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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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구절 사전

열왕기상 1:42

아도니야가 기대한 좋은 소식

  • 복음의 말 בָּשַׂר basar · 소식을 전하다
엔로겔로 여겨지는 예루살렘 남쪽 골짜기의 우물. 덩굴이 덮인 낡은 돌 우물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앞쪽 돌 위에 한 사람이 앉아 쉽니다.
작자 미상, 〈비르 아이유브, 욥의 우물〉, 1881년 (《그림 같은 팔레스타인》, 뉴욕 공공 도서관) · 출처

원어

왕상 1:42

번역

흠정역

아직 그가 말할 때에, 보라,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오므로 아도니야가 그에게 이르되, 들어오라. 너는 용맹한 자라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도다, 하매

개역한글

말할 때에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오는지라 아도니야가 가로되 들어오라 너는 용사라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도다

BSB

As he was speaking, suddenly Jonathan the son of Abiathar the priest arrived. “Come in,” said Adonijah, “for you are a man of valor. You must be bringing good news.”

KJV

And while he yet spake, behold, Jonathan the son of Abiathar the priest came: and Adonijah said unto him, Come in; for thou art a valiant man, and bringest good tidings.

LSV

He is yet speaking, and behold, Jonathan son of Abiathar the priest has come in, and Adonijah says, “Come in, for you [are] a man of valor, and you bear good tidings.”

주석

  • 매튜 헨리 왕상 1:32-53 전체에 대하여

    백성은 솔로몬이 높임을 받은 것에 대해 큰 기쁨과 만족을 나타냈습니다. 참된 이스라엘 사람은 모두 다윗의 아들이 높임을 받는 것을 기뻐합니다. 악한 원리 위에 세워진 결탁은 사사로운 이익이 다른 쪽을 가리킬 때 곧 해체됩니다.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 어떻게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아도니야는 솔로몬을 멸시하였으나 곧 그를 두려워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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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잔치 자리에 나팔 소리와 성읍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고, 그때 들어온 요나단에게 아도니야는 말합니다. "너는 용맹한 자라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도다" (왕상 1:42). 요나단이 가져온 것은 아도니야에게 가장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다윗이 늙자 그의 아들 아도니야가 "내가 왕이 되리라" (왕상 1:5) 하며 스스로를 높였습니다. 그는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끌어들여 엔로겔 옆에서 제물을 잡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왕상 1:7–9). 선지자 나단과 밧세바가 이 일을 아뢰자, 다윗은 솔로몬을 기혼으로 내려보내 제사장 사독과 나단이 그에게 기름을 붓게 했고, 백성의 기쁨의 소리에 땅이 갈라질 듯했습니다 (왕상 1:38–40). 그 소리가 잔치 자리까지 들려왔을 때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들어옵니다. 그는 압살롬의 반란 때 아히마아스와 함께 다윗에게 소식을 날랐던 전령입니다 (삼하 17:17).

아도니야의 말 끝은 히브리어로 ‘토브 테바세르’, 곧 ‘좋은 것을 네가 전한다’입니다. 의 피엘 미완료 2인칭 남성 단수에 ‘좋은 것’이 목적어로 붙었습니다. 아도니야는 사람을 보고 소식을 짐작합니다. 요나단은 ‘용맹한 사람’, 곧 믿을 만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리라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8:27에서 다윗이 아히마아스를 두고 한 짐작과 똑같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의 대답은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것이었고 (왕상 1:43), 손님들은 두려워 흩어졌으며 아도니야는 제단 뿔을 잡았습니다 (왕상 1:49–50).

흠정역은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도다’라고 옮겼고, 개역한글은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개역한글은 이사야 40:9에서도 시온에 전하는 소식을 ‘아름다운 소식’이라 하고, 이사야 52:7과 로마서 10:15에서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을 아름답다고 하므로, 이 ‘아름다운 소식’은 한국 독자의 귀에 복음의 말과 겹쳐 들립니다. BSB는 You must be bringing good news라고 하여 아도니야의 말을 기대 섞인 짐작으로 옮겼습니다.

매튜 헨리는 이 장면에서 묻습니다.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 어떻게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매튜 헨리 그리고 솔로몬의 즉위에서 더 큰 왕을 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치 거울 속에서처럼, 다윗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모든 원수에도 불구하고 영광의 보좌에 높임을 받으신 것을 봅니다" 매튜 헨리.

복음도 다윗의 자손이 왕으로 세워졌다는 소식입니다.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이며, 그분이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롬 1:3) 부활로 권능 있게 드러나셨다고 말합니다. 아도니야에게 새 왕의 소식은 두려움이었고, 그는 제단 뿔을 붙잡는 것 말고는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복음은 그 왕을 거스르던 사람에게 화해를 청하며 다가오는 소식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라 부르며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 (고후 5:20) 하고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