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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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구절 사전

고린도전서 1:17

십자가를 비우지 않는 복음 선포

  • 복음의 말 εὐαγγελίζομαι euangelizomai · 복음을 전하다
반원형 원로원 의사당에서 흰 토가를 입은 키케로가 팔을 뻗어 연설하고 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른쪽 빈 자리에는 카틸리나가 홀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습니다.
체사레 마카리, 〈카틸리나를 탄핵하는 키케로〉, 1889년 (로마 마다마 궁) · 출처

원어

고전 1:17

번역

흠정역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지 아니하시고 복음을 선포하라고 보내셨거니와 이 일을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효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개역한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BSB

For Christ did not send me to baptize, but to preach the gospel, not with words of wisdom, lest the cross of Christ be emptied of its power.

KJV

For Christ sent me not to baptize, but to preach the gospel: not with wisdom of words, lest the cross of Christ should be made of none effect.

LSV

For Christ did not send me to immerse, but to proclaim good news, not in wisdom of discourse, that the Cross of the Christ may not be made of no effect;

주석

  • 매튜 헨리 고전 1:17-25 전체에 대하여

    바울은 유대의 학문 속에서 자랐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평이하게 선포하는 일은 이방 세계의 모든 웅변과 철학보다 더 큰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요약이며 본질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소망의 기초이며 모든 기쁨의 샘입니다.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삽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잃어버린 죄인들이 구원받는다는 선포는, 설명되고 충실히 적용될 때 멸망으로 가는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으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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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슬리 고전 1:17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지 아니하시고 - 그것이 나의 주된 사명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낮은 지위와 능력의 사람들도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도도 세례를 주도록 보냄을 받기는 하였습니다 마 28:19. 복음을 선포하라고 보내셨거니와 - 이렇게 사도는 자기의 일반 명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갑니다.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 낸 인위적인 말의 꾸밈으로 하지 아니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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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고린도 교회가 사람의 이름을 따라 갈라져 있을 때, 바울은 자기가 무엇을 하라고 보냄을 받았는지를 한 문장으로 밝힙니다. 이 절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십자가와 지혜에 관한 긴 말씀의 문을 엽니다.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지 아니하시고 복음을 선포하라고 보내셨거니와 이 일을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효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 1:17

글로에의 집안 사람들이 고린도의 다툼을 바울에게 알렸습니다 (고전 1:11). 교인들은 저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께 속하였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고전 1:12). 바울은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하고 되묻고 (고전 1:13), 자기가 세례를 베푼 사람으로 그리스보와 가이오, 그리고 스데바나의 집안을 꼽고 그 밖에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돌아봅니다. 자기 이름을 내세울 거리를 남기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절에서 자기 사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명사 ‘복음’이 없고, 동사 의 현재 중간태 부정사 εὐαγγελίζεσθαι가 있습니다. ‘보내셨다’(ἀπέστειλεν)에 딸린 두 부정사, ‘세례를 주라고’와 ‘복음을 전하라고’가 οὐ… ἀλλά(…이 아니라 …)로 맞서 있습니다. 바울이 세례를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닙니다. 그도 세례를 베풀었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마 28:19). 다만 그를 부르신 목적의 중심은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어지는 ‘말의 지혜’(σοφία λόγου)는 말을 꾸미는 수사의 기술을 가리키고, 목적절의 κενωθῇ는 , 곧 ‘비우다’의 부정과거 수동 가정법입니다. 말솜씨가 십자가의 힘을 속에서부터 비워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흠정역은 ‘복음을 선포하라고’, 개역한글은 ‘복음을 전케 하려’라고 옮깁니다. 두 번역 모두 동사 하나를 명사 ‘복음’과 ‘선포하다’, ‘전하다’라는 동사로 나누어 풀었습니다. 끝 구절은 흠정역이 ‘무효가 되지 않게’, 개역한글이 ‘헛되지 않게’라고 합니다. 두 번역 모두 뜻을 옮겼고, 비운다는 그림은 헬라어에 남아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우신 일을 말할 때도 같은 동사를 쓰는데, 흠정역은 그곳을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라고 옮깁니다 (빌 2:7).

매튜 헨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평이하게 선포하는 일은 이방 세계의 모든 웅변과 철학보다 더 큰 능력이 있었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소망의 기초이며 모든 기쁨의 샘입니다"라고 덧붙입니다 매튜 헨리. 웨슬리는 세례를 두고 "그것이 나의 주된 사명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라고 풀고 웨슬리,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이 칭송하는 말의 지혜를 가지고 왔다면 "이 효과는 다른 원인 탓으로 돌려졌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웨슬리.

96년 무렵 로마의 클레멘스는 다시 다툼에 빠진 고린도 교회에, 복된 사도 바울의 편지를 다시 들라고 썼습니다. 바울이 그 편지에서 자기와 게바와 아볼로를 두고 쓴 것은 그때에도 그들이 편을 갈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클레멘스1서 47장. 200년 무렵 테르툴리아누스는 아테네가 예루살렘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으며, 철학을 복음에 섞어 다른 가르침을 만드는 일을 물리쳤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 이단자들에 대한 항변 7. 바울도 고린도의 회당에서 토론하며 사람들을 설득했으니 (행 18:4), 그가 물리친 것은 생각이 아니라 듣는 이의 눈이 십자가에서 말하는 사람에게로 옮겨 가는 일이었습니다.

복음이 사람을 살리는 힘은 전하는 사람의 말솜씨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듣는 이가 붙들 것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가리키는 십자가입니다.

출처

  1. 로마의 클레멘스, 클레멘스의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클레멘스1서) 47 — 96년경. 고린도 교회에 복된 사도 바울의 편지를 다시 들라고 하며, 그가 '복음의 시작에' 무엇을 써 보냈는지 묻는다(47장).
  2. 테르툴리아누스, 이단자들에 대한 항변 7 — 200년경. 이단이 철학에서 나온다고 하며, 아테네가 예루살렘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다(7장): 복음에 철학을 섞는 것을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