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16
복음을 선포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다
- 복음의 말 εὐαγγελίζομαι euangelizomai · 복음을 전하다
원어
번역
내가 복음을 선포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나니 이는 필연적으로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참으로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Yet when I preach the gospel, I have no reason to boast, because I am obligated to preach. Woe to me if I do not preach the gospel!
For though I preach the gospel, I have nothing to glory of: for necessity is laid upon me; yea, woe is unto me, if I preach not the gospel!
for if I may proclaim good news, it is no glorying for me, for necessity is laid on me, and woe is to me if I may not proclaim good news;
주석
매튜 헨리 고전 9:15-23 전체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섬기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사역자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사역자가 복음을 위하여 자기 권리를 포기할 때,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과 직분이 요구하는 것 이상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복음을 값없이 전함으로써 열심과 사랑의 원리로 행하고 있음을 보였고, 그리하여 영혼에 큰 위로와 소망을 누렸습니다. 그는 의식법을 그리스도께서 벗겨 주신 멍에로 보았지만, 유대인들에게 역사하여 그들의 편견을 없애고 복음을 듣도록 설득하며 그리스도께로 얻기 위해 그것에 복종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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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 자체를 자기 자랑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가 고른 일이 아니라 그에게 지워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절은 사도가 자기 소명을 가장 짧게, 가장 무겁게 말한 문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나니 이는 필연적으로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참으로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고전 9:16바울은 부양을 받을 권리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고 말하고, 누가 자기 자랑을 헛되게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까지 합니다 (고전 9:15). 그러면 그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이 절은 먼저 그것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사실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이어지는 17절은 그 까닭을 풀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는 이미 복음을 맡은 청지기라고 하고, 18절에서 비로소 그의 상이 무엇인지 밝힙니다.
동사 가 두 번 나오는데 모양이 다릅니다. 앞의 ἐὰν εὐαγγελίζωμαι는 현재 가정법으로, 바울이 날마다 해 오는 일, 곧 ‘내가 복음을 전하고 있어도’입니다. 뒤의 ἐὰν μὴ εὐαγγελίσωμαι는 부정과거 가정법으로,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 일이 생긴다면’입니다. 그 사이에 이유가 놓입니다. , 곧 ‘필연’이 내게 놓여 있다(ἐπίκειται)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이 어깨에 얹혀 있는 그림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말투인 οὐαί, ‘화로다’가 이어집니다. 예레미야도 다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그분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 같아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렘 20:9).
흠정역은 ‘필연적으로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라’, 개역한글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라고 옮깁니다. ‘필연’은 헬라어 낱말을 그대로 살렸고, ‘부득불’은 그 무게를 우리말의 오랜 표현으로 담았습니다. 끝 구절은 흠정역이 ‘참으로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감탄으로 맺고, 개역한글은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라고 차분하게 맺습니다. 17절에서 그가 맡았다는 것은 , 집안 살림을 맡은 청지기의 일입니다. 흠정역은 이것을 ‘복음의 분배 사역’, 개역한글은 ‘직분’이라고 옮겼습니다.
웨슬리는 앞 절의 ‘자랑’을 두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일은 "나를 거슬러 구실을 찾는 자들에게 구실을 주는 것"이라고 풉니다 웨슬리. 매튜 헨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의무라면 권리를 내려놓는 일은 그 너머의 것이라고 보아, "사역자가 복음을 위하여 자기 권리를 포기할 때,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과 직분이 요구하는 것 이상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이 필연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주께서는 아나니야에게 그를 두고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해 내가 택한 그릇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행 9:15). 박해자였던 사람에게 그 부르심은 선택지가 아니라 은혜로 지워진 짐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팔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그 소식은 전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에게 맡겨진 것이어서, 바울은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