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8:20
왕의 아들이 죽은 날
- 복음의 말 בְּשֹׂרָה besorah · 기쁜 소식
- 복음의 말 בָּשַׂר basar · 소식을 전하다
원어
번역
요압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이 날에 소식을 전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지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으므로 이 날에는 네가 소식을 전하지 말지니라, 하고
요압이 저에게 이르되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날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 하고
But Joab replied, “You are not the man to take good news today. You may do it another day, but you must not do so today, because the king’s son is dead.”
And Joab said unto him, Thou shalt not bear tidings this day, but thou shalt bear tidings another day: but this day thou shalt bear no tidings, because the king’s son is dead.
and Joab says to him, “You are not a man of tidings this day, but you have borne tidings on another day, and this day you do not bear tidings, because the king’s son [is] dead.”
주석
매튜 헨리 삼하 18:19-33 전체에 대하여
아히마아스는 다윗에게 그 승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이끎으로써 그가 아들의 죽음 소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가운데 우리 마음이 더 굳건해지고 넓어질수록, 그 은혜와 섞여 있는 고난을 인내로 견딜 준비가 더 잘 갖추어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의 소원이 압살롬의 영원한 상태에 대한 염려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오히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
주석 전체 보기 →웨슬리
이 구절에 대한 말은 따로 없습니다.
주석 전체 보기 →
해설
요압은 달려가겠다는 아히마아스를 막아섭니다. 오늘은 그가 소식을 전할 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한 절에 명사 가 한 번, 동사 가 두 번 나오고, 그 까닭은 마지막 말에 있습니다. 왕의 아들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싸움은 다윗의 신하들이 이겼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다윗이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고 명한 것을 알았고, 한 병사가 그 명령 때문에 압살롬에게 손대기를 거절했는데도 (삼하 18:12–13) 자기 손으로 압살롬을 찔렀습니다. 군대에게는 승리의 날이 다윗에게는 아들을 잃은 날이 될 것을 요압은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게다가 이 책은 이미 두 번, 다윗에게 죽음의 소식을 반가운 소식처럼 가져갔다가 죽은 사람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삼하 1:15; 삼하 4:12). 요압은 대신 구시를 보냅니다 (삼하 18:21).
요압의 첫마디를 히브리어대로 옮기면 ‘너는 오늘 소식의 사람이 아니다’입니다. ‘소식의 사람’(이쉬 베소라)은 소식을 나르는 사람, 전령입니다. 이어 동사가 두 번 나옵니다. ‘다른 날에는 네가 소식을 전할 것이다’는 바사르의 피엘 완료에 접속사가 붙은 꼴로 앞날을 말하고, ‘오늘은 네가 소식을 전하지 못한다’는 피엘 미완료입니다. 요압은 날을 가릅니다. 같은 승리라도 다른 날이었다면 기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소식의 좋고 나쁨이 내용만이 아니라 그것을 듣는 사람의 형편에도 달려 있다는 것을 이 구절은 보여 줍니다.
흠정역은 킹제임스 성경을 따라 ‘너는 이 날에 소식을 전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지니라’라고 하여 ‘소식의 사람’을 동사로 풀었습니다. 개역한글은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라고 하여 ‘사람’을 살렸습니다. BSB는 You are not the man to take good news today라고 하여 ‘좋은’을 넣었는데, 이 한 낱말이 요압의 말뜻을 잘 잡아 줍니다. 오늘은 이 소식이 좋은 소식으로 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는 이 장면에서 다윗의 지나친 애정을 나무라며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짚습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사랑한 것에 대해 지나치게 슬퍼하기 쉽습니다" 매튜 헨리. 요압이 내다본 것이 바로 그 슬픔이었고, 실제로 다윗은 승리한 군대가 부끄러워 숨어들 만큼 울었습니다 (삼하 19:1–6).
요압에게 왕의 아들의 죽음은 좋은 소식을 멈추게 하는 까닭이었습니다. 복음에서는 왕의 아들의 죽음이 좋은 소식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원수였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을진대" (롬 5:10)라고 말합니다. 슬픔의 날로만 보이던 날이 기쁜 소식의 날이 되는 것, 이것이 복음이 이 오래된 낱말에 더한 새로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