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23
복음에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려고
- 복음의 말 εὐαγγέλιον euangelion · 복음
원어
번역
내가 복음을 위하여 이것을 행함은 너희와 함께 복음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자 함이라.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I do all this for the sake of the gospel, so that I may share in its blessings.
And this I do for the gospel’s sake, that I might be partaker thereof with you.
And I do this because of the good news, that I may become a fellow-partaker of it;
주석
매튜 헨리 고전 9:15-23 전체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섬기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사역자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사역자가 복음을 위하여 자기 권리를 포기할 때,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과 직분이 요구하는 것 이상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복음을 값없이 전함으로써 열심과 사랑의 원리로 행하고 있음을 보였고, 그리하여 영혼에 큰 위로와 소망을 누렸습니다. 그는 의식법을 그리스도께서 벗겨 주신 멍에로 보았지만, 유대인들에게 역사하여 그들의 편견을 없애고 복음을 듣도록 설득하며 그리스도께로 얻기 위해 그것에 복종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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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다는 긴 고백을 바울은 이 한 문장으로 묶습니다. 그 모든 일은 복음 때문이며, 그 끝에서 그가 바라는 것은 자기도 그 복음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이것을 행함은 너희와 함께 복음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자 함이라.
고전 9:23바울은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같이,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같이 되었고, 그 이유를 이렇게 모읍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어찌하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 (고전 9:22). 이 절은 그 고백의 결론이고, 곧이어 달리기와 권투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 비유는 바울 자신을 향한 경계로 끝납니다. 남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내 자신이 버림받은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 9:27).
번역에는 ‘복음’이 두 번 나오지만, 헬라어에서 명사 은 한 번이고 두 번째는 대명사 αὐτοῦ(그것의)입니다. 앞의 διὰ τὸ εὐαγγέλιον은 ‘복음 때문에’, 곧 복음이 그가 하는 모든 일의 이유라는 말입니다. 뒤의 는 ‘함께 나누는 사람’으로, 공동 참여를 뜻하는 κοινωνός에 ‘함께’(σύν)가 붙은 말입니다. 동사는 부정과거 가정법 γένωμαι, ‘되고자’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면서, 그 복음이 주는 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받아야 할 사람이기도 합니다. 같은 낱말로 그는 빌립보 교인들을 "나의 은혜에 참여한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빌 1:7).
번역에는 사본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흠정역의 ‘이것을’은 공인 본문(TR)이 읽는 τοῦτο이고, 개역한글의 ‘모든 것을 행함은’은 오래된 사본들이 읽는 πάντα입니다. 어느 쪽이든 앞 절들에서 말한 일 전부를 가리킵니다. 흠정역의 ‘너희와 함께’는 σύν이 붙은 낱말의 뜻을 풀어 낸 것이고, 개역한글은 ‘복음에 참예하고자’라고 간결하게 옮겼습니다.
웨슬리는 약한 자같이 되었다는 말을 "마치 나도 꺼리는 사람이었던 것처럼입니다"라고 풀고 웨슬리,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다는 말에는 선을 긋습니다. "진리와 진실에 어긋나지 않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에게 나를 맞추었다는 뜻입니다" 웨슬리. 매튜 헨리도 같은 경계를 말합니다. "그는 어떤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그리스도의 어떤 법도 어기지는 않았지만,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곳에서는 몇몇 사람을 얻기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자기를 맞추었습니다" 매튜 헨리.
고린도 사람들은 가까운 이스트미아에서 열리던 운동 경기를 잘 알았습니다. 바울이 이 절 바로 뒤에서 썩을 관과 썩지 아니할 관을 견주는 것은 (고전 9:25) 그들이 잘 알던 것에서 말을 꺼낸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자기를 맞추는 일은 상을 향해 달리는 사람의 절제와 같습니다.
이 절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복음 밖에 서서 그것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도 듣는 이들과 함께 그 복음을 받아 누려야 할 사람입니다. 복음을 듣는 사람은 전하는 이와 같은 자리, 같은 은혜 앞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