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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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구절 사전

사무엘하 18:27

좋은 사람이 가져오는 좋은 소식

  • 복음의 말 בְּשֹׂרָה besorah · 기쁜 소식
그늘진 성문 통로에서 숨이 찬 젊은 전령이 돌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있고, 한쪽 돌 의자에 앉은 왕의 뒷모습과 벽을 따라 선 장로들과 호위병들이 보이며, 바깥 문으로는 밝은 빈 길이 비칩니다.
성문 안에서 왕 앞에 땅에 엎드린 전령

원어

삼하 18:27

번역

흠정역

파수꾼이 이르되, 내 생각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하는 것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하는 것과 같으니이다, 하매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니라.

개역한글

파수꾼이 가로되 나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왕이 가로되 저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 오느니라

BSB

The watchman said, “The first man appears to me to be running like Ahimaaz son of Zadok.” “This is a good man,” said the king. “He comes with good news.”

KJV

And the watchman said, Me thinketh the running of the foremost is like the running of Ahimaaz the son of Zadok. And the king said, He is a good man, and cometh with good tidings.

LSV

And the watchman says, “I see the running of the first as the running of Ahimaaz son of Zadok.” And the king says, “This [is] a good man, and he comes with good tidings.”

주석

  • 매튜 헨리 삼하 18:19-33 전체에 대하여

    아히마아스는 다윗에게 그 승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이끎으로써 그가 아들의 죽음 소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가운데 우리 마음이 더 굳건해지고 넓어질수록, 그 은혜와 섞여 있는 고난을 인내로 견딜 준비가 더 잘 갖추어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의 소원이 압살롬의 영원한 상태에 대한 염려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오히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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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슬리

    이 구절에 대한 말은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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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파수꾼이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아히마아스의 달음질 같다고 하자 왕은 말합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삼하 18:27).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에 ‘좋은’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파수꾼은 멀리서도 달리는 모양으로 사람을 알아봅니다. 다윗에게 아히마아스는 이미 믿을 만하다는 것을 보여 준 사람이었습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을 차지했을 때 그는 요나단과 함께 목숨을 걸고 후새의 경고를 다윗에게 전했습니다 (삼하 17:17–21). 다윗은 사람을 보고 소식을 짐작합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리라는 것입니다. 그 짐작은 반만 맞았습니다. 아히마아스는 외쳐 "다 잘 되고 있나이다" 하고 엎드려 여호와를 찬송하며 승리를 알렸지만, 왕이 압살롬이 무사하냐고 묻자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고 비켜 갑니다 (삼하 18:28–29).

히브리어는 ‘좋은 소식으로 그가 온다’라고 말하며, 베소라 뒤에 형용사 토바(좋은)를 붙입니다. 앞의 두 절에서는 그냥 소식이었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어가 굳이 ‘좋은’을 덧붙인 것은, 베소라만으로는 소식이 좋은지 나쁜지가 늘 정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도 시온의 전령을 말할 때 ‘좋은 것’을 가져오는 자라고 덧붙입니다 (사 52:7). 신약의 은 ‘잘, 좋게’를 뜻하는 에우와 ‘소식을 전하다’라는 말의 뿌리 앙겔-이 한 낱말로 붙은 말이어서, 히브리어가 여기서 따로 붙인 ‘좋은’을 낱말 안에 담고 있습니다.

번역들은 이 절에서 모두 같은 길을 갑니다. 흠정역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개역한글 ‘저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 오느니라’, 영어 성경들도 모두 good tidings 또는 good news라고 합니다. 원문에 ‘좋은’이 있으니 번역이 갈릴 까닭이 없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음 절입니다. 아히마아스의 첫마디는 히브리어로 ‘샬롬’ 한 낱말인데, 흠정역은 킹제임스 성경처럼 ‘다 잘 되고 있나이다’라고 옮겼고, 개역한글은 ‘평안하옵소서’라고 하여 왕에게 드리는 인사로 읽었습니다.

다윗은 전하는 사람이 좋으니 소식도 좋으리라 여겼습니다. 복음은 그 순서를 거꾸로 세웁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어떤 이들은 "시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빌 1:15)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선포되시나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빌 1:18) 하고 말합니다. 복음의 좋음은 전하는 사람의 좋음에 매달려 있지 않고, 선포되는 그리스도께 달려 있습니다. 거꾸로,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나쁜 소식을 좋은 소식으로 바꾸지는 못합니다. 아히마아스가 그것을 보여 주었습니다.