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EN

누가복음 4:18–21

가난한 자에게

꽃이 핀 풀밭과 나무 한 그루 너머로 언덕 비탈을 따라 하얀 집들이 들어선 나사렛 마을이 펼쳐진 채색 사진.
포토글로브사, 〈동쪽에서 본 나사렛〉, 1890년 · 출처

누가는 예수의 사역을 고향 나사렛의 회당에서 엽니다. 안식일에 일어나 읽으신 말씀은 이사야 61장이었습니다.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며 포로 된 자들에게 구출을, 눈먼 자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자유롭게 하며 주의 받아 주시는 해를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18–19

책을 덮고 앉으신 예수께서는 모든 눈이 쏠린 가운데 “이 성경 기록이 이 날 너희 귀에 성취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4:21). 이사야가 노래한 기름 부음 받은 전령이 바로 자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말 그대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는 헬라어로 εὐαγγελίσασθαι πτωχοῖς, 칠십인역 이사야 61:1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말입니다. 가 이사야의 바사르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히브리어는 아나빔(עֲנָוִים), 곧 가난하고 낮아진 사람들이어서, 흠정역은 이사야서에서 “온유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선포하게”로 옮기고(사 61:1) 누가복음에서는 ‘가난한 자들에게’로 옮깁니다. 개역한글은 두 곳 다 ‘가난한 자’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사야 61:2의 “우리 하나님의 원수 갚으시는 날”(사 61:2) 앞에서 읽기를 멈추십니다. 많은 주석가는 지금이 은혜의 해이고 심판의 날은 아직 남아 있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요한에게 보낸 대답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분이 맞는지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그들이 보고 들은 일들로 대답하셨습니다. 눈먼 자가 보고 죽은 자가 일으켜진다는 이사야의 약속들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자리에 이 말이 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눅 7:22). 헬라어는 πτωχοὶ εὐαγγελίζονται, 가난한 자들이 주어인 현재 수동태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바로 복음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도 같은 대답을 전합니다 (마 11:5).

누가 가난한 자인가

여기서 ‘가난한’은 , 가진 것이 없어 손을 벌려야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누가는 “너희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라고 전하고(눅 6:20), 마태는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라고 전합니다(마 5:3).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에서 무게를 두는 곳은 서로 다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먼저 돌보신다는 데, 어떤 이들은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심령의 가난에 무게를 둡니다. 웨슬리는 누가복음 4:18의 이 말을 두 뜻 모두로 읽습니다 웨슬리.

반론가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복음이 아닌가요?

부자였던 삭개오의 집에도 “이 날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라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눅 19:9). 다만 매튜 헨리의 말처럼 “하나님의 긍휼도, 그리스도의 속죄도, 은혜의 복음도 자족하고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매튜 헨리. 복음은 빈손으로 오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눅 4:18, 눅 7:22, 마 11:5는 구절 사전에 저마다 실려 있어, 이사야의 말이 복음서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따라가 볼 수 있습니다.

이 단계의 구절

구절마다 원어와 여러 번역, 주석과 해설을 나란히 놓고 읽습니다.

구절 사전 →

출처

  1.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번역자들, 칠십인역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 — 기원전 3–1세기.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으로, 신약의 저자들이 자주 인용한다. בָּשַׂר(바사르)를 대개 εὐαγγελίζομαι(에우앙겔리조마이)로 옮겼고(사무엘하 18장, 시편 40:9, 68:11, 96:2, 이사야 40:9, 52:7, 61:1), 사무엘하 4:10에서는 소식의 상을 εὐαγγέλια라 했다. 영역: 브렌턴(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