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2:9
밤낮으로 일하며 선포한 복음
- 복음의 말 εὐαγγέλιον euangelion · 복음
원어
번역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해산의 고통을 너희가 기억하나니 우리가 너희 중의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하였으므로 밤낮으로 수고하며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였노라.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Surely you recall, brothers, our labor and toil. We worked night and day so that we would not be a burden to anyone while we proclaimed to you the gospel of God.
For ye remember, brethren, our labour and travail: for labouring night and day, because we would not be chargeable unto any of you, we preached unto you the gospel of God.
for you remember, brothers, our labor and travail, for working night and day not to be a burden on any of you, we preached the good news of God to you;
주석
매튜 헨리 살전 2:7-12 전체에 대하여
온유함과 부드러움은 종교를 크게 천거하며, 복음 안에서 복음으로 죄인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방식에 가장 잘 맞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을 얻는 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부르심에 충실할 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직업과 관계에서도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의 큰 복음의 특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사 자신의 왕국과 영광에 이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큰 복음의 의무는 우리가 하나님께 합당히 걷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토록 높고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걸맞게 살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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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바울은 앞 절에서 복음뿐 아니라 자신들의 혼까지 나누어 주려 했다고 했습니다. 이 절은 그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아무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해산의 고통을 너희가 기억하나니 우리가 너희 중의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하였으므로 밤낮으로 수고하며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였노라.
살전 2:9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일한 일이 사도행전에 나오고 (행 18:3), 그는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내가 이 손으로 나의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였고" (행 20:34)라고 말합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는 빌립보 교회가 한 번 그리고 또 다시 도움을 보냈지만 (빌 4:16), 그들은 손을 놓지 않았고, 둘째 편지에서도 같은 말을 되풀이합니다 (살후 3:8).
은 여기서 ἐκηρύξαμεν의 목적어입니다. 의 부정과거 능동태로, 전령(κῆρυξ)이 사람들 앞에서 소리 높여 알리는 일을 가리킵니다. 좋은 소식이라는 낱말에 전령의 동사가 붙었습니다. 이 동사는 분사 ‘수고하며’(ἐργαζόμενοι)와 묶여 있어, 일하는 것과 선포하는 것이 함께 이어졌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소식의 이름은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수고’(κόπος)와 짝을 이루는 는 고된 노동을 뜻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 짝을 labour and travail이라 했는데, travail은 고된 수고와 해산의 진통을 함께 뜻하던 말입니다. 흠정역은 그 가운데 ‘해산의 고통’을 골랐고, 개역한글은 ‘애쓴 것’이라 옮겼습니다. 흠정역의 ‘해산의 고통’은 유모(2:7)와 아버지(2:11)의 그림 사이에서 그들의 수고를 생명을 낳는 수고로 비추고, 개역한글의 ‘애쓴 것’은 헬라어 낱말이 뜻하는 노동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동사는 흠정역이 ‘선포하였노라’, 개역한글이 ‘전파하였노라’로 옮겨 둘 다 전령의 외침을 살립니다.
매튜 헨리는 이 단락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부르심에 충실할 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직업과 관계에서도 충실해야 합니다"라는 교훈을 끌어냅니다 매튜 헨리. 바울에게는 손으로 하는 일도 증언의 일부였습니다.
얼마 뒤의 교회도 이것이 왜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100년 무렵의 『디다케』는 12장에서, 교회에 머물려는 사람에게 기술이 있으면 일해서 먹으라고 가르칩니다 디다케. 바울은 그런 가르침이 글로 남기 전에 스스로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 자기가 받을 보상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값없이 선포하고" (고전 9:18) 자기 권리를 남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씁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복음을 값없이 받았습니다. 전한 사람들이 자기 먹을 것을 밤낮으로 일해 스스로 벌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거래가 아니라 선물로 건네졌고, 그들의 손이 그것을 증언했습니다.
출처
- 초대 교회, 디다케(열두 사도의 가르침) — 100년경. 7장은 삼위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를, 9–10장은 성찬의 기도를 전한다.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