, 그 너머 굽이치는 강이 늪지를 지나 산 사이의 바다로 흘러가는 풍경입니다.
장바티스트 티야르(장바티스트 일레르 원화), 〈밀레도의 폐허와 마이안드로스강의 흐름〉, 1782년 · 출처

에베소의 장로들과 작별하던 날,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고난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면서 자기 사역 전체를 이렇게 부릅니다.

내가 나의 생명도 내게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니 이것은 내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님께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기쁨으로 끝마치고자 함이라

사도행전 20:24

여기서 은 명사이고, 그것을 꾸미는 ‘하나님의 은혜의’가 이 소식이 무엇이며 어디서 오는지를 밝힙니다. 는 받을 자격 없는 이에게 값없이 베푸는 호의입니다. ‘기쁨으로’는 이 절의 공인 본문에만 있는 말이어서, 흠정역과 킹제임스 성경에는 있고 개역한글과 BSB에는 없습니다. 헬라어에서 은혜(카리스)와 기쁨(카라)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같은 복음이 사람에게 이르는 길을 에베소서가 보여 줍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했고(엡 1:13), 믿은 뒤에 약속의 성령으로 봉인되었습니다. 소식은 들려야 믿어지고, 그 소식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자기 영으로 인을 치십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2:8–9

‘구원을 받았나니’로 옮긴 말(ἐστε σεσῳσμένοι)은 완료 수동 분사를 쓴 표현입니다. 스스로 이룬 구원이 아니라 받은 구원이고, 이미 이루어져 그 결과가 지금도 서 있는 구원입니다. 은혜가 근원이고 믿음은 그것을 받는 손입니다. 웨슬리는 "믿음은 빈손으로, 개인의 공로를 내세울 것 없이 그 하늘의 복을 받습니다"라고 하고 웨슬리, 매튜 헨리는 "구원하는 은혜는 하나님의 값없고 받을 자격 없는 선하심과 은총"이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반론은혜로 구원받는다면 선한 행위는 상관없나요?

바울은 곧이어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라고 덧붙입니다(엡 2:10). 선한 행위는 구원의 값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걷는 길입니다. ‘작품’(ποίημα)은 만들어진 것을 뜻하고, 개역한글은 이를 ‘그의 만드신 바’로 옮겼습니다. 사람도, 그가 걸을 선한 행위도 하나님께서 먼저 지으시고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의롭다 하심과 선한 행위의 관계를 어떻게 가르쳐 왔는지는 칭의란 무엇인가?에서 더 다룹니다.

이 은혜는 담을 넘습니다. 에베소서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된다고 하고(엡 3:6), 같은 복음을 "화평의 복음"이라고 부릅니다(엡 6:15).

이 단계의 구절

구절마다 원어와 여러 번역, 주석과 해설을 나란히 놓고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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