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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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구절 사전

사무엘하 18:26

달려오는 또 한 사람의 전령

  • 복음의 말 בָּשַׂר basar · 소식을 전하다
저녁 햇빛 속 성문 지붕 위에서 파수꾼이 난간 너머로 몸을 내밀어 아래 문지기에게 외치며 들판 쪽을 가리키고, 한 사람이 성벽 가까이 와 있으며 그 뒤로 멀리 또 한 사람이 홀로 달려옵니다.
성문 지붕에서 문지기에게 또 한 사람이 달려온다고 외치는 파수꾼

원어

삼하 18:26

번역

흠정역

파수꾼이 보니 다른 사람이 달려오므로 파수꾼이 문지기를 부르며 이르되, 보라, 다른 사람이 또 혼자 달려오느니라, 하매 왕이 이르되,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거늘

개역한글

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음질하는지라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음질한다 하니 왕이 가로되 저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BSB

the watchman saw another man running, and he called out to the gatekeeper, “Look! Another man is running alone!” “This one also brings good news,” said the king.

KJV

And the watchman saw another man running: and the watchman called unto the porter, and said, Behold another man running alone. And the king said, He also bringeth tidings.

LSV

And the watchman sees another man running, and the watchman calls to the gatekeeper, and says, “Behold, a man running by himself”; and the king says, “This one is also bearing tidings.”

주석

  • 매튜 헨리 삼하 18:19-33 전체에 대하여

    아히마아스는 다윗에게 그 승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이끎으로써 그가 아들의 죽음 소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가운데 우리 마음이 더 굳건해지고 넓어질수록, 그 은혜와 섞여 있는 고난을 인내로 견딜 준비가 더 잘 갖추어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의 소원이 압살롬의 영원한 상태에 대한 염려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오히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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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슬리

    이 구절에 대한 말은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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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두 번째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 것이 보이자 왕은 말합니다.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삼하 18:26). ‘소식을 가져오는 자’로 쓰인 의 분사 메바세르(מְבַשֵּׂר)는, 이사야가 시온에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전령을 부를 때 쓰는 바로 그 꼴입니다.

앞서 달리던 사람이 가까워질 무렵, 파수꾼은 또 한 사람이 혼자 달려오는 것을 봅니다. 그는 이번에는 문지기를 불러 알립니다. "보라, 다른 사람이 또 혼자 달려오느니라." 들길로 달린 아히마아스가 앞섰고, 요압이 먼저 보낸 구시가 뒤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삼하 18:23). 왕은 앞 절의 짐작을 그대로 이어 갑니다. 혼자 오는 사람이면 이 사람도 전령이라는 것입니다.

메바세르는 바사르의 피엘 분사 남성 단수로, ‘소식을 가져오는 자’, 곧 전령을 가리킵니다. 같은 꼴이 이사야 52:7에 두 번 나옵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고 화평을 선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고 구원을 선포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네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사 52:7). 나훔도 같은 말로 산들 위의 발을 노래하고 (나 1:15), 이사야 40:9는 같은 분사의 여성형으로 시온을 부릅니다. 흠정역으로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시온’입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이사야는 "네 파수꾼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사 52:8) 함께 노래한다고 말합니다. 성벽 위의 파수꾼,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전령, 소식을 기다리는 성읍. 이사야의 그림은 바로 이 구절 같은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흠정역은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개역한글은 ‘저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라고 하여 둘 다 소식만 말하고, 킹제임스 성경과 LSV도 그렇습니다. BSB는 이번에도 good news라고 하여 왕의 바람을 번역에 담았습니다. 원문은 이 전령이 무엇을 가져오는지 아직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가 가져온 것은 압살롬의 죽음이었습니다 (삼하 18:32).

구약의 헬라어 번역인 칠십인역은 이사야 52:7의 이 분사를 의 분사로 옮겼습니다. 바울은 그 구절을 인용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좋은 일들의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롬 10:15).

그날 다윗의 성문에 이른 두 메바세르는 모두 승리를 알렸지만, 왕에게 남은 것은 아들을 잃은 슬픔이었습니다. 이사야의 전령은 한 싸움의 승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신다는 소식을 가져옵니다. 바울은 이사야가 한 전령에게 쓴 이 말을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이에게 돌립니다. 그래서 성벽 위의 파수꾼과 산을 넘어오는 전령이라는 오래된 그림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다시 그려집니다.

출처

  1.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번역자들, 칠십인역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 — 기원전 3–1세기.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으로, 신약의 저자들이 자주 인용한다. בָּשַׂר(바사르)를 대개 εὐαγγελίζομαι(에우앙겔리조마이)로 옮겼고(사무엘하 18장, 시편 40:9, 68:11, 96:2, 이사야 40:9, 52:7, 61:1), 사무엘하 4:10에서는 소식의 상을 εὐαγγέλια라 했다. 영역: 브렌턴(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